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데이의 위력을 실감한 날입니다. 학교도 직장도 자체  휴무가 많았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늘 우선이기 때문일까요? 화창한 날씨의 유혹이 커서일까요? 4년 스타디 이력에 가장 낮은 출석을 기록한 날입니다. 여섯 명이 참석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근대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스피노자와 뉴턴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중세가 끝나면 더 이상 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전지전능하신 신은 되풀이 호출되어 흔들리는 인간의 든든한 후견인이 됩니다. 물론 신을 부르는 철학자들마다 신에게 요청하는 역할이 다릅니다. 하지만 중세와 달리 근대의 신은 주인공이 아니라 완숙한 연기력을 뽐내는 조연같은 느낌을 줍니다.

 

스피노자는 범신론자입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개인(자연)은 신의 변형태들입니다. 자연이, 우주가, 곧 신입니다. 유한자가 바로 무한자인 것입니다. '무한자와 유한자의 통일로서의 동일 철학'은 독일 관념론으로 이어집니다. 17세기 일반 위기의 시대에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하나의 위안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자연은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자연이 신이라면 자연의 법칙과 신의 법칙은 같습니다. 자연의 법칙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필연성을 따르는 것, 즉 신의 법칙에 따라 사는 것이 자유인 동시에 행복입니다.  

 

스피노자의 대표 저서인 『에티카』는 신의 의지에 복종하여 살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에티카』란 "책 제목이 기하하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윤리학입니다. 이 책의 기본 목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래로 서구 사상에 전승된 행복에 대해서입니다." 라고 강유원 선생님은 말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대에 가장 확실한 학문으로 인정받은 수학으로 이를 증명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 증명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피노자의 의도는 명백해 보입니다. 스피노자도 데카르트처럼 수학으로 입증된 법칙이 진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윤리학 역시 수학적으로 입증할 수만 있다면 자연과학처럼 참된 법칙이 될 수 있습니다.  수학이 진리의 도구입니다.  잘 훈련된 이성은 수학을 도구로 신적 앎에 이를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이런 상태를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필연성을 갖는 모든 것은 신의 의지이므로 (신의 의지와 필연성은 동일한 것이기에), 필연성에 대한 점증하는 인식과 긍정은 동시에 신에 대한 점증하는 사랑이자 신의 의지에 대한 복종이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도달 할 수 있는 이런 지고한 상태를 '신에 대한 지적 사랑' 이라 부른다. 이는 동시에 변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사랑, amor fati' 이기도 하다. <세계 철학사> p503"

 

운명애란 부정적으로는 체념을, 긍정적으로는 자유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의 철학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악의 문제입니다. 세상에 만연한 악 역시 신의 의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스피노자에게는 악의 문제에 대한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악의 문제라는 것 자체가 없는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대중매체를 통해 상상할 수 없는 악에 부딪힙니다.

 

 

다음주는 경험론을 중심으로 공부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344 ~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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