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소크라테스와 텍스트의 배경과 설정



강유원 선생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사상가들의 이상적 영웅'이다.  사상가란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시대의 과제에 대해서 근본적인 원리를 찾아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사상가는 자신의 전부를 걸고 시대의 과제와 씨름한다. 






소크라테스의 시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전쟁 이후의 혼란이 거듭되는 난세였다. 민주정이라는 아테나이의 체제가 이 혼란을 악덕으로 이끌었다.  민주정 자체가 그 원인이 아니라 민주정을 이용해 자신과 당파의 이익에 몰두하는 세력들이 득세했기 때문이다. 


해외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무기를 만드는 장인들, 오늘날로 하면 군수업자들이 전쟁을 부추겼다. 불행히도 전쟁에 경제적 이해 관계를 가진 이 사람들이 아테나이 민주정의 핵심 세력이었으며 페리클레스의 지지자들이었다. 


민주정이란 어떤 사람, 어떤 집단의 의견이 다수의 것으로 확인되면 국가 정책으로 채택되는 체제이다.  하지만 다수의 결정이 언제나 올바른 것도 아니고, 다수의 의견을 지지하는 것이 선한 것도 아니다.  다수가 눈앞의 이득에 열광할 때 올바름은 헌신짝이 되고,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된다. 






아테나이는 그렇게 제국이 되었고, 그렇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시켈리아 원정은 27년간 지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분수령이었다.  아테나이의 제해권을 바탕으로 해상제국을 건설하여 부와 영광을 누리겠다는 집단들이 해상제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강행한 원정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전쟁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이 집단들이 시민들을 선동하여 민주정을 훼손하고 파괴한다고 진단했다.  소크라테스는 법을 벗어난 인민 재판식 정책 결정을 단호히 거부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아테나이의 패배로 끝난 후 스파르테에 의해 수립된 30인 참주정과 뒤이은 민주정의 회복 등은 탄압과 보복을 되풀이하며 아테나이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갔다. 


소크라테스가 정면으로 대면한 시대의 문제는 바로 이 혼란이었고, 그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선동 정치로 얼룩져 버린 민주정이었다.  





5강. 소크라테스의 여러 모습들 



소크라테스도 소피스트들처럼 자연철학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에 몰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차이점은 뚜렷했다. 소피스트들이 어떻게 하면 나의 말로 남들을 잘 설득해서 이득을 취할까를 탐구했다면,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하면 인간이 올바르게 살 수 있을까를 탐구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를 민주정의 적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이 소피스트들이 소크라테스를 민주정의 적으로 몰아 처형하려 했고 소크라테스는 기꺼이 처형을 선택함으로써 소피스트들의 외형적 목적을 달성시켜 주었지만 바로 그것으로써 민주정의 적이 소피스트임을 입증했다. 






민주정은 양날의 칼이다.  민주정을 최고의 정체로 만들어 주는 이 원칙들이 민주정을 파괴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정의 꽃인 isegoria, 즉 자유롭게 말할 권리는 누구나 선동을 쉽게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변질 될 수 있다.  이 능력으로 이익을 꾀하는 demagogue는 민주정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 시대의 데마고그는 소피스트였다. 


"그자는 군중들의 갈채와 자신의 어리석고 방종한 혀에 의존했는데, 청중에게 재앙을 안겨 줄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이 있었어요."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오레스테스>에는 소피스트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시민들이 소피스트의 혀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는 그들 자신이 부와 명성 따위의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민주정체의 시민은 선동가와 선동 정치에 대한 경계를 시민의 의무로 명심할 때만 대중 독재에 휩쓸리지 않고 민주정을 유지할 수 있다. 








5강의 제목이 설명하고자 하는 소크라테스의 여러 모습들은 대강 위의 표와 같은 것들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허구의 작품이지만, 소크라테스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크세노폰의 작품도 있기 때문에 당대 소크라테스의 사실적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 추론할 수 있다. 






6강. <소크라테스의 변론> 의 전체 구조



플라톤의 대화편은 크게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눌 수 있다.   30여 편의 (위작 논란이 있는 작품들도 있다.)  대화편이 있으며,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른 분류 기준을 갖고 있긴 하지만 대략 아래 순서와 같다.  







   강유원 선생의 강의는 박종현 번역의 서광사 출판본인데 이 네 작품을 묶어 '소크라테스 최후의 날들' 이라고 한다.  


<에우티프론>은 안 읽어 봐서 모르겠는데,  재판정에서의 <변론> 이후 <크리톤>은 친구가 탈옥을 권유하러 와서 나누는 대화이고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는 자리에서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강철웅역, 해설 



변론, apologia는 고발, kategoria에 대한 변론이다. 아테나이의 재판은 원고와 피고가 직접 연설을 하여 공방을 벌이고, 재판의 성격에 따라 200명 혹은 500명의 배심원들이 평결을 하는 방식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원고의 연설은 언급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소크라테스의 연설로만 구성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의 연설은 재판 절차에 따라 세 번으로 나뉘어져 있다. 


재판은 두 차례 진행되는데, 1차는 유무죄 재판이고, 2차는 형량 재판이다. 소크라테스는 1차 재판에서 1차 연설을 하고 유죄가 확정되자, 2차 재판에서 2차 연설을 한다. 마지막으로 사형이 결정되자 재판 절차에는 없지만 3차로 최후 연설을 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은 장엄한 비극과 같다.  변론이 아니라 준엄한 질책이며 피맺힌 절규다.  어쩌면 유언이 더 적절할 듯도 하다. 


강유원 선생은 소크라테스를 이렇게 표현한다. 


자기를 고발한 재판을 받음으로써 자기가 살고 있는 체제의 민주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 사람.  


민주정의 문제를 드러내는 최선의 기회로, 민주정에 의해 기소된 자신의 재판을 증명의 기회로 삼고 죽어 버린 사람. 


소크라테스는 죽음으로 아테나이 민주정의 문제를 고발했고, 그 고발은 2500년을 건너 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의 소피스트는 누구이고, 우리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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