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 김학범 교수와 함께 떠나는 국내 최초 자연유산 순례기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1
김학범 지음 / 김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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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은 안타까움의 소산이다.

현재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문화의 중요성이 날로 대두되면서 자국의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적극 발굴하고 아울러 그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적극 홍보하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무엇보다 해마다 늘어나는 명승지정의 개수로 증명되는데 가까운 중국을 예로 들자면 국가 지정 명승은 208건, 지방 지정 명승은 2,560건으로 도합 2,768 건이라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이는 일본도 예외는 아니라서 일본은 모두 360건의 국가 지정 명승이 있다. 이 뿐 아니라 북한마저도 320건의 명승이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엔 지정된 명승이 얼마나 될까? 아마 북한보다는 많겠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문화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나라가 훨씬 관심도 많고 앞서 있다고 생각 할 테니까. 하지만 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가 명승을 국가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1970년대 초부터인데 2003년까지 지정된 명승은 단 7건에 지나지 않았다. 2003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명승 지정과 보호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 결과 2013년 5월 현재 모두 104 곳의 명승을 지정했다. 꽤 노력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북한의 절반도 안되는 숫자다. 이래가지고서야 그동안 문화강국이라 외쳐온 사실만 부끄러울 뿐이다. 현재 문화재 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 위원장으로 재직 중인 김학범의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 기행'은 바로 이런 안타까움에서 태어난 책이다. 이렇게 부족한 명승의 숫자는 결코 우리의 국토가 적어서 명승지 또한 적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우리 것이 가진 아름다음에 관해 관심이 없고 그로인해 찾고 발굴하며 기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김학범의 이 책은 안타까움을 낳은 바로 그러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고쳐보고자 태어났다. 우리나라의 명승이 가진 아름다움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충실히 완상케 하여 그 가치와 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함이다.




한데, 책을 읽다보면 과연 이런 것도 명승이 되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정원' 이나 문경새재나 대관령 옛길이나 벼랑길 같은 '옛길' 뿐만 아니라 '법성진 숲쟁이' 같은 전통 포구 앞의 마을 숲이나 내앞마을의 '백운정'과 '개호송숲'과 같은 화려한 문화재에 비한다면 어쩌면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라고 할 수도 있는 곳까지 모두 명승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자면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른바 유명한 고적, 아름다운 산수로 대변되는 명승의 개념이 오히려 너무 협소하다고 한다. 명승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이름이 높다거나 대대로 아름답다고 칭송되어 온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한 개인의 정원이나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 또는 아무나 언제든 와서 편히 쉴 수 있는 저수지나 숲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기리고 보존할만한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니거나 우리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면 얼마든지 명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가까운 일본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일본은 일찍이 정원을 명승에 포함했는데 사실 306건의 일본 명승 중 200건이 바로 정원이니까 말이다.


(사진은 이 책의 첫 장을 여는 길재가 세운 금오산 채미정의 모습. 벽체 없이 16개의 기둥만 있는 정자다. 특히 이 채미정에서 바라보는 금오산의 풍광이 수려하다고 한다.)





책은 그렇게 달라져야 할 명승의 개념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키듯 익히 우리에게 알려진 명승이 아닌 우리가 새로이 관심을 갖고 찾고 발굴해야 할 명승들에 더욱 주안점을 두어 그 쪽으로 관심을 유도하도록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명승들을 소개하는데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책의 첫 장을 '고정원', 그러니까 옛 선조들의 정원들의 소개가 차지하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우리에게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길재가 금오산에 지었다는 채미정과 그림으로 남아있는 양산보의 '소쇄원'을 비롯한 14개의 '고정원'과 경남 원학동에 있는 수승대와 '춘향전'이 공간적 배경으로 유명한 전남 남원의 광한루원을 포함한 6개의 '누원과 대'와 퇴계 이 황과 그를 모셨던 기생 두향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단양의 구담봉과 과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꼭 넘어야 했다는 문경새재와 함께 한 14개의 '팔경구곡과 옛길'을, 그리고 가야산의 해인사, 두륜산 대흥사, 속세를 떠나있는 곳이란 이름의 속리산 법주사를 비롯한 8개의 유명한 역사와 문화 명소 뿐 아니라 아름다운 지중해풍의 풍광과 더불어 농경 자체가 하나의 문화 경관이 되어버린 남해 '기천 마을의 다랑이논'이나 같은 남해지만 이번에는 오래된 어업문화를 보여주는 '지족해협의 죽방림'을 포함한 7개의 전통산업 문화 경관까지 모두 49개의 우리가 알고 찾고 보고 느껴야 할 명승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사진은 함양에 있는 화림동 계곡에 있는 거연정의 모습. 주위 경관과 어울림을 최고로 꼽는 한국의 미학이 참으로 잘 살아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화림동 계곡은 특별히 팔정팔담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여덟개의 정자와 여덟 개의 담이 있는 계곡이라는 뜻이다.



(사진은 팔정팔담으로 유명한 화림동 계곡의 모습.)



전문가답게 설명은 우아한 물결처럼 막힘없이 유려하게 흐르고 또한 쉬워서 비록 많은 수의 명승을 소개하고 있으나 한달음에 읽어버리게 만든다. 거기다 그 풍광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사진까지 곁들어 있어 이해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82페이지에 있는 거연정의 경치 사진이나 90페이지에 있는 하원의 하지 사진 또는 130페이지의 죽서루 사진이나 162페이지 도담상봉 일출 사진 그리고 240페이지의 공주 고마나루 솔숲 사진은 빼어나게 멋져서 한동안 눈길을 붙드는 것을 넘어서 꼭 거기 가서 그 경치를 바라보았으면 하는 소망마저 가지게 만든다. 결론지어 말하자면 이 책 자체가 하나의 명승이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다. 아래에서는 개인적으로 특히나 인상깊었던 곳을 몇 가지 말해본다.



(16세기 후반 퇴계로부터 '동방의 도학을 전수할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남언기가 전라도 동복현 사평촌에 은둔하면서 지은 정자가 있는데 그 이름이 '고반원'이라 한다. '고반'이란 <시경>에 나오는 말로 '고'는 이룬다를 뜻하고 '반'은 머뭇거려 멀리 떠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뜻 그댈 은거할 집을 이름이다.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임대정은 바로 이 '고반원'에서 유래된 것으로 정자가 있는 '상원'과 정자 앞의 사각형 연못 둘을 중심으로 한 '하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연못의 이름을 각각 '상지'와 '하지'라 하는데 사진은 그 하원 중 하지의 모습이다.)





(사진은 단양팔경중 하나인 도담삼봉의 일출을 찍은 것이다. 도담에 떠 있는 세 봉우리가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퇴계 이황은 이 아름다움에 반해 '도담상봉'이란 시까지 지었다고 한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 또한 이 도담삼봉을 사랑한 이들 중 하나다. 그가 호를 '삼봉'이라 한 것도 바로 이 '도담삼봉'에서 연유한 것이다. 사진에 보이듯이 중간 봉우리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삼도정'이라 한다. 이 정자에 가기 위해서는 배를 이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찾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사진은 단양에 있는 '석문'으로 우리나라에서 신선 할머니로 유명한 마고할미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단양 팔경 중 하나인 석문은 커다란 문과 같이 생긴 바위로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자연유산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마치 신선이 살고 있는 동천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보시다시피 겨울에 가면 더욱 빼어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조선후기엔 남종화가 유행했는데 사진에 보이는 운림산방은 바로 그 남종화의 산실이기도 하였다. 운림산방은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이 지은 것으로 그의 다른 이름은 '허유'라 하기도 한다. 그것은 중국 당나라 남종화의 효시라 알려진 왕유의 이름을 따 온 것이다. 허련은 추사 김정희가 죽자 그 다음해에 고향인 진도로 내려와 초가를 짓고 거처했는데 그 이름을 '운림각'이라 짓고 그 앞에는 커다란 연못과 정원을 만들어 그 풍경을 그리면서 말년을 보냈다. 추사 김정희가 '압록강 동쪽에서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고 말했던 허련의 말년이 그대로 풍경이 되어 화한듯한 느낌의 명승이다.)



(사진의 하늘재는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고갯길이다. 신라가 망했을 때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는 그의 누이 덕주공주와 함께 바로 이 하늘재를 넘었다. 하늘재는 여러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삼국시대 이 하늘재는 접경지역에 있어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지날 수 밖에 없는 고개였지만 한 편으론 문명 교류의 통로이기도 했다. 고구려에서 신라로 불교가 전해질 때도 바로 이 하늘재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렇게 하늘재는 여러가지 얼굴로 무려 2,000년의 역사가 간직된 곳이다.)


(백제를 상징하는 동물은 곰이다. 백제 사람은 곰의 후예라 할 수 있다. 금강이 공주시 유역을 굽이돌아 흘러가는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고마나루는 풀이하자면 '곰나루'라 할 수 있다. 사진은 이 고마나루에 조성된 솔숲을 찍은 것이다. 아침이면 뿌옇게 몰려오는 안개에 어슴푸레하게 잠긴 솔숲이 그야말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언젠가 꼭 한 번 찾아가서 그 아침 안개에 젖어들어가는 솔숲을 바라보고 싶다. 그 마음으로 특별히 담은 사진이다.)





이제 결론이다.

안타까움이 너무 깊으면 오히려 그것이 알찬 씨앗이 되어 우렁우렁 커다란 결실의 나무로 자라난다고 하더니. 과연 그 말에 딱 걸 맞는 책이다. 지나친 상찬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백문이 불여일견. 일단 읽어보면 이 책의 진가는 알게 되리라 믿는다.




바야흐로 곧 휴가철이다. 이미 해외 쪽은 예약이 모두 꽉 차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렇다면 너도 나도 다 가는, 남들과 똑같은 해외여행으로 금쪽같은 휴가를 보내기 보다는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 줄, 이 책에 소개된 잘 알려지지 않은 명승들을 한 번 찾아다녀 보는 것은 어떨까? 나의 일부분을 분명 형성하고 있는 역사의 경관 속에서 그 역사를 더듬어 가면서 거기에서 파생된 '나'라는 존재를 한 번 반추해 보는 것도 분명 가치 있는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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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07-0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림산방, 이런 곳에서 살면 아주 조용해서 다른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공기도 아주 맑겠군요 뒤로는 산, 앞에는 물이 있다는 말 ‘배산임수’ 가 절로 떠오르는 곳이네요 하늘재도 걸으면 참 좋겠네요

우리나라에도 경치 좋은 곳이 많죠 그런 곳을 찾아내고 잘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으로 봐도 멋지겠지만, 실제로 가 보는 것도 좋겠군요 저는 어디 가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자연을 만난다면 그것은 좋겠습니다^^


희선

ICE-9 2013-07-21 01:20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통해 이렇게나 좋은 곳이 많다는 걸 비로소 알았어요. 그것도 모르고 우리나라는 정말 갈 곳이 없어하고 불평했던 제가 다 부끄러워지더군요. 언젠가 꼭 거기서 자연을 더없이 만끽하게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