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 사악한 화폐의 탄생과 금융 몰락의 진실
엘렌 호지슨 브라운 지음, 이재황 옮김 / 이른아침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2102년 3월 27일, 카페 소모임 선정 책 감상문입니다.  

 

 

경기 동부 는 내가 2년 정도 살았던 곳이다. 그 때가 마침, 2002년 대선을 즈음했던 때라 경기 동부는 나와도 관련이 있다. 노사모 경기 동부 회원이었고, 2002년 12월 19일 그 밤, 덕평 수련원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보았던 것이다. 그 열광의 밤에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말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이제 여러분은 무엇을 할 것입니까?” 우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감시! 감시!”를 외쳤다. “저를 흔들 사람은 많습니다...” 그때 이미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새 시대의 첫 차가 아니라 구시대의 막차가 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로 순진하기만 했던 우리 지지자들은 이제 권력은 온전히 대통령에게 돌아갔고, 우리는 그 권력을 감시하기만 하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 믿었다. 권력은 이미 자본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을 그 때 내가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만,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예감했거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를 흔든 손이 그들뿐 이기야 했을까 만은.

  「달러」를 읽으며, 나는 맨 먼저 두 가지가 떠올랐다. 권력은 자본의 손에 넘어갔다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과 요즘 떠도는 ‘경기 동부’(물론 나의 경기동부와는 다른 경기동부이다;;) 괴물 설.

  작년에 「화폐 전쟁」을 읽었다. 놀라웠지만 사실 음모론의 냄새가 났다. 세계제국의 보이지 않는 지배자, 악마 같은 유대인 금융황제 ‘로스차일드’ ..... 진짜 미국의 적지 않은 대통령들이 그들에 대항하다 암살을 당한 것일까? 곧이곧대로 믿기엔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소설로 치부하기엔 세상 돌아가는 일이 하 수상하고. 어쨌든 음모론은 세상이 수상하거나 미쳐 날뛰는데도 똑 부러진 설명도 해결도 없을 때 안개처럼 스며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음모론이 꼭 사실이 아니란 법이 있는 걸까?, 음모론의 형태 말고는 달리 그 엄청난 비밀을 드러낼 수 없을 만큼 세상이 꽉 막혀있고 사람들이 그들의 약에 취해 있다면?

  몸통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진중권의 말이 맞는지, 이미 10년 전에 해체되었다는 NL측의 주장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 논쟁이 불거진 계기가 너무 찌질해서 한숨이 나온다. 성추행을 했으면 후보 사퇴시키는 것은 당연하고, 선거부정 했으면 그것도 후보사퇴 이외는 방법이 없다. 보수가 하면 성추행이고 진보가 하면 사소한 실수니 덮어야 한다면 강용석은 억울해서 분신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이정희 보좌관의 선거법 위반은 최구식 비서관의 디도스 공격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데모하다 집시법 위반으로 걸린 것이 아니다. 선거하겠다고 해놓고 그 선거의 규칙을 위반한 것이다.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모르겠다. 속이 터지는 건 진짜 지켜보는 국민들이다. 도대체 뭐 봐줄만한 일이라야 봐주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두 말 없이 정리해도 모자랄 판에 버팅기기까지 하니 결국 경기 동부니 괴물이니 소문이 떠돌지 않을 수가 없다. 엄하게 불붙는 경기 동부 논쟁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경기 동부 논쟁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 따위 논쟁거리도 안 되는 웃기는 일에다 그런 논쟁씩이나 한다는 것이 어이없을 따름이다. 민노당 주사파는 음모라고 핏대만 올릴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음모론을 불 지피게 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걸 할 의사가 없다면 나는 오히려 음모론을 믿어야 할 것 같다.

  이야기가 진짜 엄한 데로 샜다. 「달러」는 그럼 음모론이란 말인가? 「달러」의 내용은 「화폐 전쟁」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달러」는 음모론의 냄새가 좀 덜하고, 궁극적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민간 은행이 아니라 국가가 자국의 통화를 발행하고 유통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폐 전쟁」내용이 조금 밖에 생각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는 말할 수 없지만 여하튼 「화폐 전쟁」은 읽으면서도 이걸 다 믿을 수 있을까 싶었다.

 

 

「달러」의 전체 내용은 미국의 통화발행권이 국가가 아니라 연방준비은행(FRB)이라는 민간 은행에 넘어가게 된 피의 역사와 그 결과 전 세계의 경제가 몇몇 민간 금융업자들의 손에 놀아나게 된 현실을 갖가지 자료들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 사실 전체 내용은 아닌데, 왜냐하면 삼일을 틈틈이 부지런히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전체 700쪽 중 400쪽 정도 밖에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모임이 코앞이고, 이번 모임의 토론 분량이 1부까지이기 때문에 일단 전체 독서 감상문은 되지 못하지만, 생각나는 것들을 조금 적어 보기로 했다.

  책을 중간에 덮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다. 권력이 자본의 손에 넘어간 것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도 아니고,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고, 미국에서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 거슬러 올라가면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패배했을 때 이미 넘어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자본의 손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이제 이 세계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삼성의 권력은 그저 로스차일드라는 거대 금융왕국이 흘린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은 수백 년 전에 이미 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화폐란 무엇인가?” 혹은 “화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고 나는 생각한다. 소박하게 말해, “돈은 뭘까?” 이다. 우리는 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 놈의 돈을 빼고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법 없이는 살아도 돈 없이는 못 산다. 그러니 돈은 늘 우리 머리에, 우리 가슴에, 우리 뼈에 사무쳐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돈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달러」를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돈이 뭔지 진짜 몰랐구나, 혹은 돈이 무기란 말이 무슨 말인지 진짜 진짜 몰랐구나.

  생각해보면 돈이란 단순하다. 거래를 위한 매개 도구일 뿐이다. 내가 파는 것도 물건이고, 내가 사는 것도 물건이다. 필요한 것은 물건이지 돈 자체는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떤 강사가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가진 돈을 몽땅 꺼내 쌓아놓고, 1년 동안 우주여행을 갔다가 다시 지구로 돌아왔다고 하자. 무엇이 만들어져 있을까? 빌딩이? TV가? 돈 자체로는 어떤 생산적인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자명한 사실이다. 무엇인가 만드는 것은 인간의 노동이다. 그런데도 이 이상한 세계는 돈이 돈을 만든다. 이런 마술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거기에 대한 하나의 답은 마르크스가 들려준다. 마르크스가 설명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상품은 화폐다.

  “상품은 얼핏 보면 자명하고 평범한 물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품을 분석하여 보면 실제로는 그것이 형이상학적 궤변과 신학적 잔소리에 차 있는 기묘한 물건이라는 것이 판명된다. 상품이 사용가치인 한에 있어서는, 그 속성들에 의하여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관점에서 보든지 인간노동의 생산물로서 비로소 이러한 속성을 획득한다는 관점에서 보든지 간에, 상품에는 신비한 요소가 없다. 인간이 자기 활동에 의하여 자연요소의 형태를 인간에게 유용하게 변경시킨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노동생산물이 상품형태를 취하자마자 발생하는 노동생산물의 이 수수께끼와 같은 성격은 어디에서 오는가? 분명히 이 상품형태 자체에서 오는 것이다.... 상품형태의 신비성은 다만 상품형태가 인간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들 자체의 물적 성격으로 보이게 하며, 따라서 총 노동물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그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물건들의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 하는데 있다.”

  상품이란 자기가 사용하려고 만든 물건은 아니다. 상품의 목적은 교환이다. 상품이 목표로 하는 것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라는 것이다. 어떤 물건이 사용을 목적으로 해서 만들어질 때, 그 물건에는 어떤 신비함도 없다. 그런데 이것이 교환을 목적으로, 상품으로서 만들어질 때, 그것이 상품이라는 형식을 취하게 될 때, 그것은 수수께끼와 같은 신비함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돈이 그저 물물 교환을 위한 매개의 수단일 뿐일 때, 돈은 그저 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돈이 그 자체로 상품이 될 때, 돈은 한 순간에 한 국가를 파산으로 몰아넣는 무시무시한 마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달러」가 상세히 설명하는 것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마법을 획득한 달러가 어떻게 라틴아메리카를 무너뜨리고, 러시아를 집어삼키고, 아시아의 용들을 쓰러뜨리고, 그리고  미국을 휩쓸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 것은 그림자 정부, 금융 왕국, 민간 국제 은행 연합이라는 주장이다. 나는 이 막후의 거대한 지배자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마르크스라면 달러의 이 가공할 파괴력과 그 실상은 인정하겠지만, 배후 조종설 보다는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에 의한 필연적 결과라고 주장할 것 같다.(잘은 모르지만;;)

  돈 자체가 최고의 상품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별반 이의가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이 시대를 ‘금융자본주의’ 라고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간단한 공식이 있다. C-M-C ; 이건 교환의 매개로서의 화폐다. 자본주의 이전의 거래 형태. 물건을 교환하기 위해서 돈이 가운데에서 거래의 수단이 되고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로 넘어오면 M-C-M′ ; 목적은 돈이다. 가운데 있는 상품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중간 생산물일 뿐이다. 그런데 금융자본주의에서는 사실 상품마저 필요가 없어진다. 바로 M-M′ 주식시장. 금융시장. 그런데 이것이 가능한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가능하다. 돈 쌓아놓고 우주여행하고 돌아오면 잘해야 그 돈이 그 돈이고, 비바람에 날려 가면 종이 쪼가리 한 장 남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주식부자 박경철이 가능할까? 그건 누군가의 돈이다. 주식시장은 국가가 거대한 하우스인 도박판이다. 돈이 돈을 불린 것이 아니라, 개미들의 피 눈물 나는 돈이 거대 투기꾼들이나 누군가 억세게 운 좋고 약삭빠른 사람들의 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일 뿐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사실 문화강좌에서 들은 내용이고, 「달러」가 다루는 것은 화폐의 다른 측면이다.

 

  이제 별반 새로운 사실도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놀라운 것은, 미국의 달러는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방준비은행(FRB)이라는 곳에서 발행하는데, 이 은행은 구성이 어떻게 되어있든 결과적으로 민간 은행이다. 미국의 통화 정책은 실질적으로 국가가 아니라 민간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정부가 돈이 필요하면, 이 FRB에게 돈을 빌리고, 빌렸다는 증서를 발행해 주는데, 이것이 보통 말하는 국채라고 한다. 그런데 정부가 돈을 찍어낸 것이 아니라, 돈을 빌렸으니 당연히 정부는 FRB에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물론 세금으로. 우리는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사실 때문에 미국은 돈을 자기들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국도 그렇게 꽁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물론 꽁으로 먹는 작자들이 있다, FRB.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떼놈이 버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않은가? 어떻게 미국 정부는 두 눈 뻔히 뜨고, 돈을 찍어내는 일을 민간에게 빼앗겼는지, 게다가 달러 한 장 찍어낼 때마다 국민 세금을 꼬박꼬박 FRB에게 뜯기고 있는지. 「달러」는 그 역사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유대인 혈통의 ‘로스차일드’ 금융 왕족이 있고, 그들의 미국 대리인으로 의심받는 J.P.모건, 록펠러 등등이 있고, 그들이 암살한 링컨, 케네디 등등 비운의 미국 대통령과 재무 담당자들이 있고, 금본위제가 있고, 브레턴우즈 협정이 있고, 그린백이라는 것이 있고 등등..... 재미있다. 그런데 화폐발행권이 민간에 있는 나라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유럽에도 많다고 한다. 영국을 비롯해서. (나중에 영국은  법적으로 국가가 이 권리를 가지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화폐발행권은 국가에 있는 걸까? 나는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아마 그것이 한국은행 민영화와 관계가 있는 듯하다. 화폐발행권은 단순히 발행권만이 아니라 화폐 유통에 관한 모든 정책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가령 이율을 어떻게 할 것인가? 와 같은 문제는 수시로 한국은행과 정부가 갈등을 빚는 부문이기도 하다. 물론 언론에서는 이것을 한국은행 민영화가 아니라 한국은행의 독립이라고 표현하는데, 독립이라는 말은 사실 정부가 개입하지 말라는, 곧 시장에 그러니까 자본에 맡기라는 소리다. 「달러」의 저자는 이 독립, 이 민영화가 바로 국가를 파산으로 몰고 가는 지름길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장하준 교수가 주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난번에 읽은 「아담의 오류」 저자는 경제학이 “사실이 아니라 신념과 믿음, 따라서 신학적인 것에 대한 논의다.” 라고 했다. 신학이든 과학이든 간에, 경제학은 워낙 복잡하고 미세하고 추상적이어서 나는 사실 이해하기가 어렵다. 「달러」에 나오는 경제 이론이 옳은 것인지, 어떤 입장에서 보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돈이라는 것이 어떤 기능을 가져야 하는지, 돈이 어떻게 변용되면 재앙이 되는 것인지에 관한 것만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것이 저자가 주장하듯 화폐 발행과 유통에 관한 권한을 국가가 갖게 되면 해결될 문제인지,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 필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해결되기 힘든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파생상품, 공매도 등 반 토막 났던 내 펀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그런 것들이 있다는 광고만 하고, 끝내려고 한다. 저자가 경제학자가 아니라 법학자란 점에서 학계에서 이 주장들이 얼마나 인정되고 있는지 살짝 의문이 가기는 하지만, 수상한 세계의 불길한 움직임에 대한 또 하나의 관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상이 세인들의 이해 범위 안에서 돌아가는 때가 온다면, 어떤 것이 음모론이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쉽게 가려질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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