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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개자리 ㅣ 빌리암 비스팅 시리즈
예른 리르 호르스트 지음, 이동윤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새롭고 유능한 스릴러 작가를 알게 되는 건 커다란 기쁨 중 하나입니다. 이제 또 한 명의 작가를 그 리스트에 추가해야겠네요. 바로 예른 리르 호르스트란 작가입니다. 산유국으로 복지국가로 유명한 이웃 스웨덴 사람들마저 자주 취업자리를 알아본다는 노르웨이 출신이에요. 노르웨이하면 노르딕 느와르의 거장 중 하나인 요 네스뵈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죠. 그래서 그런가, 읽으면서 요 네스뵈의 작품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마도 주인공이 같은 경찰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 빌리암 비스팅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만큼 뛰어난 형사이긴 하지만 한없이 외롭거나 위태롭진 않습니다. 둘 다 아내는 없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으로 비스팅에겐 리네란 딸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을 이루는 것의 힘겨움을 보여주는 해리 홀레와 딸에게 인정받는 아버지라는 자리를 어엿하게 유지하는 비스팅은 달라도 너무 다르죠. 그런 점이 요 네스뵈의 작품들과 차이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며 작품의 분위기 또한 한결 더 차분하게 만듭니다. 해리 홀레 시리즈가 '고독'을 강조하고 있다면 호르스트의 비스팅은 '협력' 혹은 '연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에 소개된 소설인 '사냥개 자리'에서 형사인 아버지 비스팅과 기자인 딸 리네가 함께 수사를 하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수많은 스릴러 소설을 읽었습니다만 이렇게 하나의 사건을 가족이 함께 수사하는 건 처음 보았으므로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 작품이었습니다.
줄거리는 대략 이러합니다. 노르웨이 최고의 민완 형사 빌리암 비스팅. 어려운 사건을 여럿 해결한 공로로 TV 출연까지 하면서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최근 그에게 최초로 명성을 안겨다 주었던 17년 전에 일어난 '세실리아 린데 실종 사건'의 핵심 증거가 위조되었다는 것이 그 증거로 체포된 진범의 변호사에 의해 제기됩니다. 언론의 무차별적인 공세 속에서 뚜렷한 증거는 없었지만 비스팅은 문책을 받고 정직을 당하게 됩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보다 그 당시 진범의 알리바이를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다는 미진함 때문에 그는 다시 한 번 과거 사건을 수사해 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그 즈음, 살인 사건이 하나 일어납니다. 피해자는 50대 남자였는데 리네는 그 사건을 취재하다가 자신만이 발겨한 단서를 찾아내 그것을 쫗다가 그만 범인과 마주쳐 공격을 당합니다. 이렇게 비스팅은 비스팅대로, 리네는 리네대로 서로에게 닥친 사건을 추적해 가는데, 놀랍게도 두 사건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과연 그 사건들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그리고 비스팅은 과연 증거를 조작했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한 해답은 뜻밖의 반전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여러가지 신선하게 여겨지는 시도로 가득한 이 소설은 과연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읽힙니다. 주인공 비스팅은 밖으론 냉철한 판단력과 뛰어난 수사 능력을 지닌 민완 형사로 보이지만 안으론 지금 곁에 있는 여자 친구와 소원해지는 바람에 고독해 하고 살인과 같은 비극 속에 사라져간 이들에게 경찰로서 과연 본분을 다했는지 거듭 반추하는 따스한 인간미가 흐르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건 딸 리네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 사회적 자아 이면에 고유한 자신만의 내면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독자가 여실히 느낄 수 있도록 캐릭터 정형을 참 잘했습니다. 거기다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도 과연 경찰 출신 작가답게 무리한 설정 하나없이 얽힌 실타래를 차근차근 자연스럽게 풀어나갑니다. 전개가 뒤로 갈수록 뜨거워지는 요 네스뵈와 다르게 예른 리르 호르스트는 독자를 조용히 침전시킵니다. 그 속에서 소설이 묻고자 하는 질문, 과연 정의에 복무하는 경찰의 본분은 무엇이며 그걸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지요. 주저리 주저리 말했지만 '사냥개 자리'는 한 마디로 읽어 볼 만한 작품입니다. 독특한 맛을 주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의 스릴러를 찾으셨다면 노르웨이에서 불현듯 찾아온 이 손님을 한 번 맞이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