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사회적 규범의 자리에는 애정과 도움의 손길을 찾는 헐벗고 공포에 질린 공격적인 자아가 들어서고 있다. 자아는 애정어린 관계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 자신이라는 밀림 안에서 쉽게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안개마저 자욱한 자신이라는 밀림 안에서 더듬더듬 길을 찾는 개인은 이 고립이, 자아라는 교도소 독방에 갇힌 이 형벌이 다른 모든 이들도 겪는 집단 형벌이라는 것을 알아차릴만한 능력이 더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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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 : 박정희 vs 마오쩌둥 - 한국 중국 독재 정치의 역사
박형기 지음 / 알렙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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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들은 궁금하다. 독재자인 박정희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인기를 누리는 것일까? 이것은 과연 합당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고 기껏해야 그런 작위적인 환상의 연장에 불과한 것일까? 저자 박형기는 <머니 투데이>에서 오래도록 중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문제를 담당한 언론인이다. 그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너무 국내적인 시각에만 머물러 있다고 여겼다. 이제 그것을 국제적인 시야로 넓힐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중국을 끌여들여 평가해 보기로 했다. 그것도 박정희와 똑같은 독재자인 마오쩌둥과 덩샤오핑과의 비교를 통하여.

 마오쩌뚱의 유명한 말이기도 한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는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은 총 세 가지 부분에 걸쳐 세 명의 독재자를 비교한다. 첫 번째 부분은 필부의 몸에서 최고 권력을 장악하기까지의 과정이고 두 번째 부분은 박정희가 가장 내세우고 있는 업적인 경제 부문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 별로 업적이 없는 마오쩌둥은 생략되었다. 그런데 독재는 장악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지속이다. 마지막 부분은 어떻게 그 권력을 지속시켰는 지를 비교한다. 이야기 형식인데다 서술은 평이해서 이해 못할 부분은 없다. 334페이지라는 다소 적은 분량으로 세 명의 독재자 이야기를 담았지만 그렇다고 내용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슨 일을 했던가를 제대로 습득하기에 족한 책이라는 것이다. 혹시 박정희나 마오쩌둥 그리고 덩샤오핑에 관심이 있었고 좀 쉽게 알게 해 줄 책을 찾고 있었다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적절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머니 투데이>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행여나 오른쪽으로 편향된 서술이지 않을까 우려된다면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더없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으니. 애초에 이 책이 나오게 된 것도 남유진 구미시장이 박정희를 '반신반인'라고 부른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정말 '반신반인'인지 한 번 제대로 따져보자는 심정으로 말이다.


 권력의 쟁취과정에서는 잘 몰랐던 박정희의 만주 군관 학교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한 일본은 만주를 제대로 지배하기 위해 수많은 인력이 필요했고 모자라는 인력을 조선인으로 채울 계획을 세웠다. 만주의 장악을 위한 인력 수급인만큼 그냥 조선인은 대상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할 수 있는 자들만이 대상이었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친일자들이 만주로 몰려들었고 청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의 친일 청년들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보다 일본군 장교가 되는 것이었다. 장교가 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일본 육군 사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만주에 있는 군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다. 일본군 장교가 되어 출세하려는 야망이 강했던 박정희는 일본 육군 사관 학교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은 합격 요건이 엄격했다. 일단 박정희는 나이 제한부터 걸려버렸다. 때문에 비교적 입학 자격이 허술한 만주 군관 학교에 들어간 것이다.(여기도 나이 제한 때문에 한 차례 낙방해 박정희는 모병 담당자에게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라는 혈서를 써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입학한 후인 40년에 다카키 마사오로 창씨개명한다.) 


 만주 군관 학교는 졸업하면 만주군에 편입되는데 만주군의 주요 임무는 독립군 소탕이었다. 같은 시기 '유신 시절 박정희의 저격수'로 유명했던 장준하와 김준엽은 일제에 징병되었지만 일본 부대를 탈출했고 독립군이 되기 위해 6천리 길을 걸어갔다.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박형기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박정희는 큰 칼을 차고 싶어서, 즉 군인으로 출세하고 싶어서 만주로 갔고, 만군 장교로서 일본  제국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알뜰하게. 일제에 견마의 충성을 다했을 뿐이다.(p. 53)


 다소 이야기가 길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어떤 분위기인지 짐작케 하기 위하여 조금 무리를 해 보았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박정희와 마오쩌둥 그리고 덩샤오핑에 대한 일화들을 들을 수 있다. 더하여 정치적 격변기의 우리나라 모습도 아우를 수 있다. 이를테면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것은 원래 만주를 지배했던 기시 노부스케의 만주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본받은 것이라든지 개인청구권을 포기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만 더 커지게 만든 굴욕적인 한일 조약을 체결하게 된 뒷배경이라든지(덕분에 박정희 정권은 자금 3억불과 차관 5억불을 일본으로부터 지원받았다.) 독일로부터 빌린 돈 5천만 달러를 상환할 능력이 없어 우리나라의 광부와 간호사들의 임금을 담보하게 되어 63년부터 15년간 모두 7만 9천명의 광부와 1만여 명의 간호사가 서독으로 가게 된 사연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그 중 '65명의 광부와 44명의 간호사 그리고 8명의 기능공이 현지에서 사망했다. 외로움에 시달려 자살한 수도 광부 5명, 간호사 19명이었다.' 라고 책은 밝히고 있다.) 물론 베트남전 파병이나 그들의 희생으로 건설된 경부고속도로도 빼놓지 않는다.


 이렇게 박정희와 그 때의 우리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니 영화에 '국제시장'이 있다면 책엔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차이가 있다면 영화가 아련한 과거의 향수로 덧칠한 것을 이 책은 벗겨내어 그 객관적 진실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어 준다고나 할까. 어쨌든 좀 더 소상히 그 때의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여기에 더하여 중국의 이야기까지(이렇게 쓰고 보니 박정희 분량만 상당할 것 같다는 인상을 줄 것도 같은데 그렇지 않다. 세 명이 차지하는 분량은 고른 편이다.).


 아무래도 대상이 대상이다 보니 뭔가 덧붙이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냥 결론만 이야기 하는 것이 읽는 이나 나를 위해 나을 것 같다. 그렇게 결론만 이야기한다. 꽤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고 판단에 있어 좀 더 객관적인 자리로 데려가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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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웜 1 코모란 스트라이크 시리즈 2
로버트 갤브레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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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앤 K 롤링이 창조한 하드보일드 탐정인 코모란 스트라이크가 여타의 다른 탐정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불안일 것이다. 코모란은 지금까지 나온 하드보일드 탐정 중에 가장 불안한 탐정이다. 그는 아버지에겐 버려졌고 어머니에겐 사랑받지 못한 아들이며 다리는 하나 없는 데다 16년간 사랑했던 연인과는 기어이 헤어졌다. 사회의 가장 후미진 곳에서 주로 불륜의 증거를 찾는 코모란은 그 이름조차 사람들은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의 삶이 어둡고 불안한 것은 이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코모란은 콘월 지방의 민담에 나오는 거인의 이름이다. 거기서 거인 코모란은 우리에겐 요술 콩나무로 유명한 잭의 함정에 빠져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최근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잭 더 자이언트 킬러’란 영화로 만든 적이 있다. 아무튼 코모란은 자신의 욕망 때문에 결국 파멸한 샘인데 그 이름을 가진 코모란도 거인의 숙명을 그대로 따르는 듯 하다. 도대체 그가 원하는 것은 손에 넣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 ‘실크웜’은 그 획득의 불가능성과 그로 인한 불안이 더욱 첨예화 되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연인은 곧 결혼한다고 하며 오래도록 자신의 탐정 파트너가 되어줬으면 하는 사무실의 유일한 동료인 로빈은 그 일을 아주 싫어하는 남자 친구와 곧 결혼한다고 한다. 전작인 쿠크스 콜링에서 경찰도 해결하지 못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여 일약 명성을 얻었으나 그의 입지는 오히려 줄어만 간다. 그러던 차에 사라진 작가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그 의뢰를 수락하게 된 것은 작가 부인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는데 쉽게 해결되리라 기대했던 의뢰는 뜻밗의 존재가 출현함으로써 복잡하게 꼬여버린다. 바로 그 작가가 썼다는 원고 ‘봄빅스 모리’다. 봄빅스 모리는 라틴어로 ‘누에’를 뜻한다. 즉 제목의 ‘실크웜’은 바로 이 원고를 말하는 것이다. 왜 이 원고가 문제인가 하면 사라진 작가 오언 퀸이 자기 주변 인물들의 치부를 비록 우화적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남김없이 까발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오언을 둘러싼 출판계에 던져진 폭탄이나 마찬가지. 그런 폭탄을 던져놓고 그는 사라진 것이다. 코모란은 그 원고를 중심으로 거기에 등장한 인물들을 하나하나 만나간다. 그러다 지금 오언과 앙숙인 마이클 팬코트라는 부커상을 수상한 명망있는 작가가 과거 친구였던 시기에 죽은 동료 작가에게서 공동으로 그의 집을 상속했음을 알아내고 그 집을 찾았다가 적어도 10일 전에 살해된 오언의 시체를 발견한다. 시체는 참으로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몸통은 목에서 허리까지 갈라져’ 있었고 내장이 없어서 텅 비어 있었던 데다 ‘옷감과 살점이 온통 타들어가 있어서’ 혹시 그것을 익혀서 먹어치우진 않았을까 하는 끔찍한 느낌마저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봄빅스 모리'가 ‘실크웜’이라는 것을 코모란에게 알려준 로빈이 왜 다음과 같은 말까지 덧붙였는지 알수 있게 된다. 로빈은 이렇게 말했다.


 “네, 있잖아요. 전 항상 누에가 실을 자아내는 거미 같은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누에한테서 어떻게 실크를 얻는지 아세요?”

 “모르겠는데요.”

 “끓여요.” 로빈이 말했다. “산 채로 끓인다고요, 누에가 고치에서 뛰쳐나와서 고치를 망치지 않게요.”(P. 67)


 그러니까 ‘실크웜’은 오언의 시체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오언의 시체는 산 채로 끓인 누에 그대로였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사체 훼손이 바로 ‘봄빅스 모리’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용의자는 한정된다. ‘봄빅스 모리’를 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살인자는 자신의 치부를 까발렸다는 것에 앙심을 품은 자일지도 모른다. 코모란은 거기에 수사 중심을 두고 그런 자들을 차례로 만나간다. 그런데 만나는 이들마다 하나같이 제3의 공모자가 있음을 암시한다. 소설에 오언은 절대 알 수 없는 사실들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범인은 그들 중 하나일까? 아니면 오래도록 실패한 작가로서 살아온 그가 최후의 성공을 위해 벌인 자작극인 것일까? 물론 롤링은 뻔한 결말을 마련해 놓지 않는다.


 아마도 롤링이 이 소설의 명목상 작가인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걸 몰랐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코모란 스트라이크에서 뇌리로 인상 깊게 들어오는 것은 그가 가진 불안의 심리 묘사이다. 그를 불안하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 모두 여자라는 것도 흥미롭다. 헤어진 옛 연인과 이제 이별할 지도 모르는 여인. 이제까지 하드보일드에서 사립탐정은 여인과 관계 맺는 것을 금기시 했으므로 이 불안은 더욱 이채롭다. 물론 여기서 불안을 야기하는 여인들의 존재는 그리스 신화 속의 사이렌과 같아서 삶의 안정을 뒤흔드는 모든 것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것은 소설 속에서 코모란이 여인들과 관계를 맺을 때마다 절단된 다리가 상처입는다든지 의족을 잃어버린다든지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실 알고 보면 다리가 하나 없다는 것이야말로 코모란을 이제까지의 사립탐정과 가장 구별시켜주는 그만의 정체성인지도 모른다. 하드보일드 장르의 사립탐정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추리가 아니라 탐문이며 하나의 단서까지도 놓치지 않는 끈질기고 집요한 탐문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리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사립탐정의 본질은 다리라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거기에 하나 더 필요하다면 들을 수 있는 귀 정도일까? 그런데 코모란은 그런 다리 하나가 없다. 코모란은 사립탐정을 자신의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자신에게 본질과도 같은 다리 하나가 없으니 아무래도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과연 로빈에 따르면 행여나 그가 의족 없이 나올 때는 다리에 대한 어떤 언급도 그의 화를 부른다고 한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로빈이 약혼자 매튜의 어머니 장례식에 가기 위해 막차를 타는 장면이다. 마침 그녀는 의족을 할 수 없어 운전을 못하게 된 코모란을 위해 대신 운전하느라 막차를 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갑자기 내린 눈으로 차가 밀려 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대로 차를 역으로 몰고가면 가까스로 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의족을 하지 못한 코모란을 차에 둔 채 방치할 수밖에 없다. 로빈은 차마 그럴 수 없어 장례식 가는 것을 포기하려 하지만 코모란은 자기는 걱정하지 말라며 그녀를 기차에 태워 보낸다. 결국 그는 ‘운전도 못하는 렌터카에 탄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덩그마니 홀로’ 남게 된다. 밤 11시의 세인트판크라스 역 앞에서…


 굳이 이 장면을 인용한 까닭은 이 장면이 코모란의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렌터카에 옴짝달싹 못한 채로 혼자 남게 된 것만큼이나 불안하며, 그런 상황을 가져다 준 것이 바로 로빈이듯(공교롭게도 바로 그 전에 로빈은 내내 마음에 담아왔던 것, 즉 자신이 정말 바라는 것은 탐정으로서 코모란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라는 걸 고백한 바다.) 불안은 코모란이 관계를 맺을 때마다 그림자처럼 파생되는 것이다. 그렇게 코모란에게 불안은 관계의 부산물인데 사실 이것은 이번 ‘실크웜’의 핵심이기도 하다. 롤링은 마치 이것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코모란뿐만이 아니라 로빈을 통해서도 보여주는데 로빈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약혼자 매튜와 더 심하게 갈등을 겪게 된다. 또한 작가 오언 퀸 사건도 이것과 관련이 깊다. 사실 오언 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러모로 코모란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언 퀸의 삶은 핵심만 놓고 보자면 코모란의 삶과 다를 바 없는데(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자세하게 밝히진 않으련다.) 아니나 다를까 소설 속 인물 하나는 오언과 코모란이 비슷하다거나 죽이 잘 맞을 것 같다는 말을 반복한다. 


 결국 ‘실크웜’은 불안에 대한 소설이다. 어쩌면 제목의 누에는 정말은 코모란과 비슷할지도 모르는 우리 자신의 은유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내 맘 같지 않기 때문에 관계를 맺을 때마다 배태 될 수밖에 없는 불안으로 삶이라는 고치 통째로 끓여지고 있는 우리 말이다. 그렇기에 여기 투영된 불안을 더욱 공감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불안에 관해서라면 조앤 K  롤링만큼 전문가도 없으니까 말이다. 해리포터로 성공하기 전 그녀가 미래에 대해 조금의 희망조차 가질 수 없었던 극빈의 싱글맘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다. 재밌는 것은 코모란이 여타의 다른 하드보일드 탐정과는 달리 택시비 걱정, 벌금 걱정등, 돈 걱정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는 것인데 이것도 아마 그 시절 극빈자였던 롤링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관계를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는 것도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리라. 이렇게 자전적 경험이 바탕되었기에 불안한 심리와 관계에 대한 묘사가 더 한층 설득력을 가지는 것 같다. 소설은 확실한 대안을 보여 주지 않는다. 사건은 해결되고 갈등은 봉합 되지만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저 코모란과  로빈은 잠시 쉴 틈을 얻는 것 뿐이다. 우리 스스로도 잘 알지 않는가? 모든 불안과 갈등을 잠재우는 완벽한 관계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롤링은 이미 주연들의 이름에서부터 그걸 암시해 놓았다. 코모란은 앞서 말한 대로 잭에게 죽고, 로빈은 마더구스에 따르면 스패로우에게 죽는다. 둘 다 살해 당하는 존재다. 그들에게 관계에서 비롯되는 불안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임을 롤링은 이런 이름으로 암시한 것이다. 절단된 다리가 다시 붙을 수 없듯이 불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결국 롤링이 코모란 스크라이크 시리즈에서 바라는 것은 불안의 해결이 아니라 ‘여기 당신과 똑같이 늘 관계로 힘들어하고 불안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와 똑같은 불안 속에서 고민 하면서도 코모란이 의족 없이 홀로 서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거기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렇게 이 소설은 같은 불안 속을 떠도는 누에인 우리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소설이라고. 왠지 내겐 그런 속삭임이 들려온다. 때문에 불안이 더욱 깊어질 코모란과 로빈의 다음 이야기가 몹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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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1 - 팥알이와 콩알이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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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집사로 3년차이다 보니 고양이가 마냥 귀엽지만은 않다. 고양이와 개의 차이점에 대한 이런 농담이 있다. 주인이 밥을 줄 때, 개는 자신이 먹을 양식을 매일 풍족하게 주니까 주인을 신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반면 고양이는 그걸 주인의 공양 같은 것이라 생각해서 자신을 신으로 생각한다. 듣고 무릎을 쳤다. 그동안 내가 가까이서 관찰한 바 고양이는 정말 그랬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고양이의 모토란 이렇다고 한다.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딱 이대로다. 밥이 필요할 때 말고는 애교도 없고 자기가 심심하다고 손이나 발을 꽉 무는 게 낙인 녀석. 이것이 다만 불운한 뽑기 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네코마키의 ‘콩 고양이’에 나오는 고양이도 그랬기 때문에.


‘콩 고양이’는 네코마키의 만화다. 팥알이와 콩알이란 이름의 고양이 커플이 주인공인 만화다. 분위기는 마쓰다 마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팥알이와 콩알이는 그들이 동거하게 되는 가족의 장녀가 친구에게서 얻어 온 고양이다. 팥알은 암컷, 콩알은 수컷이다. 팥알은 까다롭고, 호기심이 많으며 매사에 적극적이고 콩알은 무던해서 먹을 것과 잠만 많이 잘 수 있다면 어디에 있든 고향처럼 여길 수 있으며 팥알에 비해 진중한 성격이다. 자연히 관계는 적극적인 팥알의 주도로 이루어진다. ‘콩 고양이’는 이런 고양이들이 새롭게 낯선 이들과 가족을 이루어 살면서 차츰 적응해 나가는 것을 에피소드로 엮어 보여주는 만화다.



 작가인 네코마키는 물론 일본 사람이다.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냥코’와 동거중인 부부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라고 책날개에 소개되어 있다. 책 날개엔 고양이 사진이 하나 나와 있는데 아마도 ‘냥코’인 것 같다. 눈매가 딱 보니 성깔있게 생겼다.(어쩌면 졸았을 때 찍었는 지도 모른다.) 아마도 팥알의 모델은 바로 이 녀석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고양이에 대한 묘사가 정말 사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공감한 묘사가 많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도 암컷이라 특히 팥알에게 더 깊이 공감했다.


 예를 들면 이런 묘사들.





 정말 뜬금없이 온 집안을 두다다다 뛰어 다니고 갑자기 손이나 발을 물며 공격하는 일이 많았다. 그것도 특히 밤에. 책상이나 장롱 위를 닌자처럼 휙휙 뛰어다녔다. 처음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암컷이니 발정기를 특별히 민감하게 타는 것은 아닐까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저 여기의 팥알처럼 갑자기 떠오른 충동의 결과일 뿐이었다. 하니, 갑자기 고양이가 왕성하게 활동적이 되거나 공격적이 된다고 해서 너무 겁먹지 마시길. 그냥 일시적 신내림이 내렸던 거라고 여기면 편할 것 같다.


아래는 더욱 진심으로 공감했던 에피소드. 아, 지금 생각해도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진다.(그렇다고 이 주먹을 고양이에게 쓰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시길.) 공간에 비해 책이 많은 고로 집 곳곳에 책탑이 있다. 문제는 우리집 냥이가 이 책탑을 자기 발톱 가는 곳으로 애용한다는 사실이다. 전용 발톱 가는 판때기를 사 주었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책탑만 주구장창 무지막지 할퀴어댔다. 덕분에 책들은 가장자리마다 모두 너덜너덜. 특별히 선물 받은 'GO'의 브라질 원서가 냥이의 공격으로 상처를 받았을 땐 정말 내게 분노의 광기가 신내림 하기도 했다. 이런 기억이 있어 이 에피소드 만큼은 고양이가 아니라 아줌마에게 공감했다. 하지만 팥알과 콩알의 만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오타쿠적으로 피규어를 수집하는 장남의 소장품들도 잠입하여 박살낸다. 내 레고들도 냥이의 느닷업는 '두다다다~'에 본래의 제 모습으로 돌아갔던 아픈 기억이...




 자, 나처럼 집사가 되어 아낌없이 양식과 감정을 착취 당하는 가족들의 소개다.



 나처럼 늘 '악연이다 악연이야!'라고 외치면서도 불현듯 애정이 치솟는 것을 어찌할 수 없는 아줌마와 집에서의 존재감이 없어 거의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아버지. 참치회로 팥알이와 콩알이에게 미식의 신세계를 열어주셨으나 초창기엔 가발로 공포감을 안겨주기도 했던 할아버지. 집안에 팥알이와 콩알이란 원흉을 가져왔으나 정작 본인은 뒤치닥거리를 거의 하지 않는 명목상의 주인일뿐인 장녀에 과연 연애는 할 수 있을까 싶은(무려 35살!) 오빠가 팥알이와 콩알이의 새로운 가족이자 등장인물들이다.


아무튼 꽤나 재미있고 유쾌한 만화였다. 고양이를 키운다면 나처럼 재미나게 읽지 않을까 싶다.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가 생각나 뜬금없이 웃음이 터져 나올 때도 있다. 이걸 보니 나도 문득 고양이에 대한 만화가 그리고 싶어졌다. 꼭 묘사하고 싶은 장면이 하나 있다. 뭔가 내게 요구할 게 있을 때마다 애교를 부리듯 엉덩이를 내 쪽으로 들이미는 것인데, 이 때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탁탁 쳐주면 얌전히 있는다. 이유는 모른다. 상황이 좀 웃긴다. 거기다 이 때 냥이기 짓는 표정도 묘한 것이 꽤 재밌다. 요걸 그대로 드러나게 그릴 수 있으면 좋을텐데. 몇 번이나 도전했는데 원하는 표정이 안 나와서 포기했다. 네코마키는 팥알과 콩알이 가지는 고양이로서의 개성을 잘 포착해 묘사했는데 덕분에 아주 그들의 존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요런 재능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놓쳐버리는 냥이의 표정, 몸짓, 일상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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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믿음의 논리는 관념에도 적용된다. 우리 스스로는 사실 선택이 무한하다거나 삶의 방향을 완벽하게 결정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은 이런 생각들을 믿는다고 믿기에 우리의 불신을 표출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고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는 일에 힘쓰는 동안 우리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전망을 잃어버리고 만다. 또 자기 계발에 몰두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과 능력도 상실하고 왠지 실패하고 있다는 느낌에 늘 불안해한다.

이 불안을 덜고자 한다면 먼저 그것이 어떻게 힘을 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가 기능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후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서 그런 중심 역할을 하는 선택의 독재에 대한 대안들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합리적 선택을 찬양하는 대신 선택들이 어떻게 흔히 무의식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또 사회의 영향을 받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p. 28)

레나타 샬레츨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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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득 2015-01-0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나를 찾아줘 영화를 보다가 문득 생각났던 책. 사족으로 이 책을 읽으면 우리 시대에 왜 일반인 오디션이 많은지 이해할 수 있다. 그 역시도 신자유주의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이데올로기적 장치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