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양이 1 - 팥알이와 콩알이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고양이 집사로 3년차이다 보니 고양이가 마냥 귀엽지만은 않다. 고양이와 개의 차이점에 대한 이런 농담이 있다. 주인이 밥을 줄 때, 개는 자신이 먹을 양식을 매일 풍족하게 주니까 주인을 신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반면 고양이는 그걸 주인의 공양 같은 것이라 생각해서 자신을 신으로 생각한다. 듣고 무릎을 쳤다. 그동안 내가 가까이서 관찰한 바 고양이는 정말 그랬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고양이의 모토란 이렇다고 한다.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딱 이대로다. 밥이 필요할 때 말고는 애교도 없고 자기가 심심하다고 손이나 발을 꽉 무는 게 낙인 녀석. 이것이 다만 불운한 뽑기 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네코마키의 ‘콩 고양이’에 나오는 고양이도 그랬기 때문에.


‘콩 고양이’는 네코마키의 만화다. 팥알이와 콩알이란 이름의 고양이 커플이 주인공인 만화다. 분위기는 마쓰다 마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팥알이와 콩알이는 그들이 동거하게 되는 가족의 장녀가 친구에게서 얻어 온 고양이다. 팥알은 암컷, 콩알은 수컷이다. 팥알은 까다롭고, 호기심이 많으며 매사에 적극적이고 콩알은 무던해서 먹을 것과 잠만 많이 잘 수 있다면 어디에 있든 고향처럼 여길 수 있으며 팥알에 비해 진중한 성격이다. 자연히 관계는 적극적인 팥알의 주도로 이루어진다. ‘콩 고양이’는 이런 고양이들이 새롭게 낯선 이들과 가족을 이루어 살면서 차츰 적응해 나가는 것을 에피소드로 엮어 보여주는 만화다.



 작가인 네코마키는 물론 일본 사람이다.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냥코’와 동거중인 부부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라고 책날개에 소개되어 있다. 책 날개엔 고양이 사진이 하나 나와 있는데 아마도 ‘냥코’인 것 같다. 눈매가 딱 보니 성깔있게 생겼다.(어쩌면 졸았을 때 찍었는 지도 모른다.) 아마도 팥알의 모델은 바로 이 녀석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고양이에 대한 묘사가 정말 사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공감한 묘사가 많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도 암컷이라 특히 팥알에게 더 깊이 공감했다.


 예를 들면 이런 묘사들.





 정말 뜬금없이 온 집안을 두다다다 뛰어 다니고 갑자기 손이나 발을 물며 공격하는 일이 많았다. 그것도 특히 밤에. 책상이나 장롱 위를 닌자처럼 휙휙 뛰어다녔다. 처음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암컷이니 발정기를 특별히 민감하게 타는 것은 아닐까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저 여기의 팥알처럼 갑자기 떠오른 충동의 결과일 뿐이었다. 하니, 갑자기 고양이가 왕성하게 활동적이 되거나 공격적이 된다고 해서 너무 겁먹지 마시길. 그냥 일시적 신내림이 내렸던 거라고 여기면 편할 것 같다.


아래는 더욱 진심으로 공감했던 에피소드. 아, 지금 생각해도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진다.(그렇다고 이 주먹을 고양이에게 쓰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시길.) 공간에 비해 책이 많은 고로 집 곳곳에 책탑이 있다. 문제는 우리집 냥이가 이 책탑을 자기 발톱 가는 곳으로 애용한다는 사실이다. 전용 발톱 가는 판때기를 사 주었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책탑만 주구장창 무지막지 할퀴어댔다. 덕분에 책들은 가장자리마다 모두 너덜너덜. 특별히 선물 받은 'GO'의 브라질 원서가 냥이의 공격으로 상처를 받았을 땐 정말 내게 분노의 광기가 신내림 하기도 했다. 이런 기억이 있어 이 에피소드 만큼은 고양이가 아니라 아줌마에게 공감했다. 하지만 팥알과 콩알의 만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오타쿠적으로 피규어를 수집하는 장남의 소장품들도 잠입하여 박살낸다. 내 레고들도 냥이의 느닷업는 '두다다다~'에 본래의 제 모습으로 돌아갔던 아픈 기억이...




 자, 나처럼 집사가 되어 아낌없이 양식과 감정을 착취 당하는 가족들의 소개다.



 나처럼 늘 '악연이다 악연이야!'라고 외치면서도 불현듯 애정이 치솟는 것을 어찌할 수 없는 아줌마와 집에서의 존재감이 없어 거의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아버지. 참치회로 팥알이와 콩알이에게 미식의 신세계를 열어주셨으나 초창기엔 가발로 공포감을 안겨주기도 했던 할아버지. 집안에 팥알이와 콩알이란 원흉을 가져왔으나 정작 본인은 뒤치닥거리를 거의 하지 않는 명목상의 주인일뿐인 장녀에 과연 연애는 할 수 있을까 싶은(무려 35살!) 오빠가 팥알이와 콩알이의 새로운 가족이자 등장인물들이다.


아무튼 꽤나 재미있고 유쾌한 만화였다. 고양이를 키운다면 나처럼 재미나게 읽지 않을까 싶다.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가 생각나 뜬금없이 웃음이 터져 나올 때도 있다. 이걸 보니 나도 문득 고양이에 대한 만화가 그리고 싶어졌다. 꼭 묘사하고 싶은 장면이 하나 있다. 뭔가 내게 요구할 게 있을 때마다 애교를 부리듯 엉덩이를 내 쪽으로 들이미는 것인데, 이 때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탁탁 쳐주면 얌전히 있는다. 이유는 모른다. 상황이 좀 웃긴다. 거기다 이 때 냥이기 짓는 표정도 묘한 것이 꽤 재밌다. 요걸 그대로 드러나게 그릴 수 있으면 좋을텐데. 몇 번이나 도전했는데 원하는 표정이 안 나와서 포기했다. 네코마키는 팥알과 콩알이 가지는 고양이로서의 개성을 잘 포착해 묘사했는데 덕분에 아주 그들의 존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요런 재능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놓쳐버리는 냥이의 표정, 몸짓, 일상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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