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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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관한 6개의 단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소설의 제목은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다. 맞다. 모차르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로 그 곡, '밤의 소야곡'이 제목인 것이다. 이사카 고타로 최초의 연애 소설집이라 한층 더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이 책의 제목이 하필이면 바로 그것이 된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것이 사랑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의미는 소설에서 한 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해진다.


 "저번에 말이야, 애를 재우고 있는데 바람 소리 같은 게 들리는 거야. 시끄러운 소리는 아니고, 조용했는데 계속 들리는 거야."

 "무슨 얘기야?"

 "아까 했던 얘기 말인데, 결국 만남이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게 뭔데?"

 "그때는 뭔지 몰라서, 그냥 바람 소리인가 생각했지만, 나중에 깨닫게 되는 거야. 아, 그러고 보니 그게 계기였구나, 하고. 이거다, 이게 만남이다, 딱 그 순간에 느끼는 게 아니라.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거."

 "작은 밤의 음악처럼?"

 "맞아, 그거." (p. 35)


 그러나 이것이 꼭 사랑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사실 이 책을 연애소설집이라고 하고 있으나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보다 훨씬 더 넓어보인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가 보다 근본적인 면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인생에 대한 태도 같은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인생의 의미란 언제나 그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뒤늦게 발견되는 것이니 순간 순간에 너무 좌우되어 일희일비 하지말자가 이 소설에 실어 보내는 작가의 진심인 것이다.



 이러한 태도의 필요성은 첫 단편 '아이네 클라이네'부터 나타난다. 그 단편의 주인공 사토는 길거리에서 설문 조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사토의 회사는 원래 인터넷 조사가 전문이었다. 그런 회사의 직원인 사토가 회사가 결코 하지 않았던 설문 조사를 하게 된 것은 후지마란 직장 선배가 아내와 뜻하지 않게 별거하는 바람에 성질이 나 그만 자신의 책상을 발로 차는 바람에 마침 사토가 그 때 들고 있었던 커피를 서버에 엎질렀고 그 때문에 데이터가 몽땅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후지마 선배는 그 일로 휴직을 하고 커피를 엎지른 죄 아닌 죄로 그는 그만 이렇게 결코 자신이 하리라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인 설문 조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삶은 이렇다. 뜻하지 않은 때에 전혀 예측할 수 없던 곳에서 타격을 가한다. 마치 나심 하메드가 날리는 요상한 펀치처럼.


 "오언은 이따끔 요상한 펀치를 날리거든. 경험이 어디까지 통할지 모르겠네."

 "요상한 펀치?"

 "허리를 뒤로 젖히거나 뒤로 물러나면서 묵직한 펀치를 날리거든. 예전에 일세를 풍미했던 나심 하메드처럼."

 "그게 누군데? 나흐트무지크?"

 "그건 누군데?" (p. 306)


 여기서 작가는 왜 나심 하메드의 이름을 마치 나흐트무지크처럼 들렸다고 쓴 것일까? 바로 그것이 제목에 담긴 의미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 나심 하메드의 특기였던 어디서 올지 모르는 요상한 펀치처럼, 인생의 어떤 순간도 정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는 의미로 말이다. 그랬기에 6개의 단편엔 모두 그런 순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토록 미래가 기대되었던 청순 미녀가 왜 가장 한심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남편을 택해 스스로 퇴색해 버렸는지, 또 원치 않았던 만남을 그저 소개해 준 이에 대한 예의로 계속하고 있었을 뿐인데 오히려 그것이 삶의 단 하나의 사랑을 가져다 준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경멸해마지 않았던 아버지가 뜻하지 않았던 우연의 인연으로 달리 보게 된다든지 거기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많이 괴롭혔던 동창을 우연히 만나 복수를 할지 말지 기로에 섰는데 자신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복수가 이뤄진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단언할 수 없었던 순간들은 그들의 10년 후를 다루는 마지막 단편인 '나흐트무지크'에 가서야 비로소 전모가 드러난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순간의 펀치가 시합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권투 선수이자 세계 챔피언이었던 오노는 성공과 실패를 오르락 내리락 했던 자신의 삶을 마치 단번에 정리라도 하는 것처럼 이렇게 고백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무엇이 전환점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긴 하죠."(p. 321)


 바로 이 말에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되도록 삶을 여유롭게 대하자는 이사카 고타로의 조언이 말이다. 그러므로 정말 이 소설이 그의 연애소설이라고 한다면 그 연애란 바로 자신의 삶과의 연애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은 그 연애에 있어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사랑에 서툰 아이처럼 조급해하지도 말고, 불안해하지도 말며 그저 사랑하는 모든 순간에 충실하라고 말이다. 아마도 그가 이렇게 조언하는 것은 현재 일본이 처한 상황도 크게 한 몫 했을 것 같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로 일본인은 날로 극우가 되어가는 아베 정권 아래에서 극심한 걱정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작가는 이 소설로 조금은 걱정과 불안을 잊고 삶을 껴안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조언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무작정 긍정할 경우 아베로 인해 더 크게 돌아올 위험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긍정과 여유가 문제가 있는 것에 대한 무관심과 무사유가 되도록 해서는 안되고 그와는 반대로 더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로 나아가게 만들 필요가 있다. 바로 거기에 대해 작가는 타자의 삶에 보다 많은 관심이란 방법을 내세우는 것 같다. 6개의 단편들이 모두 다른 이들의 삶으로 채워지고 타자의 입장에서 그런 삶에 관심을 갖고 호기심을 풀어 가는 것으로 이뤄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으로 보인다. 흔한 바람 소리가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가 되었던 것이 들었던 이의 깊은 관심과 반복된 생각 때문이었듯이 말이다.


 재밌는 소설이었다. 이사카 고타로의 이야기 구성하는 솜씨가 꽤나 능숙해졌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네번 째 단편 '메이크업'이 그랬다. 현재와 과거, 대화와 기억을 교차시키는 기교가 뛰어났다. 그런데 제목이 재밌다. 이중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단편 주인공이 화장품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기에 '메이크업'이 화장을 뜻하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때 자신을 괴롭히는 이에게 복수를 할까 말까 하는 이야기의 측면에서 보자면 '메이크업'이 복수한다는 의미에서 보상을 뜻하기도 하니까 말이다.그러고 보니 단편의 제목이 모두 이중의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이 역시 모든 삶엔 우리가 모르는 이면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어떤 순간이 삶의 전환점이 될지 모른다는 주제를 형상화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작가가 공들인 티가 난다. 그래서 더 만족스럽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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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닉맨 - 인간을 공학하다
임창환 지음 / Mid(엠아이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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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얼마 전 이런 기사가 있었다.

 미국 팜스프링스에서 아마존 기업 후원으로 마스 2017 콘퍼런스가 열렸다. 거기에 우리나라 한국미래기술이 직접 개발한 로봇인 '메소드-2'를 가지고 참가했는데 아마존 CEO인 베조스가 직접 탑승해 보고 아주 만족한 뒤 '에일리언 영화에 나오는 시그니 위버가 된 것 같았다'라는 소감을 트위터에 올렸다는 것이었다. 길이 4미터에 2족 보행이 가능하며 사람이 탑승하여 팔과 다리를 조종할 수 있는 '메소드-2'는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영화 '에일리언2'에 나와서 관객들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심어준 '파워로더'와 유사해 보였다. 어릴 때 극장에서 '에일리언 2'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메소드-2'의 모습에서 막연히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미 현실로 성큼 와 버렸음을 느꼈을 것이다.


 '메소드-2' 의 모습


영화 '에일리언 2'에 나왔던 '파워로더'


'꿈은 이뤄진다'더니, 예전엔 정말 공상 속 존재로만 생각했던 것이 어느새 현실로 착착 이뤄져가고 있다. 현재 한양대 생체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임창환의 '바이오닉맨'은 바로 그런 실상을 물씬 느끼게 만드는 책이다. '바이오닉맨'이란 한 마디로 기계와 인체의 융합이라 할 만하다. 의족이나 의수처럼 신체적 결함을 기계로 보완하거나 인체가 가지는 능력의 한계를 기계를 통해 증강하는 것 모두를 통칭하여 '바이오닉맨'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런 일을 주로 하는 것이 바로 '생체공학'이라 할 수 있을 터인데 '바이오닉맨'은 쉽게 말해 현재 생체공학이 다양한 분야에서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상세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책은 모두 네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거칠게 나누어 처음 1장과 2장은 인체의 운동 기관과 감각 기관을 보완 혹은 대체하는 생체공학의 역사와 현실을 다룬다고 한다면, 3장과 4장은 수명이나 뇌의 능력 혹은 불사등 인간이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건적인 한계를 생체공학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확장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현재 생체 공학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에 대해선 간간이 나오는 짧은 신문 기사로 밖에는 접해보지 못하여 그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하기가 참 어려웠는데 이 책은 오늘날 생체 공학이 활동하는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어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어 특히 반가웠다. 비록 '에일리언 2'의 파워로더는 현실화 되었지만 현재 생체공학 기술로 옛날 TV 드라마에 나왔던 '6백만불 사나이'나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는 마블 슈퍼 히어로 '아이언 맨' 혹은 영화 '스파이더 맨 2'에서 숙적으로 나왔던 '닥터 옥토퍼스'의 기계 촉수 같은 것은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무거운 다리의 무게 때문이다. 그 다리를 들어올리고 또 드라마나 영화처럼 빠르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선 모터의 동력이 필요한데 그 정도 동력을 낼 수 있는 모터를 다리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드는 게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인체의 어떤 부분을 기계로 대체하여 능력을 증강시키기 보다는 앞서 말한 '메소드-2'처럼 기계를 마치 사람에게 옷처럼 입혀 능력을 키우는 로봇이 활발히 개발 중이다. 그것을 전문 용어로는 '외골격 로봇'이라고 한다. 처음 이 외골격 로봇은 군사 분야에서 활발히 개발되었지만 최근엔 하지 마비 장애인이나 뇌졸중 환자 재활을 위해서도 이 외골격 로봇이 적극 응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하지 마비 장애인이나 뇌졸증 환자들은 자기 다리를 가지고 있다. 그럼,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선 바이오닉 기술이 어떻게 응용되고 있을까? 그렇게 1장의 2부, '바이오닉 다리'와 3부 '바이오닉 팔'은 바이오닉 기술이 적용된 의족과 의수를 다루는데, 다리 보다 팔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바이오닉 다리는 무릎이나 발목처럼 비교적 적은 수의 관절만 적절히 조절해도 '잘 걷기'라는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지만(p. 56) 29개의 뼈와 29개의 관절, 34개의 근육, 123개의 인대로 구성된 손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동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바이오닉 팔은 1960년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하필 이 시기에 그랬던 것은 다름 아닌 독일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 때문이었다. 바로 인류 의학 역사상 최악의 재앙 중 하나라는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다. 1950년대 후반, 독일에서 만든 이 약은 임산부의 입덧을 방지한다고 해서 많은 임산부들이 복용했는데 그 임산부들이 약의 부작용으로 그만 사지가 없거나 극단적으로 짧은 아이들을 출산하고 만 것이다. 이 수가 전 세계 46개국에 무려 1만명에 달했다. '바이오닉 팔'은 바로 이 같은 아이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개발되었다. 이렇게 실제 의료용으로 개발되는 바이오닉 기술들은 큰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애인과 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시작된 경우가 많았다.


 이런 기업들은 벌어들인 많은 돈을 인간을 보다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아낌없이 재투자한다. 이런 점이 바로 반도체나 휴대전화를 개발하는 일반 전자회사와 생체공학 의료 기기 회사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p. 67)


 이야기가 곁가지로 나가는 것 같지만 이 책에서 가장 놀랐던 부분이었다는 걸 밝혀두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과학이 아주 차갑고 비인간적이라는 시선이 강했다. 무엇보다 현재 과학 기술이 보여주는 모습이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재 생체 공학이 다름아닌 이런 아프고 약한 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시작되었다니, 내가 그동안 과학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게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확실히 그 어떤 분야든 뭐라 단정을 짓기 전에 먼저 거기에 대해 제대로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내겐 '바이오닉 맨'을 읽은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한편, 바이오닉 팔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역시 감각과 촉각이다. 인간의 손처럼 뜨겁거나 차가운 감각 혹은 거칠거나 부드러운 촉각을 바이오닉 팔로 느끼게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한다. 사람의 피부라는 것이 제곱 1cm 안에 자리 잡은 감각 신경이 무려 수 천개에 이를만큼 아주 정교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현재 기술로 이만큼 정밀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 거기에 또 한 가지 난제가 더 남아 있다. 우리의 뇌가 어떤 식으로 감각을 다양하게 인식하는 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만 밝혀지면 바이오닉 기술은 혁신적으로 발전할 것이라 기대되는데 이처럼 생체 공학 분야에 있어 하나의 기술은 그것만으로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다른 기술과 연동되었다. 어쩌면 우리 인체가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대체하고 보완할 바이오닉 기술로써는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팔이나 다리, 혹은 심장이나 장기 등 인체의 조직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을 흔히 '사이보그'라 일컫는다. 2장은 바로 이런 사이보그에 대한 것으로 심장이나 눈 그리고 귀의 이식에 있어 생체 공학 기술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소상히 밝혀주고 있다. 재밌는 사실은 '600만불 사나이'만큼이나 유명한 '소머즈' 역시 실제로는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소머즈는 한 쪽 귀만 '바이오닉 귀'로 대체되어 보통 인간의 수 백배나 되는 청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선 이렇게 한쪽 귀만 바꿔서는 그렇게 듣는 것이 불가능하단다. 인간이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귀가 소리가 나는 방향과 거리를 알 수 있도록 '음원 국지화'를 해야 하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두 귀를 다 사용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재밌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인간이 듣는 방식에 관한 것인데, 알고 보니 여기엔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보통의 경우처럼 음파 진동이 없어도 두개골의 진동을 통해 듣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바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때가 그러한데, 그 때 우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성대의 떨림이 두개골로 직접 전달되어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바로 이 때문에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평소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개골이 저음을 잘 전달하기에 골전도를 통해 들으면 자신의 목소리가 실제보다 좀 더 낮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책엔 생체 공학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의족과 의수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친 16세기의 외과 의사 앙브루아즈 파레를 비롯 사람의 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 또한 담겨 있다. 그래서 딱히 생체 공학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와 관련하여 혹시 수험생이라면 '지능 증폭'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이 좋겠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경가소성'이고 다른 하나는 '서파 수면'이다. '신경 가소성'이란 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뇌의 기능이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2006년, 영국에서 런던 택시 운전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실제 증명된 것으로 거미줄처럼 얽힌 런던 도로망과 지명을 모두 외워야만 하는 런던 택시 운전사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장기 기억과 공간 지각을 관장하는 해마 영역의 회백질이 훨씬 더 두꺼웠다고 한다. 이는 생활 습관의 개선이나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얼마든지 뇌를 후천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즉 뇌는 쓰면 쓸수록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머리 탓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두 번째, '서파 수면'은 독일 튀빙겐 대의 얀 보른 교수가 발표한 것으로, 사람이 깊은 잠에 빠지면 느린 뇌파가 발생하는 서파 수면에 이르게 되는데 그 때 깨어 있을 동안의 기억들이 장기 기억으로 보존된다고 한다. 즉 외운 것을 되도록 오래 까먹지 않고 싶으면 깊은 수면을 취하라는 것이다. 바이오닉 기술은 뇌를 향상시키는 쪽에도 응용되는데 주로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기도 한다. 나아가 미래엔 '공각기동대'에서 두뇌에 직접 단말기를 연결했듯이 뇌의 특정 부위에 마이크로칩을 삽입하여 두뇌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가능해지는데 분명 여기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타고난 사람의 신체적 능력이 이제 가지고 있는 자본에 따라 차등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이처럼 저자는 생체 공학이 가져온 어두운 면도 솔직하게 인정한다. 돈이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생체 공학 기술의 특성 상 이 기술의 발달이 또 다른 차별을 가져 올 위험 역시 큰 것이다. 이런 부작용이 생겨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 또한 생체 공학 기술 발달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민이라고 하겠다. 제도는 그렇다치고 공학자나 사업가나 생체 공학이 어떤 동기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는지 생각한다면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바로 생체 공학이 아프고 약한 자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생체 공학 중심엔 인간이 있었다. 막스 베버가 말했듯 과학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다. 그 기술이 인간에게 악마가 되었던 때는 언제나 기술의 중심에 인간이 부재했을 때였다. 일차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시작되었고 오로지 그것을 지향하며 발전해 온 생체 공학이 원래 자신의 고향만 잘 기억한다면 생체 공학의 미래에 대해 조금은 낙관적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끝이 이상해졌는데, 아무튼 여기서 총평 하자면, 현재 4차 산업 혁명이란 말이 유행 중이다. 생체 공학은 그 4차 산업 혁명에 있어 핵심 분야 중 하나라고 알고 있다. 혹시 그 때문에 관심이 생겨 바이오닉 기술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바이오닉 맨'은 좋은 안내자가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공학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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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4-16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뇌에 마이크로칩 넣는 방식은 앨런 머스크가 고려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공각기동대처럼 군사용으로 시범적으로 써보려 한다는데...이 정도까지 말이 나왔다면 상용화할 기술이 나왔다고 봐야겠죠.

ICE-9 2017-04-16 14:18   좋아요 0 | URL
‘스텐트로드‘라고 해서 두개골을 열지 않고도 그런 게 가능하도록 만드는 기술까지 개발되었더군요. 예전 닥터 후의 한 에피소드에서 그런 것들이 상용된 세상을 그린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이면에 세뇌 프로그램이 있어 사용자 모두를 노예로 만들어 지구를 지배하려는 외계인의 음모가 있었다는 게 기억나네요.^^
어떤 기술이든 어둔 그늘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람 중시가 필요한 것 같아요^^

2017-04-17 0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8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랑스 시노그라퍼 - 1975-2015 공연.영화.전시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들
뤼크 부크리스 외 지음, 권현정 옮김 / 미술문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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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흔히 잊고 있는 것 하나는 연극 역시 영화와 마찬가지로 시각 예술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연극이란 무대에서 보는 것은 배우와 연기만은 아니다. 그들이 말하과 움직이는 공간 역시 우리가 보는 것 중 하나다. 그들을 둘러싼 소품들, 장식들, 벽과 창문들 혹은 거리들 모두가 연극을 보는 우리의 눈으로 들어온다. 무대 공간은 그러나 우리 시야에서 쉽게 사라진다. 우리의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배우의 연기와 대사에만 머물 뿐, 실은 그것과 일체가 되어 드마라를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 의상이나 공간에는 그저 조연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잘 주목하지 않는 것이다. 시노그라퍼는 그렇게 우리 시야에서 쉽게 사라지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가리킨다. 연출가를 도와 무대 장치를 만들고 무대 의상을 디자인하는 사람 전부를 전문 용어로 시노그라퍼라 부른다. 20세기 초만 해도 무대 장식가로 불렸던 그들은 1960년대 말부터 프랑스에서 의상이나 무대 공간의 연출이 연극 연출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면서 그들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의미로 '시노그라퍼'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드디어 연극 또한 영화만큼 시각적 종합 예술의 영역이라는 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시노그라퍼'라는 말이 프랑스에서 처음 생겨난 것처럼, 프랑스는 그동안 시노그라퍼 영역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70년대 공공연하게 '무대 혁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대 연출이 연극 연출 못지 않게 독자적인 예술 가치를 얻게 된 것은 프랑스의 시노그라퍼들 덕분이었다. 현재 그로노블-알프스 대 연극학과 명예 교수로 시노그라퍼 유럽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뤼크 부크리스를 비롯한 네 명의 시노그라퍼 전문가가 공저한 '프랑스 시노그라퍼'는 오늘의 시노그라퍼를 있게 한 프랑스 시노그라퍼의 50년 역사와 57명의 시노그라퍼의 예술을 담는다. 책은 시기에 따라 10년 단위로 하여 모두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처음은 무대 장식에서 시노그라퍼로 넘어가는, 그렇게 시노그라퍼 예술이 형성되는 1975년에서 1985년 까지의 개척기이고, 다음은 시노그라퍼 예술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는 1985년에서 1995년 까지의 시기이며 세 번째는 1995년에서 2005년 까지로 시노그라퍼 예술이 독자적 영역으로 단단히 뿌리내리는 시기이고 마지막은 2005년에서 2015년까지 새로운 상황에서 시노그라퍼 예술을 또 다시 새로운 예술로 도약시키는 시기로 1970년대에 태어난 차세대 시노그라퍼들을 다룬다. 한 마디로 시노그라퍼 역사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태동에서 또 다른 단계로의 진입까지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책은 인물 중심이다. 앞서도 말했듯 모두 57명의 시노그라퍼를 각 시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인물마다 그들의 대표작 무대를 중심으로 간결하게 설명하는 형식이다.


  말하자면, 이런 형식. 사진은 1943년생, 프랑스의 시노그라퍼 장기 르카에 대한 부분이다. 사진 속 무대 연출은 유명한 연극 연출가인 피터 브룩의 마하바라타 공연 장면이다. 1987년, 아비뇽 축제 때 상연된 것으로 무대 연출을 맡은 장기 르카는 채석장에다 무대를 만들었다. 마하바라타 연극 러닝 타임은 무려 12시간. 답답한 실내 공연이라면 인내심을 갖고 몰두하기가 힘들다. 그런 조건까지 감안하여 자연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에다 무대를 마련한 것이다. 아예 연극 진행을 자연의 진행과 일치시키기도 했다. 관객의 뒤에서 태양이 떠올라 관객 앞에서 태양이 지도록 했으며 연기 방향 또한 태양의 방향에 따라 결정했다. 출입구 또한 바람의 방향에 따라 정해졌다. 한 마디로 자연과 일체가 된 무대였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이것만 봐도 시노그라퍼가 왜 독자적인 예술 영역으로 인정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 때 참여한 관객에겐 분명 남다른 경험이었으리라.


 1942년, 아테네 생 시노그라퍼 클로에 오볼렌스키의 작품들. 피터 브룩은 '마하바라타'에 이어 다시 한 번 채석장의 무대 위에 연극을 올렸는데 그 때 무대 연출을 맡은 사람이 바로 클로에 오볼렌스키다. 작품은 바로 유명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태풍'. 원래 그리스에서 연극을 했던 그는 특히 그리스 신화의 무대를 연출하는데 남다른 재능을 보였는데 사진의 '디도와 에네아스'도 그 중 하나다. 이것은 영국의 작곡가 헨리 퍼셀이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각색한 오페라로 오볼렌스키는 퍼셀이 기숙학교 소년 소녀들을 위해 작곡했다고 전제하고 거기에 따라 무대를 만들었다. 무대 앞에 장식된 쇠시리와 꽃줄이 이채롭다. 양 쪽 사진을 비교해 보면 오볼렌스키는 원과 정사각형을 바탕으로 한 원초적인 기하학적 구성을 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화가 가지고 있는 아르케타입, 즉 원형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오볼렌스키는 극의 진행에 조명의 변화를 잘 이용하는 시노그라퍼인데, 그 효과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1953년, 튀니지 생 시노그라퍼 아고스티노 파스의 작품들이다. 보는 방향에서 왼쪽은 장 주네의 '하녀들'의 무대이고, 오른쪽은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위한 무대이다. 프랑스의 변방인 튀니지 출신이라 그런지 무대 연출에 있어서도 이국적인 것을 적극 도입하는 게 그의 스타일인 것 같다. '하녀들'은 일본 공간 양식을 차용했고 '아이다'에선 중국의 그림자 인형극 양식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서양의 내용을 동양의 그릇으로 담는다. 그럴 때 자연스레 일어나는 긴장과 동요 그리고 융합을 관객에게 주려는 듯하다.


 1943년, 아르헨티나 생 시노그라퍼 리샤르 페두지의 작품들. 무대가 정말 이채롭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무대만 보고는 이것이 무엇을 위한 무대인지 얼른 짚어내기가 힘들 것이다. 역시 보는 방향에서 왼쪽의 무대는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햄릿'을 위한 것이고 오른쪽 무대는 '전쟁 레퀴엠'으로 유명한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이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으로 만든 오페라를 위한 것이다. 과연 이런 무대에서 어떻게 연극과 오페라가 연출될 지, 거기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도 연극과 오페라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게 만든다. 직접 보면 분명 이제까지 자신이 알던 것과 전혀 다른 낯선 '햄릿'과 '나사의 회전'의 세계로 인도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런 것이 바로 시노그라퍼의 능력이 아닐지. 익숙한 것도 낯선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이면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 이렇게 독특한 세계를 구체적으로 구현해 내기에 시노그라퍼들의 작업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듯하다.


컬러 사진 도판이 그들의 무대 연출에 대한 이해를 돕고 짤막하게 인용된 작가의 육성과 저자들의 설명이 거기에 가미된 작가의 철학을 헤아리게 만든다. 시노그라퍼라는 전문 영역에 대한 책이지만 말이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무난하게 이해되는 수준이다. 구체적 무대 공간을 다루지만 그것이 바탕이 된 철학은 추상적인 것이므로 어쩔 수 없이 설명이 모호할 수 있는데 보통의 예술서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렇게 난해하지 않게 다가오리라 생각된다. 예전부터 무대 연출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에겐 더 할 나위 없는 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권해주고 싶은 이들은 이제 막 시노그라퍼의 존재를 알고 여기에 흥미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 뒤부터 연극이든, 오페라든 정말 다르게 보일 것이라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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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4-16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터 브룩 <마술피리>를 인상적으로 보고 동굴에서 했다는 <마하바라타> 공연 무척 궁금했는데 이 책 보면 더 자세히 볼 수 있겠군요. 피터 브룩 <살로메>는 살바도르 달리가 무대 연출을 했다고 하죠^^

ICE-9 2017-04-16 14:24   좋아요 0 | URL
사실 이 책으로 마하바라타 공연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듣는 데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소개 글이 거의 반 페이지 정도에 불과한지라. 피터 브룩이 ‘빈공간의 예술가‘라고 불릴만큼 독특한 무대를 많이 만들어 유명했는데 지금까진 그것이 모두 피터 브룩의 공으로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시노그라퍼들의 공헌이 무시되었던 것은 아닌지...
그건 그렇고 살바도르 달리가 무대 연출을 한 ‘살로메‘는 저도 꼭 한 번 보고 싶네요^^

2017-04-17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8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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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을 받지도 하지도 않는 시대다. 지금은 구속이 된 박근혜 대통령만 봐도 집권 시절 기자 회견 장에 나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할 뿐 기자들의 질문은 일체 받지 않았으니 무슨 말이 또 필요할까? 비단 박근혜만이 아니라 내가 이제까지 만나 본 윗 사람들 대부분이 아래 사람의 질문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겼다. 동료들도 질문이 많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괜히 시간만 잡아먹고 일만 복잡하게 만든다고 핀잔을 주기 일쑤다. 나는 원래 질문이 많은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이해가 안 되면 손을 번쩍 들고 질문부터 하고 보는 게 버릇이었다. 하지만 사회로 나오고 나서 난 변해 버렸다. 질문을 해도 '쓸데 없이'란 말 외에는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과 질문을 할 때마다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받는 피로 때문에 점차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새 나처럼 질문을 곧잘 해대는 부하에게 짜증부터 부리는 내가 된 것을 보았다. 과거에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기에게 가장 실망할 때가 바로 이런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때부터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어쩌다 우리는 질문을, 특히나 받는 쪽에서 자신에 대한 불신이나 공격으로 먼저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정당한 질문조차도 질문 자체로 보지 않고 저의부터 의심하고 보는 버릇을 들이게 된 것일까? 질문을 받는 쪽이 그러하니 질문을 하는 쪽도 질문이 편할리 없다. 살면서 그림자처럼 뒤따르게 되는 질문이건만 반응이 그렇다 보니 손을 내리고 입을 다물게 된다. 그러다 보니 모르는 게 약점으로 여겨지기 시작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아는 척을 하거나 조금 아는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침소봉대 하게 된다. 검색이 수월해지면서 질문의 필요는 점점 더 사라진다. 본래 진정한 의미의 질문은 계단처럼 보다 더 깊은 차원으로 내려가는 매개물로 질문은 수명이 길수록 빛을 발하는 법인데 검색에서 바로 답을 찾을 수 있는 요즘에 있어 질문의 수명이란 그저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토록 질문의 가치와 수명이 한없이 추락 중인 이 시대에 오히려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가 한 사람 있다. 그가 바로 뇌과학자로도 유명한 김대식 교수다. 그는 이미 인류를 위대한 진보로 이끌었던 31개의 질문에 대해 한 권의 책을 쓴 바 있다. 그런 그가 조금은 더 대중적인 차원에서 다시금 질문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책을 들고 나왔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거기에 대해 직접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은 하나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어떤 식으로 질문을 찾고 그것을 통해 자아를 확장해 왔는지 독자의 눈 앞에서 직접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주로 책을 통해서 말이다. 그가 사람이 아니라 책을 통해 질문을 찾아 가는 것은 사람에 대한 회의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책을 많이 읽게 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렇게 그는 책을 통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그 해답을 만들어가는 지적 여정을 평생 계속해왔다. 바로 그 여정의 가장 최근 모습이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 담겨 있다. 말하자면, 그의 내밀한 사유의 궤적이 녹화된 최신 테이프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책은 모두 6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삶의 가치를 고민하라', '더 깊은 근원으로 들어가라',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라', '과거에서 미래를 구하라', '답이 아니라 진실을 찾아라' 마지막으로 '더 큰 질문을 던져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두 질문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질문이란 실은 초월의 몸짓이다. 오늘 내가 처한 현실이 모든 게 아니라는 자각이 결국은 질문을 만든다. 질문은 현재 너머의 꿈을 꾸는 한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며 실제 그 너머로 도약하기 위한 발구르기와 같은 방법 찾기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삶의 가치를 고민하게 되면 질문은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밖에 없다. 아르튀르 랭보가 보다 풍성한 삶의 경험을 위해 시를 포기하고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를 전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 처한 현실에 대해 안주가 아니라 탈주를 취할 때 인간의 삶이란 보다 풍요로워질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차원에서 가장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첫 파트에 실린 책에 대한 이야기에서 절감할 수 있다. 질문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 간수의 주머니에서 몰래 열쇠를 가지고 나와 안주의 철창에 갇힌 우리를 탈주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삶은 더 깊은 근원과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고 지금까지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모든 세상의 질서와 상식들은 이제 우리가 억지로 거부하지 않아도 그것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깨달음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더이상 구애받지 않게 된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처럼 꼭 기승전결일 필요가 없으며 더글러스 애덤스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에서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답'이 '42'이여도 너털웃음을 지으며 수긍하게 된다. '42'라는 숫자는 종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다시 또 달려야 한다는 신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다. 또한 어차피 삶의 의미란 어딘가에 숨어 있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추구를 위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 위에서 비로소 형성된다는 것을 질문의 여정 속에서 스스로 경험한 것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글러스 애덤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질문 뿐이다. 베르그송이 말했듯이 삶의 진짜 가치는 지속에 있고 그렇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동력원이 바로 질문이기 때문이다. 아닐 아난타스와미가 자신의 책에서 잘 보여주었듯이 '나'라는 미스터리 하나만 해도 영원히 풀리지 않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보다 심층으로 내려가고 더욱 본질적인 것을 찾아간다. 역사는 직선의 시간이 아니라 다발의 시간이 되고 다각적으로 오늘의 시간과 공간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기르게 된다. 김대식 저자의 말대로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의미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들은 언제나 폭력과 불행의 시작'이 되지만 질문의 신전에 존재를 의탁한 우리들에게 그런 것은 더이상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절대는 상대가 되고 영원은 잠정이 되기 때문이다. 토머스 쿤이 패러다임 이론을 통해 했던 것을 우리는 질문이라는 필터로 절대와 영원에 함유된 독소를 거른다. 모든 권위의 우상들은 회의(懷疑)의 밧줄로 쓰러질 것이며 타인을 무분별하게 모방하다 자기도 모르게 주입된 욕망은 좀 더 근본을 응시하고 헤아리는 마음 속에서 저절로 용해되어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질문은 바로 그것을 가져다 준다. 남이 만든 정답과 경계 안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잔뜩 안고서 웅크리고 있는 우리가 아니라 설령 아무 것도 없는 헐벗은 대지에 서 있다 하더라도 그 황무지 위에서 내가 만들어 갈 세상에 대한 기대감만으로도 당당하고 강해질 수 있는 우리가 되게 만든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루이지 세라피니가 존재하지 않는 것들로 '코덱스 세라피니아누스'라는 한 권의 백과사전을 만들었던 것처럼. 


 책에 삽입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백과사전 '코덱스 세라피니아누스'의 모습.


 먼 옛날, 질문 자체를 몰랐던 원시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모른다고 해서 더이상 불안해 하거나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다. 설령 고향에서 추방된다고 해도 그것을 새로운 변화를 위한 계기로 받아들일 뿐이다. 진정한 고향은 어떤 외부의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든 어디나 다 고향이다'라는 말처럼 실은 내면에 정초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중심이 강하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 아닌 타자들에 대한 두려움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다. 더이상 타인 때문에 내쳐질 타향이나 변방이 존재하지 않고, 현재라는 과정 역시 어디에 닿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서 매 순간마다 미래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용과 공존 그리고 조화와 융합은 질문의 여정이 데려가는 진화의 장소이자 질문을 주관하는 여신의 발에 입을 맞추고 헌신을 맹세한 이상 가질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나는 유발 하라리가 일컫는 '호모 데우스(신 같은 인간)'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감히 생각한다. 온갖 것과 융합되고 시간마저 초월하며 더이상 하나의 육체에 고정된 자아가 아닌 '호모 데우스'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포용과 공존 그리고 조화와 융합은 필수일 테니까. 그리고 길고도 무수한 질문의 여정 속에 다다르게 된 존재인만큼 김대식 교수의 말처럼 설령 많은 의문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가 우려하듯 위험한 존재는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질문을 이어가고 천착하는 한, 지배 보다는 공존을, 배제 보다는 포용을 택할 테니까. '너무 낙천적인 게 아니냐고?', '한낱 질문 하나에 그만한 진화의 동력이 있다니, 너무 과장이 아니냐고?'. 그렇게 내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 당신에게 나는 말없이 다만 이 책,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를 슬쩍 들이밀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 나처럼 믿게 될 테니까. 최소한 비슷하게라도 생각은 할 테니까. 어쨌든 나는 힘을 얻었다. 질문에 깃든 엄청난 가능성을 알았으니 다시금 질문을 즐기던 예전의 나로 돌아가 볼 작정이다. 다시 사람들에게 치인다면 김대식 교수처럼 책을 통해서라도 질문의 여정을 이어가련다. 그리고 앞으로는 내게 찾아오는 모든 질문에 최대한 귀기울이고 함께 답을 찾아보려 노력하련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 이어 '어떻게 답할 것인가'도 나의 주된 과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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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구속!!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일말의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는데
역시 사필귀정!
이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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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7-03-31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속됐다는 말로 남편이 깨워서 일찍 일어났어요. 어지간하게 했어야지 원..

ICE-9 2017-03-31 22:52   좋아요 0 | URL
부군께서 저 보다는 나은데요. 저는 너무 기쁜 소식이라 새벽에 깨워서 알렸다는...^^;
맞아요. 어지간히 했어야죠. 이젠 정말 속이 시원합니다. 불금이라서 더 그러네요. 하하^^
CREBBP님,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