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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간 추천을 하려는데 '뚜르르~'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집주인이다. 내년 2월이 전세 기간 만료일이니 그렇지 않아도 전화 올 때가 되었지 싶었다. 그래도 좀 빨리 연락을 해 줄 것이지, 너무 늦게 한 감이 없지는 않다. 불만을 목소리로 내지는 못하고 어떻게 할 거냐고만 물었다. 월세로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요즘 월세 광풍이라더니 드디어 내게도 불어 닥쳐오는구나 싶었다. 다주택 소유자만 어여삐 여기는 정부 덕택에 힘없는 세입자는 오늘도 새우등처럼 휜다. 얼마를 생각하시냐고 물었다. 듣고 생각했다. '어이 없군.'
일단 알았다고만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띠리리~' 아는 부동산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주인이 말하는 월세를 들려주고 과연 이 가격이 적당하냐고 물었다. '과하다'고 한다. 그보다 더 아래 금액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다고. 그럼 그렇지. 늦게 전화한 것도 나를 좀 급박하게 만들어 결국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려고 한 것은 아닐까 슬쩍 그런 음모론마저 고개를 들었다. 아무튼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려주겠다고 해도 전세는 안된다고 하니 일단 보험 차원에서 전세를 좀 알아봐달라고 했다. '아, 또 이사를 해야 하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무엇보다 집안 곳곳에 담쟁이 덩쿨처럼 뻗어간 책들이 문제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다시는 책을 안 사야지 굳게 마음먹지만 '휴~ 그게 마음 대로 되나?' 그러니 중독이 무서운거지...
하여튼 지금 이 순간만은 지긋지긋하게 여겨지는 것이 책이지만 이렇게 신간 추천 페이퍼를 쓴다. 그런데 참 나도 알 수 없는 것이 또 새로 나온 책들을 보고 있으면 '호~ 이런 것도 나왔단 말야?'하면서 눈이 반짝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 무서운거다. 중독이란 건...
내 중독 증상을 일깨운 신간들을 여기에 좌악 열거해 본다.
이 못되고 사랑스러운 유주얼 서스펙트들...
일종의 머그샷을 찍는 것처럼 죽 늘어 놓아본다.
왼쪽으로 부터 용의자들은 다음과 같다.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제3인류'
'카산드라의 거울' 이후로 현재 베르베르는 꽤나 미래라는 것에 관심이 있는 듯 하다. 이번엔 좀 더 스케일을 키워 미래의 인류 진화 모습을 다룬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주인공이다. '개미'의 주인공 증손자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마침, 이 소설이 추구하고 있는 인류 진화의 모습도 '소형화'인지라 언뜻 혹시 이 소설 '개미'와 일종의 순환 고리를 이루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책을 읽지도 않고 하는 말이라 이루 말할 수 없이 성급하긴 하지만 어쩌면 베르베르는 인류 진화의 최종 버전이 '개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어쨌든 진실은 책을 읽어봐야 알 일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 SF 중에 Paul.F. Ernst의 'The Microscopic Giant'가 생각난다.
1차 대전이 한창인 미국의 한 거대한 구리 광산에서 지하에 살고 있는 소형 인간들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긴데 1938년에 나온 이 단편은 웰즈의 '우주전쟁'이 그랬듯이 인류 보다 더 뛰어난 제3의 지성인 존재를 통해 인류 사이의 전쟁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인류보다 훨씬 더 발달한 문명을 가지고 있는 이 '소형 인간'들이 어쩌면 베르베르에게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제3 인류'에서 주인공들이 창조하고자 하는 제3인류의 이름이 '에마슈'인데 그 이름의 M이 바로 'Micro-Humains'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뭐, 작다는 것이라면 어디든 다 쓰이는 Micro이긴 하지만 왠지 오마쥬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괜한 생각인 걸까?
2. 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데뷔 후 지금까지 8년간 단 한 편의 장편소설과 단 두권의 단편집 밖에는 내지 않았다는 황정은이 드디어 두 번째 장편소설을 냈다. 이제 두번째의 장편 소설인데도 그동안 팬들이 많았는지 신간 추천 집계를 해보니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다. 나는 아직 접해보지 못했던 작가라 과연 어떤 작가이기에 이토록 많은 분들이 기대하는 것인지 궁금하여 이번 기회에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소재가 특이하다. 아무래도 제목의 앨리스씨는 여장 노숙인인 모양이다. 그는 어린 동생과 함께 어머니로 부터 구타를 당하며 살아간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앨리스씨의 여장은 그 폭력의 여파인 듯 하다. 그렇다면 이 여장이란 앨리스씨에게 이중의 기호인 셈이다. 하나는 가해지는 폭력으로 부터 달아나고 싶다는 열망으로써의 기호, 또 하나는 자신에게 폭력을 가해오는 어머니만큼 강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써의 기호. 하나는 자신을 버리고 싶어하고 반면에 다른 하나는 자신을 지키고 싶어하는데 과연 이 모순된 두 기호가 어떻게 하나의 신체 안에서 통합되어 갈지 궁금하다.
3. 10만 분의 1의 우연, 마쓰모토 세이초
팬이니까 세이초의 소설이라면 무조건 추천이다. 그런데 내용 소개글을 읽다가 강한 기시감이 들었다. 소설에서 6종 추돌 사진을 찍어 유명해진 야마가는 왜 사진 찍느라 불타는 차량 안의 사람은 구하지 않느냐는 비난에 시달린다. 이런 일이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다. 바로 한 굶주린 소녀가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의 사진이다. 결국 이 사진을 찍은 기자는 이 사진으로 풀리처 상까지 탔지만 비인간적이라는 거센 비난 때문에 자살하고 말았다. 이 사진은 예술은 현실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혹은 어느만큼의 자리에 위치해야 하느냐? 하는 중대한 의문을 낳았다. 세이초의 소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실제로 일어난 일인만큼 세이초는 이것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4. 재앙은 피할 수 없다, 위화
'제7일'을 읽어 본 나로서는 이제 위화의 신작이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방앗간이다.
'재앙은 피할 수 없다'는 중국 민중과 지식인들로서는 문화대혁명 이후 가장 암울했던 시기인(아시다시피 천안문 사태는 1989년에 일어났다.) 80년대 후반에 위화가 쓴 소설 중에서 한국 독자들을 위해 특별히 직접 그가 선정한 작품들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더욱 읽어보고 싶다.
지금까지의 위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나름대로는 문학이 오로지 정치적 선동의 도구로만 의미있었던 문화대혁명 이후 그로부터 오염된 문학을 구원하고자 발버둥 끝에 나온 소설들이기도 해서 더욱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제목이 지금 이 순간 참 와 닿는다.
재앙은 피할 수 없다.
정말이다. '이사'라는 재앙도 피할 수 없다.
그래도 부디 피해 갔으면 좋겠다. 너무 피곤하다ㅠ ㅠ
5. 향, 백가흠
황정은 8년간 장편소설을 단 한 권 내었지만 2001년에 데뷔한 백가흠은 13년간 단 한 권이다. 참, 장편소설은 출산하기가 힘든 것인가 보다. '향'은 백가흠의 세번째 소설집이다. 역시 난 아직 읽어보지 못했던 작가다. 신간평가단 하면서 정말로 새록새록 느끼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내게 한국문학 경험이 너무 일천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느정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신간 추천할 때마다 이렇게 여전히 새로 알게되는 작가가 튀어나오는 걸 보면 아직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모양이다. 이 쪽으로도 부지런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쌓여있는 책들을 보면 또 이사가 걸리고 그렇게 또 내 바람과 현실 사이에서 번민하게 된다. 중독된 자에게는 어차피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그리고 벗어날 수도 없는 시지프스적 형벌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백가흠은 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영원의 맨 처음이 천천히 흐르고 있다.
어디에도 끝은 없다.
죽음을 향한, 죽음의 의식만이 있을 뿐...'
이 상식을 넘어, 이성을 넘어 광기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는
어디에도 이사의 끝은 없다.
또 언젠가의 이사를 향한, 이사의 준비만이 있을 뿐...
크헉!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니 꿀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