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곡

 

 

 

다섯 번째 둘레에서 만난 스타티우스가 단테의 순례에 동행한다. 스타티우스는 이미 영혼이 정화되어 그 징표로 온 산을 진동시켰지만, 존경하는 베르길리우스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여섯 번째 둘레를 함께 오른다.

 

 

당신은 등불을 뒤로 들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현명하게 만드는,

어둠 속의 외로운 여행자셨지요. (67~69)

 

 

스타티우스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여 연옥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덕분이다. 정작 기원전에 활동했던 베르길리우스는 세례를 받지 못해 지옥의 림보에 있지만, 그는 '등불을 뒤로 들어' 스타티우스에게 이성과 덕성의 빛을 밝혀 주었다.

 

인류의 역사에는 스승과 스승보다 더 뛰어난 제자 사이의 갈등이 많이 있었지만, 훌륭한 스승은 어둠 속을 앞서 걸으며 뒤를 밝히는 외로운 선지자이다. 

 

사실 단테의 『신곡』은 읽으면서 어쩔 수 없는 회의가 있다. 죽어서 우주의 먼지가 되고 싶은 나는 천국도 지옥도 연옥도 상관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세계의 창조주는 단테이고, 지옥의 심판관 미노스도 단테의 뜻대로 판결할 뿐이다. 지옥의 반은 13~14세기 단테의 반대 정파들이 차지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개인적 감정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신곡』은 신곡이군" 하는 것은 3행으로 압축된, 저 삶을 통찰하는 지혜가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23곡

 

 

 

여섯 번째 둘레는 탐식의 죄를 갈증과 허기로 씻어내는 곳이다. 여기서 말하는 탐식은 글자 그대로 음식을 탐한 것이다. 많이 먹는 것도 죄냐?고 할 수 있는데, 중세에는 그랬다고 한다.

 

문 앞에 배를 곯은 아이가 울고 있는데, 진수성찬이 목구멍으로 넘어갈까? 그래선 안되지만 오랫동안 인간은 그래 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TV를 켜면 연예인도 요리사도 외국인도, 한옥에서 캠핑카에서 식당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음식을 하고 음식을 먹고 있는데, 사이사이 중간 광고는 아프리카의 뼈만 남은 아이들의 쾡하고 슬픈 눈을 보여준다.  

 

많이 먹는 것도 죄일까? 옆에서 누군가 굶고 있다면.

 

 

 

 

 

 

24곡

 

 

은총의 빛을 받는 자에게는

축복이 내릴 것이니, 식욕이 저들의 가슴에

과도한 욕망을 일으키지 않고

 

언제나 의로운 일에 굶주리게 하기 때문이다. (151~154)

 

 

 

 

 

 

25곡 & 26곡

 

 

 

일곱 번째 둘레는 음욕의 죄인들이 불꽃 속에서 정죄하고 있다.

 

 

 

 

 

 

27곡

 

 

 

 

 

 

바보 같게도 지상낙원과 천국이 같은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상낙원은 말 그대로 지상에 있고, 천국은 하늘에 있다...

 

연옥산의 일곱 둘레 순례를 모두 마치고 단테 일행은 지상낙원에 들어온다. 베르길리우스가 밝힌 이성의 등불은 단테의 앞을 비추어 지옥에서 지상낙원까지 그를 인도했다. 베르길리우스의 임무는 끝났다. 단테의 의지는 곧고 바르고 자유로워 졌다.

 

 

아들아! 너는 순간의 불과

영원의 불을 보았다. 이제 너는 내가

더 이상 알지 못하는 세계에 온 것이다.

 

나의 지성과 기술로 널 여기까지 데려왔으나,

여기부터는 너의 기쁨이 너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좁은 길과 절벽은 저 멀리 아래에 있다.

 

너의 이마를 비춰 주는 태양을 보아라!

이곳 땅에서 씨앗도 없이 혼자서 솟아나는

풀잎과 꽃, 나무를 보아라!

 

날 너에게 가도록 눈물로 호소하던

저 아름다운 눈이 기쁨에 젖어 올 때까지

넌 여기 앉아 있거나 여기저기 거닐어도 좋다.

 

이젠 내 말이나 눈짓을 기다리지 마라!

너의 의지는 곧고 바르고 자유로우니

그 뜻대로 해야 할 것이다.

 

너의 머리에 왕관과 면류관을 씌운다."  (127~142)

 

 

 

스승은 자기가 오르지 못하는 곳으로 제자를 들어 올리는 사람이다. 제자는 또 다른 스승을 타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한다.

 

 

 

 

 

 

 

28곡

 

 

 

지상낙원은 싱싱한 초록으로 우거진 거룩한 숲이다. '어두운 숲'에서 지옥으로 내려 갔던 단테는 지구의 중심을 관통하여 연옥의 맨 꼭대기 '거룩한 숲'에 올랐다.

 

레테의 강과 에우노에의 강이 단테를 기다리고 있다.

 

 

항상 변함없이 흐르는 샘에서 발원하고,

그 샘은 두 갈래로 열려 흘러 나가는 만큼

하느님의 의지에 따라 다시 채워집니다.

 

이편의 물은 죄의 기억을 지우는 힘을

지닌 채 흐르고 저편의 물에서는

온갖 선행의 기억이 회복되니,

 

이쪽은 레테라 하고 저편은 에우노에라

합니다. 이쪽과 저쪽을 다

맛보지 않고서는 그 힘을 알 수 가 없으며,

 

어떤 것도 그 맛에 비길 수가 없지요.  (125~133)

 

 

 

 

 

 

 

29곡

 

 

 

 

 

지상낙원에 그리핀이 끄는 전차를 둘러싼 행렬이 나타난다.

 

 

 

 

 

 

30곡

 

 

 

 

 

 

천사들이 뿌린 꽃들의 구름 속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한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돌아 보지만 그는 어느새 홀로 사라졌다.

 

 

"단테여, 베르길리우스가 그대를 떠났다 해도

아직은 울지 말아요. 아직은 울지 말아요.

그대는 또 다른 칼 때문에 울어야 할 테니."  (55~57)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불렀다. 옮긴이 주12)에 따르면 『신곡』에서 유일하게 단테라는 이름이 직접 등장하는 행이다.

 

세례받지 못한 베르길리우스는 스승의 역할을 베아트리체에게 인계하고 떠났다. 베아트리체가 단테에게 내린 첫 번째 가르침은 질책이다.

 

 

그러나 토양이 경작되지 않고 버려지거나

나쁜 씨앗이 싹트게 되면, 토양이 기름지고 풍요로울수록

열매는 더 거칠고 사악하게 됩니다.  (118~120)

 

 

단테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지만, 베아트리체가 죽은 후 길을 잃고 헤매다 어두운 숲 한가운데에 들었다.  베아트리체는 심연으로 빠져든 단테를 호되게 꾸짖는다.

 

 

그대가 참회의 눈물로 쏟아지는

대가를 치르지 않은 채

레테를 건너고 그 달콤한 물을 마신다면,

 

하느님의 최고 법은 깨질 것입니다.  (142~145)

 

 

참회 없이 은총은 없다. 지옥이 하느님의 정의라면, 죄에 대한 통절한 뉘우침 없이 천국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사죄 없는 용서를 말하는 자는 불의를 부추기는 자다. 

 

 

 

 

 

 

 

31곡

 

 

베아트리체의 질책은 한겨울 북풍처럼 매섭다.

 

  

그러나 죄의 고백이 죄인의 입술에서

터져 나올 때 우리의 법정에서는

칼날이 숫돌에 거꾸로 갈리듯 죄가 가벼워집니다.

 

그대가 진정 죄를 부끄럽게

느끼고 언젠가 세이렌이 노래할 때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40~45)

 

 

 

단테는 죄에 대한 고통과 부끄러움의 무게로 기절한다.  통렬한 뉘우침이 있은 후에야 단테에게 레테의 강과 강물이 허락된다.

 

 

 

 

 

 

32곡

 

 

스타티우스와 단테는 하늘 나라로 나아가는 전차 행렬의 뒤를 따른다. 그리핀은 전차를 선악의 나무에 매어 두고 하늘로 오르고, 단테의 눈앞에 환각처럼 기독교 1300여 년의 역사가 펼쳐진다. 베아트리체는 돌아가서 본 것을 글로 쓰라고 명령한다.

 

 

 

 

 

 

33곡

 

 

레테의 강을 건너며 죄의 기억을 모두 지운 단테는 마지막으로 에우노에의 강물을 마시고 온갖 선행의 기억을 회복한다.

 

 

이 더없이 성스러운 물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새로 돋아난 잎사귀와 새로워진 나무로

다시 살아나고 순수해져서,

 

별들에게 올라갈 열망을 가다듬었다.  (142~145)

 

 

단테의 연옥 순례가 모두 끝났다. 이제 『천국』이 머리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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