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강.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것에 관하여 




소크라테스는 자신에 대한 고발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변론을 전개한다.  고발장이 제출되지는 않았지만 훨씬 심각하고 위협적인 '오래된 고발'에 대해 먼저 변론을 하고, 그 다음에 이 재판정에 서게 된 직접적인 고발에 대해 변론하겠다는 것이다. 


오래된 고발, 즉 악의적 소문이야말로 이 직접적 고발을 촉발했을 뿐 아니라, 아테나이인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비방하게 된 진짜 이유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공식 고발보다 오래된 고발에 대해 힘을 쏟아 변론한다. 1권 18a~24b가 오래된 고발에 대한 항변 내용이다. 



24b부터는 멜레토스를 비롯한 고발자들에 대한 직접적 항변이다.  소문 즉 유령같은 고발자들에 대한 항변과는 달리 소크라테스는 재판정에 나온 멜레토스를 상대로 특유의 논박술을 펼친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 즉 변증술이 무엇인지 논박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모른다고 해도, 여기 나오는 멜레토스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소크라테스의 논박이 어떤 스타일인지 조금은 눈치챌 수 있다. 


사실을 말하면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뭔가 말려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 말장난에 빠졌다는 느낌을 뿌리 칠 수 없다.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자들도 그런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며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비아냥거리고 때로는 대화를 중단하고 가버린다.  플라톤도 그런 것을 느꼈다는 것이고, 당시 아테나이 사람들의 비방도 이와 관련이 없지는 않지 않을까?  <고르기아스>나 <국가>를 읽으면 논박 당하는 사람들의 격분이 생생히 느껴진다. 



<희랍철학 입문 4장 105~107>



거미줄에 걸려든 것처럼 소크라테스의 논박술에 허우적 거리던 사람들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와 다른 점은 그때 그때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런 고약한 방법을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꼬치꼬치 캐묻는 방법 즉 '귀납적 논구'를 통해 합의된 하나의 의미 즉 '보편적 정의'를 규정했다는 것이 철학사에 남긴 소크라테스의 업적이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혹은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하는 말은 소통을 교란시키고 진리에 도달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올바름'이라는 말에 각자 다른 함의를 갖고 있다면 공동체가 어떻게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목소리가 큰, 데마고그가 주장하는 올바름에 휩쓸리다 공동체의 위기를 맞게 되기 십상이다. 실제로 기원전  5C 이후의 아테나이가 그러했다. 








소크라테스가 정식으로 고발된 내용은 두 가지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 나라의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영적인 것들 믿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논박술로 멜레코스의 입을 막아버림으로써 이 고발의 내용을 간단히 처리한다. 소크라테스로서는 이 내용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가 고발된 진짜 이유는 오래된 고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시기와 비방', 일종의 괘씸죄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기소장에 근거해 오히려 멜레토스가 불의함을 밝힌다.  논박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아테나이에서 청년들을 타락시키는 것은 오직 소크라테스 뿐이고, 그것도 소크라테스가 의도치 않게 저지른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은 잘못은 훈계해야 하는 것이지 법정에 세우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11강은 23c~26c입니디ㅏ. 




12강. 나라가 믿는 신들에 대하여 





신에 관한 문제도 소크라테스는 비슷한 방식으로 마무리 한다.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에게 기소장의 의미를 분명히 하라고 추궁한다.  자신이 국가가 믿지 않는 다른 신을 믿는다는 것이 문제인지, 아예 어떤 신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인지를 밝히라고 한다. 


"후자를, 즉 당신이 전적으로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걸 말하는 것입니다."  (26d)






여기서 멜레토스는 자기모순에 걸려 든다.  강유원 선생이 제시한 번역본에서 영들은 희랍의 신 즉 제우스나 아테나 등의 신을 가리키고, 영적인 것들은 정령, 신령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희랍 신화에서 정령은 신의 자식들로 묘사된다.  멜레토스도 신령들은 신들이거나 신들의 자식들이라고 인정한다. 


멜레토스의 고발장은 "소크라테스는 신들을 믿지 않지 않으면서 신들을 믿음으로써 불의를 행하고 있다" (27a) 라 말하고 있다고 논박 당한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얼렁뚱땅 고발장의 '새로운' 영적인 것들에서 '새로운'을 빼버린다. 멜레토스가 어리숙하게 소크라테스가 어떤 신도 믿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진짜 쟁점이 되어야 할 나라가 믿는 신과 새로운 신의 대립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건 그렇고 사실, 아테네인 여러분, 내가 멜레토스의 고발장 내용처럼 불의를 행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에 많은 항변이 필요하지 않으며, 이것들로도 충분합니다. 다만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나에 대해 많은 미움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 있다는 게 진실이라는 건 잘 알아 두세요. 또 나를 잡을 게 바로 이겁니다. (진짜 나를 잡게 된다면 말입니다.) 멜레토스도 아뉘토스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비방과 시기입니다. 그것들이 분명 다른 많은 훌륭한 사람들도 잡았고, 또 내 생각에 앞으로도 계속 잡게 될 겁니다. 그 일이 내게서 멈추게 되지 않을까 무서울 일은 전혀 없습니다." (28a~28b)




그런데 강유원 선생은 여기서 '나라가 믿는 신'과 '새로운 영적인 것들'에 대해 주목한다.  소크라테스의 항변은 충분치 않을 뿐더러 사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강의를 들을 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강유원 선생이 살짝 오독 아니면 의도적으로 누락하는 부분이 있어 보였다.  가령 노새는 믿으면서 말과 나귀는 믿지 않는다는 것이 모순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논박은 언급하지 않는다. 이 예시는 영적인 것들은 믿으면서 그 영적인 것들의 부모가 되는 영 즉 신은 믿지 않는다는 것이 모순임을 밝히는 결정적 언급인데도, 우리가 숲속에서 신령스러운 기운을 느낀다고 해서 거기 신이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영적인 것은 영과 별개라고 설명한다.  


나는 <소크라테스의 변론>만 읽고 있고, 그것도 다른 번역본으로 읽고 있고, 강유원 선생은 플라톤 대화편들을 두루 연구한 끝에 강의를 하고 있어서 내가 그 의미를 다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왜 유독 '다른 신'을 강조하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1강에서 이 강독의 목적은 민주정을 탐색하는 데에 있다고 뚜렷하게 밝혔고, 소크라테스가 민주정을 비판하는 지점은 민주정이라는 제도와 그 법을 작동시키는 관습들이 타락했을 때 민주정 자체가 위험에 빠진다는 것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나라가 믿는 신은 이 '관습'들의 핵심이므로, 아테나이 시민들과 신이 전통적으로 맺어온 관계가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고 소크라테스는 생각했고, 이를 위해 새로운 신적인 것을 도입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희랍 철학 입문>에서 새로운 사상의 필요성을 언급한 부분이 있어 덧붙여 놓는다. 이 신들에 관한 강유원 선생의 해석은 13강과 14강에서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희랍 철학 입문 5장 112~114>



<희랍 철학 입문 5장 112~115>



*12강은 26c~28b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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