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누르면 '스포일러 포함'에 체크하는 란이 있다. 마우스를 움직이려다 웃음이 났다. 스포일드 안된 고전이 있나! 고전을 읽게 된 이유 자체가 그 무지막지한 후광을 가진 '스포일러' 때문인데.

내게 『모비 딕』의 스포일러를 준 것은 강유원의 『문학 고전 강의』이다. 『모비 딕』은 강유원 선생의 '고전 강의'라는 긴 항해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이 강의들을 따라 古典을 읽는 법을 배운 나도 감회가 남다른데, 정작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선생 자신이야. 아마도 그 마음이 『모비 딕』에 담기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멜빌이 말하듯 "우리가 더는 닻을 올리지 않아도 될 마지막 항구"는 없으니, 강유원 선생은 또 다른 항해를 시작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사실 『모비 딕』은 리뷰를 쓸 수가 없다. 이 거대한 고래가 피쿼드호를 향해 곧장 돌진해 순식간에 침몰시켰듯이 태평양만큼이나 광대한 이 책은 곧장 나를 덮쳐 사로잡았다. 하지만 고래잡이 배는 커녕 크루즈선도 타본 적이 없는 나는 이슈미얼처럼 거대한 심연 속에 살아남아 "당신께 고하러 왔나이다." 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성경을 옆에 놓고 읽었고, 고래와 고래잡이에 대한 논문같이 길고 해박한 설명이 놀랍게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울렁이는 파도 위에 작살을 치켜들고 고래를 쫓는 생생한 느낌 속에 몇 날을 보냈다고는 할 수 있다.
황유원이 옮긴 문학동네 완역본을 선택한 이유는 우연이겠지만 옮긴이의 이름도 이름이거니와 종교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해양학은 몰라도 종교와 철학을 모르고서는 『모비 딕』을 옮길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피쿼드호가 무엇이고, 모비 딕이 무엇이고, 에이허브가 무엇이고, 스타벅이 누구이고, 이슈미얼이 누구인가는 읽는 사람마다 수많은 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고전의 보편적 특징이라고 하지만 특히나 더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리뷰를 쓸 수가 없다.
『오뒷세이아』의 오뒷세우스도 고난은 끝이 없다고 했지만 그에게는 짧지만 달콤한 휴식이 주어졌다. 그러나 『모비 딕』을 쫓는 근대인에게는 페넬로페의 침대가 없다.
근대인이 신을 살려둔 것은 휴식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항구'를 기원하는 간절함이 지친 육신을 일으켜 세운다. 그러나 "버림받은 자식의 아버지"는 어딘가에 숨어 있기는 한가?

<오뒷세이아 23권>

<모비 딕 1 p135>

<모비 딕 2 p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