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열 세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꼬미님이 정식으로 가입하셨고요.
코스모스님은 탈퇴하셨습니다.
정원은 열다섯 명입니다.
오늘은 중세 교부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역작 『고백록』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강유원 선생님에 의하면 『고백록』은, "'하느님의 참된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목적을 전제하고, 자신의 삶의 모든 국면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필연적 계기였음을 회고적 관점에서 재구성하여 서술한 책" 입니다.
학문적으로 풀지 않아도 『고백록』은 그 자체로 감동을 주는 고전입니다. 꽤 두꺼운 책이지만 한 호흡에 읽을 수 있을 만큼 내적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의 힘뿐 아니라 문장 자체의 힘도 탁월합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신을 다른 무엇인가로 대체하여 읽는다면 그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목적은 하느님의 참된 사랑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ad te)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in te) 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in te 상태입니다. 그러나 dilectio, 하느님의 사랑을 자각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등을 돌려 하느님의 사랑 밖으로 나갑니다. "이처럼 영혼이 당신을 떠나 돌아서서(abs te) 당신 밖에서(extra te) 순수하고 깨끗한 것을 찾으려 할 때 곧 외도를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영혼이 당신께로 돌아서기까지는 (ad te) 그것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 과정이 파토스(pathos) 즉 겪음 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모니카의 믿음을 뒤로 하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에 빠지기도 하고, 수사학과 신플라톤주의에 심취합니다. 이 과정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에 버려진 시간, 단순한 외도가 아닙니다. 이 겪음이 없었다면 회심(metanoia)도 없었고, 신의 진정한 사랑도 깨달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in te → abs te → extra te → ad te → metanoia → in te 의 과정입니다. 결과만 보면 in te → in te 일 뿐입니다.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in te 와 마지막의 in te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처음의 in te에서 인간이 느끼는 사랑은 즉자적인 dilectio이지만, 신을 떠나 긴 겪음 이후에 돌아와 깨달은 사랑은 자각적인 dilectio 입니다. 인간은 자각을 통해서만 참된 하느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자각이란 '자신의 삶을 회고적 관점에서 재구성'하여 그 의미를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분열해야 합니다. 겪음을 행한 즉자적인 나와, 즉자적인 나를 바라보는 대자적인 나로 분열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self - reflection, 자기 반성을 통해 삶의 각 국면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 필요했던 것인가를 자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 반성은 반성문 한장을 쓰는 것처럼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가장 감동적인 문장으로 자각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 주님, 그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당신은 나를 나 자신으로 돌이켜 자기 성찰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내 자신을 살피기 싫어서 이때까지 내 등 뒤에 놓아두었던 나를 당신은 잡아떼어 내 얼굴 앞에 갖다 세워 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내가 얼마나 보기 흉하고, 비뚤어지고, 더럽고, 얽었고, 종기투성이인지 보게 하셨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보기 싫어서 나를 피해 어디로 가고 싶었으나 갈 곳은 없었습니다."
돌아보면 (나를 혹은 주변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기 싫은 자신의 얼굴을 여전히 등 뒤에 놓아두고 살고 있습니다. 내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위해 우리가 책을 읽고, 철학을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주는 스콜라 철학입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258 ~ 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