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기획 특강 <지식의 기쁨>  중  서양 고전 학자 김헌의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두 번째 강의를 정리하였다.  이 강의는 독서 스타디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기 위해 함께 듣고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희랍 신의 계보나 신들의 특성은 전승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이 강의는 기본적으로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를 따르고 있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희랍 최초의 신은 카오스, 가이아, 타르타로스, 에로스이다. 이후에 탄생하는 신들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계보를 따른다. 







 

생산력이 가장 왕성한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우라노스, 호론, 폰토스 즉 하늘과 산과 바다를 낳았다.  가이아는 우라노스를 선택해 남편으로 삼고 그 사이에서 티탄 신족 열 둘과 키클롭스들과 헤카톤케이르들을 낳는다. 키클롭스들은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외눈박이 거인들이다. 


 



신들이 많아지자 가이아는 통치권을 아들이자 남편인 우라노스에게 이양한다. 이 이야기는 모계가 가졌던 최초의 통치권이 부계로 넘어간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해석한다.  그런데 우라노스는 통치권을 함부로 휘두르며 폭력을 자행한다. 


우라노스는 가이아가 낳은 자식들을 다시 가이아의 뱃속에 가둬버리는 데 자신의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자신의 틀에 가두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성세대는 새로운 세대를 두려워하며 자신 안에 가두려 한다. 





자식들을 강제로 자신의 뱃속에 넣게 된 가이아는 우라노스를 응징하기 위해 뱃속의 자식들을 소집하여 아버지와 싸우도록 종용한다.  막내인 크로노스가 가이아의 뜻을 따르겠다고 나선다. 





크로노스는  어머니 가이아로부터 받은 거대한 낫으로 아버지 우라노스의 남근을 자른다. 우라노스는 깜짝 놀라 타르타로스로 숨어들고 잘린 남근에서 튀어나온 정액과 피가 가이아 위로 떨어져  복수의 여신들, 물푸레나무 요정들 그리고 거인신족들 (gigas)이 탄생한다.  거세된 남근은 바다로 떨어지는데 이때 거품이 부글거리며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다. 


Patroktonia , 친부 살행의 전통이 시작된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틀에 새로운 세대를 가두려하고, 새로운 세대는 그런 기성세대와 싸워 이겨야만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가 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테바이의 새로운 왕이 되는 것 역시 최초 신들의 전쟁에 그 기원이 있는 것이 아닐까. 


크로노스는 가이아 → 우라노스에 이어 새로운 지배자가 된다.  크로노스는 후에 시간의 신으로 여겨진다. 시간의 신에 대해서는 다른 說이 있지만, 신화가 전승되면서 크로노스가 시간을 의미하게 된다. 





크로노스는 남매인 레아와 결혼한다.  기득권이 된 크로노스는 자식들이 자신처럼 아버지를 죽이고 권력을 뺏을까봐 두려워 한다.  결국 레아가 낳은 자식들을 스스로 삼켜 자신의 뱃속에 가둔다.  레아는 6명의 자식을 낳는데 막내인 제우스를 낳고는 크로노스를 계략으로 속여 넘긴다. 강보로 감싼 바위를 제우스 대신 내미는데 크로노스는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 바위를 삼킨다. 제우스는 크레타섬으로 빼돌려져 몰래 성장한다. 





크로노스의 폭력에 화가 난 할머니 가이아가 제우스를 찾아온다. 제우스는 가이아의 조언에 따라 계략을 써서 아버지 크로노스가 삼켰던 형제자매들을 토해내게 만들고 아버지에 대항해 전쟁을 한다.  티타노마키아가 시작된다. 





제우스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들인 티탄신족들에 대항해 자신의 형제들 뿐 아니라 주류에서 배제되었던 삼촌들, 키클롭스들과 헤카톤케이르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연합군을 형성한다.  10년 간의 전쟁 끝에 제우스가 이끄는 올림푸스 신족들이 승리한다.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물리치고 새로운 통치자로 등극한다.  어쩌면 친부살해는 늘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막강한 기성세대도 결국은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  기존의 틀에 고착되어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는 소멸되기 마련이다. 





제우스는 지금도 건재하다.  기원전 776년에 처음 시작된 올림피아 제전은 로마제국 말기인 4세기 말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절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올림피아 제전은 천 여년을 묻힌 채 잊혀졌었으나, 1896년 제1회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개최되면서 부활한다. 올림피아 제전이 티타노마키아에서 제우스의 승리를 기념하여 시작된 것이라 하니, 올림픽의 부활은 제우스의 부활이기도 하다. 


우라노스나 크로노스와 달리 제우스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제우스는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올림푸스의 여러 형제 신들과 나눔으로써 안정적인 체제를 만들었다.  또한 모든 기성세대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소외되었던 기성세대를 끌어 안음으로써 신·구의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희랍인들은 제우스에게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시켜 주면서 통치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신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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