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공부하기 참 힘들뿐 아니라 위험한 것이 철학이다.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마음대로 읽어 버리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재미가 있어서 이런 저런 책들을 계속 읽어 왔다.


어쩌면 내 철학의 첫 실마리는 <씨네21>이었던 듯도 하다. 그때는 멋진 영화평에 꽤 빠져 있었고,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인문학에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터라 영화평이 단순히 글솜씨인 줄 알았다. 그런데 평소에 듣도 못한 사람들과 용어들이 나오는 평론들을 읽으며, 필요한 것은 글재주가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점을 만들어 주는 가치관, 이를 뒷받침 할 철학 따위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 유행하던 들뢰즈, 가타리, 지젝, 바디우 등을 알게 되었고 무턱대고 읽었다.  들뢰즈를 읽다 보면 니체를, 지젝을 읽다 보면 헤겔과 라캉을 읽어야 하고 그런 식으로 철학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철학은 합의된 학문이 아니라 서로 뚜렷이 다른 가치를 주장하는 답 없는 질문인 것도 같고, 그러면서도 어딘가에 진리가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영원한 꿈인 것도 같았다. 


철학사를 읽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철학의 에스프레소』, 『세계 철학사』 같은 책들을 읽으며 어렴풋이 철학의 계보와 사조같은 것들을 머릿속에 그리게 되었다.  


강유원의 고전 강의 시리즈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처음으로 사상의 흐름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무료로 공개한 강의 파일은 그 걸쭉한 입담 덕에 지루할 틈도 없이 어려운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거리의 철학자'라는 별명답게 거리의 독자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세상의 모든 철학』을 교재로 한 철학사 강의는 철학적 사유가 흘러온 맥락에 더하여 철학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늘 철학사를 통해서만 읽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직접 읽어 볼 용기가 생겼다. 플라톤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쉽지도 않았지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읽어 낼 수는 있었다.  후대의 책들에서 만난 플라톤과 내가 읽은 플라톤이 많이 다르고, 그때마다 내가 잘못 읽었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래도 그런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거스 리의 『희랍철학 입문』은 몇몇 책에서 인용되는 것을 보았다. 올해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조금 꼼꼼이 읽어 볼 계획이라 아무래도 먼저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이 책은 거스 리가 "고전 이외의 과목을 공부하는 학부 수강생을 위한 단기 과정의 강의를 토대로" 썼다.  나같은 일반인에게 적절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목표는 훌륭히 달성되었다. 200쪽 정도의 길지 않은 분량에,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부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희랍 철학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흐름을 가지고 변화했는지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있다. 희랍의 주요 철학자들을 맥락에 따라 요약하고 있어 입문서로 읽기에는 매우 절적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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