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첫머리




강독은 7강부터 본문에 들어간다. 나는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으로 간행된 강철웅 번역본을 가지고 있어서 이 책으로 읽으며 강의를 들었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세계 공통으로 스테파누스 쪽수를 많이 표기하기 때문에 번역본이 달라도 별 불편함은 없다. 요즘 나온 번역본들은 전공자들이 희랍어 원전으로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든 읽는 데에 모자람이 없다고 한다. 




<국가. 서광사. 박종현 번역>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첫머리부터 매우 불온하다.  피고발인으로 재판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아테나이인 여러분!"을 부르며, 말을 시작한다. 현대의 재판 드라마라면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 부르지 않고, 뒤를 돌아 '국민 여러분' 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관습을 깨고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이 호칭은 연구자들에게 많은 관심과 논란을 던져 주었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해석은 소크라테스가 이 연설을 재판정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하려 한 것이 아니라 아테나이 시민 전체에게 하고자 했던 것이라는 점이다.  읽어가다 보면 자신의 무죄에 대한 항변이 아니라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남기는 소크라테스의 유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연설은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대중 연설이기도 하지만 첫 대중 연설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사적으로만 대화를 해 왔기 때문이다. 



<크리톤>에는 소크라테스의 친구인 크리톤이 탈옥을 재촉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자네가 굳이 법정에 출두해서 재판을 받지 않아도 됐을 것인데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나, 재판이 이상하게 흘러가버린 것이나, 이 일이 결국 이런 식으로 어처구니없는 결말로 끝난 것이 우리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비겁해서 벌어진 일로 생각되기 때문이네. 우리가 조금만 더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얼마든지 자네 목숨을 구하고, 자네는 스스로 목숨을 구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네. 그런데도 결과적으로 우리나 자네나 그렇게 하지 못했네." (1권 45e~46a) 


소크라테스는 여러번의 기회가 있었다. 재판정에 나오지 않아도 되었고, 사형을 선고받지 않을 수도 있었고, 크리톤의 권유대로 탈옥도 가능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굳이 재판정에 나와서 굳이 도발적인 호칭과 자신이 즐겨 쓰던 논박술로 아테나이인들을 질타하고 기꺼이 사형을 받아들였다. 


강유원 선생이 꼽는 이유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나이를 움직이는 장치, 기구, 제도들 즉 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나이의 법이 아니라 이 법들의 이면에서 법들을 작동케 하는 관습에 문제를 제기했다.  법이 올바르게 작동하려며 훌륭한 관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피스트들의 현란한 수사학은 시민들을 설득하고 선동하는데 능란했지만 진실은 도외시 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와 자신의 차이점을 선명하게 대비시켜 아테나이인들을 일깨우려 하였다.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선 까닭은 자신의 유무죄에 대한 법리를 다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이 재판정을 도덕의 영역으로 끌어 올리려 했다. 그가 하려 했던 말은 '부끄러운 줄 알라!'  속되게 말하면  '쪽팔린 줄 알라!' 였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이곳의 말투'에 능한 사람은 소피스트이다.  소피스트들은 연설문을  써주고 이를 설득력 있게 말하는 기술을 가르치고 돈을 벌었다.  데마고그에 휩쓸리는 아테나이의 민주정에서 가장 필요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말빨에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그리고 그 자신 소피스트라 분류되던 소크라테스가 설득력 있게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를  '설득력'과 '거짓말' 에 능한 사람들로 규정하고 자신은 '생소함'과 '진실함'으로 이에 맞서겠다는 대립 구도를 만든다.  이로써 소크라테스는 거짓과 진실이라는 도덕적 가치야말로 아테나이 민주정을 이끄는 기준이 되어야 함을 제시한다. 설득과 선동은 덕, 즉 아레테가 아니다.  올바름과 올바름에 대한 앎이 인간의 아레테이다.  


"말투가 어떤 방식인지는 문제 삼지 말고 (혹시 더 형편없을 수도 있고 더 괜찮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저 내가 정의로운 말을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만 살펴보고 그것에만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재판관의 덕이고, 연설가의 덕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권 18a)



* <변론>은  1권 17a부터 42a까지고,  7강은 1권 17a~18a에 해당한다






 8강. 고발인들이 말한 것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색다르게 시작된다.  자신에 대한 고발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오래된 고발이고, 또 하나는 이 법정에 제출된 고발이다.  소크라테스는 먼저 오래된 고발에 대해 항변한다.  더 많은 내용으로 더 널리, 뿌리 깊게 퍼진 이 오래된 고발이 아테나이인들에게 선입견을 심어 주었고 이 법정의 고발도 이 선입견에 근거해 있기 때문이다. 



 



실체 없는 유령과 같은 이 고발은 거짓 소문이다.  우리 시대의 가짜 뉴스, 그것들을 퍼뜨리는 유투버들이 소크라테스의 고발인들이다.  오래도록 질기게 구석구석 퍼져 나간 이 소문은 소크라테스를 신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 찍는다.  신과 인간이 함께하는 사회에서 신을 믿지 않는 자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자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위력이 남아 있는  빨갱이 프레임과 같은 것이다.  


소문은 논리적이지 않아도 쉽사리 믿긴다. 논리적이지 않아서 파급력이 큰지도 모르겠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소문들 중 하늘과 지하의 운운은  당대의 자연철학자를 비난하는 말이고, 약한 주장을 강한 주장으로 만드는 운운은 소피스트에 대한 비난이다.  그런데 소피스트는 자연철학자를 비판하며 탐구의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 사회로 바꾸어 놓은 사람들이다.  자연철학자는 소피스트가 아니며, 소피스트는 자연철학자가 아니다. 영역이 다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아테나이인들이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대상을 모두 투영시켜 놓았다. 소크라테스는 그 자체로 악의 덩어리다.  


소크라테스는 데마고그의 흑색 선전이 난무하는 민주정은 그 자체가 민주정 최대의 위협이라는 것을 자신에 대한 고발장을 검토하는 것으로  논증하기 시작한다. 



* 8강은 18a~20c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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