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으러 들어와 습관적으로 TV를 켜니, YTN 속보라는데, '통진당 내란음모죄' 로 법석이다. 시끄럽다... 놀랍기 보다 시끄럽다. 유사시에 대비하여 총기를 준비하라는 녹취록을 확보했단다. 전쟁이 일어나면 경기남부의 통신, 유류 시설을 파괴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도 한다. 어저껜가  "김정은, 동북아서 위험한 일은 없을 것' 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정작 위험은 위험을 조장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트윗도 대충 놀림거리 하나 만났다는 분위기다. <정원이와 정은이> 라는 '본격냉전콩트' 제목도 나왔다. 정원이가 누군가? 국정원장 이름은 아닌데 갸우뚱거리며 검색을 하는 순간 알았다. 아, 국 정원이! 성을 빼고 부르니 생판 처음 듣는것 같구나 호호.. 국정원 정치개입이 내란음모에 가까운지, 통진당 똘아이들의 쑥덕공론(이런게 있기는 할까;;)이 내란음모에 더 가까운지, 그거라도 이 참에 한번 밝혀보면 좋겠다.

 

 

오후 2시 현재, 다음 실시간 이슈에 '내란음모죄' 같은 것은 없다. 이석기, 김재연이 3위와 5위를 찍고 있고, 1위는 단연 '태풍북상' 이다.  태풍 '콩레이'는 일본 쪽으로 갈 것 같다는 전망이 나왔는데도, 인기가 내란음모 뺨을 친다. 아마 작년 태풍 '볼라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년은 유난히 태풍이 잦았다. 그리고 우리집은 유난히 태풍에 취약했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아파트에, 한 번도 손본적이 없고, 세입자들만 들락거린 험한 집, 거기다 앞은 훤하게 트였고, 결정적으로19층 고층이었다. 평소에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19층엔 회오리바람이 '피용~ 피쉬쉬식' 비명을 지르고,  창문이 덜컹거렸다. 태풍 소식에 박스테잎을 사다 붙였지만 별 위안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테잎자국 지운다고 힘만 썼다. 방송에서 신문에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테잎 붙이고, 신문지 붙이라고 광고를 하더니만, 태풍이 지나고 나니, 그거 다 말짱 소용없는 짓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벌써 수십년 전에 해본 짓인데, 효과는 없고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유리창이 문제가 아니라 창틀이 문제라는 보도도 나왔다. 오래된 창틀은 그 자체가 휘거나 덜컹거려서 창도 깨지고 위험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볼라벤이 지나자 창틀이 휘어진 집들이 TV 화면에 위험스레 보도됐다. 그런 기사들을 보면 정말이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낡고 건들거리는 우리집 창틀이 그 거센 비바람을 이겨냈다는 것에 감사했다. 감사를 잘 못하는 성격인데, 정말 감사했다. 나는 그나마 볼라벤이 서해로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언니네로 도망갔다. 평소에도 신경이 예민한 편이라 덜컹거리는 소리를 싫어하는데, 아무래도 안되겠다며 남편이 데려다 줬다. 볼라벤이 수도권에 근접하던 그 날 밤, 남편은 한 숨도 못잤다고 한다. 덜컹거리거나 퍽하는 소리가 아니라 뜯겨나가는 괴상한 소리에, 이제 깨졌나 싶어 나가서 확인하고, 또 나가서 확인하며 밤을 샜다고 한다. 겁 없는 남편인데, 도저히 잠잘 수 없었다고, 무서웠다고 했다.

 

 

다행히 올해는 이사를 왔다. 3년된 새집이고, 7층이라 그리 높지도 않다. 그런데 오고나니, 여기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바닷가라 바람이 세고, 높은 산이 없어 바람이 거침없이 불어닥친다. 4월에 이사를 왔는데, 정말이지 봄바람이 작은 태풍처럼 불었다. 바람때문인지 남쪽인데도 수도권보다 더 추웠다. 지역 주민들 왈,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바람 때문에 좀 고생한다고 한다. 

 

여름이 되고, 혹여 태풍이 올라올까 조금 신경을 썼다. 그전까지는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하건, 농작물을 쓸어버리건, TV 속의 일로만 알았는데, 19층 낡은 아파트에서 태풍을 겪고나니 남의 일이 아니다. 다행히도 올해는 아직까지 태풍이 없다. 북상하는 콩레이는 일본으로 갈 예정이라 한다.

 

 

한반도 태풍의 진로는 '북태평양 고기압' 이 결정한다. 태풍은 '북태평양 고기압' 의 가장자리를 따라 북상하는데, 올해는 이 고기압이 워낙 동서로 길게 뻗쳐서 중국-한반도-일본을 뒤덮는 바람에 태풍의 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제 북태평양 고기압이 서서히 위축하고 있어 한반도 쪽으로 태풍의 길이 만들어 지고는 있다. 9월까지 강력한 태풍이 올라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고기압이 빨리 수축해서 일본쪽으로 오그라들면 우리나라는 태풍을 피해갈 수도 있다.

 

사실 콩레이 기사를 보다가, 북태평양고기압의 분포에 따라 월별로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에 관한 그림이 있길래 복사해 두려고 한 것인데, 또 말이 길었다. 왜 자판 앞에 앉으면 자꾸 말이 길어지는 지 모르겠다.

 

 

 

이 기사를 통해 오늘 새롭게 안 사실은, 태풍은 지구의 항상성 유지를 위한 자구 노력이라는 것이다. 열나면 우리는 해열제를 먹는데, 지구는 높은 곳의 열을 낮은 곳으로 옮겨 '열적 균형'을 맞춘다. 적도 부근은 당연히 열을 많이 받는다. 이 뜨거운(?) 공기가 바다에서 수분을 공급받아서 덜 뜨거운 고위도 지방으로 이사하는 것이 소위 태풍이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바람과 비가 동반된다.  왜 태풍은 항상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오는지 이제 알겠다. 저위도에서 고위도로 열을 보내, 지구의 열적균형을 회복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올해는 태풍없이 잘 지나가면 좋겠다. 이 태풍 대신 내란음모죄라는 태풍이 불까? 싶기도 하지만, 열대저기압이라고 전부 다 태풍이 되는 것은 아니다. 찻잔 속의 태풍이란 말도 있지만, 그것이 어찌 태풍인가?   

우리가 이미 볼라벤을 겪어 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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