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웜 1 코모란 스트라이크 시리즈 2
로버트 갤브레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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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앤 K 롤링이 창조한 하드보일드 탐정인 코모란 스트라이크가 여타의 다른 탐정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불안일 것이다. 코모란은 지금까지 나온 하드보일드 탐정 중에 가장 불안한 탐정이다. 그는 아버지에겐 버려졌고 어머니에겐 사랑받지 못한 아들이며 다리는 하나 없는 데다 16년간 사랑했던 연인과는 기어이 헤어졌다. 사회의 가장 후미진 곳에서 주로 불륜의 증거를 찾는 코모란은 그 이름조차 사람들은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의 삶이 어둡고 불안한 것은 이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코모란은 콘월 지방의 민담에 나오는 거인의 이름이다. 거기서 거인 코모란은 우리에겐 요술 콩나무로 유명한 잭의 함정에 빠져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최근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잭 더 자이언트 킬러’란 영화로 만든 적이 있다. 아무튼 코모란은 자신의 욕망 때문에 결국 파멸한 샘인데 그 이름을 가진 코모란도 거인의 숙명을 그대로 따르는 듯 하다. 도대체 그가 원하는 것은 손에 넣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 ‘실크웜’은 그 획득의 불가능성과 그로 인한 불안이 더욱 첨예화 되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연인은 곧 결혼한다고 하며 오래도록 자신의 탐정 파트너가 되어줬으면 하는 사무실의 유일한 동료인 로빈은 그 일을 아주 싫어하는 남자 친구와 곧 결혼한다고 한다. 전작인 쿠크스 콜링에서 경찰도 해결하지 못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여 일약 명성을 얻었으나 그의 입지는 오히려 줄어만 간다. 그러던 차에 사라진 작가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그 의뢰를 수락하게 된 것은 작가 부인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는데 쉽게 해결되리라 기대했던 의뢰는 뜻밗의 존재가 출현함으로써 복잡하게 꼬여버린다. 바로 그 작가가 썼다는 원고 ‘봄빅스 모리’다. 봄빅스 모리는 라틴어로 ‘누에’를 뜻한다. 즉 제목의 ‘실크웜’은 바로 이 원고를 말하는 것이다. 왜 이 원고가 문제인가 하면 사라진 작가 오언 퀸이 자기 주변 인물들의 치부를 비록 우화적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남김없이 까발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오언을 둘러싼 출판계에 던져진 폭탄이나 마찬가지. 그런 폭탄을 던져놓고 그는 사라진 것이다. 코모란은 그 원고를 중심으로 거기에 등장한 인물들을 하나하나 만나간다. 그러다 지금 오언과 앙숙인 마이클 팬코트라는 부커상을 수상한 명망있는 작가가 과거 친구였던 시기에 죽은 동료 작가에게서 공동으로 그의 집을 상속했음을 알아내고 그 집을 찾았다가 적어도 10일 전에 살해된 오언의 시체를 발견한다. 시체는 참으로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몸통은 목에서 허리까지 갈라져’ 있었고 내장이 없어서 텅 비어 있었던 데다 ‘옷감과 살점이 온통 타들어가 있어서’ 혹시 그것을 익혀서 먹어치우진 않았을까 하는 끔찍한 느낌마저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봄빅스 모리'가 ‘실크웜’이라는 것을 코모란에게 알려준 로빈이 왜 다음과 같은 말까지 덧붙였는지 알수 있게 된다. 로빈은 이렇게 말했다.


 “네, 있잖아요. 전 항상 누에가 실을 자아내는 거미 같은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누에한테서 어떻게 실크를 얻는지 아세요?”

 “모르겠는데요.”

 “끓여요.” 로빈이 말했다. “산 채로 끓인다고요, 누에가 고치에서 뛰쳐나와서 고치를 망치지 않게요.”(P. 67)


 그러니까 ‘실크웜’은 오언의 시체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오언의 시체는 산 채로 끓인 누에 그대로였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사체 훼손이 바로 ‘봄빅스 모리’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용의자는 한정된다. ‘봄빅스 모리’를 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살인자는 자신의 치부를 까발렸다는 것에 앙심을 품은 자일지도 모른다. 코모란은 거기에 수사 중심을 두고 그런 자들을 차례로 만나간다. 그런데 만나는 이들마다 하나같이 제3의 공모자가 있음을 암시한다. 소설에 오언은 절대 알 수 없는 사실들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범인은 그들 중 하나일까? 아니면 오래도록 실패한 작가로서 살아온 그가 최후의 성공을 위해 벌인 자작극인 것일까? 물론 롤링은 뻔한 결말을 마련해 놓지 않는다.


 아마도 롤링이 이 소설의 명목상 작가인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걸 몰랐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코모란 스트라이크에서 뇌리로 인상 깊게 들어오는 것은 그가 가진 불안의 심리 묘사이다. 그를 불안하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 모두 여자라는 것도 흥미롭다. 헤어진 옛 연인과 이제 이별할 지도 모르는 여인. 이제까지 하드보일드에서 사립탐정은 여인과 관계 맺는 것을 금기시 했으므로 이 불안은 더욱 이채롭다. 물론 여기서 불안을 야기하는 여인들의 존재는 그리스 신화 속의 사이렌과 같아서 삶의 안정을 뒤흔드는 모든 것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것은 소설 속에서 코모란이 여인들과 관계를 맺을 때마다 절단된 다리가 상처입는다든지 의족을 잃어버린다든지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실 알고 보면 다리가 하나 없다는 것이야말로 코모란을 이제까지의 사립탐정과 가장 구별시켜주는 그만의 정체성인지도 모른다. 하드보일드 장르의 사립탐정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추리가 아니라 탐문이며 하나의 단서까지도 놓치지 않는 끈질기고 집요한 탐문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리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사립탐정의 본질은 다리라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거기에 하나 더 필요하다면 들을 수 있는 귀 정도일까? 그런데 코모란은 그런 다리 하나가 없다. 코모란은 사립탐정을 자신의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자신에게 본질과도 같은 다리 하나가 없으니 아무래도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과연 로빈에 따르면 행여나 그가 의족 없이 나올 때는 다리에 대한 어떤 언급도 그의 화를 부른다고 한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로빈이 약혼자 매튜의 어머니 장례식에 가기 위해 막차를 타는 장면이다. 마침 그녀는 의족을 할 수 없어 운전을 못하게 된 코모란을 위해 대신 운전하느라 막차를 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갑자기 내린 눈으로 차가 밀려 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대로 차를 역으로 몰고가면 가까스로 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의족을 하지 못한 코모란을 차에 둔 채 방치할 수밖에 없다. 로빈은 차마 그럴 수 없어 장례식 가는 것을 포기하려 하지만 코모란은 자기는 걱정하지 말라며 그녀를 기차에 태워 보낸다. 결국 그는 ‘운전도 못하는 렌터카에 탄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덩그마니 홀로’ 남게 된다. 밤 11시의 세인트판크라스 역 앞에서…


 굳이 이 장면을 인용한 까닭은 이 장면이 코모란의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렌터카에 옴짝달싹 못한 채로 혼자 남게 된 것만큼이나 불안하며, 그런 상황을 가져다 준 것이 바로 로빈이듯(공교롭게도 바로 그 전에 로빈은 내내 마음에 담아왔던 것, 즉 자신이 정말 바라는 것은 탐정으로서 코모란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라는 걸 고백한 바다.) 불안은 코모란이 관계를 맺을 때마다 그림자처럼 파생되는 것이다. 그렇게 코모란에게 불안은 관계의 부산물인데 사실 이것은 이번 ‘실크웜’의 핵심이기도 하다. 롤링은 마치 이것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코모란뿐만이 아니라 로빈을 통해서도 보여주는데 로빈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약혼자 매튜와 더 심하게 갈등을 겪게 된다. 또한 작가 오언 퀸 사건도 이것과 관련이 깊다. 사실 오언 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러모로 코모란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언 퀸의 삶은 핵심만 놓고 보자면 코모란의 삶과 다를 바 없는데(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자세하게 밝히진 않으련다.) 아니나 다를까 소설 속 인물 하나는 오언과 코모란이 비슷하다거나 죽이 잘 맞을 것 같다는 말을 반복한다. 


 결국 ‘실크웜’은 불안에 대한 소설이다. 어쩌면 제목의 누에는 정말은 코모란과 비슷할지도 모르는 우리 자신의 은유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내 맘 같지 않기 때문에 관계를 맺을 때마다 배태 될 수밖에 없는 불안으로 삶이라는 고치 통째로 끓여지고 있는 우리 말이다. 그렇기에 여기 투영된 불안을 더욱 공감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불안에 관해서라면 조앤 K  롤링만큼 전문가도 없으니까 말이다. 해리포터로 성공하기 전 그녀가 미래에 대해 조금의 희망조차 가질 수 없었던 극빈의 싱글맘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다. 재밌는 것은 코모란이 여타의 다른 하드보일드 탐정과는 달리 택시비 걱정, 벌금 걱정등, 돈 걱정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는 것인데 이것도 아마 그 시절 극빈자였던 롤링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관계를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는 것도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리라. 이렇게 자전적 경험이 바탕되었기에 불안한 심리와 관계에 대한 묘사가 더 한층 설득력을 가지는 것 같다. 소설은 확실한 대안을 보여 주지 않는다. 사건은 해결되고 갈등은 봉합 되지만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저 코모란과  로빈은 잠시 쉴 틈을 얻는 것 뿐이다. 우리 스스로도 잘 알지 않는가? 모든 불안과 갈등을 잠재우는 완벽한 관계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롤링은 이미 주연들의 이름에서부터 그걸 암시해 놓았다. 코모란은 앞서 말한 대로 잭에게 죽고, 로빈은 마더구스에 따르면 스패로우에게 죽는다. 둘 다 살해 당하는 존재다. 그들에게 관계에서 비롯되는 불안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임을 롤링은 이런 이름으로 암시한 것이다. 절단된 다리가 다시 붙을 수 없듯이 불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결국 롤링이 코모란 스크라이크 시리즈에서 바라는 것은 불안의 해결이 아니라 ‘여기 당신과 똑같이 늘 관계로 힘들어하고 불안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와 똑같은 불안 속에서 고민 하면서도 코모란이 의족 없이 홀로 서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거기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렇게 이 소설은 같은 불안 속을 떠도는 누에인 우리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소설이라고. 왠지 내겐 그런 속삭임이 들려온다. 때문에 불안이 더욱 깊어질 코모란과 로빈의 다음 이야기가 몹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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