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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닉맨 - 인간을 공학하다
임창환 지음 / Mid(엠아이디) / 2017년 4월
평점 :
바로 얼마 전 이런 기사가 있었다.
미국 팜스프링스에서 아마존 기업 후원으로 마스 2017 콘퍼런스가 열렸다. 거기에 우리나라 한국미래기술이 직접 개발한 로봇인 '메소드-2'를 가지고 참가했는데 아마존 CEO인 베조스가 직접 탑승해 보고 아주 만족한 뒤 '에일리언 영화에 나오는 시그니 위버가 된 것 같았다'라는 소감을 트위터에 올렸다는 것이었다. 길이 4미터에 2족 보행이 가능하며 사람이 탑승하여 팔과 다리를 조종할 수 있는 '메소드-2'는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영화 '에일리언2'에 나와서 관객들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심어준 '파워로더'와 유사해 보였다. 어릴 때 극장에서 '에일리언 2'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메소드-2'의 모습에서 막연히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미 현실로 성큼 와 버렸음을 느꼈을 것이다.
'메소드-2' 의 모습
영화 '에일리언 2'에 나왔던 '파워로더'
'꿈은 이뤄진다'더니, 예전엔 정말 공상 속 존재로만 생각했던 것이 어느새 현실로 착착 이뤄져가고 있다. 현재 한양대 생체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임창환의 '바이오닉맨'은 바로 그런 실상을 물씬 느끼게 만드는 책이다. '바이오닉맨'이란 한 마디로 기계와 인체의 융합이라 할 만하다. 의족이나 의수처럼 신체적 결함을 기계로 보완하거나 인체가 가지는 능력의 한계를 기계를 통해 증강하는 것 모두를 통칭하여 '바이오닉맨'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런 일을 주로 하는 것이 바로 '생체공학'이라 할 수 있을 터인데 '바이오닉맨'은 쉽게 말해 현재 생체공학이 다양한 분야에서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상세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책은 모두 네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거칠게 나누어 처음 1장과 2장은 인체의 운동 기관과 감각 기관을 보완 혹은 대체하는 생체공학의 역사와 현실을 다룬다고 한다면, 3장과 4장은 수명이나 뇌의 능력 혹은 불사등 인간이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건적인 한계를 생체공학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확장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현재 생체 공학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에 대해선 간간이 나오는 짧은 신문 기사로 밖에는 접해보지 못하여 그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하기가 참 어려웠는데 이 책은 오늘날 생체 공학이 활동하는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어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어 특히 반가웠다. 비록 '에일리언 2'의 파워로더는 현실화 되었지만 현재 생체공학 기술로 옛날 TV 드라마에 나왔던 '6백만불 사나이'나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는 마블 슈퍼 히어로 '아이언 맨' 혹은 영화 '스파이더 맨 2'에서 숙적으로 나왔던 '닥터 옥토퍼스'의 기계 촉수 같은 것은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무거운 다리의 무게 때문이다. 그 다리를 들어올리고 또 드라마나 영화처럼 빠르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선 모터의 동력이 필요한데 그 정도 동력을 낼 수 있는 모터를 다리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드는 게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인체의 어떤 부분을 기계로 대체하여 능력을 증강시키기 보다는 앞서 말한 '메소드-2'처럼 기계를 마치 사람에게 옷처럼 입혀 능력을 키우는 로봇이 활발히 개발 중이다. 그것을 전문 용어로는 '외골격 로봇'이라고 한다. 처음 이 외골격 로봇은 군사 분야에서 활발히 개발되었지만 최근엔 하지 마비 장애인이나 뇌졸중 환자 재활을 위해서도 이 외골격 로봇이 적극 응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하지 마비 장애인이나 뇌졸증 환자들은 자기 다리를 가지고 있다. 그럼,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선 바이오닉 기술이 어떻게 응용되고 있을까? 그렇게 1장의 2부, '바이오닉 다리'와 3부 '바이오닉 팔'은 바이오닉 기술이 적용된 의족과 의수를 다루는데, 다리 보다 팔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바이오닉 다리는 무릎이나 발목처럼 비교적 적은 수의 관절만 적절히 조절해도 '잘 걷기'라는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지만(p. 56) 29개의 뼈와 29개의 관절, 34개의 근육, 123개의 인대로 구성된 손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동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바이오닉 팔은 1960년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하필 이 시기에 그랬던 것은 다름 아닌 독일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 때문이었다. 바로 인류 의학 역사상 최악의 재앙 중 하나라는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다. 1950년대 후반, 독일에서 만든 이 약은 임산부의 입덧을 방지한다고 해서 많은 임산부들이 복용했는데 그 임산부들이 약의 부작용으로 그만 사지가 없거나 극단적으로 짧은 아이들을 출산하고 만 것이다. 이 수가 전 세계 46개국에 무려 1만명에 달했다. '바이오닉 팔'은 바로 이 같은 아이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개발되었다. 이렇게 실제 의료용으로 개발되는 바이오닉 기술들은 큰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애인과 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시작된 경우가 많았다.
이런 기업들은 벌어들인 많은 돈을 인간을 보다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아낌없이 재투자한다. 이런 점이 바로 반도체나 휴대전화를 개발하는 일반 전자회사와 생체공학 의료 기기 회사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p. 67)
이야기가 곁가지로 나가는 것 같지만 이 책에서 가장 놀랐던 부분이었다는 걸 밝혀두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과학이 아주 차갑고 비인간적이라는 시선이 강했다. 무엇보다 현재 과학 기술이 보여주는 모습이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재 생체 공학이 다름아닌 이런 아프고 약한 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시작되었다니, 내가 그동안 과학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게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확실히 그 어떤 분야든 뭐라 단정을 짓기 전에 먼저 거기에 대해 제대로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내겐 '바이오닉 맨'을 읽은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한편, 바이오닉 팔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역시 감각과 촉각이다. 인간의 손처럼 뜨겁거나 차가운 감각 혹은 거칠거나 부드러운 촉각을 바이오닉 팔로 느끼게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한다. 사람의 피부라는 것이 제곱 1cm 안에 자리 잡은 감각 신경이 무려 수 천개에 이를만큼 아주 정교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현재 기술로 이만큼 정밀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 거기에 또 한 가지 난제가 더 남아 있다. 우리의 뇌가 어떤 식으로 감각을 다양하게 인식하는 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만 밝혀지면 바이오닉 기술은 혁신적으로 발전할 것이라 기대되는데 이처럼 생체 공학 분야에 있어 하나의 기술은 그것만으로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다른 기술과 연동되었다. 어쩌면 우리 인체가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대체하고 보완할 바이오닉 기술로써는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팔이나 다리, 혹은 심장이나 장기 등 인체의 조직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을 흔히 '사이보그'라 일컫는다. 2장은 바로 이런 사이보그에 대한 것으로 심장이나 눈 그리고 귀의 이식에 있어 생체 공학 기술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소상히 밝혀주고 있다. 재밌는 사실은 '600만불 사나이'만큼이나 유명한 '소머즈' 역시 실제로는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소머즈는 한 쪽 귀만 '바이오닉 귀'로 대체되어 보통 인간의 수 백배나 되는 청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선 이렇게 한쪽 귀만 바꿔서는 그렇게 듣는 것이 불가능하단다. 인간이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귀가 소리가 나는 방향과 거리를 알 수 있도록 '음원 국지화'를 해야 하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두 귀를 다 사용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재밌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인간이 듣는 방식에 관한 것인데, 알고 보니 여기엔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보통의 경우처럼 음파 진동이 없어도 두개골의 진동을 통해 듣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바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때가 그러한데, 그 때 우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성대의 떨림이 두개골로 직접 전달되어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바로 이 때문에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평소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개골이 저음을 잘 전달하기에 골전도를 통해 들으면 자신의 목소리가 실제보다 좀 더 낮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책엔 생체 공학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의족과 의수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친 16세기의 외과 의사 앙브루아즈 파레를 비롯 사람의 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 또한 담겨 있다. 그래서 딱히 생체 공학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와 관련하여 혹시 수험생이라면 '지능 증폭'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이 좋겠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경가소성'이고 다른 하나는 '서파 수면'이다. '신경 가소성'이란 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뇌의 기능이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2006년, 영국에서 런던 택시 운전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실제 증명된 것으로 거미줄처럼 얽힌 런던 도로망과 지명을 모두 외워야만 하는 런던 택시 운전사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장기 기억과 공간 지각을 관장하는 해마 영역의 회백질이 훨씬 더 두꺼웠다고 한다. 이는 생활 습관의 개선이나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얼마든지 뇌를 후천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즉 뇌는 쓰면 쓸수록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머리 탓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두 번째, '서파 수면'은 독일 튀빙겐 대의 얀 보른 교수가 발표한 것으로, 사람이 깊은 잠에 빠지면 느린 뇌파가 발생하는 서파 수면에 이르게 되는데 그 때 깨어 있을 동안의 기억들이 장기 기억으로 보존된다고 한다. 즉 외운 것을 되도록 오래 까먹지 않고 싶으면 깊은 수면을 취하라는 것이다. 바이오닉 기술은 뇌를 향상시키는 쪽에도 응용되는데 주로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기도 한다. 나아가 미래엔 '공각기동대'에서 두뇌에 직접 단말기를 연결했듯이 뇌의 특정 부위에 마이크로칩을 삽입하여 두뇌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가능해지는데 분명 여기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타고난 사람의 신체적 능력이 이제 가지고 있는 자본에 따라 차등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이처럼 저자는 생체 공학이 가져온 어두운 면도 솔직하게 인정한다. 돈이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생체 공학 기술의 특성 상 이 기술의 발달이 또 다른 차별을 가져 올 위험 역시 큰 것이다. 이런 부작용이 생겨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 또한 생체 공학 기술 발달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민이라고 하겠다. 제도는 그렇다치고 공학자나 사업가나 생체 공학이 어떤 동기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는지 생각한다면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바로 생체 공학이 아프고 약한 자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생체 공학 중심엔 인간이 있었다. 막스 베버가 말했듯 과학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다. 그 기술이 인간에게 악마가 되었던 때는 언제나 기술의 중심에 인간이 부재했을 때였다. 일차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시작되었고 오로지 그것을 지향하며 발전해 온 생체 공학이 원래 자신의 고향만 잘 기억한다면 생체 공학의 미래에 대해 조금은 낙관적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끝이 이상해졌는데, 아무튼 여기서 총평 하자면, 현재 4차 산업 혁명이란 말이 유행 중이다. 생체 공학은 그 4차 산업 혁명에 있어 핵심 분야 중 하나라고 알고 있다. 혹시 그 때문에 관심이 생겨 바이오닉 기술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바이오닉 맨'은 좋은 안내자가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공학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