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교수님의 책을 읽고 난 뒤부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성차별에 관심을 뒀던 것 같다.
알면 알수록 그 심각성에 놀랐고,
내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의 절반 이상이 남성으로 태어난 덕분이란 것도 깨닫게 됐다.
메갈리아라는 사이트가 만들어졌을 때,
거기 가입한 것도 다 그 깨달음 덕분이었다.
여혐이 남혐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런 식의 도발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혐에 일말의 파문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더 컸다.
하지만 이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이 사회에서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건 엄청난 안티를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불금쇼라는 팟캐스트에서 연락이 왔다.
메갈리아에 대한 토론을 한다며 메갈리아 찬성측 패널로 나와달라는 거다.
한참을 고민하다 답을 했다.
“저를 이렇게 보내시려 하는군요.”
메갈을 옹호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지지선언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테지만,
팟캐스트 순위에서 10위 안에 드는 불금쇼에 나가 메갈을 옹호하면
내가 온전할 수 있을까.
아마 나보다 더 적합한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거부하는 바람에
나한테까지 차례가 온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난 별로 잃을 게 없었다.
구독료로 먹고사는 시사인과 달리 난 대학에서 월급을 받고 있으며,
비천한 외모로 태어난 데다 방송에 나오기 전까지 듣보잡으로 살았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뭐 그리 대수겠는가?
아내는 너무 세게 얘기하지 말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배웅했지만,
아쉽게도 난 아내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방송이 나가고 난 뒤 불금쇼에서 연락이 왔다.
“형님, 댓글 절대 보지 마세요. 우리 방송을 듣는 100만 중 50명에 불과한 거니까요.”
실제로 댓글은 내 욕으로 도배돼 있었는데,
어차피 예상했던 거라 그리 아프진 않았다.
내게 수업을 들었다는 학생이 ‘학교 망신 시키지 말고 철 좀 들어라’라고 메일을 보냈을 때도,
내 책을 읽었다는 독자가 갖고 있는 책을 화형시키겠다고 했을 때도
심적 동요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그 팟캐스트를 듣고 여성신문에서 연락을 해왔는데,
글을 한편 써달란다.
바닷가를 걸을 때 바지가 젖을까 조심하다가
잘못해서 바지가 좀 젖게 되면
애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바다에 들어가 더 신나게 놀게 된다.
내가 딱 그랬다.
이왕 메갈리아 지지선언을 했으니, 이제 뭐가 무섭겠는가?
난 여성신문에 글을 썼고, 그것도 모자라 매주 한편씩 연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내 후배가 <기생충콘서트> 사인본을 원했다.
갖고 있는 책이 없어 알라딘에 들어왔고, 이왕 사는 김에 땡스투를 하려고 보니
이런 100자평이 눈에 띈다.
저분들은 원래 0점을 주고 싶었을 텐데
제도적으로 그게 안돼서 할 수 없이 별 하나를 준 모양이다.
별점 2점이 하한선인 게 참 다행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