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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평점 :
500쪽 가까운 책을 만 하루만에 읽었다. 그건 나의 집중력도 끈기도 아니고,순전히 이야기가 가진 힘 때문이다. 거리를 두고 인물들을 탐색해 보거나 배경을 짚어 볼 틈도 없이, 이야기는 주인공(?) 팀버 울프 '링고'처럼 나를 덮쳐 왔다. 나도 링고를 놓지 못했고, 링고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내 모든 감각을 빨아 당겼던 이야기는 책장을 덮자마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재빠르게 흩어졌다. 마지막 두어방울의 눈물조차 흐르면서 말라버렸다. 독서회에서야 무슨 말이든 하게 되겠지만, 무슨 해야 할 말이 있을 지는 모르겠다.
누군가는 80년 광주를 연상했고, 누군가는 국가에 이런 전염병이 나돌면 다른 선택이 없지 않을까하고 말했다. 그 두 가지 말은 각각이지만, 그것이 내 귀에 하나로 흘러 들어오자, '빨간 눈' 전염병 보다 더 끔찍한 무엇이 되었다. 광주에서는 인간을 위협하는 어떤 전염병도 없었지만, 광주 밖의 사람들은 그것을 '빨간 눈' 보다 더 무서운 '빨간 것' 으로 두려워 했다. 두 가지 '빨간' 색의 일치는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의도가 엉뚱한 방향으로, 정반대의 방향으로 읽힌다면, 이 소설은 재앙일 수도 있다. 더우기 입에 담기도 힘든 왜곡과 모욕이, 광주를 다시 한번 난자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이 책의 후반부는 우리가 들어 알고 있는 광주와 지나치게 닮았다. 구덩이에 파묻힌 사체, 체육관에 늘어 선 주검들, 시청에 모여든 사람들, 시민들의 토론과 자치, 외곽으로 물러난 계엄군, 그리과 최후의 진압까지. 그런데 국가나 계엄군에 대한 묘사는 전혀 없다. 무능하지만 기계처럼 냉혹하게 전염병의 확산에 대처하는 행정이 있을 뿐이다. 누가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어떤 격론이 있었는지, 어떤 항명이 있었는지, 하다 못해 계엄군들의 최소한의 인간적 고뇌마저 작가는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 한쪽에는 인간이 있지만, 반대쪽에는 무능한 행정이 있을 뿐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불가항력에 놓인 행정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있다.
그런데 소설의 이 '어쩔 수 없음' 이 예기치 않게 역사적 '광주'와 연결되면, 일베가 한 그 어떤 짓들 보다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역사의 왜곡이 발생한다. 광주도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암흑연기처럼 독자들의 마음에 스며든다면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이 지나친 우려거나 혼자만의 망상일 수 있지만, 이 책을 독서 목록에 올리자마자 동시에 튀어나온 회원들의 몇 마디가 내내 가슴에 걸려 있다. 작가는 한번도 떠올려 보지 못했겠지만, 해석은 늘 엉뚱하게 튀게 마련이다.
이 책은 광주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처럼도 보이고, 전혀 말하고 싶어하지 않은 것처럼도 보인다. 어느 경우든 독자가 광주를 연상하고, 저자가 그것을 예견했다면, 저자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광주를 말하려 했다면, 그 비극의 원인에 대해 철저하게 외면하고, 현상만 나열한 나태함에 대해, 그 결과 의도치 않게 왜곡한 역사에 대해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광주가 목적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배경으로 차용하려 했을 뿐이라면, 그렇게 무심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 생각 자체가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광주의 비극을 한낱 이야기거리로 전락시킨 그 안이함과 잔인함에 대해.
그래서 이 책은 광주와는 한 올의 연관도 없이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잔혹한 리얼리티 속에 숨겨진 구원의 상징과 생존을 향한 뜨거운 갈망'으로 오롯이 읽힐 수 있다. 한 편의 재난 영화처럼. 인간을 덮쳐 오는 알 수 없는 재앙에 사로잡혀서도 끝까지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성의 승리라고 읽어 낼 수 있다. 너무 많이 보아와서 하나도 새롭지 않고, 조금도 충격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힘있게 달려 가는 이야기는 읽어도 읽어도 지치지 않는 어린시절 동화책처럼 너무 너무 재미있으니까. 책을 덮으면 그것으로 끝나 버린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