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이었던 남자 - 악몽 펭귄클래식 76
G. K. 체스터튼 지음, 김성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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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7월 25일 카페 과제물입니다.  체스트턴의 책 리뷰는 아니고, 책에 나오는 ' 철학경찰'에 착안한 글입니다. 과제는 내가 어떤 학파의 태두가 된다면? 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과제는 순전히 소설이다. 태두는커녕 학파에 한 다리 걸쳐볼 꿈도 꾸기 힘든 판이니 학파의 정의고 태두의 정의고 뭐고 그냥 소설로 나가야겠다. 이 때 소설은 그 소설이 아니고 소설 쓴다, 소설 써! 의 그 소설이다 ;; 



나는 철학 경찰 학파의 태두이다. 물론 처음 철학 경찰을 제안한 그 분은 일종의 사상 검열 같은 역할을 철학 경찰의 임무로 주창하셨지만, 우리 학파의 임무는 전혀 다르다. 일단 그 분은 하이데거가 파시즘에 논리를 제공하고, 맑스가 스탈린식 전체주의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에 열 받으시어, 전체주의 같은 극악무도한 체제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철학을 발본색원 하시기를 염원하셨다. 그러나 히틀러가 하이데거의 책임이고 스탈린이 맑스의 책임이냐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분분하고, 우리 학파는 사실 그런 거창한 문제에는 각별한 관심을 가질 깜냥도 주제도 못되는 바, 단지 철학 경찰이라는 이름만을 그 분에게서 빌려왔음을 밝혀둔다. 또한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미리 말씀드리는바 우리 학파는 그 분의 철학 경찰 이론을 지지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물론 경찰이라는 것의 본분이 민중의 몽둥이 인 것이 사실이다. 국가는 민주적 법으로 지탱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법이라는 것의 실체가 몽둥이이다. 이해하시기 어려운 분들은 2008년부터 2010년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신문들만 주욱 훑어보시면 된다. 이왕 보시는 김에 조중동 말고 한겨레, 경향 같은 것들로 보시면 좀 더 상황 판단을 빨리 하실 수 있다. 물론 다음 아고라를 이용하셔도 된다. 그러나 몽둥이도 사용하기에 따라 지팡이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우리 학파가 오해의 여지를 무릎 쓰고 철학 경찰 학파로 이름을 삼은 이유이다.


우리 철학 경찰 학파의 임무는 아래와 같다.

1.  각종 철학 관련 서적의 번역판을 저자별로 분류하여, 번역상의 오류를 낱낱이 밝혀낸다. 단, 이 때 철학서라 함은 일반인들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입문서나 기초서로 너무 전문적인 영역은 우리 학파의 능력을 넘어서는 관계로 다루지 아니한다.

2.  오류가 허용 범위를 넘어서면 번역가를 소환하여 진술서를 작성한다. 이때 허용 범위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① 주어 술어 목적어의 관계가 불분명하여 문장의 뜻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사실 이것이 우리 철학 경찰 학파가 탄생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영문 서적의 번역본을 예로 들면 영문에서는 문장이 길어지는 경우 주로 S+V+O+which ~ 구문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문장의 목적어는 명확하다. which 구문은 단지 목적어를 설명하거나 수식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로 번역될 경우, 동사가 문장의 맨 나중에 나오는 문장 구조 상 동사의 진짜 목적어와 which 구문 안의 여러 명사가 뒤엉켜 어느 것이 목적어이고 어느 것이 which 구문 안의 목적어인지 구별 불가능할 때가 많다. 심각한 경우에는 이것 때문에 문장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바뀌기도 한다.

② 주요 개념어의 번역상의 불일치로 독해를 쓸데없이 힘들게 한다.

    이를테면 noumenal의 경우 본체적, 예지적, 가상적 이란 말이 병용된다. 도대체 본체와 예지와 가상이 어떻게 같은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철학에는 철학 용어의 정의가 따로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일반인도 읽을 수 있으려면 (우리는 일반인도 철학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최소한의 용어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본 본체와 저 책에서 본 가상이 동일한 noumenal이라는 것을 알 수 없는 한,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그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축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자에 따라 혹은 번역가에 따라 그 단어를 꼭 고집하는 이유가 있겠지만 그럴 때는 각주를 통해 자기가 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를 버리고 다른 단어를 사용하지는 설명해야 한다고 본다.

③ 읽어도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 없고, 누가 봐도 앞뒤가 안 맞는 문장이어서, 책 자체를 누더기로 만든다.

   슬프지만 이런 번역 책 더러 있다. 앞 문장에서는 그렇다고 했다가 뒷문장 가면 뜻이 완전히 바뀌어 어느 것이 저자의 견해인지 알아먹을 재간이 없을 때가 있다. 또한 한글 문장으로만 두고 봤을 때 육하원칙은커녕 중이 염불을 하는 건지 강아지가 풀을 뜯어 먹는 건지 문장 구조가 성립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 외에도 기타 등등 많지만 사소한 것들은 허용 범위로 인정하고 넘어 간다.

3. 이상의 기준으로 범죄 요건이 성립되면, 1차 수정을 권고한다. 시행되지 않으면 2차 수정을 강제한다. 계속 버티면 3차 책을 모두 모아 폐기한다.

4. 이미 발간되어 배포된 책에 대해서는 수정분을 부록으로 발간하여 별도로 발송하거나 웹상에 공지한다. 아직 배포되지 않은 책은 수정분을 별첨하여 판매한다.


우리는 철학 경찰의 실질적인 임무와 철학 경찰 학파라는 학술적 임무를 동시에 부여 받는다. 우리 철학 경찰은 임무의 특성상 상부 기관인 검찰이나 별도의 판결 기구인 사법부를 따로 두지 아니한다. 우리의 권력은 순전히 일반 민중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민중은 전문 학자들처럼 철학 서적을 읽을 권리와 일종의 의무를 가진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국가를 일부 철학 엘리트의 손에서 농단되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중 스스로 지배자의 꼭두각시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이다. 우리 민중도 스스로 사고하고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은 원서를 읽을 수 있는 어학 실력 따위에 의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누구나 한글만 깨치면 모든 학문에서 소외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우리 철학 경찰의 임무는 매년 열리는 일반 민중 철학 총회에서 새롭게 인준 받거나 수정 받는다.



네, 이상의 소설은 제가 몇 몇 책을 읽으면서 느낀 답답함에 대한 한풀이입니다. 그런데 진짜 번역 좀 잘 나왔으면 좋겠어요 ㅠ.ㅠ.... 진짜 내용 파악하기도 힘든데, 말도 안되는 문장 만나면 참으로 막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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