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6월 26일 쓴 글입니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영화는 그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와 고향 제주의 갯내음을 안고 곧장 독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 후 7년이 지나 개봉을 했지만, 영화에는 더 이상 뒷이야기가 없다. 그는 더 이상 경계인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했을까?

 

내가 송두율이라는 학자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아마 2003년, 그가 귀국하여 검찰 조사를 받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그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인가 아닌가로 논란이 뜨거울 때였는데, 그때 나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석연치 않았고 그의 두리뭉실한 사과는 그 석연치 않음을 더욱 석연치 않게 했다. 나는 그때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알 수 없었지만, 김철수인지 아닌지, 노동당 서열 23위인지 아닌지 그가 몰랐다는 것도, 그가 모르지는 않았다는 듯이 말하는 것도,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더 이상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가 독일에서 어떤 학문을 하고, 어떤 책을 썼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나는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다만 그가 남북의 통일을 위해 경계인으로 살고 싶어 했다는 것 외에는. 그가 김철수 논쟁에 휘말리지 않고 남북 화해 무드를 타고 남한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더라면 그가 내세운 ‘경계인’도 홍세화의 ‘똘레랑스’가 한 때 그랬던 것처럼 우리 시대의 키 워드가 될 수 있었을까? .... 나는 경계도시2를 보면서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이 영화의 모든 것은 사실 한 장면에 집중되어 있다. 송두율이 구속 수감되기 전 대국민 사과 기자 회견을 하기 위해 송두율 진영의 사람들이 모여서 대책 회의를 하는 장면이다. 검찰은 이미 송두율이 김철수라고 확신하고 있었고, 여론 뿐 아니라 민주 진영조차 그 사실에 경악하고 있을 때였다. 송두율은 여전히 애매모호한 태도를 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자기를 김철수라고 부르는 것을 인지한 시점이 스스로에게도 모호하고, 노동당에 가입했지만 일종의 요식행위라고 생각했고, 정치위원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활동을 한 바 없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송두율은 김철수라 불리긴 했지만 사람들이 의심하는 그런 김철수는 아니고, 노동당 정치위원에 이름이 오르긴 했지만 오로지 이름으로서만 정치위원이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북한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가 원한 것은 오로지 경계인이었을 뿐, 북한도 남한도 아니었다. 그의 국적은 독일이었다. 독일인으로 남과 북의 경계에 서서 두 나라의 화해와 통일에 견인차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남한은 그에게 실정법을 들이대며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에게 선택을 강요한 것은 비단 국가보안법이라거나 하는 법체계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남한 사회는 한 목소리로 그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남이냐? 북이냐? 남한에서 살기 위해서는 북한을 부정해야 하고, 북에 갔던 것을 사과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의 ‘경계인’을 포기해야 했다. 그렇다 그의 국적 독일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야만 송두율은 남한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단호한 쪽은 오히려 부인이었다. ‘경계인’은 송두율의 정체성인데, 그 정체성을 포기하고 남한에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의 부인은 남편이 받아야 할 고난에는 의연했지만, 정체성을 잃은 남편은 더 이상 남편 송두율일 수 없음을 확언했다. 송두율 자신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이것은 더 이상 송두율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송두율의 입국을 추진했던 oo씨(이름을 모름;;)는 고래고래 목청을 높였다. 송두율이 개인의 양심만을 고집할 경우 민주 진영은 박살이 난다는 것이다. 송두율이 노동당 서열23위임이 밝혀졌을 때 이미 게임은 끝났다. 통일 논의에 활력을 불어 넣고자 초빙했던 송두율이 이제 통일 세력의 핵폭탄이 되었다는 듯이, 무조건 항복 외에는 자멸뿐이라는 듯이, 그는 극단의 언어를 쏟아 내었다. 그의 부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인’ 송두율을 포기할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자, 화면 바깥쪽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태극기를 휘감은 경계인도 많습니다!”

 

나는 그 때 알았다. 왜 송두율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못했는지를. 그의 ‘경계인’이 왜 그렇게 맹숭맹숭했는지를. 그가 원한 것은 제3의 자리였다. 남도 북도 아닌 제3의 자리, 그 경계에 서서 제3의 객관적 시선과 판단을 원했다. 그 전지적 시점을. ... 가능할 것인가?

 

남에도 북에도 돌아 갈 수 없었던 최인훈의 ‘명준’은 바다 속을 택했다. 실제로 6.25 정전 후 제3국을 선택한 76명의 반공포로들은 남도 북도 모두 포기하고, 그냥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택했다. 제3의 길이 가능하다면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나는 실제로 그가 김철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스스로 북한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가 무슨 책을 썼는지 모르지만 사실 북한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지식으로서의 북한이 아니라 실재의 북한, 북한이라는 곳의 삶, 북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아마 남한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아니 김철수 사건을 겪으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가 경계인으로서 부푼 꿈을 품고 남한의 공항에 내렸을 때, 그 때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남한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는 비로소 알았을 것이다. 자신을 지지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자신을 초빙했던 당사자들까지 자신을 의심하고 몰아세우고 사과하기를 주장했을 때에야 비로소 남한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의 JSA가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지도 모른다. 따뜻한 감성과 균형 잡힌 이성으로 형제애를 나누던 그 네 명의 군인들이 순식간에 갈라서서 방아쇠를 당겨야 했던 그 순간에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믿고 있던 것의 차이가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던 그 순간에 말이다. 어쩌면 인공기를 휘감고 있던 오경필(송강호)이야말로 경계인이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유혈과 혼란의 현장에서 차분하게 이병헌에게 총을 쥐어주며 자신의 어깨를 쏘아 현장을 수습하게 하던 오경필은 어떤 의미에서 경계인이 아닐까....

 

나는 지금 송두율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가 사실 궁금하다. 가혹한 말이지만 그가 진정으로 경계인이 되고자했다면 그의 남한에서의 경험이야말로 그 시작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한 사회가 노동당원 김철수를 앞에 두고 자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던 그 순간에 보았던, 그리고 겪었던 바로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남한을 바라볼 수 있는 진정한 눈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가 오히려 진정한 김철수였기를 진심으로 바래보았다. 정치위원 김철수로서 그가 하고, 보고, 느꼈던 것이야말로 그에게 북한에 대해 진정으로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경계인이 그저 제3의 외부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태극기를 휘감은 경계인이나 인공기를 휘감은 경계인 이외의 중립적, 객관적 경계인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힘들고 힘든 고난의 길이다. 이미 김구 선생이 보여주었고, 문익환 목사가 보여주었 듯이 말이다.

 

경계 도시 2에서 보이는 송두율의 모습은 착하고 유약해 보였다, 우리가 천상 학자라고 말할 때의 그런 모습처럼 말이다. 그냥 한 사람의 학자로서 남과 북의 통일에 대해 연구하고 발언하는 송두율은 나쁘지도 않고 문제될 것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를 통일의 도구로 규정하고, 역사가 지우는 그 책임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할 의지가 있었다면 그는 이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그저 잊히면 그만일 뿐이다. 노래 가사처럼 그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이.... 이 영화의 감독은 나레이션을 통해서 송두율 사건은 우리 사회에 던져진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만 그것은 그대로 송두율 자신에게도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였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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