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잠을 못잔 탓에 약간 빨리 퇴근을 했더니 아내가 CGV 채널을 보고 있다.
“여보가 좋아할 만한 영화야. 지금 막 시작했어.”
정말 영화는 딱 내 스타일이었고, 날 엄습했던 잠은 어디론가 도망간 뒤였다.
영화에 나오는 ‘소설 속 소설’의 주인공 ‘로리’는 작가가 되고 싶어하지만,
어느 출판사에서도 책을 내주지 않는다.
로리는 생활비를 빌리러 아버지한테 가고,
“넌 재능이 없다”는 핀잔을 받는다.
이 대목에서 난 책 다섯권을 망해먹고 난 뒤 어머니가 하셨던 말을 떠올렸다.
“이제 책 그만내면 안되냐? 네 책 사주기 힘들다.”
로리는 자기가 작가로서 재능이 없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다른 생계수단이 없었던 그는 결국 출판사에 취직해 허드렛일을 한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계속 스포일러이니, 주의하시길.
로리는 사귀던 여자와 결혼해 파리로 신혼여행을 가는데,
그곳 골동품점에서 낡은 가방을 하나 구입한다.
나중에 열어보니 그 가방에는 엄청난 소설의 원고가 들어 있고,
그 소설은 자신이 읽은 어떤 소설보다도 뛰어났다.
심지어 아내는 그 소설을 읽고나서 ‘당신이 드디어 해냈다’며 눈물을 흘린다.
계속되는 생활고로 고민하던 로리는 결국 그 소설을 자신의 것인 양 출간하고,
그 소설은 베스트셀러뿐 아니라 권위있는 상을 휩쓴다.
일단 성공하면 그 다음부터는 탄탄대로를 걷기 마련,
로리가 이전에 썼던 작품들도 차례차례 출간이 된다.
그러던 중 한 노인이 접근하는데, 노인은 그 원고를 자신이 썼으며,
자신의 아내가 그걸 기차에 놓고 내리는 바람에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물론 그 노인은 이제와서 그걸 보상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하면서,
단지 당신이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한다고 한다.
로리의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이대로 묻을 것인가, 아니면 잘못을 바로잡을 것인가.
출판사 국장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국장은 그에게 왜 그러냐며 뜯어말린다.
여기서 국장이 그에게 한 말은 “온갖 언론들이 너를 물어뜯을 것” “실수 안해본 사람이 어디 있냐” 등이었는데,
만일 내가 감독이었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었을 것 같다.
“한국이란 나라에는 신모 작가가 있어. 그 작가는 표절이 들통났는데도 계속 아니라고 우기고 있잖아. 자네는 좀 더 통 큰 표절이긴 하지만,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데 먼저 고백할 필요가 뭐가 있어?”
네이버 평점 7.9에 불과한 이 영화를 재미있는 본 건,
내가 앞으로 계속 책을 내기로 마음먹은 탓일 것이다.
좋은 책을 쓰고 싶은데 재능은 조금 떨어지는 로리의 심정이 절절히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책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책들은 나무의 희생에 값하는 그런 책들인 것일까.
영화를 보고 난 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엄습하는 졸음에 정신을 잃었다.
잠에서 깨보니 온갖 상념들은 다 사라지고, 내일 오전까지 보낼 원고마감이 날 기다린다. 긴 밤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