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부터 2주마다 별밤에 나간다.
과거 인기가 폭발하던 그때의 별밤은 아니어서,
방송을 할 때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이걸 하기로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방송에 회의를 느끼게 된 건 소위 떼토크에 염증을 느낀 탓이었는데
작년 8개월간 라디오 고정코너를 맡으면서 라디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10명 가량이 나와 서로 말하려고 싸우는 TV의 떼토크와 달리
MC와 나, 단둘이 진행하는 라디오는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심지어 MC 말을 끊는 것도 가능하다!)
출연료가 적다는 게 라디오의 단점이지만,
라디오를 하면서 방송과 희미하게나마 연을 맺고 있다는 게
잊혀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잠재워주는 장점이 있다.
내가 별밤에서 맡은 코너는 ‘킹스맨 고민이 사람을 만든다’로,
정신과 윤대현 교수와 격주로 고민상담을 한다.
고민상담의 대가 윤교수에게 대부분의 상담이 몰리겠지만,
내 시간에도 고민이 몇 개는 올라온다.
날 신뢰해서라기보단 자기 고민을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는 사람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런데 인생경험이 쌓이다보니 내가 봐도 그럴듯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때가 가끔 있다.
엊그제 있던 일,
친구와 둘이 동업을 하는데 투자는 자기가 6을 하고 친구가 4를 했고,
막상 일은 그 친구가 다 해야 한단다.
이 경우 월급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가 그 고민남의 사연이었다.
사연으로 추측컨대 고민남의 생각은 5대 5였지만,
친구 생각은 자기가 더 갖는 게 맞다는 쪽일 것이었다.
내가 말했다.
"이 동업을 오래 끌고가고 싶은 쪽에서 손해를 봐야 합니다. 전 4대 6을 주장합니다."
MC를 보는 허경환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요? 전 5대 5가 무난하다고 생각했는데요.”
내 경험을 얘기했다.
“교수들끼리 공동연구를 하잖아요. 그런데 1저자를 누가 할지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져요.
그럴 때 저는 1저자와 주저자를 모두 그쪽에다 줘버리고, 저는 3저자를 갖습니다.
그러면 공동연구가 오래 지속될 수 있어요.
1저자 제가 갖고 공동연구가 파국을 맞는 것보단
5저자를 갖더라도 여러 개의 공동연구를 하는 게 훨씬 낫거든요.“
노래를 하나 듣고 다른 고민을 이야기하는데,
아까 그 고민남에게 문자가 왔다.
"친구한테 전화해서 4대 6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친구가 너무 좋아하면서 맥주를 사러 온답니다.
조금 양보하니까 이렇게 좋은 것을. 덕분에 고민이 해결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연을 읽을 때 머리칼이 쭈뼛했다.
한 건 했다는 성취감이 아니라,
내가 하는 말을 주의깊게 듣고 삶에 적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워서다.
고민상담을 할 때 늘 진지하게 하는 건 아니다.
여친이 애를 가졌는데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저희 아버지도 준비가 안됐는데 저처럼 훌륭한 아들을 만들었잖아요.
아이를 위한 준비는 아무리 해도 부족하고, 살아가면서 계속 노력해야 하는 거예요.“
서른인데 직장도 없고 매사 자신감도 없다는 분에겐
“전 마흔다섯에 떴어요. 서른이면 아직 젊습니다”라며 허세를 부렸는데,
앞으론 하는 말에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겠다 싶다.
참, 허경환이 이렇게 말했다.
“맥주를 마시고 나선 6을 받는 분한테 맥주를 사라고 하세요.”
난 여기에 또 반대를 했다.
“안됩니다. 이왕 쓰시는 거 맥주도 님이 사세요. 그러면 친구분이 받는 감동이 3배가 됩니다.”
물론 동업은 어려운 일이고,
이들의 동업이 지금 마음처럼 오래 갈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5대 5로 할 때보다는 4대 6으로 하는 게 몇 배는 더 오래 지속된다는 것.
앗, 그러고보니 빼놓고 안쓴 말이 있다.
내가 별밤을 하기로 한 2번째 이유 말이다.
96년 당시 가수 이적이 이문세의 뒤를 이어 별밤 MC를 맡으면서 프로그램 개편이 있었는데,
당시 약간 떴던 내가 ‘왼손잡이 클럽’이란 고정코너를 맡았다.
그땐 내가 고정코너를 할 만한 역량이 못됐던데다
왼손잡이 클럽의 개념을 잡는 게 영 어려워, 4주만에 잘리고 만다.
이번 별밤 피디는 말했다.
“별밤에 복수하셔야죠!”
벌써 4개월여가 지났고, 그동안 9번인가 별밤에 출연했다.
그럼 난 복수에 성공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