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단테의 <신곡> 강의가 있었다. 강사는 박상진 교수이다. 새해 벽두부터 <신곡>이 등장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2021년은 단테 서거 700주년이다. 단테는 1265년에 피렌체에서 태어나 1321년 라벤나에서 죽었다.  강의는 EBS나 플라톤 아카데미의 것과 비슷하지만, 자료 화면이 훨씬 깔끔하다.

 

 

 

 

 

 

 

 『신곡』을 읽는 어려움 중 하나는 지금 단테가 지옥의 어디에 와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아 길을 잃기 쉽다는 것이다. 앞부분 첫 번째 고리부터 네 번째 고리까지는 명확하게 서술 되는데, 그 이후부터는 정신을 집중하여 단서를 찾지 않으면 어디가 어딘지 헷갈리기 십상다.

 

 

 

 

 

 

 

 

 

 

그래서 독서 스타디의 이번 과제는 각각의 고리가 몇 곡 몇 행에 언급되어 있는지, 그 고리에 있는 영혼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었다. 여덟 명이 과제를 수행했는데 조금씩 다른 답이 나왔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기보다 어떤 단어 혹은 구절을 열쇠로 삼았는가에 따라 다양한 답이 나온것 같다. 사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몇몇 지옥의 구조도 역시 각 고리의 명칭들이 조금씩 다르다. 

 

 

 

 

 

 

 

 

 

6곡

 

 

  

 

 

 

 

 

세 번째 고리는 '빌어먹을 탐욕이 내 영혼의 병이었소.(53)' 라는 구절에서 '탐욕'의 지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음사판을 번역한 박상진 교수는 이번 차이나는 클라스 강의에서 3구역을 '대식'이라고 설명했는데, 정작 책에는 대식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케르베로스와 치아코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케르베로스는 '굶주려 짖어 대던 개'이고, 치아코는 돼지라는 뜻이다.

 

치아코는 단테의 요청에 따라 피렌체에 불어닥칠 당쟁과 피바람을 예언한다. 이런 내용으로 보면 세 번째 고리의 탐욕은 권력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죄인들은 머리가 셋 달린 케르베로스에 의해 찢어 발겨지는 고통을 당한다.

지옥의 영혼들은 그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데 이를 '콘트라파소'라고 한다. 바람에는 바람, 많이 먹으면 뜯어 먹히고, 돈에는 돈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도 불륜을 '바람'이라고 하는가?

 

 

 

 

 

 

 

 

 

7곡

 

 

 

 

 

 

 

7곡에는 네 번째 고리와 다섯 번째 고리가 나온다.  네 번째 고리는 재화에 관한 죄악이다. 이 고리의 죄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표현이 나온다. "왜 그렇게 모으기만 하지? 왜 쓰기만 하는 거야! (30)", "절제를 모르고 부를 유용한 자들(41~42)", "서로 반대되는 죄들(43)", "잘못 쓰고 잘못 가져(58)" 등의 구절이 이에 해당한다. '탐욕(48)'도 있지만 세 번째 고리의 탐욕과는 달리 재화에 대한 탐욕을 말한다. 인색이나 낭비라는 단어는 직접 사용되지 않지만, 재화에 대한 상반된 죄를 한마디로 나타내기에 적절하다. 

 

그런데 7곡에는 이들이 커다란 돈주머니를 굴리는 형벌은 나오지 않는다. 이런 그림이 있다는 것은 어디엔가 단서가 있다는 뜻일 것 같은데, 모르니 답답하다.  책에 나오는 형벌은 두 무리가 고리를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서로 부딪히면 파도가 해안에 부서지듯 '서로 머리를 들이받으며 왈왈' 거리는 것이다.

 

여하튼 재미있는 것은 이 고리에 있는 대표적인 인간들이 교황과 추기경들이다.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의 교회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7곡 후반부는 네 번째 고리에서 다섯 번째 고리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자 이제 더 불쌍한 고통으로 가보자 (97)" , "우리는 고리를 가로질러 다른 언덕으로 갔다.(100)", "잿빛의 죄로 가득 찬 늪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 이름은 스틱스였다.(107~8)"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틱스는 희랍 신화에서는 다섯 개의 저승의 강 중 마지막 '증오의 강'이다. 이 다섯 개의 강을 모두 건너면 하데스로 들어가게 되는데, 단테는 이 강들을 곳곳에 따로 배치해 놓은 것 같다. 게다가 여기서는 스틱스 자체가 다섯 번째 고리로 보인다. 스틱스는 진흙의 늪이다. 이 늪에서 발가벗고 뒹굴고 있는 사람들은 증오에 가득 차 있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자(116)'들의 지옥이다.

 

 

 

 

 

 

 

 

 

 

8곡

 

 

 <단테의 조각배, 들라크루아, 1822>

 

 

 

7곡 후반부에 이어 8곡도 다섯 번째 고리 스틱스를 묘사한다. 스틱스를 건너 디스라는 도시로 가는 도중 이 지옥에 빠진 영혼들을 만난다. 스틱스를 건네 주는 뱃사공은 플레기아스다.

 

진흙탕의 늪에서 불쑥 솟아 오른 영혼이 배를 향해 손을 뻗자 베르길리우스가 밀쳐 버린다. 단테를 추방시킨 정적이다. 스틱스의 죄인들은 서로를 물어 뜯고 난도질하는 벌을 받는데, 요즘 인기 높은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을 보면 딱 이 모습인 듯한 장면이 나온다.  소환된 악귀가 지옥에 떨어지면 진흙탕 속에서 수많은 죄인들이 꿈틀꿈틀 기어 나와 좀비떼처럼 덮쳐 버린다.

 

디스의 입구에 도착했지만 '추방된 수천의 천사들이' 막아선다. 베르길리우스는 말로써 이 문을 열지 못한다.

 

 

 

 

 

 

 

 

 

9곡

 

 

<디스 성문을 여는 천사, 귀스타브 도레, 1832>

 

 

 

디스의 성벽은 지옥을 양분하는 경계이다.  디스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디스 자체가 여섯 번째 고리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렇게 보는 구조도도 있다.

 

 

 

 

 

 

배철현의 ‘21C 대한민국과 단테의 신곡’-인간의 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은 ‘의도성’ - 매경이코노미 (mk.co.kr)

 

 

 

단테의 지옥은 죄의 경중에 따라 아홉개의 고리로 나뉘어 지는데, 그중에서 다섯 번째 고리와 여섯 번째 고리 사이에 질적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구분해 주는 것이 디스의 성벽이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욕망에 빠져 죄를 짓기도 하지만, 이성적 판단 아래 의도적인 죄를 짓기도 한다. 단테는 이 의도성의 유무를 결정적인 차이로 보았다.  

 

사랑, 탐욕, 돈, 분노를 적절히 제어하지 못한 죄는 단테에게 상대적으로 가볍다. 무절제 혹은 부절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과 대립하는 개념이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금지를 넘어서는 사랑은 죄가 된다. 돈은 유용하지만 무절제한 탐닉은 죄다.  분노는 정의를 실현하는 용기가 되지만 폭주하는 분노는 죄이다. 욕망은 인간을 나아가게 하는 동인이지만 제어되지 않으면 인간을 집어 삼키는 죄가 된다. 절제하기 힘든 인간의 약점이 만들어 낸 죄는 단테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게 한다.

 

어두운 숲에서 시작된 단테의 순례는 지옥의 문을 지나고 아케론 강을 건너서야 비로소 지옥의 첫 번째 고리로 내려가게 되고, 다섯 번째 고리까지는 큰 단절 없이 계속 내려 가게 된다. 그런데 다섯 번째 고리인 스틱스 강을 건너면 디스라는 도시의 성벽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도시는 인간의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성벽은 성안과 성 밖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만들었다. 성안은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 낸 문명의 세계이고 성 밖은 야만의 자연적 세계이다. 성벽과 도시는 인간 이성의 결정체이다.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세계에 대한 상징이다.

 

디스의 성벽은 타락한 천사들이 지키고 있고, 성벽을 넘으면 여섯 번째 고리부터 아홉 번째 고리까지, 지옥 중의 지옥이 펼쳐진다.  스스로 선택한, 철저히 의도적인, 사악한 죄를 저지른 영혼들이 떨어져 쳐박히는 곳이다.

 

베르길리우스는 훌륭한 말로써 성문을 열지 못하고, 희랍-로마 신화의 괴수들이 순례자들을 위협한다.

 

 

 

 

 <디스 성문 앞에 선 천사, 윌리엄 블레이크>

 

 

 

 

두려워 하는 이들 앞에 '그분(80)'이 내려와 악한 영혼을 물리치고 디스의 문을 열어 준다. 그분이 누구인지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림들은 천사로 표현하고 있다.

 

 

여섯 번째 고리의 죄인들은 뜨거운 불에 쇠처럼 달구어진 무덤들 속의 영혼이다.  여섯 번째 고리는 '그곳(106)', '무덤들(116)'로 표현된다. 불꽃에 고통당하는 영혼들은 '모든 이교도 분파의 두목들과 추종자들(127~8)' 이다.

 

 

 

 

 

 

 

 

10곡

 

 

<관에서 일어나는 파리나타. 윌리엄 블레이크>

 

 

 

10곡은 관 속의 이교도들을 지나며 나누는 이야기다. 여섯 번째 고리의 이교도들은 에피쿠로스와 그 학파들 이외에는  13세기 후반 피렌체의 정치 상황과 관련된 인물들이다.  교황에게 파문을 당했거나 종교 재판에서 이단으로 선고 받았거나 이단자들의 주장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지옥에 떨어졌다. 교황의 권위가 떨어지고, 황권과 교권의 다툼이 치열해지던 시기의 종교재판과 파문이 진정 종교적이었을까 싶다. 무엇보다 교황과 추기경과 사제들을 지옥에 쳐박을 수 있는 단테와 그것이 용납되었던 시대의 종교는 무엇이었을까 싶다. 중세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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