4. 사막과 초원을 품은 이슬람 세계

 

1. 동·서 교역로의 강대국, 페르시아

 

   희랍 세계와 전쟁을 하며, <300>이라는 영화에 등장했던 그 페르시아 제국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망했다. 그러나 이란 민족은 파르티아 왕국과 사산 왕조를 잇달아 세우며 과거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 했다. 그러나 이때 이미 지중해 세계는 로마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페르시아는 로마제국과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충돌의 실제 목적은 영토 다툼보다는 동·서 교역로의 확보에 있었다. 교역의 요충지를 차지하면 평화 시에는 무역을 통해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전쟁이 일어나면 무역을 봉쇄하여 로마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서 교역의 결과 사산왕조 페르시아에는 세계 여러 곳의 문화가 전해졌다. 그리스의 철학과 자연과학이 페르시아에서 발전하였고, 인도 문학이 페르시아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2. 아랍에서 이슬람교가 일어나다

 

   같은 아시아에 속하지만 아랍세계는 우리에게 별로 친숙하지 않다. 이슬람교를 믿는 친척도 (거의) 없고, 아랍 영화를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TV의 여행 프로그램도 아랍세계를 자주 보여주지 않는다. 중동 건설 붐에 대한 70년대의 신화도 지금 세대에게는 가뭇한 이야기일 뿐이다. 게다가 아랍세계는 테러, 근본주의, 걸프전 같은 무서운 이미지들로 둘러싸여 있다. 아랍세계는 진짜 이런 음습한  세계일까?

 

   고대 제국들이 기원전 1,000년경부터 세워지기 시작한데 반해, 아라비아 인들은 1,500년 정도가 지난 기원후 6세기가 될 때까지, 국가 없이 부족단위로 살았다. 사막이 대부분인 아라비아 반도에서 유목생활을 하거나 오아시스 주변에 소규모로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6세기에 들어 아라비아 인들의 삶에 급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 페르시아와 로마가 다시 전쟁을 하면서 동서교역로가 막히자, 상인들은 무역을 위한 새로운 길이 필요해 졌다. 아라비아 반도는 지중해와 홍해 그리고 인도양을 잇는 뱃길과 육로의 중심해 위치해 있어, 무역의 요충지로 떠오를 수 있었다. 아라비아 인들도 유목과 농경에서 벗어나 무역에 뛰어들었고, 부를 축적한 이들 상인들은 세계 역사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중해, 홍해, 인도양을 잇는 아라비아 반도 : 아틀라스 세계사 >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메카의 상인이었다. 동굴에서 명상을 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아 “신 앞에서 모든 신자는 평등하다.” 고 주장하며 유일신 알라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쳤다. 무함마드는 이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였고, 630년 무렵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여 아라비아인이 중심이 된 국가를 세웠다. 이슬람 공동체는 종교 공동체인 동시에 정치 공동체로 만들어진 것이다. 무함마드가 죽자 이슬람 공동체는 칼리프라는 선출된 지도자가 통치하다가 곧이어 왕조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슬람교의 수니파와 시아파는 이때부터 갈라진다. 무함마드의 딸인 파티마의 핏줄을 인정하는 시아파와 왕조시대를 연 우마이아 가문을 인정하는 수니파로 나뉘었다. 가끔씩 해외 뉴스에 나오는 시아파와 수니파의 극한 대립은 이슬람교의 초창기부터 시작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3. 세 대륙을 품은 이슬람

 

   우리나라도 그런 것처럼 이슬람 세계도 한 왕조가 계속 지배한 것은 아니다. 우마이아 왕조가 아바스 가문에 의해 망하고, 이슬람은 세 대륙을 품은 거대한 제국이 되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에 걸친 아바스 제국 역시 곧 여러 왕조에 의해 분할 통치되었다.

     

 

 

   에스파냐 지역을 차지한 후우마이야 왕조는 유럽에 이슬람 문화를 꽃피운 것으로 유명하다. 후우마이야 왕조에서는 이슬람, 비잔티움, 그리스의 문화가 한데 어울려 수준 높은 문화를 남겼다. 우리가 잘 아는 알함브라 궁전은 훨씬 후대에 지어진 것이긴 하지만, 유럽에 대한 이슬람의 지배를 상징하는 대표적 건물로 남아있다.

   북아프리카를 차지한 파티마 왕조는 나일 강 주변의 풍부한 자원과 무역으로, 이슬람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는 아바스 왕조의 바그다드이다. 바그다드는 동서교역의 최대 거점지로 활발한 국제 무역을 벌였다. 바그다드는 ‘세계의 시장’ 이었고, 10세기에는 인구 150만이 넘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이 교역로를 통해 전 세계의 우수한 문화가 이슬람으로 흘러들었고, 이슬람의 문화가 다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우리가 아라비아 숫자라 부르는 것도 사실은 인도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이슬람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기 때문에 아라비아 숫자라는 잘못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아라비아의 커피’ 라는 뜻을 가진 아라비카 역시 아프리카가 원산지 이지만, 커피 문화 그 자체가 이슬람을 통해 다른 세계로 전파되었기 때문에 아프리카나 남미 대륙에서 재배된 커피콩을 지금도 우리는 아라비카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커피가 아라비아에 정착한 것은 14세기 이후의 일이지만, 이슬람 세계가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라 미리 언급하였다.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7세기부터 11세기 무렵까지 이슬람세계의 주인은 아라비아인이었다. 아랍어를 공용어로 삼았지만, 민족 차별을 폐지하고 누구나 이슬람법에 따라 평등하게 통치되었다. 종교적 자유도 보장되었고, 천문학과 의학이 꽃을 피우고, 전 세계의 문물과 문화가 모여들고 퍼져나가는 세계의 중심지였다. 지금 우리가 연상하는 테러, 근본주의, 내전, 기아 같은 무섭고 어두침침한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4. 이슬람 세계에 부는 바람

 

   11세기 중반, 이슬람 세계에 새 주인이 나타났다. 몽골 초원에서 질풍같이 달려온 셀주크 튀르크라는 유목민들이었다. 이들은 이슬람교로 개종했으나, 칼리프는 이름뿐인 종교 지도자로 밀어내고, 대신 정복자 토글리 베그 자신이 이슬람의 실질적인 제왕이 되었다. 그는 술탄이라고 불렸는데, 우리가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읽은 그 술탄이 아마 이때부터 이슬람의 황제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슬람을 차지한 셀주크  튀르크>

 

   여러 왕조로 나뉘었던 이슬람 세계는 셀주크 튀르크 아래 다시 하나로 통일 되어갔다. 그 와중에 동로마제국의 황제가 사로잡혔고, 이 때문에 유럽과 이슬람의 200년에 걸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십자군 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은 이슬람의 승리로 끝났다.

  

 

  <유라시아를 통일한 세계 최초의 제국, 몽골제국  : 아틀라스 세계사>

 

   그러나 이슬람 제국은 다시 한 번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을 당했다. 칭기즈칸의 몽골 군대가 파도처럼 몰려온 것이다. 1258년 바그다드가 점령당하고 칭기즈칸의 손자가 세운 일한국이 이슬람 세계의 수호자가 되었다. 몽골제국은 거대한 유라시아 제국을 통일한 세계 최초의 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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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2014-05-04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랍세계에 대한 편견을 깨고 그 시대의 아랍에 대해 알게 해 줍니다.
또한 아라바아 숫자, 커피와 같이 잘못 알았던 것을 일깨워 줍니다.

말리 2014-05-0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서가 '편견'이란 말도 알구 있구나. 그런데 사람들은 왜 편견을 갖게 될까? 윤서가 살면서 '아! 난 편견으로 그것을 대했구나' 란 생각을 했던 일에 어떤 것이 있을까? 맨 처음 이런게 편견이었구나 생각하게 만든 일이 있으면 댓글을 달거나 (글을 써도 되고 ㅎ) 다음 시간에 한번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쓴 2장 3장도 찾아서 읽고, 댓글 부탁한다~ 어린이날 잘 보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