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론 이펙트 - 정의로운 인간과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0 그레이트 이펙트 8
사이먼 블랙번 지음, 윤희기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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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종서적에서 나오고 있는 '10 그레이트 이펙트' 시리즈라는 게 있다. 역사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10권의 책을 선정하여 말 그대로 오늘날까지 그것이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가졌는 지 살펴보는 시리즈인데 '국가론 이펙트'는 그 중 여덟 번째 책이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플라톤의 대표적인 책 '국가론'을 다루고 있다. 정치철학 방면에 있어서 '국가론'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최초로 '정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한 책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여기서 당시 정세적으로 혼돈 상황에 있었던 아테네를 투영하여 보다 굳건한 정치체제의 설립을 사유한다. 현명한 1인의 철인을 중심으로 한 각 자의 덕목에 맞게 주어진 각 자의 직분에 저마다 최선을 다하며 유기적으로 짜여진 체제. 이것이 플라톤이 바라던 국가의 이상적 모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 모델은 늘 독재정치와 전체주의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원래 플라톤은 귀족주의자에다 엘리트주의자로 그만큼 민주주의를 우매한 대중들에 의한 정치라고 부정적으로 여겼던 그이므로 그러한 위험은 더욱 크다고 하겠다. 아니나 다를까 세계 2차 대전을 일으켰던 히틀러의 나치는 이것을 자신들 체제의 정당성 근거로 내세우기도 했다. 때문에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쓴 칼 포퍼는 그 책에서 플라톤의 국가론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플라톤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큰만큼 명암도 뚜렷하게 존재한다.  영국의 유명한 사회철학자이기도 한 사이먼 블랙번은 원래 자신은 플라톤에 대해 회의적이었음을 밝히면서 '국가론'이 가진 명암을 조금의 가감도 없이 객관적으로 서술해 놓는다. 그런 이유로 국가론이 가진 가치와 한계를 살피는 데 가장 좋은 안내서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이 책을 그저 국가론에 대한 해설서라고만 여기면 곤란하다. 사이먼 블랙번은 플라톤이 그 책에서 무엇을 말했나를 중시하기 보다는 오늘에 와서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행한 사유 실험이 어떤 의미가 있을 지에 더욱 천착하기 때문이다. 사이먼 블랙번은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했던 가장 중요한 사유 실험은 어떤 측면에서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루었던 사유 실험은 실제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되었는데 그건 투기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 기록된 아테네의 밀로스 침략이라고 한다. 당시 스파르타로부터 위협당하고 있던 아테네는 다른 속국들이 아테네로부터 이탈하여 힘을 감소시키지 않도록 키클라데스 제도 서쪽에 있는 조그만 섬 국가인 밀로스를 침략한다. '국가론'이 나오기 40년 전의 일로 당시 아테네는 38척의 전함과 1만 명의 병사를 밀로스에게 보냈지만 밀로스에선 고작 500명의 병사가 이에 맞서야 했다. 그만큼 힘의 격차가 있었다. 밀로스는 도덕적 견지에서 이같은 강자가 약자를 함부로 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들어 자비를 베풀고 물러가 줄 것을 부탁한다. 늘 명예와 정의를 외쳐왔던 아테네였기에 그리했던 것이지만 아테네는 거부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이익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의 관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좀 추상적인 차원에서 법을 말하자면 거기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자연법이고 다른 하나는 '노모스'다. 노모스는 흔히 규범이라 번역되는 것으로 어떤 공동체에서만 통용되는 법을 말한다. 이런 이유로 대체로 관습법으로 많이 번역된다. 반면 자연법은 그러한 공동체의 한계를 벗어나 인류 보편의 이성에 따른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세상 어디에서나 항구적인 모습으로 적용되는 '정의' 같은 것 말이다. 아테네와 밀로스 사이의 논쟁은 그러니까 자연법과 노모스 즉 관습법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밀로스는 자연법을 들어 아테네의 침략을 비난했지만 아테네는 자기들만의 노모스를 들어 침략을 정당화한다.


사이먼 블랙번에 따르면 플라톤의 국가론은 이같은 노모스의 한계를 벗어나는 데 있다고 한다. 문제는 노모스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다. 플라톤은 이것을 내면화의 과정이라 본다. 타인의 시선이 없었다면 노모스가 내부에 자리잡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거다. 이러한 내면화된 노모스를 극복하고 어떻게 하면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뛰어 넘어 무사공평한 입장에서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비중있게 벌인 사유 실험의 중요한 목표였다고 사이먼 블랙번은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플라톤의 문제 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단적인 예로 세월호의 참사가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플라톤의 철인은 바로 그러한 무사공평의 견지에서 철두철미하게 이성에 기반하여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자를 뜻한다. 바로 그러한 철인 정치로 나아가기 위해 플라톤은 초반에 노모스의 가장 강력한 대변자인 트라시마코스와 글라우콘을 논쟁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트리시마코스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글라우콘은 '기게스의 반지'를 들어 우리가 도덕을 지키는 본질적인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의 이들의 관점을 논박하면서 좀 더 자연법적인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자원들을 모아간다.


지금까지 국가론은 어디까지나 정체에 대한 철학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사이먼 블랙번은 여기에 전혀 새로운 빛을 던져주었다.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강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습속적인 것'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사유의 참조로서 '국가론'을 가져온 것이다.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이 어리석은 자와 동의어가 되는 세상이다.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익에 야합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치부되는 세상이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에 불과하고 기게스의 반지가 없더라도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파렴치한 발언을 일삼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자들이 사회의 윗 부분을 차지하고 총리까지 넘보고 있다. 개탄을 후크송의 후렴구처럼 반복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 어쩌면 오늘의 절망, 오늘의 탄식은 나도 일상에서 늘 저지르고 있는 타협에 근본적으로 배태되어 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 타협이나 타산을 늘 방관한다면 나 역시 언젠가 오늘의 괴물들처럼 될 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사는 게 옳게 사는 것인가? 지금의 세상은 이러한 질문을 더욱 근본적으로 요청하는 것 같다. IMF는 우리에게 그저 현실적 이익을 쫓는 것만이 진리라고 여기게 했지만 결국 그것이 가져오는 건 지옥 밖에 없음을 우리는 지금 여기서 똑똑히 보고 있는 것 같다. 그 지옥 속에서 무의미한 화염으로 사라지지 않기 위하여 사이먼 블랙번을 경유하여 바라본 '국가론'에서의 물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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