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새해를 맞아 그간 미뤄뒀던 영화를 VOD로 봤다.
<또 하나의 약속> (이하 약속)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죽은,
그리고 결국 산재판정을 받아낸 황유미 씨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변호인>과 <도가니>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한때 인기를 모았던 건
꼭 그게 실화여서만은 아니었다.
일단 영화가 재미있었고, 결말을 뻔히 앎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던 게 이유였으리라.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소수의견>도 시종일관 “와~~재미있다”를 연발하며 볼 수 있었는데,
‘약속’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시작한 지 얼마 안돼 박철민의 딸 ‘윤미’가 백혈병에 걸리는데,
이게 너무 갑자기 나오는 바람에 마치 관객에게 ‘통보’하는 느낌이었다.
협상을 맡은 삼성 측 대리인도 너무 전형적이고,
소송을 대리하는 노무사의 행보도 그다지 일관되지 못했다
(끝까지 가는 의뢰인이 없다고 화를 내다가 삼성과의 싸움은 안한다고 박철민을 돌려보낸다)
그밖에도 극 전개에 어설픈 점이 너무 많다보니
분명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인데도 리얼리티가 현저히 떨어졌다.
앞에서 예를 든 실화 바탕 영화들보다 훨씬 더 센, 삼성이라는 절대권력과의 싸움,
그렇다면 얼마든지 흥미롭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엉성한 시나리오가 발목을 잡았다.
이야기에 몰입이 잘 안되다 보니 재판에서 이겨도 그 감동이 크지 않았다.
한가지 더 지적하자면 주인공 역할을 했던 박철민도,
개인적으로는 이 배우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주인공을 맡기에는 좀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예컨대 송강호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영화가 훨씬 더 생생하지 않았을까?
이런 어설픔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은 네이버 평점 9.26이라는 높은 평점을 선사한다.
상영관 잡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한 명이라도 이 영화를 더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10점 만점을 준 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분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메시지가 아무리 옳다 해도 영화는 영화로 평가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어떤 분이 이런 리뷰를 남겼다.
[예고편을 보고 그리고 영화평점이 높아 재미와 감동을 기대하고 영화를 봤는데,
감독이 너무 메시지 전달에 몰두해서 고발프로그램 성격이 짙은 영화 같습니다.
영화로 더 인기를 얻으려면 구성과 연출, 배경음악에 좀 더 완선도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결말도 정해져 있고 반전도 없어 영화 자체는 매력이 없어 좀 아쉬운 듯..]
여기에 대한 댓글은 글쓴이를 성토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피해자의 아버지가 당신의 글을 보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님 그럴거면 영화 보지마세요. 님 그리고 혹시 삼성 하고 관계 있으신거죠?
-그럼 그냥 희희낙락 즐거운 영화만 보세요. 쭈욱~~
-넌 생각이란걸 하는 얘니???? 쯧쯧.....
-또 하나의 약속은 허구를 바탕으로 억지눈물을 짜내기 위한 감동영화가 아닙니다. 팩트를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제작된, 개봉조차 제대로 기약할 수 없었던 한사람의 다큐멘터리에 가깝습니다.
먼저 본 관객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약속’은 49만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38만인 소수의견보다는 많다)
언론에서 이 영화를 다뤄주지 않은 것, 그리고 극장들이 삼성 눈치를 보느라
상영관을 제대로 잡아주지 않은 것도 이 영화가 흥행하지 못한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엉성한 완성도는 좀 아쉽다.
이왕 만드는 것, 좀 잘 만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