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신곡 강의를 들었던 분이 매일 자기전 아이들에게 한 곡씩 읽어 주겠다며 책을 샀다. 물론 아이들은 질겁을 했고, 그 계획은 실패했다. <지옥편>은 읽을수록 잔혹해 진다. 그렇다고 몸서리치는 형벌에 비명만 난무하는 것은 아니다. 단테의 눈에는 애잔함이 얼핏얼핏 스친다.
18곡부터 30곡까지가 지옥의 제 8고리, 말레볼제이다. 오늘은 말레볼제의 열 구렁을 다 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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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곡
여섯 번째 다리가 무너졌다. 순례자는 깨진 돌조각을 골라 디디며 여섯 번째 구렁을 가로질러 일곱 번째 둔덕으로 내려갔다.
일곱 번째 구렁(81)은 도둑들(138)의 소굴, 뱀굴(83)이다.
25곡
수많은 변신의 이야기가 있다 해도, 도둑들의 망령과 뱀이 합체하는 변신만큼 끔찍하고 경악스러운 변신이 또 있을까? 단테는 이렇게 노래한다.
오비디우스여! 카드모스와 아레투사에 대해 떠들지 마라.
그 남자를 뱀으로, 그 여자를 샘으로 바꾸는
절묘한 시를 지었어도 난 부럽지 않다.
그들의 두 존재는 서로 형상만 바뀌었을 뿐
두 형상의 질료까지 바꿀 정도로
변신하지는 않았으니,
내가 본 것은 완벽한 변신이었다. (97~103)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와 전설 중에서 변신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도 나온다. 별의별 변신이 다 있는데, 단테는 자신의 변신 이야기는 그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뽐내는 것 같다. 겉모습뿐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질료 즉 일종의 재료까지 변한다는 것. 이 완벽한 변신을 읽다 보면 살갗이 닭살로 변신한 듯 소름이 돋는다.
26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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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구렁(31)은 불구덩이다. 영혼들이 불꽃(48)으로 타오르고 있다. 단테는 떨어질 듯 몸을 기울여 간절히 어떤 불꽃을 기원한다.
"저 불꽃 속에서도 저들이 말할 수 있다면,
선생님! 원하고 또 원하며
수천 번을 거듭 원합니다.
뿔 돚힌 불꽃이 여기에 닿을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이 소원 때문에
이렇게 몸을 기울이고 있는 저를 봐 주세요." (6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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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서 오뒷세우스는 살아서 저승에 간다. 키르케가 무사히 귀향하기 위해서 먼저 저승의 테이레시아스를 찾아가 예언을 받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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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서사시의 '저승 순례' 전통(?)은 오뒷세우스가 처음이다. 베르길리우스가 쓴 『아이네이스』에서 아이네아스가 이어 받았고, 그다음이 단테다. 세계 문학의 역사에서는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쉬가 그 이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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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 흑상 도기>
단테가 그토록 만나기를 원하는 오디세우스가 말레볼제의 여덟 번째 구렁, 불구덩에 떨어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목마의 기습(60)', 아킬레우스에 대한 술수(61), 팔라디움의 벌(63) 때문이다. 꾀가 많은 오뒷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다 썼다. 어머니 테티스 여신이 여장을 시켜 숨겨 놓은 아킬레우스를 찾아내 전쟁에 데려갔고, 트로이 성의 아테나 여신상을 훔쳐내어 그 수호신을 무력화 했고,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를 함락하였다. 여덟 번째 구렁은 권모술수와 기만에 능했던 자들이 스스로를 태우는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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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으로 그려본 <오뒷세이아>의 오뒷세우스 모험 지도
지옥에 떨어진 오디세우스를 단테가 '수천 번을 거듭 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디세우스가 '어디를 헤매다 죽었는지' 듣고 싶어서다. 호메로스는 오뒷세우스가 귀향하여 자식과 아내와 아버지를 되찾는 행복한 결말을 노래했다.
단테는 오디세우스의 모험에 대한 새로운 버전을 들려 준다. 키르케의 조언으로 오뒷세우스가 다녀 왔던 저승을 많은 사람들이 지중해의 서쪽 끝, 지브롤터 해협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단테는 키르케를 떠난 오디세우스가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연옥으로 항해했다고 노래한다. 중세에 지브롤터 해협은 세상의 끝이었다.
"아이네아스가 가에타라고 부르기 전,
태양신의 딸 키르케는 날 일 년도 더 넘게
숨겨 주었지요. 그녀를 떠났을 때
내 자식의 귀여움도, 늙은 아버지의
연민도, 또 내 아내 페넬로페를 당연히 기쁘게
해 주었어야 할 나의 신실한 사랑도,
세상과 인간의 악과 가치에 대해
모조리 알고 싶은 내 가슴속의
열정을 이겨 낼 수 없었소.
그래서 나는 오직 한 척의 배에 의지해
늘 나와 함께했던 소수의 동료들과 함께
깊고 넓은 바다로 나왔소.
멀리 에스파냐와 모로코까지 이쪽 해안과
저쪽 해안을 보았고, 이 바다에 몸을 적시는
샤르데냐와 다른 섬들도 보았소.
나와 동료들은 늙어 갔고 몸도 둔해졌다오.
그 무렵 우리는 그 누구도 넘어가지 못하도록
헤라클레스가 표지를 꽂아 둔
비좁은 어귀에 도착했소.
오른쪽으로는 세비야를 떠난 뒤였고
반대쪽으로는 세타를 떠난 뒤였소.
나는 이렇게 말했다오. '오, 형제들이여!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드디어 우린 세상의 서쪽 끝에
다다랐다. 우리에게 생명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태양의 뒤를 좇아 사람이 살지 않는
세상을 찾아가려는 마음을 버리지 마라!
그대들의 혈통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과 지혜를 따르기 위해 태어났다.'
그 짧은 연설에 동료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망에 불타
나중에는 그들을 멈추게 할 수 없을 정도였다오.
선미를 아침에 두고 우리는
미친 듯 파닥거리는 날개처럼 노를 저어서
계속 왼쪽으로 왼쪽으로 항해했소.
밤에는 다른 극의 모든 별들이
보였소. 우리 극의 별들은 낮게 내려와
바다의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소.
우리가 그 무모한 모험을 시작한 뒤
달 아래의 빛이 다섯 번이나
켜졌다가 다시 꺼졌을 무렵,
산 하나가 멀리 희미하게 나타났는데,
어찌나 높이 솟았던지
그런 산을 본 적이 없었소.
우리는 기뻤소. 그러나 기쁨은 금방 통곡으로
바뀌었다오. 그 낯선 땅에서 풍랑이 일어나
뱃머리를 들이받았기 때문이오.
풍랑은 우리 배를 바닷물과 함께 세 바퀴를 돌게 했다오.
네 바퀴째에 선미가 높이 솟아오르더니 뱃머리에서 떨어져,
마침내 바다가 우리 위로 덮쳐 왔소.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대로였다오." (91~142)
단테의 오디세우스는 귀향이 아니라 세상 너머로 나아가려는 열정을 택한다. 인간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과 지혜를 따르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느님이 금지한 세상 밖을 향한 열망은 파멸로 끝이 났다. 절정의 순간에 파도에 들려진 배는 높이 솟아 올랐다가 떨어지고, 바다가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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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이 그대로 떠오른다. 에이해브 선장은 광기어린 집념으로 모비딕을 쫓았고, 마침내 모비 딕의 눈구멍에 작살을 꽂았지만, 모비딕에 들이받힌 피쿼드호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가라앉는다. 하느님이 원하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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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보르헤스는 『칠일밤』에서 오디세우스가 지옥에 떨어진 이유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절정의 순간은 금지되고 불가능한 것을 알고자 하는, 고결하면서도 대담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에게 절정의 순간은 트로이의 목마가 아니라 남반구의 탐험이 성공한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신에 의해 금지된 순간이다.
단테는 왜 그토록 오디세우스를 원하고 또 원했을까? 보르헤스에 따르면 단테는 신의 영역에 도전한 오디세우스를 자기와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단테는 역설적이게도 『신곡』을 통하여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그것을 단테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율리시스란 인물은 그토록 힘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리시스는 단테의 거울이고, 단테는 아마도 자기 역시 그런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느꼈을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좋든 나쁘든 시를 쓰면서 그는 밤의 법칙, 즉 하느님과 신성의 신비로운 법칙을 위반하고 있었습니다."
보르헤스는 『신곡』에서 율리시스의 일화가 단테가 만든 가장 멋진 전설이라고 한다. 단테가 오디세우스에게서 자신을 보듯, 보르헤스는 단테에게서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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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짐승과 신 사이에 인간이 있다면, 인간이 신을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다. 신이 금지했다고 하더라도.
27곡
여덟 번째 구렁에서 다른 불타는 영혼들과도 대화를 나눈 순례자는 둔덕을 올라 또 다른 다리(134) 위에 도착한다. 보나파키우스8세에 대한 단테의 적의는 여기서도 드러난다.
28곡
아홉 번째 구렁(20)은 불화와 분열의 씨를 뿌린 자들(35)을 단죄하고 있다. 칼을 든 마귀가 몸을 찢어 가른다. 구렁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상처받은 몸이 아무는데, 이 몸은 다시 마귀가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37~42)
이슬람을 창시한 무함마드, 4대 칼리프 알리, 카이사르에게 루비콘강을 건너게 설득한 호민관 쿠리오, 피렌체 내분의 원인 모스카, 아버지와 아들을 반목하게 한 사악한 베르트랑 등이 고통받고 있다.
29곡
'말레볼제의 마지막 수도원(40), 열 번째 구렁(38/119)이다. 이곳의 '수도자'들은 위조자들(57)이다.
상처와 그 딱지가 다닥다닥 붙은 병든 사람들(71)이 악취를 풍기며 온몸을 긁어대고 있다. 단테는 연금술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30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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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구렁에는 다양한 위조자들이 있다. 변장하여 아버지의 침실에 든 희랍 신화의 미라, 유서를 변조한 도나티, 위조 화폐범, 구약의 요셉을 모함하던 거짓말쟁이, 트로이 목마에 대해 거짓말을 한 시논 등이 있다.
위조자들은 서로 욕을 해대며 싸우고 있다. 단테는 '그들의 말에 푹 빠져 있었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꾸짖는다. "계속 보다가는 내가 너랑 싸우겠구나!" 단테는 잘못을 뉘우치고 베르길리우스는 말다툼을 엿듣는 것은 천박한 일이라고 깨우쳐 준다.
이제 지옥의 순례도 마지막 아홉 번째 고리만 남겨두고 있다. 설 명절이 오기 전에 <지옥>편을 끝내기 위해, 우리 스타디는 이번에 조금 더 속도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