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알라딘 '블로거 베스트셀러'에 『살인자의 기억법』이 올라온 지 꽤 된 것 같다. 김영하라는 소설가를 알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몇 년 전  "김영하 vs  조영일" 논쟁이라는 것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을 때,  그가 꽤 유명한 소설가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밥과 김치'를 남기고 고인이 된 최고은이라는 작가 때문에 그 논쟁은 더욱 뜨거워졌고, 김영하는 착잡한 마음을 피력하며 논쟁의 글들을 모두 지우고 한동안 침묵에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몇 달 전 아이패드를 통해 그를 다시 만났다.

  스마트폰도 없이 지내다 지방으로 내려오면서, 뭔가 주변부로 밀려나는 듯한 쌉쌀한 마음에 아이패드를 샀다. 말로만 듣던, 강처럼 흐르는 트윗이라도 하게 되면, 세상의 중심에 있는 기분이라도 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지금도 여전히 나의 트윗은 강물은 커녕 달팽이처럼도 움직이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SNS보다 뜻밖의 수확은  팟캐스트다. 집안일을 하며, 잠들기 전에 등등, 짜투리 시간에  팟캐스트를 듣는다. 강유원의 "라디오 인문학"은 혼자서는 절대로 읽지 않을 고전들을 듣는 재미가 적지않다. 플라톤의 향연,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사,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등. 거리의 철학자라는 강유원의 입담도 만만치 않다. 나꼼수류의 시시껄렁한 입담이 아니라, 곰국같이 구수한 입담이다. 설겆이 물소리 때문에 군데군데 들리지 않아도, 이방저방 돌아다니느라 드문드문 빼먹어도 그 뿐, 다음에 또 들어도 질리지 않고 재미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도 기분이 쳐질 때 들으면 상큼하다. 작가라는데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말솜씨만은 전문 MC에 빠지지 않는다. 약간 높은 톤의 밝고 활기찬 목소리, 상큼한 사과를 한입 베어무는 기분이다. 남자들도 저렿게 생기발랄할 수 있구나 싶다, 더구나 작가가.   

  그리고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이 있다. 설마 했는데, 진짜 그냥 책을 읽을 때가 많다. 장편소설의 한 구절을 뽑아 그대로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때도 있는데, 중저음의 침착한 목소리 하나만은 듣기에 좋다. 혼자 녹음하고 직접 팟캐스트에 올린다고 하는데, 재주도 많은가 보다. 호기심이 많거나, 부지런하거나.

 

 

  『살인자의 기억법』을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왠 횡재인가 싶어 냉큼 빌려왔다. 읽어야 할 다른 책이 있는데, 한 며칠 묵히더라도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정유정의 『28』이나 조정래의 『정글만리』등 조금 유명한 신간은 빌려 읽기가 엄청 힘들다. 도서관에 돌아오기 전에 벌써 다른 사람이 빌려버리는지, 검색할 때마다 '대출중'이다. 여기 도서관에는 대출중인 책은 예약할 수 없다. 시스템이 안되어 있단다.

 

 

  예상외로 얇고,행간도 넓고, 글씨도 널널해서, 막상 읽는데는 반나절도 필요하지 않다. 술술 읽히는 것을 보니 재미가 있긴 한가보다. 그런데 이게 왜 베스트셀러인지는 모르겠다. 이야기 자체는 무척 흥미롭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다만 한두가지 의문이 들뿐이다.

 

  화자는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연쇄살인범 노인이다. 그런데 그의 사고력은 너무 뛰어나다. 알츠하이머 화자가 과거의 기억은 또렷할 수 있지만, 그것들에 대한 표현력이 이처럼 훌륭할 수 있는 걸까? 화자와 작가는 물론 다르다. 그러나 이 책의 서술 방식은 화자의 생각이나 말을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이다. 화자의 일기장 같은 것인데, 너무 논리적이고 너무 사색적이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언어를 잃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망각 속에서 언어를 잃는다. 건망증의 가장 흔한 증상은 단어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나는 모른다. 말기의 알츠하이며 환자가 이런 일기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선입견으로는 뭔가 부자연스럽다. 나의 선입견이 선입견이 아니라면, 이 소설은 부자연스러운 서술 방식을 택한 것이다. 물론 모든 소설이 다 그럴지도 모른다. 작가들은 인터뷰에서 인물들이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고 하지만, 인물들의 말도 생각도 모두 작가의 말과 생각이지 않은가. 그래서 소설이든 드라마든 등장인물들의 말투가 천편일률적으로 같을 때가 많다. 재벌 회장도 주먹 깡패도 똑 같이 비유법 좋아하고, 회고하기 좋아한다. 양아치 짓을 하다가도 멀쩡하게 교사처럼 설교한다. 드라마 <황금의 제국> 이야기다. 재미있고 좋은 드라마인데, 너나 할 것없이 똑같은 말투가 기분을 팍 잡친다. 여하튼 단순한 의문이다. 치매 환자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  표현이 아니라 그냥 생각만이라 하더라도 가능할까? 생각 역시 언어로 구성된 것 아닌가? 언어를 잃고 사고를 또렷이 할 수 있을까?

 

  "시인은 숙련된 킬러처럼 언어를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하는 존재입니다. "  문화센터 강사의 말이다.  킬러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은 언어를 살해했기 때문일까? 킬러가 연쇄적으로 죽여 나간 것은 사람이 아니라 언어인 것일까? 이 책은 언어에 대한 거대한 메타포일까?  " 다음엔 더 잘 할 수 있을 것" 이라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킬러는 살인을 계속한다. 시인도 그렇게 시를 계속 쓰는 것일까? 언어를 더 완전하게 죽여  시 속에 묻어 두기 위하여?  언어를 완벽하게 포착해 자신 속에 가두어 두기 위해?

  그러나 죽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킬러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인간이 언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을 통해 말한다는 명제도 있다.  개체가 죽어도 유전자는 또 다른 개체 속에 살아 남듯이, 사람은 죽어도 언어는 남는다.  아닌가? 

 

  언어를 완벽하게 살해하는 것, 그것이 작가들의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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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금강경과 반야심경에 둘러 쌓인 두 농담의 공포 -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from 뚜벅뚜벅 주니우 2013-08-26 12:51 
    문학평론가 권희철씨의 해설에서 인상 깊은 문구 몇 개를 가져왔다. - 잘못된 인식과 고집과 고통이 집합소로서의 자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여기 남은 건 무아의 상태가 아니라 대혼란이다. 무너져내리는 세계 속에서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고 그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의 바다 위에서 영원히 허우적거려야 하는 고통과 공포가 너의 몫이다. - - 연쇄살인범의 세계에서 주어는 오직 자기 자신 뿐이며 나머지 것들은 주어에 의해 부정당하기 위해 준비된..
 
 
주니우 2013-08-26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번 김영하씨는 일반인들이 스스로를 주인공과 동일화시키기 어려운 '알츠하이머 환자'인 '연쇄살인범'으로 주인공을 잡았습니다. 따라서 '화자의 일기장 같은 것인데, 너무 논리적이고 너무 사색적이다'라는 말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꼭 그렇지 말라는 보장이 또 뭐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얘 폴더를 만들어 김영하씩 소설을 관리하실 모양이군요~ 적극 추천합니다.
저는 이 폴더에 '책 읽어주는 시간'에서 소개한 책을 넣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말리 2013-08-2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고 남은 생각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순전히 서재지수 올리려고 ㅋㅋ(이거 은근 중독성 있음. 근데 아직 점수 규칙은 모르겠음) 걍 쓰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건 언어를 죽이는 시인에 관한 메타포구나. 근데 금강경은 모르니까, 금강경 구절로 앞, 뒤를 맞추면 또 다른 해석이 나오겠지요. 권희철의 해설은 안 보고 반환해서 내용은 모릅니다만. 근데 언어에 촛점을 맞추게 되면, 조금 어색해지더군요. 우리가 내뱉는 것, 표현하는 것만 언어가 아니라, 생각이나 의식 혹은 무의식까지 모두 언어로 되어있다는 전제를 인정해 보면, 언어가 죽어나가는데, 사고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거지요. 언어를 죽이면서 언어를 포착하는 작업으로 보면, 표현이 달라져야 된다는 거지요. 뭐 깊이 생각한 게 아니라, 마음대로 쓰다보니 그런 생각이 설핏들었고 걍 생각나는대로 쓴 글이라 ㅋ. 여하튼 좀 알아 보고는 싶군요. 알츠하이머가 진행되면 사고나 표현은 어떻게 되는지. 근데 어쨌거나 난 언어를 살해하는 킬러라는 착상(내 맘대로 규정한 ? )은 마음에 들어요. 결국 죽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킬러죠. 알츠하이머에 의해 킬러가 죽는다는 것은 자기가 죽인 언어에 의해 결국 죽임을 당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