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판]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 특별보급판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차이가 뭘까? , 가끔 생각해 보지만 제대로 알아 본적은 없는 의문이다. 심리학과에 다녔으면 재밌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지젝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심리학에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게됐다. 지젝이 뾰족하게 뭐라고 한 적은 없지만, 정신분석은 심리학을 개똥만큼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 심리학도 그러리라 나는 생각했다. 가장 친연성이 커보이지만, 서로 서로는 소 닭보듯 혹은 아예 없는 듯 무시하는 그런 관계처럼 느껴졌다. 

 

  독서회가 아니라면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또한 내 독서목록에 오를 가능성은 전혀 없는 책이다. 그래도 이런 기회에 심리학이 무엇인지 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약간의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없다거나 지루하다거나 이런 것을 떠나 이 책은 무엇보다 불쾌했다.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10가지의 실험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도 불쾌했고, 저자가 감성적으로 개입하는 방법도 매우 불편했다. 심리학이 다 이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것이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씩이나 된다면, 심리학에 더 이상 호기심을 가질 필요도 없겠다 싶다. 사람들은 이 책에서 무엇을 보았길래, '8년 연속 장기 베스트셀러 행진!' 이라는 수식어를 헌정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독서회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이유의 일단을 알게 되겠지만, 아마 나는 별로 공감하지 못할 것 같다. 

 

  이 책의 두 번째 실험인 '스텐리 밀그램의 충격기계와 권위에 대한 복종' 에 소개된 실험은 언젠가 우리나라 TV에서도 보여준 실험이다. 피실험자로 하여금 질문에 답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기 충격 장치의 버튼을 누르게 하는 실험인데, 오답의 횟수가 증가할수록 전압을 올리게 한다. 답을 하는 사람은 미리 섭외된 연기자로 전기 충격을 받을 때마다 고통스러운 연기를 하는데, 반수 이상의 피실험자들이 상대의 고통을  바라보면서도 지시대로 충실하게 버튼을 누른다. 밀그램은 이 실험을 통해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고 한다. 독일국민들이 나치를 지지한 그 불가사의가 바로 '권위에 대한 복종'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이 실험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말을 지나는 식으로 슬쩍하고 넘어가는데,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렌트의 주장은 '악의 평범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의 부재' 에 있다. 밀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조차 악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단지 사회적 분위기, 권위에 대한 복종에 있다고 결론을 내릴 뿐이다. 한나 아렌트가 한 작업은 왜 그렇게 선량한 사람들조차 불합리한 권위에 복종하는가를 탐구한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사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권위가, 그 명령이 합리적인지, 옳은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숙고하는 사유 능력의 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 한나 아렌트의 주장이다.

  밀그램의 실험과 같은 것이 이른바 심리학이라면 심리학은 현상을 수집해서 분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에 관한 해석과 철학적 사유가 없다. 맞다. 사유가 없다. 이 책을  통해 내내 불편했던 이유는 10명의 '위대한' 심리학자뿐만 아니라 저자조차도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에게는 낯간지럽게 넘치는 감성과 생뚱맞은 개입이 있을 뿐, 일관된 철학이 없다. 이 실험들을 선정하고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 없는 것이다.  심리학적 실험 자체가 관점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증거를 최우선하는 작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실험은 이미 그 설계에 관점이 개입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10명의 실험자들은 뚜렷한 관점을 갖고 있는데, 저자만 우왕좌왕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 나쁜 것은 관점이 빈 자리를 생뚱맞은 공감으로 채워넣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험자들과 그 가족 혹은 지인들을 찾아 다니며, 쓸데없는 감성을 불러 일으키려고 하는 그 태도가 참 역겹다. 철저하게 실험 자체에 집중하든가, 일관된 관점으로 그것들을 해석하고 꿰어내든가, 뭔가 저술의 원칙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여하튼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은 책이다. 심리학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심리학의 입문서로는 더더욱 나쁜 책이 아닐까 싶다. 이런 것이 심리학의 정수라면 글쎄 심리학은 그저 실험기술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전공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래서 공부를 계속했다면, 나도 이런 실험들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런 것들로 세상을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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