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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윤리경영 리더십 - <NHK 100분 명저>의 저자에게 배우는 논어와 주판 철학
모리야 아쓰시 지음, 이주영 옮김 / 예미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답이 보이지 않던 메이지 시대에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답을 만들어 갔습니다. 마찬가지로 답이 보이지 않는 요즘 시대에도 참고가 됩니다."
구리야마 감독이 말한 '사부사와의 철학'이란 무엇일까요? (-7-)
3.파리만국박람회에서 일본 대표단으로 참가한 시기: 이렇게 해서 시부사와는 프랑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외세를 배척해야 한다고 직접 말했던 시부사와가 오히려 직접 가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유럽에게서 큰 영향까지 받으며 변화해 나갔습니다. (-24-)
일반적으로 시부사와는 '실업가'로 불립니다. 그런데 정작 시부사와가 오랫동안 다양하게 몸담았던 분야는 '사회사업'이었고 노벨 평화상 후보가 된 것은 '민간 외교'에 기울인 노력 덕분입니다. (-65-)
원래 시부사와는 유교식 교육을 받았기에 여성은 집에서 남성을 내조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여성관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런 시부사와의 생각을 바꾼 것이 일본 여자대학의 창시자 나루세였습니다. (-88-)
메이지 시대에 살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1840년에 태어났으며 1931년에 사망했다.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생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그를 '일본 자본주의 설계자' '일본 경제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보수적인 유교사회 일본을 자본주의 사회로 바뀌게 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일본 지폐 얼굴로 나오는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 중 첫 번째로 손꼽히고 있는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윤리 경영은 논어와 주판에 잘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보수적인 유교적인 가치관과, 합본주의에 의거한 실리적인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가정에 충실하였던 여성을 사회로 받아들이는 데 영향을 줬던 인물이다.
메이지 유신 시대에 부유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일본사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버리고, 스스로 변화를 선택했다.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새 시대의 변화를 우선하였다. 파리만국 박람회를 다녀온 이후의 변화였다,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큰 꿈을 펼쳤으며, 큰 꿈을 가진 기업가가 되었다. 그가 기업가로서,사회적 가치를 우선하는 사회 활동가로 재도약하게 된 이유다. 즉 자신이 가진 특권을 버림으로서,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크게 버려야 크게 얻는다는 것을 그는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100여년 전에 태어난 그가 21세기 우리 앞에 등장한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도 지금도 불확실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그가 추구하였던 도덕 경영,윤리경영은 지금도 유효하다. 요령이 아닌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것, 스스로 무언가 하겟다는 굳은 결심이 세사상을 바꾼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고,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