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고전 연속 강의 2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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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세계사를 배운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딱 일 년이었다. 시작종이 울리기 전부터 벌벌 떨던 세계사 시간, 그 무서운 선생님은 우리 담임이셨다. 무엇이든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렸던 선생님 덕분에 빡세고도 살뜰한 일 년을 보냈다. 지금도 이름을 기억하는 선생님은 딱 그 분뿐이다. 오래전에 할머니가 되셨을 선생님이 생존해 계실지 모르겠다.

  선생님 덕분에 이것저것 참 많이 외웠는데, 그 숱한 사건의 연도들이 지금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을 리 없다. 그렇게 배웠다. 사건들과 연도들을 짝 지워놓고 무조건 달달 외웠다. 역사는 암기 과목이었다. 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은 사라예보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세르비아 청년 그리고 1914년만 외우면 충분했다. 역사 속의 숱한 암살들 중에 왜 유독 그 암살만이 세계대전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불러왔는지 궁금하게 여길 줄도 몰랐다. 역사는 단지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두드러진 사건,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역사를 만들어 온줄 알았다. 그 사건들은 거꾸로 역사적 변혁의 결과에 지나지 않음을 그때는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못했다.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19C는 부르주아의 전성기였고, 그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은 산업혁명과 해외식민지였고, 산업혁명은 17C 과학혁명의 결과라는 사실은 물론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신분질서에 얽매여 있던 제3 계급에게 부르주아라는 이름과 역사의 주인이라는 명예를 가져다 주었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세르비아의 한 청년이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를 향해 쏘았던 총알이 실제로 꿰뚫었던 것은 19C를 군림했던 부르주아지의 심장이라는 사실도 상상할 수 없었다.

 

 

  역사는 흐름과 축적이다. 하나의 사건은 다른 사건에 닿아 있고, 다른 사건은 또 다른 사건에 이어져 있다. 사건이란 단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만도 아니다. 이념의 흐름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역사를 변혁시켜 온 사건들이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다. 사건들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맥락 속에 그 사건들이 놓여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똑 같은 사건이라 할지라도 다른 맥락 속에 놓이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만약 파리의 시민들이 바스티유를 공격한 것이 1789년이 아니라 1289년이었다면 그것은 ‘프랑스 대혁명’의 발단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수 천 년의 기간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어떤 눈으로 어떤 사건들을 선택해서 어떤 흐름 속에서 역사를 구성해낼 것인가가 아마 가장 본질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 교과서 전쟁(?)의 '깊은 원인'일 것이다. 학생들은 배우는 교과서에 따라 각자 다른 역사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다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과서 문제는 단지 교재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의 문제이고 가치관의 문제 이다.

 

 

  『역사 古典 강의』는 저자 강유원이 독특하게 구성해 낸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제목 가운데 있는 ‘古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고전이다. 한 시대를 가장 집약적으로 혹은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고전들을 선택하여, 그 고전을 통해 역사의 맥을 짚어주고 있다. 보통 우리가 배워왔던 방식은 연대기 순으로 나열된 사건들의 흐름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당구장 표시’나 ‘용꼬리 용용’ 따위로 강조하며 꼭 외워야 했던 사건들은 많이 누락되어 있다. 대신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온 중대한 사건들이 발생했던 '깊은 원인'과 그것들이 이후의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수 백 년 이상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넓은 안목으로 설명해 준다.

  고대 희랍세계부터 제 2차 세계 대전까지의 긴 ‘강의’를 듣고 나면, 지금 우리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가 있다.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이 세상이 결코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우리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합리적 이성이라는 것도 단지 근대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도 새삼스레 환기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역시 언젠가는 지나간 체계가 될 것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이 출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어쩌면 이미 우리는 다른 세계로의 변화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수백 년 어쩌면 수십 년 후에 예기치 못한 우연적 사건이 터지면,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결코 되돌아갈 수 없으며,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이후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역사란 이런 상상을 도와주는 이 세계 모든 선조들의 귀중한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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