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의 섬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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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 밸라드의 팬들이여 기뻐하시길! 드디어 '콘크리트의 섬'이 발간되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크래시' 그리고 '하이 라이즈'와 더불어 도심 재난 3부작을 이루고 있는 의미 깊은 작품이지만 지금껏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아 여간 궁금했던 책이 아닌데, 드디어 우리들 눈 앞으로 당도한 것이다. 꽤 마음에 드는 표지와 함께. '콘크리트의 섬'은 여러모로 우리나라 영화 '김씨 표류기'가 생각나는 작품이다. 그 영화가 도저히 표류자가 생길 것 같지 않는 서울의 한강에서 표류되어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듯이 이 소설 또한 고속도로 사이에 있는 교통섬에 우연히 갇혀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로빈슨 크루소의 후예들이다. 바다 저 멀리 있는 섬이 아니라 도시 한 가운데에서 그런 일을 당한다는 것만 다를 뿐




. 이런 일이 과연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싶지만 소설을 읽어보면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그만큼 발라드가 현실감 넘치게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까닭이다. 발라드의 소설답게 한 번 그 세계를 받아들이게 되면 놀라운 몰입력으로 끝까지 내처 읽게 만든다. 주인공은 로버트 메이틀랜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한 건축가인 그는 운전 도중 과속으로 교통 사고를 일으키고 교통섬에 고립된다. 주위엔 차들로 가득하지만 그의 구조 요청엔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다. 바로 지척에 안온한 일상을 두고도 가지 못하며 참혹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더 커다란 절망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곧 거기에 자기 혼자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자신처럼 교통섬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바깥 세계로 나갈 수 있는데도 거기에 머무르는 걸 선택한 이들이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문화와 규칙으로 살고 있다. 메이틀랜드는 차츰 그 공동체에 적응해 간다. 그러면서 전보다 훨씬 강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로빈슨 크루소가 그랬듯이. 그 역시 거기 있는 다른 이들처럼 그렇게 지내는 것에 매력을 느껴 머무르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들지만 바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을 생각하여 빠져나갈 의지를 버리지 않는다. 과연 그에게 탈출할 기회는 찾아올까? 소설은 열린 결말로 그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콘크리트의 섬'은 문명 비판을 담고 있다. 인간은 무자비한 자연 앞에서 약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문명을 만들어냈으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 문명에 너무 의존하느라 오히려 더 약해져버렸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메이틀랜드의 곤경은 문명의 발전 속에서 오히려 더 소외되기만 하는 인간 보편의 운명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은 장면을 매개로 문명과 격리된 교통섬의 공간으로 삽입되게 된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인간의 진정한 성장이 문명의 안에선 불가능하다는 뜻일까? 어쨌든 메이틀랜드는 야만의 영역이라 해도 무방한 교통섬에서 전보다 더 강한 인간이 되는 건 사실이다.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를 현대 문명에 빗대어 새롭게 써내려 간 '콘크리트의 섬'은 이처럼 찾아낼 수 있는 다양한 의미들이 있어 더욱 연거푸 읽게 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왜 여전히 J. G 밸라드의 팬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원서 초판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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