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 컨설팅북 - 똑똑한 기차여행을 위한 일일 코스의 모든 것
변지우 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어릴적 살았던 고향집은 기차역 부근에 있었다.
일제 시대 때 지어졌던 그 역은 가끔 완행열차나 서고 볼 것이라고는 언제 누가 심었는지는 모를 노송하나가 전부인 아주 작디 작은 역이었지만 그래도 어린 동심을 유혹하기엔 충분했다. 어린 시절은 'SIZE IS MATTER!'라는 영화 고질라의 메인 카피처럼 커다란 것을 동경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칙칙폭폭'하는 왠지 거친 호흡과도 같은 소리를 내는 거대한 디젤 기관차가 도착하는 것을 보기 위해 얼마나 자주 놀러 갔었는지 모른다. 여름날이면 넓다란 그늘을 드리우는 노송에 기대어 역에 내리는 사람 구경도 하고 철로에 귀를 대어 기차가 오는지 안오는지 듣기도 했다. 별 것 아닌 일들이었지만 그래도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흠뻑 빠졌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향처럼 조용히 미소가 피어오르는 유년시절의 좋은 추억이다. 새삼 그 추억을 말하는 건 내 인생에서 기차가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컸던가를 말하고자 함이다. 어린 시절의 동경이었고 사춘기에 접어들어서는 새벽마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소리로 인해 자유롭게 되기를 부채질했었던 기차. 그래서 나 역시 비슷한 추억이 있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로브 라이너 감독의 영화 '스탠 바이 미'를 좋아하고 윤후명의 소설 '협궤열차' 또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얼마나 철길을 따라 걸었으며 또 얼마나 많은 협궤열차를 비롯한 이런저런 완행열차를 타고 이름모를 역에 내려 정처없는 순례를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사회로 나오면서 느림의 미학인 기차 여행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미루게 되고 차츰 철도 환경도 달라져 이제는 기차에서 느긋하게 풍경을 완상하는 것이나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이름모를 낯선 역을 만나는 즐거움도 자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기차는 내 삶에서 물러났다.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물러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다시금 기차에 대한 매력을 일깨워 준 책을 두 권 만나게 되었다. 하나는 아주 결정적인 것으로 일본 만화가 하야세 준으; '에키벤'이다.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는 일본 만화에 있어 이미 하나의 주류적 장르이지만 그래도 '에키벤' 같은 만화가 가능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에키벤'은 제목 그대로 기차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말한다. 오랜 철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일본은 이 에키벤의 역사 또한 깊어서 각 지역마다 혹은 각 노선마다 유명한 에키벤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만화 '에키벤'은 바로 그걸 소재로 한 만화다. 그렇게 만화는 각 노선이나 각 지역에서 유명한 에키벤들을 스토리와 곁들어서 조목조목 보여주고 있는데 읽다보면 거기 나오는 에키벤들이 하나같이 먹음직스러워서 어느새 기차를 타면서 그 에키벤을 먹고 있는 모습을 동경하게 된다. 이 만화를 읽은 때가 이미 일본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이라 그 때는 정말로 에키벤을 테마로 한 일본 여행 계획을 짜기도 했었다.

하지만 일본말고 우리나라 기차 여행의 묘미도 새로이 되살려줄 책이 하나 있었으면 싶었다. 그러다 드디어 만나게 된 게 바로 이제 이야기할 '기차여행 컨설팅북'이란 책이다. 사실 RHK에서 나오고 있는 '컨설팅북' 시리즈를 좋아한다. 처음 만났던 것은 '주말여행 컨설팅북'이었는데 실제로 그걸 가지고 여행 계획을 짜보거나 가지고 다녀 보니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런 경험까지 있어 '컨설팅북'을 특히나 신뢰하게 되었는데 그 시리즈 세번째로 이렇게 '기차여행 커설팅북'이 나오다니 개인적으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먼저 책 표지를 넘기는 날개에 이 책에 참여한 저자들이 나오는데 그 소개글을 가만히 읽어보면 '기차여행'이란 테마가 먼저 기획되고 거기에 맞춰 쓰여진 책이란 걸 알 수 있다. '주말여행 컨설팅북'은 그러한 뉘앙스를 못 느꼈기 때문에 어쩌면 컨설팅북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특별히 기획된 책이 아닐까도 싶다. '컨설팅북'의 매력이란 한마디로 뭐랄까 일종의 '눈높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철저하게 사용자 편에서 자신에게 마춤한 여행을 스스로 계획하고 누릴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는게 이 시리즈의 장점이다. '기차여행 컨설팅북' 역시도 마찬가지다. 기차 여행 준비서부터 다녀볼만한 각 철도 노선의 역을 중심으로 한 여행지 소개에 이르기까지 초보자의 눈높이에서 말해주고 있다.



사진은 책의 부록인 '한국철도노선도'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엔 이렇게 많은 철도 노선이 존재한다. 보통역의 위치가 나와 있어 오히려 그런 역으로의 여행을 즐기는 나에게는 퍽 유용해 보인다.

책의 구성은 '철도노선도'처럼 역을 중심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각 중요 철도 노선마다 꼭 들러볼만한 역을 중심으로 여행지를 세부적으로 소개하는 형국이다.



이를테면 이국적인 근대 건축물들이 많아서 나도 언젠가 가보려 하는 강경역으로 가고자 한다면 강경역이 위치한 호남선 항목을 찾는다.(얼른 노선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처음의 목차에서 지역별로 찾아도 된다.) 그러면 강경역 항목이 나오고 저렇게 지역과 코스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함께 뒤로 책장을 넘기면 코스로 꼭 가보면 좋을만한 곳들 그러니까 '구 남일당 한약방'이라든지 아니면 '강경역사문화원'나 '중앙초등학교 강당'이나 '강상고등학교 사택'(모두 근대건축의 이국적인 미를 보여주는 곳들이다.) 혹은 '죽림서원' 같은 곳들의 보다 상세한 설명이 나오게 된다.



책은 대체적으로 이러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코스는 자가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중교통에 맞춰 설정되어 있으므로 기차 여행을 하는 이에겐 더욱 최적화된 셈이다.(때문에 각 여행지마다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편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 책을 읽다보니 '강경역'과 더불어 언젠가 한 번은 꼭 가야지 했지만 잊고 있었던 곳들을 다시금 만나 더욱 눈을 번뜩이며 이번엔 기필코 가야지 마음먹게 되는 곳을 더러 만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하동역과 곡성역이 내겐 그랬다.



하동역은 무엇보다 감명깊게 읽은 '토지'가 태어난 곳이라 꼭 가고픈 곳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마음만 있었지 정작 실천은 못하고 오래도록 잊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다시금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사진은 하동역 항목의 맨 앞부분. 강경역과 같이 지역의 소개와 교통편 그리고 에디터 추천 코스가 간략하게 나와있다. 책을 보니 하동엔 그것 말고도 유명한 게 많았다. 화개장터가 있다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지만 4월이 되면 구례에서 하동까지 이어지는 25KM의 도로가 모두 벚꽃으로 뒤덮인다는 섬진강 벚꽃길 백리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압권인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6KM의 '십리 벚꽃길'의 존재를 알게된 것은 이 책을 통한 또 하나의 수확이었다. 사진의 벚꽃들이 너무나 유혹적이라 봄에 꼭 한 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동역 항목의 맨 앞부분을 넘기면 이렇게 대표 추천 코스 각 여행지의 세부적인 설명이 전개된다.




토지를 좋아한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평사리 최참판댁'. 토지의 주요 무대가 되는 평사리 마을과 최참판댁을 소설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다. 드라마 '토지'도 여기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주말에 가면 서희와 길상이가 혼례를 치르는 장면도 볼 수 있다고...



아무래도 기차 여행이 테마라면 곡성역을 빼놓을 수 없을 듯 하다. 왜냐하면 곡성역은 '은하철도 999'를 좋아한다면 지나칠 수 없는 증기기관차에 대한 로망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이 바로 '섬진강 기차 마을'이다. 어른 청소년은 6천원, 어린이는 5,500원의 왕복비용으로(이 책에 실린 모든 정보는 2013년 4월 것이므로 이대로 믿고 가도 상관없을듯 하다.) 증기기관차 여행을 즐길 수 있는데 '은하철도 999'의 기분을 한 껏 낼 수 있을 듯 하다.



읽다보니 기차 여행의 좋은 점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가용을 가지는 것과는 다르게 마음만 먹으면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 정도의 일정이라면 다른 건 하나도 필요없이 그저 기차에 몸만 실으면 되니 이보다 더 수월하게 여행할 수 있는 길이 또 있을까? 사실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전까지는 가지고 있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기에 기차역에 도착하고 난 뒤부터는 어떻게 해야할 지 좀 막막해서 기차여행을 선뜻 떠나지 못했던 까닭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대담하게 시도해볼 수 있을 듯 하다. 대중교통 정보가 자세히 나와있는 이 컨설팅북도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이제 곧 휴가철이다. 혼자서 기차여행을 하기엔 더없이 좋은 때가 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화가 나는 소식이긴 하지만 철도 민영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다고 하니 기차 요금이 턱없이 오르기 전에 미리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쩌면 보다 저렴하게 기차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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