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대개 文史哲로 구성되어 있다. 우연인지 기획인지 모르겠지만 문사철의 조합 순서는 희랍 문화가 전성한 순서이기도 하다. 기원전 8C에서 기원전 5C 사이에는 문학, 기원전 5세기 후반에는 역사, 기원전 4세기에는 철학이 꽃피었다. 서양 고전 읽기는 희랍 고전에서 출발하고, 희랍 고전은 문학 - 역사 - 철학의 순서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반인에게 희랍의 역사는 적잖이 버겁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를 읽어야 할텐데 , 번역본으로 800~900쪽에 이른다. 분량보다 둘 다 특정한 전쟁을 상세히 다루고 있고, 지중해 세계의 복잡한 역학관계와 이합집산을 파고들어야 하니 여간 머리가 아프지 않다. 숲 출판사의 천병희 선생 번역판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를 읽고 있는데, 등장하는 폴리스와 그들의 식민시만 해도 구분하기가 벅차다. 총 8권 중 4권까지 읽었는데, 전쟁을 독려하는 연설이나 동맹과 화해 등을 위한 사절단의 연설 등, 어느 폴리스를 막론하고 기본으로 구사하는 그 화려하면서도 논리적이고 깊이 있는 통찰이 담긴 연설이 아니었다면 계속 읽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우리 고전 읽기 모임은 서사시와 비극 다음으로 역사를 건너뛰고 철학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언뜻 듣기에는 이상할 지도 모르겠다. 역사보다 철학이 더 어렵다는 것은 통념이 아닌가. 칸트나 헤겔을 생각하면 물론 그렇다. 하지만 플라톤은 조금 다르다. 철학의 양대 산맥이라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모르고 철학을 말할 수도 없지만, 이들의  철학은 완전히 접근 불가는 아니다. 특히 플라톤은 더 그렇다. 일단 문학의 형식을 빌고 있기 때문에 플라톤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읽는다면 소설을 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말이 참 많고, 너무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주인공 때문에 짜증이 날 수도 있고, 누구 말이 맞는지도 아리송해서 다 읽고 난 뒤에도 좀 찜찜한 느낌이 남을 수는 있다. 하지만 누가 옳은지를 작가가 가르쳐 주는 것보다 내가 다시 추론하고 판단해 볼 수 있으니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희랍 철학 읽기의 계획은 대충 이렇다.  시대적 배경을 조금 알아보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지식을 아주 조금만 공부한 다음 바로 독서를 시작하는 것이다.  책은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향연』이다.  '최초의 철학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소크라테스는 도대체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책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일 것 같다.   『향연』은 훌륭한 문학 작품인 동시에 플라톤의 '형상론'을 배워 볼 수 있는 철학 텍스트이다. 두 책 모두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해줄 뿐 아니라 철학함의 태도에 대한 실천적 모델이기도 하다.  물론 『국가』를 빼놓고 플라톤을 읽었다고 하기에는 모자람이 클 수밖에 없지만, 철학 초보자들에게 『국가』가 당장은 무리임에도 틀림이 없다.  아쉽지만 일단 『국가』는 강좌를 통해 개략적인 이해를 하는 것으로 대신 하려 한다. 다행히 플라톤에 대한 공신력 있는 강의는 대부분 『국가』를 주제로 하고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독서는 '꼼꼼히 읽기' , 한때 close reading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하여튼 한 줄 한 줄 다 같이 읽으며 가능한 범위 안에서 분석을 해보려고 한다.

 

https://youtu.be/cf75J4GhuhY

https://youtu.be/zSSQ8YI7v8U

 

 

 

 

1. 시대적 배경

 

 

 

 

청동기 문명이 끝나고 철기 시대로 이행하면서 희랍 세계는 300~400년 동안의 암흑기를 거쳤다. 도리에이스족으로 대표되는 침입자에 저항하며 작은 규모의 정치 공동체가 에게해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암전 이후 갑자기 환한 불빛이 쏟아지듯 기원전 8세기에 시작된 폴리스 시대는 눈부신 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했다. 

 

 

 

<에게해의 세계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기원전 5세기 초, 거대 제국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침략을 물리치며 고대 희랍 세계는 절정을 맞이한다. 승리의 주역 아테나이는 희랍의 맹주로 부상하고, 안으로는 민주정을 밖으로는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하며, 인류가 깜짝 놀랄만한 성숙된 문화를 꽃피웠다.  

 

 

 

 

<그리스 지도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아테나이 제국의 팽창은 희랍 폴리스 세계에 내분을 일으키고, 결국 양분된 희랍 세계는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27년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겪게 된다.

 

 

 

 

 

전쟁은 '난폭한 교사'로, 인간을 짐승으로 만든다.  아테나이가 자랑했던 민주정은 순식간에 탐욕에 사로잡힌 시민과 그들을 부추겨 권력을 탈취하려는 야심가들의 선전·선동의 도구로 전락한다.  페리클레스의 죽음 이후 아테나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클레온은 전형적인 민중 선동가였다.

 

 

 

 

 

말은 믿을 것이 못되고, 정의보다는 사적 이익이, 정당한 판결보다는 보복이, 법보다는 폭력이 난무했다.  

 

 

 

 

 

 

희랍 세계 전체가 타락했다. 이렇게 27년이 지나자 전쟁은 끝났지만 폴리스는 더 이상 폴리스가 아니었다.  폴리스는 정치 형태일 뿐 아니라 시민들의 공동체였고, 시민의 목소리였고, 시민의 자부심이자, 시민의 삶 그 자체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희랍 폴리스 시대는 급속히 몰락하고 있었으므로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2세가 아니었다 해도 폴리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었다.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패배한 아테나이는 파괴를 가까스로 면했지만, 30인 참주정과 민주정의 부활을 겪으며 공포와 복수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1년을 채 못간 참주정을 이끈 크리티아스는 플라톤의 외당숙이자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민주정 옹호자들의 보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심증은 이 때문이다.  플라톤이 민주정을 참주정 다음으로 나쁜 정체로 생각했던 것도 민주정이 몰고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실상과 폴리스의 붕괴를 뼈져리게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2. 소크라테스

 

 

기원전 470(469)년에 태어나 기원전 399년에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그에 관한 가장 유명한 말은 '너 자신을 알라'로 회자되지만, 이 경구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진 것으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맥락을 덧붙여 즐겨 사용했던 말일 뿐이다. 델포이 신전의 아폴론은 너 자신이 '인간'임을 알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너 자신의 '무지'를 알아야 한다며 돌아다녔다.

 

 

 <강유원의 인문고전강의>

 

 

 

소크라테스가 기소되어 사형 판결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훌륭한 격언을 공손히 전했던 것이 아니라, 상대가 기진맥진하여 두 손을 들때까지 몰아 붙이는 방식으로 상대의 자복을 받아냄으로써 그들의 무지를 입증했다. 그렇게 스스로의 무지를 깨달은 시민들 중 열에 아홉은 분노와 적개심에 이를 갈았을 것이고, 한 명쯤은 소크라테스의 추종자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기술을 변증술이라고 한다.  변증술은 논박술과 산파술로 구성되어 있다. 논박술은 꼬치꼬치 캐묻는 대화법인데, 상대를 몰아 붙이는 소피스트적인 현란한 기교이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최고의 소피스트' 였다.

 

 

 

 

 

소크라테스가 무너뜨리려고 한 것은 사람들이 자명하다고 믿고 있던 상식과 전통 즉 에토스이다.  고대 희랍인들은 신화, 서사시, 비극 등의 작품을 통해 지혜를 얻고 이를 진리라 생각했다. 또한 경험적 사실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순투성이다. 희랍의 신들은 한 가지 사안을 두고 서로 반대 의견을 내세우며 싸우기 일쑤이고, 아테나이인들은 자신들에게 적용하는 올바름과 동맹국들에게 요구하는 올바름을 정반대로 규정하면서도 전혀 모순을 느끼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경험이나 관습이 서로 모순됨을 보여줌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동일한 하나의 개념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 즉 귀납적인 논구를 통해 보편적 정의를 확립함으로써, 삶의 기준을 에토스에서 로고스로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철학>

 

이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동료 시민들의 분노를 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아고라에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부하던 이들에게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끝까지 몰아 붙이는 소크라테스의 논박은 끓어 오르는 적개심에 기름을 끼얹는 행위였다.  설득보다는 분노를 자아내는 논박술이 소크라테스의 목적에 적절한 대화법인지를 물어 볼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런 고민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관계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아직도 완전히 합의되지 못한 점들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한 권의 책도 저술한 적이 없고 오직 아고라를 돌아 다니며 사람들을 붙들고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말이라고 하는 것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 의해 특히 플라톤에 의해 전해지는 것들 뿐이다.

 

 

 

 

 

가장 일반적인 구분 방식은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들은 늙은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데 거의 소크라테스 자신의 사상에 가까운 반면, 중기 이후의 대화편들은 젊은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다가 마지막에는 소크라테스가 사라지는데, 점차 플라톤 자신의 독창적인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철학>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것임이 분명한 명제 하나는 덕은 곧 앎(지식)이라는 것이다. 덕(arete)은 탁월함인데, 기능적 탁월함과 더불어 도덕적 탁월함을 말한다. 소크라테스에 이어 아리스토텔레스까지 희랍 철학은 탁월함을 발휘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각각의 사물은 나름의 탁월함을 가지는데,  인간의 탁월함은 바로 앎이다. 앎은 행복한 삶의 토대이다.  신적 앎에 이르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의 무지부터 깨달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던 것이고, 플라톤은 진정한 앎은 영혼이 이데아를 보는 것에 있다고 주장한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 자체 안에서 그 앎을 얻을 수 있다고 했던 것이다.

 

 

 

 

3. 플라톤

 

 

 <세상의 모든 철학>

 

 

 

기원전 427년 전통적인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플라톤은 기원전 347년에 죽었다. 귀족 출신답게 정치에 뜻을 두었으나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의 과두정과 민주정의 혼란을 겪고 스승 소크라테스가 민주정 아테나이의 동료 시민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정치의 뜻을 버리고, 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엘리트 교육에 헌신했다.  원형 극장의 비극 공연 등에 의한 대중 교육에 환멸을 느끼고 『국가』에서 보여준 이상적인 철인 통치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에 직접 나섰던 것일까?

 

 

 

 

 

 

 

 

 

 

 

 

 

 

 

 

 

 

플라톤을 통해 그리스 문화를 이해하고 싶든, 그리스 문화를 통해 플라톤에 친근히 접근하고 싶든, 최근에 출간된 이 책이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정암 학당이 기획하고 운영한 <크로스토크 고전인문학 강좌>의 일부를 정리하여 출간했다. 개인적으로 아는 이름이 있어 특히 반가웠다.

 

이 책에 의하면 플라톤의 대화편 dialogos는 "logos를 주고 받는 것" 이란 의미이다. 등장 인물들이 대화하는 극의 형식을 띄고 있다. 이 때문에 플라톤을 "철학에서 가장 위대한 저술가인 동시에 천재적인 극작가"로 평하는 학자도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총 36편인데 위작 논란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30편으로 추정된다. 대화편의 제목은 대개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눈 상대의 이름이다. 저술 연대가 명확하지 않고, 흔히 나누는 초기, 중기, 후기 작품으로의 분류도 학자들간 이견이 여전하다.

 

 

 

 <세상의 모든 철학>

 

 

 

플라톤 철학의 핵심은 형상론이다.  세계는 영원불변하는 이데아의 세계와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현상의 세계로 나누어져 있다.  경험적으로 보고 감각할 수 있는 사물들의 세계는 그림자에 불과하고, 눈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영혼으로 보고 누스로 인식할 수 있는 형상들의 세계, 즉 이데아가 진짜 세계이다.  현상의 세계에 사는 인간이 형상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로고스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 박종현 해설>

 

 

 

소크라테스가 논박술을 통해 경험과 관습의 모순을 드러냈던 이유는 현상의 세계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귀납적 논구의 과정을 거치면 보편적 정의, logos에 이를 수 있다.  logos는 다양한 뜻을 가진다. 말, 논리, 이성, 보편 정의된 개념 등이다.

 

대상에 대한 개념은 대상의 형상을 보여준다.  경험적 올바름은 수없이 많지만, 올바름 그 자체를 구현하지는 못한다. 어딘가 부족한 면들이 있다. 그러나 올바름이라는 개념은 올바름 그 자체를 정의해 준다. 대상에 대한 보편적 정의(logos)를 통해 인간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형상을 인식할 수 있다.

 

 

 

 

 

 

 

이데아는 이 땅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플라톤도 알았다.  『국가』에서 올바름을 정의(定義)하기 위해 이상 국가를 수립하는 긴 작업을 수행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의 말을 순순히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본(本. paradeigma)처럼 하늘에 바쳐져 있다.

 

 

 

 

 <국가. 박종현 해설>

 

 

 

 

 

 

 

 

 

 

 

 

 

 

 

本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다르다. 누구든 그것을 보고 그곳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그것을 따라 걷는다. 우리는 올바름의 logos를  本으로 삼아 올바름 그 자체의 개념에 가깝게 살아가려고 노력할 수 있다. 플라톤에게 앎은 경험이 아니라 보편 개념을 인식하는 것이고, 그 보편 개념이 우리를 형상들이 있는 이데아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증술은 아테나이를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그림자의 세계를 저 너머 이데아의 세계로 이끄는 길(道)이라고 플라톤은 말하고 있다.

 

 

 

 

 

 

 

플라톤의 형상론은 계서적이다. 모든 대상은 각각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모든 대상은 개념 정의되어 있다.  이 형상들은 하나의 질서 아래 위계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체계의 정점에는 '좋음 agathon의 형상' 이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돈을 벌든, 교육을 하든, 정치를 하든, 예술을 하든, 봉사를 하든, 궁긍적으로는 잘 살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다시 말해 좋음을 향해 있는 것이다. 좋음의 형상이  삶의 본(本)으로 우리를 이끌기 위해 먼저 좋음 그 자체의 형상을 인식할 수 있는 '좋음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한다.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

 

 

 

플라톤이 형상들이 모여 있는 이데아의 세계를 만든 것은 여기 현상계를 버리고 저기 이데아의 세계로 날아 오르라는 것이 아니라, 여기 현상계의 삶이 누구에게나 '좋음' 일 수 있도록 저기 이데아의 형상들을 本 삼아 살아 가자고 동료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