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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9월
평점 :
"서양 최초의 서사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는 묵직한 돌처럼 가슴 한켠을 누르고 있었다. 이 책들을 입에 올릴 때마다 사기를 치는 느낌도 있었다. 읽어 보지도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죄의식 같은 것을 갖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은 갚지 못한 빚이다. 인문학 강좌가 늘어나면서 읽지 않은 고전들에 대해 듣고 말할 기회도 점점 늘어난다.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 에도 EBS의 <지식의 기쁨>에도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가 되풀이 등장하여 신과 인간과 운명을 노래한다.
내가 호메로스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강유원의 『인문고전강의』를 통해서였다. 'in medias res' - 사건의 한가운데로 돌진하는 서사시의 전개방식부터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이들 영웅의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놀라웠다.
불멸하는 신의 혈통과 필멸하는 인간의 혈통을 반반씩 물려받은 영웅이란 존재는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플라톤의 에로스처럼 메탁시, 중간자이다. 불멸의 신성을 추구하지만 인간의 필멸성에 발목잡힌 영웅은 짧은 인간의 수명마저 채우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위기에 빠진 공동체를 구해야 한다. 영웅의 불멸성은 바로 그때 획득 된다. 그 희생이 영원한 이름을 역사에 새기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는 신탁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 신탁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죽음을 예언하는 전장에 무구를 갖추고 나아가야 한다.
『일리아스』는 일리온의 노래란 뜻이다. 일리온은 트로이를 가리키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을 노래한 서사시이다. 이 전쟁을 끝으로 영웅의 시대는 끝나고 인간의 시대로 이행한다. 역사적으로는 청동기를 배경으로 한 미케네 문명이 끝나고 도리아인의 침입과 함께 철기 시대가 시작된다.
트로이에서 죽은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가 영웅을 대표한다면, 함께 싸우고도 살아남아 갖은 고난을 겪고 고향으로 돌아온 『오뒷세이아』의 오뒷세우스는 이행기의 인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명예, 이름을 위해 목숨을 버린 아킬레우스와 달리 오뒷세우스는 스스로의 이름을 감추고 '아무도 아닌 자- 우티스'가 되어서라도 살아 남기를 택한다. 오뒷세우스는 살아서 저승에 내려가, 죽은 아킬레우스를 만나는데, 이때 만난 아킬레우스는 시쳇말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최고' 라며 한탄을 한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이름을 남기던 영웅의 시대는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다.'
내게는 꾀 많은 오뒷세우스보다 운명에 곧바로 뛰어드는 아킬레우스가 여전히 매혹적이지만 인간의 길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오뒷세이아』이다. '참을성이 많은' 오뒷세우스가 기나긴 고난을 빠짐없이 겪고 나서야 고향으로 돌아와서 아들과 아내와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지름길은 없다. 지름길은 삶 자체가 빠진 길이다. 굽고 휘어진 그 기나긴 길 위에서 비로소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먹고 자고 뒹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유에 있다고 믿는다면, 인간의 본질이 정신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희랍인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파테이 마토스 pathei mathos' , 지혜는 고난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므로.
『오뒷세이아』를 읽는 것은 예상과 달리 어렵지 않았다. 역자의 말처럼 가능한한 서사시의 운율에 맞추어 번역했기 때문인지, 소리내어 읽어도 묵독을 해도 리듬을 타면서 술술술 읽혔다. 오뒷세우스의 기이한 모험도 그 모험이 담고 있는 의미도 놀라웠다.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을 때도 느꼈던 것처럼, 수 천 년 전의 인간, 문명의 여명기의 인간들의 사고의 깊이가 지금 우리의 그것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은 '본성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오뒷세이아』는 신이 아닌 인간이 진정한 앎에 이르는 방법, 지혜를 얻는 방법에 관한 기나긴 서사이기도 하다. 이제 두려움 없이 『일리아스』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