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뒷세이아』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읽고 있다. 철학자 강대진의 강의에 따른 것으로 1부는 젊은이의 성장을 주제로 한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다. 1권부터 4권까지다. 2부는 5권부터 12권까지로 본격적인 오뒷세우스의 모험 이야기이다. 13권에서 24권까지인 3부는 고향 이타케로 돌아온 오뒷세우스가 정체성을 찾는 과정으로, 전체 서사시의 반을 차지하는 많은 분량이 고향 안에서의 고난이 밖에서의 고난보다 크고 어려움을 보여준다.

파이아케스족의 나라 알키노오스의 궁전에서 자신의 모험 이야기를 모두 마친 오뒷세우스는 많은 선물과 함께 안전하게 이타케로 호송받는다. 드디어 오뒷세우스가 고향땅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물리적 귀향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귀향을 위한 모험이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오뒷세이아』는 『일리아스』만큼 신들이 많이 등장하거나 개입하지는 않지만, 전체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여전히 신들이다. 신들의 회의로 시작한 『오뒷세이아』는 사태의 진전과 해결 모두 신들에 의해 좌우된다. 신들과 점점 멀어져 가는 시대의 인간 예찬을 노래한 서사시라고 평가되는 『오뒷세이아』임에도 그렇다. 서사시는 기본적으로 신들과 영웅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오뒷세우스의 귀환을 열렬히 성원하고 도와주는 신은 아테나이다. 『오뒷세이아』의 첫 부분에서 텔레마코스의 성장을 이끄는 멘토르가 되었던 아테나는 종반부의 시작인 13권에서 처음으로 오뒷세우스 앞에 나타난다. 13권부터 24권까지 오뒷세우스와 텔레마코스 옆에는 늘 아테나가 함께 한다.
<주세페 보타니. 18세기>
오뒷세우스는 이타케에 도착한 이후 더욱 신중해 진다. 고향을 떠난 20년 동안 무엇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알 수 없다. 아카이오이족 사이에 떠들썩한 아가멤논의 죽음이 자신에게도 준비되어 있을지 알 수 없다. 자신의 궁전에는 아내의 구혼자들이 매일 같이 몰려와 먹고 마시며 결혼 상대를 선택하도록 페넬로페를 강압하고 있다.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13권 329~338>
아테나 여신과 나란히 앉아 계책을 세운 오뒷세우스는 충직한 하인인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를 찾아간다. 그 사이 아테나는 스파르테에 있는 텔레마코스를 찾아가 이타케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고, 텔레마코스는 귀향하여 에우마이오스를 찾아 온다.
4권 마지막에서 갑자기 중단한 텔레마코스의 모험 이야기를 15권에서 다시 이어가는 것이다.
즉 1권~4권은 텔레마코스의 모험 이야기를, 4권~15권은 오뒷세우스의 모험이야기를 각각 해주다가, 16권에서 마침내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마지막 모험에 나서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오뒷세우스』 의 구성은 참으로 조직적이다.

<16권 186~193>
영화 <스타워즈>의 명대사, "I'm your father"의 원조가 오뒷세우스일까? 정체를 감추고 아들의 마음을 시험하던 오뒷세우스가 참고 참았던 '내가 니 애비다'를 선언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인정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확인함으로써 한마음이 되어 집안을 되찾으러 나선다.

한편 남편 오뒷세우스를 기다리던 페넬로페는 궁지에 몰려 있다. 구혼자 무리들을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없고, 승낙할 수도 없다. 오뒷세우스의 생사는 확실치 않고, 어리기만 한 줄 알았던 아들은 장성하여 어머니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시간을 벌어주던 '수의'의 비밀도 들키고 말았다. 낮에는 짜고, 밤에는 풀던 '페넬로페의 수의'는 3년 만에 완성 된다.

수의가 완성되자 페넬로페는 결혼을 결심한다. 고대 희랍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수의가 완성되면 아내가 재혼을 했다고 한다. 페넬로페는 남편이 아니라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는 것으로 노래된다.

딱 이 시점에 오뒷세우스가 돌아온다. 늙은 거지로 변장한 오뒷세우스는 페넬로페를 만나 아내의 마음을 떠보고, 페넬로페는 그가 전해주는 남편의 귀향 소식의 진위를 시험한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며 그 마음을 확신하지 못한다.

오뒷세우스의 발을 씻겨주던 늙은 유모가 그를 알아보지만 오뒷세우스는 그녀의 입을 막고 페넬로페에게 알리지 못하게 한다. 아내의 진심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21권 1~14>
21권 <활>은 후반부의 클라이맥스이다. 13권부터 서서히 고조되던 긴장이 불꽃처럼 폭발한다.
활 시합은 아폴론의 축제일에 맞춰 준비된다. '멀리 쏘는' 명궁이란 별칭을 가진 아폴론은 오뒷세우스를 암시한다. 오뒷세우스는 태양을 은유하는 대머리다. 구혼자들 중 하나가 "아무튼 내 눈에는 저기 저 횃불의 불빛은 바로 그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 같소. 거기에는 짧은 머리카락 하나 없으니 말이오." 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아폴론 - 활 - 오뒷세우스' 의 조합은 이 시합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준다. 구혼자들의 축제인 듯 보이는 아폴론 축일의 활 시합은 오뒷세우스의 귀향 선언을 위해 치밀하게 구성된 축제이다.

수의를 완성한 페넬로페는 더 이상 결혼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하며 구혼자들에게 활 시합을 제안한다. 남편 오뒷세우스가 사용하던 활로 12개의 도끼를 꿰뚫는 구혼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21권 67~81>
구혼자들은 누구도 오뒷세우스의 활에 시위를 얹지도 못하고 물러난다. 오뒷세우스는 활을 손에 넣어 익숙하게 매만진 후 열 두개의 도끼 자루를 모두 꿰뚫는다.

<21권 42~434>
이제 진짜 축제의 시간이다. 오뒷세우스가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신호를 보낸다. 오뒷세우스의 충직한 하인인 돼지치기와 소치기 그리고 텔레마코스가 명령에 따라 계획대로 움직인다.

오뒷세우스의 궁전은 폐쇄된다. 궁 밖 백성들은 아폴론 축일을 만끽하며 떠들석한 소란에 겨워 있고, 궁 안 구혼자들은 쇠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마치 웅장한 교향곡 속에 칼춤을 추는 킬러들의 영화처럼 백성들의 축제와 오뒷세우스의 축제는 하나로 어우러 진다.

<22권 226~235>
그러나 네 명만으로 백 명이 넘는 구혼자들을 처치하는 것이 오뒷세우스에게도 쉽지는 않다. 트로이아 전장보다 힘겹다.

<아가멤논의 살해. 1817.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다. 아가멤논도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와 간부의 손에 죽지 않았는가.

마침내 구혼자들에 대한 살육이 끝나고 오뒷세우스의 궁전은 정화되었지만, 페넬로페는 오뒷세우스에게 달려가 안기지 않는다.


<23권 183~208>
둘만이 알고 있는 올리브 나무 침상의 비밀을 확인하고서야 페넬로페는 울음을 터뜨린다. 땅 속 깊이 뿌리 내린 올리브 나무의 밑둥을 기둥 삼은 결혼 침상은 어떤 고난에도 변하지 않는 부부의 믿음이다.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 프리마티초. 1563.>
달콤한 사랑과 휴식으로 축제는 완성될 것이다. 하지만 오뒷세우스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23권 248~255>
고난은 끝이 없다. 잠깐의 휴식이 있을 뿐이다. 어릴 때의 운동회처럼, 전력 질주를 하고 나면 숨을 헐떡이며 엄마 품에 안기지만, 우리는 곧 운동장으로 돌아가 멀리 던지고 높이 뛰고 춤을 춘다. 삶은 엄마의 품 안에 있지 않다.

아들 텔레마코스와 아버지 오뒷세우스처럼 꼭 그렇게 오뒷세우스는 아버지 라에르테스를 만나야 한다. 아버지 라에르테스의 아들임을 입증해야 하고, 인정 받아야 한다. 고대 희랍인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아버지의 아들로 더 즐겨 불리었다. 오뒷세우스는 폴뤼페모스에게 외치지 않았던가!
"그대를 눈멀게 한 것은 이타케의 집에서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괴자 오뒷세우스라고 말하시오!"
(9권 504~505)
오뒷세우스는 모험을 떠나 스스로의 힘으로 '도시의 파괴자'가 되었고, 귀향에 성공하여 고향 '이타케'로 돌아왔으며,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찾아가 '라에르테스'의 아들임을 인정 받는다.
불멸의 신과 달리 필멸의 인간에게는 인간만의 불멸이 있다. 자식을 낳는 것, 불멸의 명성을 얻는 것, 신적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나는 나인 동시에 아버지이고, 아버지의 아버지이고, 또 그 아버지의....로 거슬러 올라가 모든 조상의 나임을 각인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태곳적 최초의 인간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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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도 좋을텐데, 인간들의 문제는 신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일까? 인간들의 은원은 끝이 없는 업보를 쌓는다는 것일까? 복수는 복수를 낳고 피는 피로 갚아온 인간들의 역사는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오뒷세우스에 의해 몰살 당한 구혼자들의 가족들이 무장하고 라에르테스의 집을 공격한다. 라에르테스-오뒷세우스-텔레마코스, 3대가 무장하여 나선다.

<24권 472~486>
제우스와 아테나는 이타케의 복수와 살육을 끝내기로 결정한다. 아테나가 전쟁을 중지시키고 양편의 화해를 중재한다.
" 그러자 아이기스를 가진 제우스의 딸과 팔라스 아테나가
마침내 양편이 서로 맹약을 맺게 하니
그녀는 생김새와 목소리는 멘토르와 같았다."
(24권 546~548)
『오뒷세이아』는 1권 신들의 회의에서 시작하여 24권 다시 신들의 결정으로 긴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인간의 역사는 그 이후로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타케에는 잠깐의 휴식이 찾아온 것이다.
* 서양 고전의 뿌리, 호메로스의 서사시 공부는 4차례에 걸친 『오뒷세이아』 스타디로 일단락을 맺는다.
다음은 희랍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