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좋지 않다.

처음 한두번은 진지하게 책 얘기를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친목모임으로 변질돼 술만 마셨으니까.

내가 몸담았던 동아리의 '졸업생 모임'에서 독서모임이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도

그다지 참여하고픈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첫 모임을 간 이유는 거기서 다루는 책 세권 중에 내 책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었다.

참석자 중 한 명이 "그래도 첫 모임은 우리 동아리 사람이 쓴 책으로 해야지 않겠느냐"고 우겼다는데,

그런 얘기를 듣고도 안가면 나쁜 놈 같아서 마지못해 가겠다고 했다.


막상 가보고 나서 놀랐다.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을 줄 알고 대충 앉아있다 밥이나 사야지 했는데,

이게 웬걸. 열명의 참석자 중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 다섯명이나 됐고, 

가장 젊은 후배도 마흔을 넘겼다.

나이가 많은 것의 좋은 점은 살아온 경험이 많다보니 책을 읽고 난 뒤

자기 경험과 결부시키기가 쉽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들 중 몇 명은 어린 시절 몇 트럭분의 책을 읽은 독서광이었기에

토론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나도 모르게 '다음 모임에도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해 버렸다.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은 박범신의 <소금>에 대한 얘기를 할 때였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소금>은 가족들한테 헌신만 하다가 버려지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본 소설이다. 

몇트럭의 책을 읽었던 이의 말, "사건을 너무 많이 배치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재미는 있을지언정 소설로서의 가치는 낮다."

그와 필적할 책을 읽은 이 역시 이 점에 동의했는데,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소설을 읽을 때 늘 비판적으로 읽어요. 이 소설의 문제점은 뭐다, 이런 것만 눈에 들어와요."

이유가 뭘까. 어릴 때 소설의 전범이라 할 고전을 너무 많이 읽다보니

웬만한 책이 아니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리라. 

반면 적당한 양의 독서를 한 친구의 말은 이랬다.

"어릴 적 아버지가 우리한테 그리 잘해준 적이 없어요. 그래서 원망만 했는데,

이 책을 보니 아버지한테 좀 잘할 걸 그랬다 싶네요."

나 역시 거기에 동의했다.

"아버지한테 맞고만 자라서 원망만 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저도 이 책을 보면서 아버지가 저한테 잘해주신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됐어요."

독서광들과는 달리 윗 친구와 나는 그닥 고전을 많이 읽지 않았고,

그 덕분에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게 이 소설이 가슴에 와닿은 이유였다. 

서른까지 거의 책을 읽지 않고 지냈다는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데,

그게 유리한 점도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다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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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08-22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본인의 책이 토론되는 모임에 참석하는 기분은 어떨까요. 재미있었다 하시니 역시 마태우스님이시네요. 저라면 초긴장될 것 같은데요^^;

마태우스 2015-08-23 02:08   좋아요 0 | URL
앗 달밤님이닷. 그 책이 집나간 책이었는데요, 뭐 친한 사이에 설마 나쁜 말 하겠나 싶었어요. 독서광들은 그닥 좋지 않았던 표정이었고 아예 언급을 안하더군요 ^^ 아는 사이가 좋아요!

살리미 2015-08-2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요즘의 고민은 책을 읽으면 좋은 점만 보이고 비판할 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직 내공이 쌓이질 않아서 그런거겠죠. 좀 폼나게 비판도 해가며 이른바 독후감에서 서평으로 진보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은데.. ㅎㅎ 아직까지도 모든 작가들은 다 위대해만 보입니다. 저는 한페이지 감상을 쓰는 것 조차 어려우니까요^^ 독서모임에서도 작가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는 사람이 훨씬 똑똑해보이는데 저는 그저 여기가 좋았네 저기가 좋았네 말해주는 수준이에요^^ 마태우스님 글을 읽고나니 묘하게 위로가 되기도 하네요.

마태우스 2015-08-23 12:50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책을 읽고나서 씨니컬하게 비판하는 게 멋져 보여요. 책 많이 읽으면 그게 될 줄 알았는데, 아무리 읽어도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좌절하고 그랬는데, 책이란 게 자기 느끼기 나름이잖냐 이러면서 스스로를 위로했지요. 우리같은 사람도 있어야 저자도 행복하지 않겠어요^^ 암튼 반갑습니다! 동지님.

자몽 2015-08-2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거의 마흔까지 책을 읽지 않았다는 컴플렉스
때문에 독서토론이나 글쓰기에 엄청난 부담을...하지만 중년이되어 즐거운일을 발견했기에 잘하고픈 욕심을 버리지 못하네요
그래서 독서토론은 맘편히 얘기하며 제게는 힐링하는 시간이랍니다.

집나간책 너무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읽는내내 혼자 빵빵 터졌습니다.읽고나니 유쾌하신 인간 마태우스님이 궁굼해지더군요..
나오신 tv프로그램 다시보기해야 할까봐요..

마태우스 2015-08-23 13:44   좋아요 0 | URL
어머나 반갑습니다. 저는 서른이니 저보다도 십년 더 늦게 시작하셨군요. 나이가 어떻든간에 살아생전 책의 즐거움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 같아요. 글구 저기 소개 안한 제 책이 집나간 책이라는 거 어케 아셨어요. 부끄럽네요^^ TV 프로그램 다시보기 하시면 실망하실 거예요. 전 TV에선 하나도 못웃겼거든요. 글로 승부하려고 합니다.

자몽 2015-08-23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 서민 교수님을 모를 수가있나요!!(교수님 의 재치있는 글들은 읽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집나간책 읽다가 알라딘 서재에서 활동하시는것 같길래 반가운 마음에 친구 신청을.. ㅋㅋ
반갑습니다^^
 
차단
제바스티안 피체크.미하엘 초코스 지음, 한효정 옮김 / 단숨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알라딘 통계에 따르면 지난 16년간 내가 구입한 책은 1658권이다.

1년에 100권 가량으로, 한 달에 열권도 채 읽지 못한다는 얘기다.

산 책을 모두 읽은 게 아니라는 걸 감안하면 내 독서량은 더 떨어지는데,

가장 슬픈 얘기는 내가 80까지 살아도 5천2백권을 더 만나볼 수 있단다.

눈이 밝고 체력이 좋을 때 한 권이라도 더 읽자며 스스로를 채찍질해 본다.

또한 이 통계는 내가 제일 즐겨 읽는 분야가 한국소설이고, 2위가 추리/미스터리소설이라는 걸 알려 줬는데,

이 정보를 접하기 전까지 난 추리/미스터리가 내가 제일 선호하는 분야인 줄 알았다. 


엊그제 부산에 갈 때 집어든 책도 스릴러에 속하는 <차단>이었다. 

이 책은 제바스티안 피체크가 법의학자인 미하엘 초코스의 자문을 얻어 쓴 스릴러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 놓고도 오랫동안 책장에서 방치돼 있었다. 

하지만 책을 펴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난 이 책에 흠뻑 빠졌고,

그날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을 왕복하는 4시간여 동안 한 순간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전 남친이자 변태인 스토커에게 시달리는 20대 여자가 있고,

자기 딸이 납치된 40대 남성 법의학자가 있다.

딸을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죽은 시체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시체가 하필이면 20대 여성이 피신해 있는 섬에 있다.

그래서 법의학자는 우연히 연락이 닿은 그 여성에게 부검을 의뢰한다.

생전 안해본 부검과 스토커 양쪽을 상대해야 하는 여성 쪽이나,

온갖 어려움을 헤쳐가며 그 섬에 가야 하는 남성이나 어느 쪽이 더 어려운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지경. 

책은 마지막까지 스릴이 넘쳤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제목이었다.

‘차단’보다는 ‘처단’이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책에 나온 의미있는 대목들을 짚어보자.

1) 저자 피체크는 사귀는 남자가 스토커인지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웨이터의 의미 없는 겉치레 인사에 화를 낸다거나, 문자메시지에 더 빨리 대답하지 않는다고 질책할 때에도, 그녀는 그의 사소한 질투심을 단순히 웃고 즐기며 흘려보냈다.” (25쪽)

내가 아는 분 중에도 이런 분이 있었다.

데이트 도중 아는 선배를 만나 잠시 얘기를 했더니 남자가 주저앉아 울더란다.

어떻게 다른 남자와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그 결과 그녀는 매우 힘든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런 단서가 나오면 잘 달래서 헤어지자.


2) “그 늙은 마녀가 그놈에게 3년 반을 선고했어.”(179쪽)

스포일러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중심에는 

십대 여자애를 성폭행한 뒤 죽음으로 몬 파렴치범이 3년 반 징역형을 받은 데 있다. 

우리나라만 그런 줄 알았는데 독일도 마찬가지라는 게 놀라운데,

혹시나 안믿을까봐 피체크는 책 맨 뒤에 실제 판결 사례들을 적어놨다.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동 성폭행범은 재범을 저지를 확률이 무지 높기 때문이다.

일산 어린이 납치 미수사건은 여자 어린이 3명을 성추행해 10년을 징역살이하고 출소한 지 2년인 전과자의 소행이다. 지난 2006년 용산의 10세 여자 어린이 성폭행 살해 범인도 50대 성추행 전과자였다. 그는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5개월 만에 사건을 저질렀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아동상대 성폭행범의 재범률이 일반 범죄보다 10% 포인트 높은 50%나 된다.”(2008. 4. 2. 매일신문 사설)

혜진. 예슬이가 죽고 난 뒤 여기에 대한 대책을 만든다고 난리를 피웠지만,

막상 이루어진 건 별 게 없었고,

그 뒤 조두순이란 범죄자는 술을 마셨다는 게 정상참작돼 12년의 형량을 받았다 (5년 뒤 출소다!)

사회를 정상적인 곳으로 만들려면 비정상적인 놈들은 영원히 격리하는 게 답이 아닐까?


3) 사건의 주인공 법의학자는 조수를 자청한 재벌에게 이런 말을 한다.

법의학자: 자네에게 누가 이런 말 한 적 있나? 자네 지나치게 목을 꼿꼿이 세우고 상대와 이야기한다고 말일세.

재벌: 그럼 교수님께도 누가 이런 말을 드린 적이 있나요? 사춘기 소녀들처럼 아주 유치한 수준의 유머감각을 가지고 계신다고요. (196-197쪽)

재벌의 말도 근거가 있는 것이겠지만, 이 상황에서는 부적절하다. 

너무 거만하다고 했으면 거기에 대해 반박을 해야지, 

“너도 유머감각이 유치하다”라고 물타기를 시도하다니!

내가 물타기에 민감한 건, 메르스 대처를 잘 못했다고 대통령을 욕했을 때

연평해전 어쩌고 하면서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에 질린 탓이다. 


책 뒷날개를 펴보니 피체크의 소설이 2권이나 더 나와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예정이란다.

피체크의 책들은 내가 앞으로 만날 5천여권 중 일부가 될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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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2015-07-1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밝고 체력이 더 좋을 때...ㅠ

마태우스 2015-07-19 15:02   좋아요 0 | URL
저도 이거 쓰면서 슬펐어요 흑흑.

재는재로 2015-07-1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알사냥꾼의작가의신작이네요언제발매됗지 정보감사 나중에읽어봐야겠네요
공소시효도그렇고 소년법도 그렇고 얼마전소녀살인사건을저지른가출소녀에게엄중한처벌을했죠 죄를저지른사람에게는 그만큼 의합당한처벌이
최근읽은 검찰측죄인을봐도 법을테두리를빠져나가는인간이많아서 유전무죄무전유죄

마태우스 2015-07-19 15:03   좋아요 0 | URL
그죠 눈알사냥꾼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을 썼더라고요. 무조건 사서 읽으려고요. 유전무죄라는 것도 있지만, 일단 성범죄에 대한 형량이 너무 낮아요. 조두순도 그리 많이 가진 자는 아닌 듯한데, 5년 후에 출소한다니 무섭지 않나요... 제가 아버지면 나오는 순간 어떻게든 했을텐데,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도 방황하는 칼날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죠.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너무 봐준다고요...

2015-07-19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9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남희돌이 2015-07-21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부산 내려오실 때 피체크의 [차단]을 읽으며 오셨군요. 저도 이 책 읽었어요. 좀 잔인하긴 하지만 가독력은 끝내주죠. 메스를 들이대는 이런 류의 스릴러를 더 좋아하시려나^^
http://blog.aladin.co.kr/fineday/7659691
부산 강연 후기 남겼습니다.
제 블로그에도 발자취를 남겨 주시죠~~
 















황우석에 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네티즌들은 입에 거품을 문다.

예를 들어 황우석이 미국에 특허를 신청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치자.

“황우석이 정말 훌륭한 과학자인데, 못난 이 나라가 그를 끌어내렸다.”

“우리나라가 줄기세포 기술 1위였는데, 이제 후진국 되는구나.”

특허라는 게 신청만 하면 거의 다 받아들여지는, 별 거 아닌 권리인 걸 모를 수 있지만,

줄기세포가 가짜로 밝혀진 지 10년이 다 되도록 황우석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집단무지. 무지몽매. 정신박약 등등 내가 아는 어떤 4자성어를 동원해도 

표현할 길이 없다. 


강양구 기자 등이 기획한 <과학수다> 1권에서 가장 흥미로운 분은 바로 류영준 교수다.

황우석의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걸 제보했던, 그래서 한동안 피신을 당해야 했던 류영준은

현재 강원의대 교수로 재직 중인데,

그가 실명을 밝히면서 자기 목소리를 낸 건 <과학수다>가 처음이란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많은 네티즌들의 착각과는 달리 줄기세포 세계 1위국인 적이 없었다.

바로 이때 (2000년대)가 한국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선두 그룹을 한창 쫓아갈 때였어요. 한 5위권 정도나 될까요?” (157쪽)

그나마도 줄기세포 연구가 나온 지 얼마 안된 새로운 분야였고,

우리나라가 불임클리닉으로부터 난자를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거였단다. 

게다가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 비해 판이 큰 것도 아니었고,

2012년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가 노벨상을 받은 테마는 ‘역분화줄기세포’였다. 

즉 줄기세포 중에서 배아줄기세포는 그저 하나의 가능성일 뿐,

네티즌들의 착각처럼 수백조의 가치를 지닌 엄청난 기술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지금 황우석은 러시아에서 매머드를 복제한다고 그의 전매특허인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역시나 “그것 봐라. 황박사는 역시 대단한 분이야” “미국이 수백억을 주면서 스카우트하려고 했는데 애국심 때문에 안갔지” 등등의 댓글을 단다.

애국심 때문에 미국에도 안간 사람이 왜 러시아와 손을 잡았는지 미스테리인데,

황박사가 계속 언플을 하는 것도 국제적으로 사기를 친 사람을 영웅으로 모시는 이런 네티즌들이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인 듯하다. 

황박사는 이전에 백두산 호랑이를 복제한다고 큰소리를 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랑이 핵을 호랑이 난자에 넣어야 하는데 황박사는 희한하게도 고양이 난자를 구하러 다녔단다.

선배들이 관악산 고양이까지 잡으러 다녔다고 해요. 고양이가 얼마나 사나워요. 절대 안잡혀요. 또 고양이의 생리상 배란은 발정기 때나 하니 성숙한 난자를 구하기도 어렵죠.” (161쪽)

결국 호랑이 핵을 돼지 난자에 집어넣으면서 “절대 발표 때는 돼지라고 하지 않고 극비라고” 했단다.

그랬다 하더라도 호랑이 핵이 든 돼지 난자는 호랑이 자궁에 넣어 키우는 게 맞지만, 그냥 돼지 자궁에 넣었다! 

여기서 다시 황박사의 특기가 나온다.

호랑이 핵이 든 돼지 자궁에 돼지 수정란도 같이 넣었다. 왜?

초음파 사진이 착상이 되는 걸로 나오면, 그게 호랑이 핵이 든 돼지 난자인지, 돼지 수정란인지 구분할 수 없잖아요.” (162쪽)

돼지 자궁에서 돼지가 자라는 걸 호랑이인 것처럼 속일 생각이었던 것. 

우리는 지금 이런 과학자를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다.


오늘, 또 한편의 뉴스가 나왔다.

황우석이 매머드 세포의 재생에 실패해 다른 대학에 재생을 부탁했다.

그런데 재생이 성공하니까 그 소유권은 자기한테 있다면서 그들을 검찰에 고발했다는 것. 

공동연구의 개념조차 모르는 네티즌들은 역시나 황박사를 옹호하기 바쁜데,

이런 광경이 반복되는 걸 보고 있자니 그저 씁쓸하다.

“여러 사람을 잠깐 속일 수 있다. 한 사람을 오래 속일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다.” 

여기에 한 구절을 더 붙여야 한다.

“단, 한국에서는 여러 사람을 겁나게 오래 속여먹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아무리 무지한 자들도 댓글로 자기 의견을 표출할 수 있고,

심지어 투표까지 할 수 있다!

그 결과 황우석은 십년째 영웅으로 군림하고 있고, 이 글과는 관계 없지만,

그분께서 현재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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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07-16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방금 과학수다1을 읽었는데 황우석 교수 이야기는 정말 한숨이 나더라고요.. 제보자 영화를 보면서도 분개했지만 이 책의 줄기세포 부분은 진짜 흥미로웠어요. 이젠 안타깝다 못해 불쌍해지기까지 합니다. 한참 황우석박사 잘 나갈때 공연장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서 싸인받고 사진찍고 했던 기억도 있는데 집안의 가보가 될 줄 알았던 싸인은 벌써 폐기처분 되었고요. 그나저나 과학수다가 재미없을 줄 알고 1권만 구입하는 엄청난 실수를 범해버린 바람에 그 유명한 서민교수님과 정준호 박사님의 수다를 못들은게 한이라서 지금 장바구니에 담고 오는 길입니다요~^^

마태우스 2015-07-16 00:54   좋아요 0 | URL
앗 오로라님, 저 세권 있는데 제가 2권 보내드릴게요 빨랑 장바구니에서 지우시고요, 주소랑 전번 주세용. 저 세권 받았거든요. 참참참, 황우석 사인 받았다고요. 흠흠. 저도 한때 황빠였다니깐요. 조작 사실이 들통나고 나서 얼마나 민망했던지.

살리미 2015-07-16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런 영광이!! 정말 그래도 되나요? 전 알라딘에서 서민 교수님 서재 글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책까지 주신다니 너무 행복해지면 어쩌죠? 갑자기 너무 떨려요^^ 책 안읽는 우리 애들에게 일단 자랑부터 해야겠어요^^

마태우스 2015-07-16 01:05   좋아요 0 | URL
아유 저같은 놈한테 떨다뇨. 아내한테 늘 말하는 건데요, 전 그냥 벌레예요^^ 기생충학자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긴 한데, 아무튼 너무 미안해 마시고 주소 주세용. 안그래도 책 세권이나 받아가지고 어찌해야 하나 이러고 있었답니다.

2015-07-16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6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7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9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5-07-28 0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속았던 일인입니다. 사기와 조작도 오래 하다보면 이골이 나서 계속 그걸로 먹고살게 되는 예를 황우석씨나 리명박씨, 박근혜씨가 보여주고 있네요.ㅎ 자주는 못 구하지만, 어쨌든 책 주문할 때 잊지 않도록 저도 넣어갑니다. 저 드디어 기생충 열전을 이번에 구했습니다. ㅎㅎ 기대하고 있습니다.

프레이야 2015-07-28 06:16   좋아요 0 | URL
ㅎㅎ 트란님‥ 리명박‥아침부터 큰웃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 마태우스님 의 기생충열전을 이미 갖고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마태우스 2015-07-28 09:1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트란님, 기대에 부응하는 책이어야 할텐데 갑자기 걱정이 되네요.ㅠㅠ 저는 정직하게 살아야 할텐데요...ㅠㅠ

마태우스 2015-07-28 09:13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도 사셨군요 부끄럽습니다ㅠㅠ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15-07-28 09:18   좋아요 1 | URL
츠카야마 아키히로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한국어로 읽으면 월산명박이라고 하네요.ㅎㅎ

둥지네 2015-08-06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기도 믿고싶은 것만 믿으시는 분? ㅋ ㅋ ㅋ

마태우스 2015-08-22 23:27   좋아요 1 | URL
황빠님이 오셨네요. 제가 원래 황빠와는 대화를 안하는데, 그래도 어려운 발걸음 하셨으니 답글 달아 드립니다.
 

어제 잠을 못잔 탓에 약간 빨리 퇴근을 했더니 아내가 CGV 채널을 보고 있다.

“여보가 좋아할 만한 영화야. 지금 막 시작했어.”

정말 영화는 딱 내 스타일이었고, 날 엄습했던 잠은 어디론가 도망간 뒤였다. 

영화에 나오는 ‘소설 속 소설’의 주인공 ‘로리’는 작가가 되고 싶어하지만,

어느 출판사에서도 책을 내주지 않는다. 

로리는 생활비를 빌리러 아버지한테 가고,

“넌 재능이 없다”는 핀잔을 받는다.

이 대목에서 난 책 다섯권을 망해먹고 난 뒤 어머니가 하셨던 말을 떠올렸다.

“이제 책 그만내면 안되냐? 네 책 사주기 힘들다.”

로리는 자기가 작가로서 재능이 없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다른 생계수단이 없었던 그는 결국 출판사에 취직해 허드렛일을 한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계속 스포일러이니, 주의하시길.

로리는 사귀던 여자와 결혼해 파리로 신혼여행을 가는데,

그곳 골동품점에서 낡은 가방을 하나 구입한다.

나중에 열어보니 그 가방에는 엄청난 소설의 원고가 들어 있고,

그 소설은 자신이 읽은 어떤 소설보다도 뛰어났다.

심지어 아내는 그 소설을 읽고나서 ‘당신이 드디어 해냈다’며 눈물을 흘린다.

계속되는 생활고로 고민하던 로리는 결국 그 소설을 자신의 것인 양 출간하고,

그 소설은 베스트셀러뿐 아니라 권위있는 상을 휩쓴다.

일단 성공하면 그 다음부터는 탄탄대로를 걷기 마련,

로리가 이전에 썼던 작품들도 차례차례 출간이 된다. 

그러던 중 한 노인이 접근하는데, 노인은 그 원고를 자신이 썼으며,

자신의 아내가 그걸 기차에 놓고 내리는 바람에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물론 그 노인은 이제와서 그걸 보상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하면서,

단지 당신이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한다고 한다. 


로리의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이대로 묻을 것인가, 아니면 잘못을 바로잡을 것인가.

출판사 국장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국장은 그에게 왜 그러냐며 뜯어말린다. 

여기서 국장이 그에게 한 말은 “온갖 언론들이 너를 물어뜯을 것” “실수 안해본 사람이 어디 있냐” 등이었는데,

만일 내가 감독이었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었을 것 같다.

“한국이란 나라에는 신모 작가가 있어. 그 작가는 표절이 들통났는데도 계속 아니라고 우기고 있잖아. 자네는 좀 더 통 큰 표절이긴 하지만,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데 먼저 고백할 필요가 뭐가 있어?”

네이버 평점 7.9에 불과한 이 영화를 재미있는 본 건,

내가 앞으로 계속 책을 내기로 마음먹은 탓일 것이다. 

좋은 책을 쓰고 싶은데 재능은 조금 떨어지는 로리의 심정이 절절히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책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책들은 나무의 희생에 값하는 그런 책들인 것일까.

영화를 보고 난 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엄습하는 졸음에 정신을 잃었다. 

잠에서 깨보니 온갖 상념들은 다 사라지고, 내일 오전까지 보낼 원고마감이 날 기다린다. 긴 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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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07-07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제목이 더 스토리 인거죠
찾아봐야겠어요
제 스탈

마태우스 2015-07-07 10:18   좋아요 1 | URL
사실 책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그 영화 좋아하지 않을까 싶네용.

살리미 2015-07-07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래들리 쿠퍼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저도 나름 재미있게 본 영화에요. 선택에 따르는 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죠.

마태우스 2015-07-07 10:19   좋아요 0 | URL
아 네 맞아요 브래들리 쿠퍼가 나오죠. 다 보고나니 낡은 가방을 찾으러 골동품점을 뒤져야 할 것같다는...^^

푸른살이 2015-07-07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네요. 더스토리

마태우스 2015-07-07 10:1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푸른살이님 이미지가 아주 멋지십니다!

푸른살이 2015-07-07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ㅋ

해피북 2015-07-0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이야기인듯 무심히 읽다가도 문제를 꼬집어 이야기하시는 솜씨에 미소짓게 되네요 마태우스님의 글을 책에서나 서재에서나 변함없이 만날 수 있어 참 좋아요 ㅋㅂㅋ,, 이 영화 결말이 궁금해 보고 싶네요. 맛있는 식사 하세요^~^

마태우스 2015-07-16 00: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해피북님. 결말이 궁금하시면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글쎄 그 작가가 말이죠.... 으윽....드, 등에 칼이....

페크pek0501 2015-07-09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책 그만내면 안되냐? 네 책 사주기 힘들다.”

“한국이란 나라에는 신모 작가가 있어. 그 작가는 표절이 들통났는데도 계속 아니라고 우기고 있잖아. 자네는 좀 더 통 큰 표절이긴 하지만,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데 먼저 고백할 필요가 뭐가 있어?”

제가 하하하~~~ 웃은 대목이올시다.

마태우스 2015-07-16 00:38   좋아요 0 | URL
어머나 페크언니 답변이 늦어서 정말 죄송해요. 제가 좀 잘해야 하는데ㅠㅠ 통 못그러고 있네요. 근데 페크언니 비밀댓글로 주소 좀 가르쳐줄 수 있나요. 제가 전에 알았었는데 휴대폰 분실 땜시 날라갔어요.

2015-07-15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6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6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어스트가 쓴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를 보면 수학을 배우는 이유가 나와있다.

책이 옆에 없어서 정확한 문구가 생각 안나지만, 대충 이런 거였다.

회사에서 상사가 정말 쓸데없는 일을 시켰을 때,

"난 수학도 배웠는데" 이러면서 묵묵히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마음에 담고 시간 날 때마다 이 말을 써먹었다.

 

어제, 우리 학교 옆에 있는 북일여고에서 강의를 했다.

진로에 대한 강의였고, 난 "공부가 가장 쉽고 편한 길"이라는 보수적인 내용을

학생들에게 역설했다.

그 와중에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는데,

강의가 끝나고 나서 내 강의를 주의깊게 들으시던 교장 선생님이 연단에 올라오신다.

교장 선생님은 마이크를 들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학은 아주 중요한 과목입니다. 수학을 배워야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어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옆에 있던 학생에게 물었다.

혹시 교장 선생님 담당과목이 수학이냐고.

그렇단다.

앞으로 북일여고를 다시 못올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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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4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5-06-25 09:38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제가 좀 성향이 이상해서, 그런 것들이 저한테 큰 힘이 됩니다. 제가 쓴 글이 맞다는 걸 그분들이 입증해 주는 거라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님의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우린 서로가 서로의 팬...!

moonnight 2015-06-2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장면이 상상이 되어서 빵 터졌어요^^; 고교때까진 수학을 참 좋아했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_-a

마태우스 2015-06-25 09:39   좋아요 0 | URL
역시 님은 수학을 좋아하셨군요. 보통 분이 아니다 싶었는데....존경합니다

해피북 2015-06-24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필이면 교장선생님이 ㅋㅂㅋ,,,

마태우스 2015-06-25 09:40   좋아요 0 | URL
글게 말입니다. 수학 가르치시는 줄 알았다면 수학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을 텐데...

아무개 2015-06-24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쓸데없는 일을 참고 못하는 이유가
수학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군요.
-..-++

마태우스 2015-06-25 09:40   좋아요 0 | URL
그, 그런가요. 뭐 그래도 아무개님 충분히 훌륭하신 분입니다!!

단발머리 2015-06-24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왜 수학을 배워야하냐`며 울분을 토하는 어린이가 저희 집에 한 명 있어서요.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까요? ㅋㅎㅎㅎㅎ

마태우스 2015-06-25 09:42   좋아요 0 | URL
아니오 안됩니다. 그 책 읽으면 수학이 더 하기 싫어질 거예요. 귀차니즘의 대명사격인 분의 책이라....^^

blanca 2015-06-24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는 수학과 애증의 역사가. 수학 공부만 했는데 수능에서는 수학 때문에 진로가--;; 그래서 도망간 회사가 또 수학을 안 하고는 못 버티는 곳.

그래서 제발 제 아이들 만큼은 수학으로 고생 안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해도 해도 안 되더라고요.

마태우스 2015-06-25 09:43   좋아요 0 | URL
수능에서 수학이 배신했군요 저도 수학 못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수능에서 수학을 망치는 바람에, 진로가 꺾일 뻔 했습니다 ㅠㅠ 수학에 대해선 대부분 좋은 추억이 없더라고요.

순오기 2015-06-24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삼남매와 나는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사는데 불편하지 않다고... 어려운 수학은 필요한 사람만 배우게 하면 좋겠다고 말해요.ㅋ

마태우스 2015-06-25 09:44   좋아요 0 | URL
오오 선진적인 어머니십니다 역쉬.... 사실 미적분 써먹을 일이 뭐 얼마나 되겠어요. 그 생각을 하면 수학 때문에 고생한 게 좀 아까울 때도 있죠

순오기 2015-06-25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교장샘 전근가든지 곧 퇴직하든지 하실테니 걱정마세요~ 후임은 절대 수학교장이 아닐테니까요!!ㅋㅋ

무스탕 2015-06-25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어보다 수학! 이라는 울 정성은 제게도 미스테리에요. ㅋㅋ

clavis 2015-06-2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국문과로 전과시켜달라고 그 대학 총장님을 찾아갔는데(자계서의 효과)그분이 용캐 시인이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