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개음화

 

영어 문법은 드문드문, 배웠던 내용이나 개념이 떠오르는데 거짓말처럼 국어 문법에 대해서는 배웠던 기억이 없다. 딱 한 개만 제외하고. 바로 구개음화 ! (생각해 보니 두음법칙도 있다. ^^;;)

 

구개음화가 음운 변동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비음화나 경음화처럼 강력한 현상도 아닌데, 왜 ' 같이〔가치〕'는 이토록 또렷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는지 모를 일이다.

 

 

 

 

구개음화는 자음이 모음에 동화되는 현상이다.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것은 두 개의 형태소가 만날 때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것도 실질 형태소의 종성 'ㄷ/ㅌ' 이  'ㅣ나 반모음ㅣ'로 시작하는 형식 형태소와 만날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발생한다.

 

 

 

 

구개음화는 먼저 연음된 후 일어나므로 실질적으로는 두 단계를 거친다.  '굳이' 에서 받침 'ㄷ'은 뒤 음절의 초성이 비어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구디'로 연음된다.

 

'ㄷ'은 치조음이고, 'ㅣ'는 전설 모음이다.  전설 모음 'ㅣ' 의 위치는 센입천장 부위이다.  '디'를 발음할 때는 먼저 혀끝이 치조에 닿았다가 뒤로 센입천장까지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마침 센입천장에서 발음이 되는 자음이 있다. 'ㅈ'이다.

 

'지'를 발음해 보면 혀가 거의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서 소리가 난다. 음운의 변동은 대부분 소리를 편안하고 효율적으로 내려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이다. '디' 보다 편한 '지'로 바뀌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것을 구개음화라고 한다. 

 

 

 

'같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ㅌ' 역시 치조음이라 '가티' 보다는 '가치'가 쉽게 발음된다.

 

자음 'ㅎ'의 특수성 때문에  'ㄷ/ ㅌ 실질 형태소' + 'ㅣ/ 반모음ㅣ 형식 형태소' 조합 이외에 'ㄷ 실질 형태소' + '히 접미사' 조합이 있다. '히'는 사동이나 피동을 만들어 주는 접미사인데, 접미사도 형식 형태소이다.  '히'는 문을 '닫다' 라는 능동적인 동작을 문이 '닫히다' 라는 피동적인 동작으로 바꾸는 기능을 한다.

 

'히'는 비록 초성에 자음이 있는 형식 형태소이지만 'ㅎ'이 앞 음절의 종성과 만나서 독자적으로 발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사소리 'ㄷ'은 'ㅎ'을 만나면 거센소리 'ㅌ'으로 축약된다.  이런 변동을 거센소리되기라 부르는데 자음 2개가 1개로 줄어들기 때문에 축약으로 분류된다. 나중에 공부할 내용이다.

 

'닫히다'는 '다티다'로 축약되었다가 '티'가 구개음화되어 '다치다'가 된다. 구개음화는 굉장히 제한된 음운 변동으로 위의 세 경우 외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구개음화가 발생하지 않는 사례도 익혀두면 덜 헷갈린다.  처음에 말했듯이 구개음화는 두 개의 형태소가 만날 때만 일어난다. 하나의 형태소 안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견디다' 의 '견디-'는 어간으로 실질 형태소이다. 이때 '디'는 그대로 '디'로 발음한다.  '마디'라는 명사도 마찬가지다.

 

형태소가 두 개여도 실질 형태소와 실질 형태소의 결합이면 구개음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곧이어'는 복합어로 '곧' 과 '이어' 가 결합한 부사다.  각각이 의미를 가진 실질 형태소들이므로, 절음한 이후 종성을 뒤 음절의 초성으로 넘겨 〔고디어〕로 발음한다. 여기서 구개음화를 시켜 버리면 원래 의미가 흐려질 위험이 높다.

 

 

 

 

2. 된소리 되기 (경음화)

 

"예사소리였던 것이 된소리로 바뀌는 현상" 이다. 정의가 간단한 만큼이나 일상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음운 현상이다. 이런 것까지 배울 필요가 있나 싶은데, 의외로 간단치가 않다. 표준 발음법 6장 전체가 '경음화' 이고,  무려 6개의 항으로 세분되어 있다.

 

  

유독 하기 싫은 공부가 있다. 내게는 경음화가 그렇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내용이 즉 잔소리가 많다.  처음 강의 들을 때는 쓱 보고만 지나갔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유독 비음화나 경음화가 많다.  오늘 읽고 있는 책은 서평(?)인데, 한 페이지만 읽어도 우수수 떨어질 것 같다.  우리말에 속속들이 배어 있고 복잡하지만 나름의 기준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마냥 미룰 수만은 없다.  조금 정교하지 못해도 가능한 큰 틀의 기준을 찾아 외우기 쉽게 정리해 보려고 한다.

  

 

 

된소리되기는 앞 음절 종성과 뒤 음절 초성이 만나서 뒤 음절 초성의 평음이 경음 즉 된소리로 바뀌는 현상이다.  따라서 뒤 음절 초성은 무조건 'ㅂ ㄷ ㄱ ㅅ ㅈ' 중에 하나여야 한다. 이 5가지 외에는 경음으로 바뀔 수 있는 평음이 없다. 그러니 뒤 음절은 무엇이 오는지 굳이 정확히 구별하여 외울 필요가 없다.  

 

문제는 앞 음절 종성이다. 종성에 무엇이 오느냐, 종성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된소리가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표로 정리한 5가지 이외에 1가지 조항이 더 있긴 한데 여기선 생략한다.

 

 

 

자음은 크게 장애음(안울림소리)과 공명음(울림소리)으로 나뉘고, 장애음에는 파열음, 파찰음, 마찰음이 있고 공명음에는 비음과 유음이 있다. 복습을 하자면 음절 끝소리 규칙의 대표음 7가지 중 4가지는 공명음이고 3가지는 장애음이다. 공명음 4가지 (비음 ㅁ ㄴ ㅇ / 유음 ㄹ) 는 그대로 소리가 나고, 장애음들은 모두 평파열음 3가지 (ㅂ ㄷ ㄱ)로 바뀌어 소리가 난다.  

 

여기서 앞 음절 종성의 'ㅂ ㄷ ㄱ'는 모두 음절 끝소리 규칙이나 자음군 단순화가 적용된 이후의 대표음을 말한다.

 

뒤 음절 초성은 모두 장애음 중 평음이다. 된소리되기는 앞 음절의 장애음/비음/유음을 만나서 뒤 음절의 장애음이 경음화되는 현상이다. 결국 앞 음절에는 모든 자음이 올 수 있고, 뒤 음절은 장애음의 평음이 와야 되는 음운변동이다. 물론 그 앞음절의 모든 자음은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앞 음절 받침에 장애음이 오는 경우 뒤 음절의 평음은 무조건 경음으로 바뀐다. 예외가 없다고 할만큼 국어의 대표적인 음운 현상이다.  

 

언제나 맞춤법에 논란이 많았던 '깍두기'는 '깍두기'라고 쓰고 〔깍뚜기〕 라고 읽을 뿐이다. 장애음 'ㄱ'이 장애음 'ㄷ'을 만나서 'ㄷ'이 'ㄸ'으로 변한다. 앞 음절이 아니라 뒤 음절이 변한다. 따라서 〔깎두기〕는 안된다.

 

앞 음절의 종성도 자음이고 뒤 음절의 초성도 자음이기 때문에 앞 음절의 종성은 먼저 대표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닭장'의 'ㄺ'은 자음군 단순화가, '옆집'의 'ㅍ'은 음절 끝소리 규칙이 먼저 적용된 후 된소리되기가 일어난다.

 

 

 

 

앞 음절 종성에 비음이 왔다. 이때 비음은 어간 말음이어야 한다. 어간은 용언에서 의미를 가진 형태소를 말한다. 활용할 때 변하지 않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먹다' 는 '먹고, 먹으니, 먹어서' 등등으로 활용되는데 , 변하지 않는 부분이 '먹-'이다. '먹-'을 어간이라고 하는데, 먹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어간은 실질 형태소이다. 이에 반해 변하는 부분들, '-다, -고, -으니, -어서,' 등은 어미라 부르고, 먹는다는 실질적 의미는 없기 때문에 형식 형태소라고 한다.

 

앞 음절 종성이 어간 말음이니 뒤 음절 초성은 당연히 어미가 된다. 이 어간 말음이 비음이고, 어미 초성이 평음으로 만나면 평음은 경음화 한다.

 

'신다'라는 용언의 어간은 '신-' 이고, 어미는 '-고' 이다. 어간 말음 'ㄴ'과 어미 첫소리 'ㄱ'이 만나 〔신:꼬〕로 경음화 한다.  자음군 단순화 이후 어간 말음이 'ㄴ'으로 남는 경우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얹다'가 그런 예이다.

 

 

 

앞 음절 종성이 유음 'ㄹ'인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이 '-ㄹ'이 용언의 관형사형 전성어미일 경우다. 용언은 동사와 형용사이다. 즉 동작이나 상태를 표현하는 술어이다. 그런데 이 술어가 관형사처럼 쓰이어 뒤에 오는 체언을 꾸며줄 때 'ㄹ'과 같은 어미가 붙는다.

 

예를 들어서 '하다'라는 동사의 어간 '하-'에 어미 '-ㄹ'을 결합하면 '할'이 되는데 이 '할'은 뒤에 오는 명사(체언) '것'을 수식하는 관형사로 기능한다. '할 것' 처럼 쓰이는데, 이 때 경음화가 일어난다. 〔할껃〕

 

아직 품사를 공부하지 않아서 용어가 낯설고 개념이 어려울 수 있다. 아! 이 문장에도 경음화가 일어나고 있다. '어려울 수' 에서 '-ㄹ'이 '어렵다'의 관형사형 전성어미이고 뒤에 오는 '수' 라는 명사를 꾸미고 있다. 발음은 〔어려울 쑤〕 ^^

... 여하튼 유음 'ㄹ'은 관형사형 전성 어미일 때 뒤 음절의 예사소리를 된소리화 한다.

 

 

유음 'ㄹ'이 경음화의 음운 환경을 만드는 또 다른 경우는 한자어이다. 한자어 안에서 종성'ㄹ'과 초성 평음이 만나면 경음화가 일어난다. 갈등이 〔갈뜽〕으로 바뀐다.

 

 

 

 

다섯 번째 경음화는 합성어 안에서 일어난다.  합성어는 '둘 이상의 실질 형태소가 결합하여 하나의 단어가 된 말' 이다. 표준 발음법 28항에 다양한 사례가 나와 있다.

 

경음화는 합성어에서도 앞 음절과 뒤 음절 사이에 있어야 할 사이시옷이 생략되어 보이지 않을 경우의 현상이다. 원래 사이시옷은  '~의' 라는 관형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앞 말이 뒷말을 꾸며줄 때 앞 말의 종성에 표기된다. 방금 쓴 문장의 '뒷말' 같은 경우이다. '뒤+말' 이 복합된 합성어인데 '뒤의 말' 이란 의미를 가지므로 사이시옷이 들어가 '뒷말'이 되었다. 이때 '뒤'는 종성이 없으므로 'ㅅ' 표기가 가능하다. 그런데 앞 말에 받침이 있을 경우에 사이시옷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이때는 28항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표기는 하지 못하지만 발음은 된소리가 된다.

 

이 경우 다만 앞 말의 종성이 모두 울림소리라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사잇소리 현상 중의 하나인데, 다음글에서 다루겠지만 경음화와 관련된 부분만 살펴보면 , "합성 명사에서 앞말의 끝소리가 울림소리이고 뒷말의 첫소리가 안울림 예사소리이면 뒤의 예사소리가 된소리로 변하는 현상. 또는 (....……) " 이다.

 

'술잔'은 술을 마시기 위한 용도로 만든 잔이다. 즉 '술의 잔' 이므로 술은 잔을 꾸며주는 관형격이다. 이때 술과 잔 사이에 사이시옷이 들어가야 하는데 '술'의 받침 때문에 표기할 수 없다. 발음만 〔술짠〕으로 한다.

 

이에 반해 '물불' 의 경우 물과 불은 수식 관계가 아니다. 물의 불이 아니라 물과 불이 나란히 동격으로 쓰였다. 사이시옷을 쓸 상황이 아니니 발음도 그대로 〔물불〕이다.

 

 

그런데 앞 음절이 모음으로 끝나는 경우에는 경음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합리성'  〔합리썽〕도 사건 〔사껀〕도 나온다.  이유나 규정은 잘 모르겠지만, 된소리되기가 앞음절 받침이 있어야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쯤되면 왜 된소리되기 공부를 하기 싫었는지 공감이 될 것이다.  분류 기준이 많고, 음운학적 법칙으로 설명하지도 않으니, 단순 암기같아 피로하다. 하지만 워낙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고 글 한편만 읽어도 엄청 많이 찾아낼 수 있는 교체 현상이니 일상의 국어 생활에서 꾸준히 연습해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