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 헌법소원.

 제기했다기에 관심 있었다. 어제 헌재 판결이 나왔는데,

 엥, '각하' ?

 각하는 소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내리는 결정이다. 뭔가 충족되지 않았기에 이런 결정이 나왔나 보았더니

 이럴수가! 소의 이익이 없기 때문이란다.

 물대포 쏘는 행위가 이미 끝나 청구권자들의 기본권이 더이상 침해 당할 여지가 없으므로 소의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소의 이익을 다른 말로는 권리보호의 이익이라고 한다. 즉, 공권력의 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당한 당사자가 그 공권력의 취소를 통해 침해당한 권리를 구제받을 가능성이 있을 때 이 이익은 인정된다.  이러한 권리보호의 이익은 종국 결정시까지 있어야 하는데 판단 대로 물대포 쏘는 행위는 이미 끝났으므로 구제받을 이익은 더이상 없는 셈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예외가 있다.


 즉 권리보호 이익이 소멸했다고 하더라도 예외적으로 심판의 이익을 인정하여 본안 판단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헌재는 개인의 기본권 구제도 해야하지만(주관적 기능) 위법한 침해로 부터 헌법 질서를 수호할 사명(객관적 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즉 이미 개인의 권리 보호 이익이 소멸했다 하더라도 이 침해 행위가 차후 반복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그건 곧 헌법 질서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므로 그 방지를 위해 본안 판단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대포 행위가 앞으로도 반복될 '위험' 곧 가능성이 있다면 예외로 본안 판단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 각하 판단한 6인은 물대포가 근거리에서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들었다.


 헐~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런 판단을 한 것일까?  심히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앞으로 안 쏠까? 이대로 역사의 유물이 된다면야 대환영이다. 아니면 근거리에서만 쏘지 않으면 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근거리일까? 정말 나의 상식으로는 어떻게 따라잡을 수 없는 논리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엔 하도 그동안의 상식과 통념을 뛰어넘는 저들의 생각들을 많이 봐와서 조금은 내성이 생겼다.


 어쩌면 이리 무리하게 각하 판단을 내린 게 물대포가 기본권 침해가 최소일 것을 요구하는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어(청구권자들이 근거리 물대포 사용으로 뇌진탕 등의 상해를 입어 헌법 소원을 청구한 것이기에) 위헌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기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소설 한 번 써 본다.(재판관 중 3인은 예외로 인정하고 본안 판단하여 이것을 이유로 위헌 판단을 했다.) 

그러니까 여기에 깔린 본심은 앞으로 물대포 계속 쏘겠다는 얘기. 곧 마음에 들지 않는 집회 시위에 대해서는 추호의 여지도 없이 강경 대응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려나~ 시위하려면 각오하고 나오라는... 

아무튼 전교죠 법외노조 통보 적법 판결도 그렇고 또 하나의 씁쓸한 케이스다.



 











 라고 썼는데 바로 다음날 전면 쌀 개방에 반대하는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쏘았더라. 역시.

 정말 헌재의 낙관론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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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06-2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헐~, 거기다 한숨도 함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쉬게 되네요.

오드득 2014-06-30 00:43   좋아요 0 | URL
요즘은 정말 내뿜는 한숨이 많아서 어디 산소호흡기라도 따로 마련해두고 싶어요 ㅠ ㅠ
 
어용사전 - 국민과 인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적 인민 실용사전
박남일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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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용(御用). 원래는 임금이 쓰는 물건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정부를 위해 일하는, 혹은 권력자의 뜻에 영합하는 이나 행동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대로 정부가 사용하는 물건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말은 변한다. 언어에 대해서라면 방귀 좀 뀐다는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와 사물이 일대일로 대응한다는 초기의 논리를 철회하고 언어의 의미란 그저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만큼 정해진 의미가 없는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말의 의미라는 것이다. 언어학자로 후일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소쉬르도 말하지 않았던가. 말이란 그저 그릇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렇게 기표라 일컬어지는 시니피앙와 의미가 되는 시니피에는 딱히 들어맞지 않고 상황에 따라 분리된다. 그러므로 말해진 바로 그 단어에 우리는 집착해서는 안된다. 말의 진짜 의미는 오로지 맥락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오늘 문참극 사퇴를 두고 한 새누리당 의원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친일의 의미로 말하지 않은 것은 국민이 다 안다고. 국민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데 한 방송국이 악의적으로 부정적인 것만 강조해 보도한 것이라고.  누가, 어떤 국민이 그렇게 이해하는가? 내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발언에 대해 성토했는데.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는 것인가? 물론 그럴 것이다. 그동안의 새누리 행태로 보아 그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국민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하든 그저 좀비처럼 묻지마 지지하는 이들일테니까. 오로지 새누리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를 보내는 이들만이 그들에겐 국민이다. 그 외는 다 종북이고 좌파이며 미개인에다 (한기총의 조광작이란 사람이 말했듯이) 백정이다.


 하지만 이런 맥락적 이해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생물학자들이 말하듯이 인간의 두뇌란 참으로 귀찮은 일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두뇌란 깊이 헤아리기 보다 바로 보여지는 그 표면만 포착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다시 말해, 이런 맥락적 이해를 하자면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때부터 그랬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수사학'이다. 아시다시피 수사학의 전문가들이었던 '프로타고라스'는 당시의 엘리트들이었다. 말을 못하면 관직에 진출하지 못했던 시대라 당연했다. 소위 출세를 하고 싶은 그리스 시민들은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수사학을 배워야만 했다. 이렇게 배우고 갈고 닦아야만 하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말은 헤아림의 대상이 아니라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만 들리면 먹이가 있건 없건 침을 질질 흘리듯이 그저 즉각적인 인식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말은 이성의 영역에서 감성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들뢰즈는 언젠가 말했다. 지금의 시각 중심의 문화가 계속 지속되면 사람들은 머리가 텅 빈 바보가 될 것이라고. 즉 '무사유'의 시대가 도래하리라 내다보았다. 사람의 뇌는 귀찮은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인간의 두뇌는 당연하게도 말보다 그림을 선호한다. 보기 좋은 것을 먼저 취하려 든다. 지나친 시각에 대한 선호는 인상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그렇게 감성의 사회가 도래했다. 외모중심사회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사람이 속하고 뒤에 놓여진 커다란 삶이라는 맥락은 싹둑 잘려나가고 오로지 지금 보이는 모습만이 전부가 된다. 타인만이 아니라 사회도 그렇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도와주세요'란 구호를 보라. 사람들은 그것이 나온 맥락,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도와주었을 경우 따르게 될 여파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도와달라'는 말에 표를 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한 총리가 헌정 사상 초유의 유임이라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상황에까지 직면하고 말았다. 상식이 있다면 TV 화면을 붙들고 '오호통재라'를 외칠 수 밖에 없다. 이건 세월호에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능욕이 아닌가!


 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도대체 왜 빙산의 일각 밖에는 보지 못하는가? 수면 아래 더 커다랗게 존재하는 말의 맥락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타이타닉과 같은 꼴이 날 뿐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만 보고 무시하고 지나가려다 그 아래에 있는 커다란 빙산에 부딪혀 그만 침몰하고만 타이타닉.


 박남일의 '어용사전'을 보았을 때, 난 정말 이 책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하다고 보았다. 같은 말이지만 처한 계급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나온 말의 의미들이 사전적 정의는 아니다. 그렇지만 읽는 우리들은 이 사전의 의미에 공감하며 그것이 진실임을 안다. 왜냐하면 우리들 역시 새누리 의원이 인터뷰에서 국민을 말할때 느껴지는 것처럼 비록 박남일처럼 매끄럽게 언어로 빚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실상 그 말하는 언어의 참모습이 무엇인지는 이미 맥락적으로 이해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어용사전'의 의미들은 그들의 상황과 말투 그리고 행동들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맥락적으로 파악한 의미들인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 막연히 냄새를 맡았던 것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히 이데올로기적으로 교언영색에 불과한 그들의 언어를 교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 책은 이념 같은 것을 떠나서 보아야 한다. 우리 자체가 얼마나 말의 표면적 의미나 사람이나 사물의 인상에만 집착하고 있으며 또한 진정한 판단이란 오로지 모든 측면을 아우를 수 있는 맥락적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책 자체가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맥락적 이해를 위한 하나의 훈련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기꺼이, 그것도 아주 열렬하게 추천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이 훈련을 했다. 거기에 비한다면 이 책의 한 권 값은 그저 시시한 부담에 불과하리라. 꼭 좀 벗하시고 달리 볼 수 있는 눈을 많이 가지는 것만이 진정 우리를 자유케 하는 길임을 느껴 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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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들은 한순간에 시장을 장악하는가 - 빅뱅 파괴자들의 혁신 전략
래리 다운즈 & 폴 누네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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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통기한이 식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영 기법에도 유통기한은 존재한다. 시장의 상황이 급변하기 때문이다. 경영 기법에 있어서 혁신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주장했던 경제학자는 '슘페터'였다. 무어의 법칙처럼 날로 달라지는 경제 환경 속에서 업데이트되는 시장 상황에 따라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하기 마련이다. 거기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 기술의 발달은 더욱 급격한 시장의 변화를 초래했다. 새로운 시장은 이제 더이상 위에서부터 아래로 형성되지 않는다. 이제 기업이 더 비싼 값을 지불할 여유가 있으며 그렇게 할 소비자를 목표 고객으로 설정하고 차별화된 상품을 창조하는 건 어렵게 되었다는 의미다. 현재의 시장은 그런 식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예전처럼 소규모 시장에서 대규모 시장으로 발달하는 일도 없다. 이제 시장 형성의 일방 통행은 불가능하게 되었고 시장의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건 전면적으로 이루어진다. 즉 어떤 히트 상품이 나타날 경우 삽시간에 모든 시장을 장악해버리는 상황에 지금 우리는 던져져 있다는 것이다. 흡사 '빅뱅'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비즈니스 분야의 정보 기술 분야 컨설턴트인 래리 다운즈와 폴 누네스는 이와 같이 변화된 시장 상황을 단적으로 '빅뱅 파괴자'라 묘사한다. 빅뱅을 파괴하는 자가 아니라 '빅뱅처럼 기존의 시장을 파괴하는 자'임을 뜻하는 말이다. 이제는 이러한 빅뱅 파괴자가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이다. 이들이 과연 누구고 앞으로 어떻게 시장을 변화시키며 또한 기존의 기업들은 이러한 빅뱅 파괴자가 양산되는 경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앞날을 열어갈 것인가? 이것이 바로 래리 다운즈와 폴 누네스가 그들의 저서 '빅뱅 파괴자, 어떻게 그들은 한순간에 시장을 장악하는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다.

빅뱅 파괴자는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아이폰의 앱으로 나와 전세계를 장악해 버렸던 '앵그리 버드'를 생각해 보라. 비슷하면서 보다 가까운 예로써 '애니팡'을 떠올려도 좋을 것 같다. 이 조그만 카카오톡 연동 앱 게임은 누구나 보았듯이 유명 기업의 상품도 아니었고 별다른 마케팅도 없었지만 오로지 아래로부터의 인기를 통해 국민게임으로 떠오르며 시장을 장악해버렸다. 그것도 아주 단기간에. '빅뱅 파괴자'란 이걸 뜻한다. 짧은 시간에 전면적으로 시장을 장악해 버리는 존재들. 이제는 거대 기업이 아니라 바로 이런 빅뱅 파괴자들이 시장을 주도해 나가는 상황이다.

 이제 생태계가 달라졌다. 급속도로 발달한 정보화 기술이 전혀 다른 생태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빅뱅 파괴자들의 생태계다. 무엇보다도 빅뱅 파괴자들은 이전 기업들과 세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은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다.
 둘째, 그들의 성장은 거침이 없다.
 셋째, 그들은 비용 부담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물론 이들의 이러한 특성을 가져다 준 것은 지금의 정보화 기술이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한 기술은 핵심 기술의 비용이 점점 낮아지게 만들었고 그것은 글로벌한 아웃 소싱과 혁신적인 자금조달 방식으로 연구 개발에 드는 비용이나 광고 비용까지 낮출 수 있게 만들었다. 네트워크의 발달로 원하는 모든 방식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더이상 기존의 규율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더구나 이십년 가까이 지속된 인터넷 기술과 네트워크 분야의 발전 덕분에 소비자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축적이 가능해서 소비자에 대한 어떠한 정보든지 이용 가능하게 됨으로써 이전에 기업이 하듯이 초기 사용자 집단을 만들고 묶고 할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방대한 네트워크 덕분에 소비자로 부터 실시간 반응을 얻을 수 있게 되어 테스트에 따르는 비용도 줄어들게 되었다. 즉 정보화 기술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이점을 빅뱅 파괴자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첫째, 혁신 비용의 감소
둘째, 정보 비용의 감소
셋째, 실험 비용의 감소.

빅뱅 파괴자들은 이 세가지 비용의 감소를 동시에 전면적으로 받을 수 있었던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압도적인 시장 장악력은 바로 이와 같은 이점을 바탕으로 가능했다. 하지만 이러한 빅뱅 파괴자들의 성공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애니팡'처럼 단번에 끝날 수 있다. 즉 빅뱅 파괴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자기들만의 독특한 수명 주기 궤적을 가지고 있는데 저자들은 그것을 '상어 지느러미'라 부른다.


즉 지금의 변화된 생태계는 겨우 적응한 빅뱅 파괴자들 역시 위험 속으로 빠뜨린다. 언제 또 다시 등장한 빅뱅 파괴자에 의해 이제는 자신이 희생당하게 될 지 모른다. 그러므로 정보화 기술은 그들에게 언제나 양 날의 검이다. 성공만큼 위험 역시 그것은 가져다 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오로지 시장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만이 생존을 위한 최적의 방법이다. 카멜레온처럼 얼른 주위 상황 변화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빅뱅 파괴자가 자신의 빅뱅을 지속시키기 위한 유일의 방법이다.

때문에 이런 비유가 가능하다. 지금의 생태계란 공룡이 멸종할 당시의 생태계와 비슷하다고.
빙하기는 급격한 환경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에 몸집이 거대한 공룡들은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그들은 결국 멸종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몸집이 작았던 동물들은 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했고 결국 멸종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현재 전면화된 빅뱅 파괴자들의 생태계는 이와 같다. 자신의 색깔을 유동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업들만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질문에 직면하여 부각되는 것이 바로 현재 빅뱅 파괴자들이 보여주는 기존의 기업과는 다른 특성들이다. 빅뱅 파괴자들은 시장에 있는 다른 기업들을 경쟁자로 보지 않으며 기존의 고객서비스 방식 역시 아예 무시한다. 단적으로 지금까지 경영 기법이 보아왔던 기업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전략과 혁신에 대한 기존의 지식과 방법들은 더이상 유용하지 않다. 한 마디로 유통기한이 도래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유용한 방법들일까? '어떻게 그들은 한순간에 시장을 장악하는가'는 바로 2부에서 이런 방법들을 탐색한다. 탐색은 무엇보다 실제 사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론에다 현실을 끼워맞추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탕으로 이론을 정립해나가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실제 사례를 통해 저자들은 모두 12개의 원칙들을 선별해낸다. 빅뱅을 창출하고 지속시키기 위한 원칙들이다. 이 원칙들을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겠다. 책 날개만 들춰봐도 나오고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이 책은 성공 원칙들을 배운다기 보다는 현재 시장의 생태계가 얼마나 근본적으로 달라졌는지 그것을 체험하는데 더 큰 독서 의의가 있는 것 같다.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 피부로 별로 와닿지 못했던 그것을 저자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다양한 실제 사례들로써 뇌리에 강하게 새기도록 하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읽으면서 시장이 이토록 달라졌구나 하는 것을 새록새록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이러한 생태계에서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그 실감을 바탕으로 이제 비로소 고민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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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와 바나나 테마 소설집
하성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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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우리들은 젖는다. 비에 젖어 목소리를 잃었다. 진짜 언어를 모조리 잃어버린 세상에서 오로지 비만이 사나운 사자의 포효처럼 성을 내고 있다. 하늘이 낮고 무겁다. 그 많던 새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길마다 부서진 빈 둥지들이 가득했다. 누군가 젖은 신문지로 둥지를 만들어 나무에 올려주었지만 세찬 비는 그마저도 모조리 찢어버렸다. 보지마, 기억하지마, 싸우려 들지마. 비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젖은 우리들은 잇달아 올라오는 한기에 어깨를 떨며 그만 받아들일까 고민하고 있었다. 길은 점점 진창이 되고 있었다. 부와 권력을 뽐내는 차들만이 그 곳을 지나갈 수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굉장한 속도로 지나갔다. 마치 그 자체로 매정함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바퀴들은 엄청난 진흙을 우리에게 튀겼다. 더러운 오물들은 마치 양동이에 담아 퍼붓듯 한가득 우리의 얼굴과 몸에 뿌려졌다. 그 진흙으로 우리는 점점 제 모습과 제 마음을 잃어갔다. 어느새 우리는 다같은 진흙 인간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더이상 나홀로 개체가 아닌 하나의 풍경, 배경이었다. 그렇게 되자 무정하게 지나가던 차들이 우리 앞에 멈추기 시작했다. 좋은 양복에 기름기 좔좔 흐르는 얼굴의 인사들이 내려 보기 좋다면 단일의 진흙이 되어버린 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국민'이었다. 진흙은 우리의 입을 막고 뇌도 먹어버렸다. 우리는 더이상 스스로 생각할 수 없었고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제야 비로소 '국민'이 되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누구도 우리에게 우산을 씌워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음을 잘알고 있었다. 어차피 말없는 국민에게 우산은 사치일 것이었다.

문학은 이런 우리에게 우산이 되어줄 수 있을까? 진흙을 닦아주고 우리가 제 모습과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신음이 아니라 비명인 우리의 미처 말이 되지 못한 목소리에 귀기울여줄 수 있을까? 요즘은 그런 마음으로 우리의 문학을 읽는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지금의 젊은 세대의 문학은 과연 어떻게 하고 있을까? 그런 의문으로 '키스와 바나나'를 읽는다. 언젠가 누군가에 대한 기억들로 짜인 태피스트리를. 비가 온다. 세찬 비가 온다. 오로지 하나의 소리만 가득한 세상이다. 사라져버린 새들, 잃어버린 말들과 마음들. 어디선가 둥지를 잃고 홀로 떠도는 그들을 위해 읽는다. 언젠가는 그 말과 마음에 들러붙은 진흙들이 지워지길 바라며 읽는다. 견뎌가는 것. 이것만이 과연 최선일까? 생각하며 읽는다. 질문은 많지만 대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오늘, 그 질문들마저 포기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읽는다. 그렇게 읽는다. 함께 비맞으며 온기를 찾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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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론 이펙트 - 정의로운 인간과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0 그레이트 이펙트 8
사이먼 블랙번 지음, 윤희기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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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서적에서 나오고 있는 '10 그레이트 이펙트' 시리즈라는 게 있다. 역사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10권의 책을 선정하여 말 그대로 오늘날까지 그것이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가졌는 지 살펴보는 시리즈인데 '국가론 이펙트'는 그 중 여덟 번째 책이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플라톤의 대표적인 책 '국가론'을 다루고 있다. 정치철학 방면에 있어서 '국가론'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최초로 '정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한 책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여기서 당시 정세적으로 혼돈 상황에 있었던 아테네를 투영하여 보다 굳건한 정치체제의 설립을 사유한다. 현명한 1인의 철인을 중심으로 한 각 자의 덕목에 맞게 주어진 각 자의 직분에 저마다 최선을 다하며 유기적으로 짜여진 체제. 이것이 플라톤이 바라던 국가의 이상적 모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 모델은 늘 독재정치와 전체주의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원래 플라톤은 귀족주의자에다 엘리트주의자로 그만큼 민주주의를 우매한 대중들에 의한 정치라고 부정적으로 여겼던 그이므로 그러한 위험은 더욱 크다고 하겠다. 아니나 다를까 세계 2차 대전을 일으켰던 히틀러의 나치는 이것을 자신들 체제의 정당성 근거로 내세우기도 했다. 때문에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쓴 칼 포퍼는 그 책에서 플라톤의 국가론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플라톤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큰만큼 명암도 뚜렷하게 존재한다.  영국의 유명한 사회철학자이기도 한 사이먼 블랙번은 원래 자신은 플라톤에 대해 회의적이었음을 밝히면서 '국가론'이 가진 명암을 조금의 가감도 없이 객관적으로 서술해 놓는다. 그런 이유로 국가론이 가진 가치와 한계를 살피는 데 가장 좋은 안내서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이 책을 그저 국가론에 대한 해설서라고만 여기면 곤란하다. 사이먼 블랙번은 플라톤이 그 책에서 무엇을 말했나를 중시하기 보다는 오늘에 와서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행한 사유 실험이 어떤 의미가 있을 지에 더욱 천착하기 때문이다. 사이먼 블랙번은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했던 가장 중요한 사유 실험은 어떤 측면에서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루었던 사유 실험은 실제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되었는데 그건 투기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 기록된 아테네의 밀로스 침략이라고 한다. 당시 스파르타로부터 위협당하고 있던 아테네는 다른 속국들이 아테네로부터 이탈하여 힘을 감소시키지 않도록 키클라데스 제도 서쪽에 있는 조그만 섬 국가인 밀로스를 침략한다. '국가론'이 나오기 40년 전의 일로 당시 아테네는 38척의 전함과 1만 명의 병사를 밀로스에게 보냈지만 밀로스에선 고작 500명의 병사가 이에 맞서야 했다. 그만큼 힘의 격차가 있었다. 밀로스는 도덕적 견지에서 이같은 강자가 약자를 함부로 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들어 자비를 베풀고 물러가 줄 것을 부탁한다. 늘 명예와 정의를 외쳐왔던 아테네였기에 그리했던 것이지만 아테네는 거부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이익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의 관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좀 추상적인 차원에서 법을 말하자면 거기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자연법이고 다른 하나는 '노모스'다. 노모스는 흔히 규범이라 번역되는 것으로 어떤 공동체에서만 통용되는 법을 말한다. 이런 이유로 대체로 관습법으로 많이 번역된다. 반면 자연법은 그러한 공동체의 한계를 벗어나 인류 보편의 이성에 따른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세상 어디에서나 항구적인 모습으로 적용되는 '정의' 같은 것 말이다. 아테네와 밀로스 사이의 논쟁은 그러니까 자연법과 노모스 즉 관습법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밀로스는 자연법을 들어 아테네의 침략을 비난했지만 아테네는 자기들만의 노모스를 들어 침략을 정당화한다.


사이먼 블랙번에 따르면 플라톤의 국가론은 이같은 노모스의 한계를 벗어나는 데 있다고 한다. 문제는 노모스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다. 플라톤은 이것을 내면화의 과정이라 본다. 타인의 시선이 없었다면 노모스가 내부에 자리잡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거다. 이러한 내면화된 노모스를 극복하고 어떻게 하면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뛰어 넘어 무사공평한 입장에서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비중있게 벌인 사유 실험의 중요한 목표였다고 사이먼 블랙번은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플라톤의 문제 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단적인 예로 세월호의 참사가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플라톤의 철인은 바로 그러한 무사공평의 견지에서 철두철미하게 이성에 기반하여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자를 뜻한다. 바로 그러한 철인 정치로 나아가기 위해 플라톤은 초반에 노모스의 가장 강력한 대변자인 트라시마코스와 글라우콘을 논쟁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트리시마코스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글라우콘은 '기게스의 반지'를 들어 우리가 도덕을 지키는 본질적인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의 이들의 관점을 논박하면서 좀 더 자연법적인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자원들을 모아간다.


지금까지 국가론은 어디까지나 정체에 대한 철학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사이먼 블랙번은 여기에 전혀 새로운 빛을 던져주었다.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강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습속적인 것'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사유의 참조로서 '국가론'을 가져온 것이다.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이 어리석은 자와 동의어가 되는 세상이다.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익에 야합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치부되는 세상이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에 불과하고 기게스의 반지가 없더라도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파렴치한 발언을 일삼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자들이 사회의 윗 부분을 차지하고 총리까지 넘보고 있다. 개탄을 후크송의 후렴구처럼 반복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 어쩌면 오늘의 절망, 오늘의 탄식은 나도 일상에서 늘 저지르고 있는 타협에 근본적으로 배태되어 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 타협이나 타산을 늘 방관한다면 나 역시 언젠가 오늘의 괴물들처럼 될 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사는 게 옳게 사는 것인가? 지금의 세상은 이러한 질문을 더욱 근본적으로 요청하는 것 같다. IMF는 우리에게 그저 현실적 이익을 쫓는 것만이 진리라고 여기게 했지만 결국 그것이 가져오는 건 지옥 밖에 없음을 우리는 지금 여기서 똑똑히 보고 있는 것 같다. 그 지옥 속에서 무의미한 화염으로 사라지지 않기 위하여 사이먼 블랙번을 경유하여 바라본 '국가론'에서의 물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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