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지식인마을 30
신혜경 지음 / 김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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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도르노와 벤야민. 정말 여러 책에서 제법 들어본 이름들이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관련하여 대단하신 분들 같은데 솔직히 잘 모른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대학초년시절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영어를 무식하게도 모더니즘 중심주의라고 생각했었다. 포스트가 기둥이니(보통 축구에서 슛이 골대 때리면 골포스트 맞고 나왔다고 하지 않는가)모더니즘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이 아닐까라고......알고보니 포스트는 -이후라는 다른 뜻도 있었으니 포스트 모더니즘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모더니즘을 넘어선 그 이후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여튼.

 그래서 무식함을 타개하고자 지식인 마을 시리즈의 힘을 다시 빌렸다. 직장에서 구매해준 지식인 마을 시리즈, 결국 2017년 한해동안 겨우 20%정도 밖에 읽지 못했다. 아쉽다. 지점을 옮겼다고 말하긴 이상한 직장이지만 지점을 옮겼기에 올해부터 일하는 직장엔 이 시리즈가 없다. 아쉽다. 가지고 오고 싶었다.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대중문화에 대해서 정반대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단순화하면 아도르노는 대중을 기만하는 부정적, 벤야민은 그런 측면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해방의 긍정을 보았다. 둘의 공통점은 유대인이라는 점이며 유명세에 걸맞지 않게 말년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68세대의 강한 비판속에 화가나 무리한 산행의 후유증으로 죽었고, 벤야민은 2차대전속에 빠르게 운신하지 못하고 나치점령하의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건너가다 일이틀어지자 짐작이라도 한 듯 미리 준비한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런 비참한 말년을 보낸 이들의 사상이 오래도록 회자되니 인생이란 참 모를 일이다.

 아도르노의 사상의 출발점은 계몽의 변증법에서 시작한다. 당시 파시즘과 이로 인한 대량학살을 목도한 그는 이런 역사적 파국들이 예외적이고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류사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건으로 파악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파국성은 인간의 합리성에서 기인하는데 아도르노는 계몽의 출발을 인간의 자기 보존을 위한 합리적 노력에서 찾느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자기 보존을 위해 자연 지배를 시도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과 하나였던 인간의 자연성이 점차 사리지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개별적으로 약하기에 집단적 힘과 사회적 관계의 힘에 의존하는 사회적 지배의 단계이 이르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지배와 피지배를 통한 억압이 실현되며 문명이 상당 수준에 이르러 자연 위에 인간의 이성이 군림하게 된다. 자연은 원시처럼 취급되며 이로 인해 인간은 자신 안에 남겨진 감정이나 본능등의 자연을 거부하게 되는데 이것이 인간의 내적 자연의 지배다.

 즉 계몽의 변증법은 인간의 자기보존-인간의 자연지배-인간에 의한 사회적 지배-인간에 의한 인간의 내적 자연지배 순으로 이루어져나간다. 아도르노에게 계몽적 주체의 자기 유지는 어이없게도 자기 부정, 즉 자신의 내적 욕망과 충동을 부정하고 억압함으는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이런 아도르노의 생각의 기저엔 동일성 원리란 또 다른 생각이 바탕을 깔고 있다. 동일성의 원리는 주체가 대상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서로 다른 대상들의 고유성과 차이를 무시하고 대상을 계산 가능하고 대체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의 주관적 형식을 대상에 부과함으로써 대상으로 하여금 주체의 형식에 따르게끔 강제하는 것을 말한다.

 따지고 보면 계몽의 변증법 과정에도 이 동일성의 원리가 적용된다. 인간은 자연지배 단계에서는 외적 자연의 동일시에서 벗어나 이들을 개념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으로 동일성 원리를 적용했다. 사회적 지배 단계에서는 상품생산 사회의 교환 원리로 그리고 인간 자신의 내적 지배 단계에서는 문화산업으로서의 대중화로 적용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과거 예술은 시공간의 제약을 크게 받는 유일무이한 것에서 copyright가 난무하는 존재로 언제어디서나 존재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예술은 이제 더 이상 예술이 아닌 문화산업으로 탈바꿈한다. 아도르노가 보기에 문화산업은 두 가지 특성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표준화다. 이는 문화산업의 산물들이 사실상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상품과 같다는 것으로 표준적인 도식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됨을 말한다. 표준화를 위해선 플러깅이 필요하며 플러깅은 글자그대로 사람들의 머리에 플러그를 끼우고 반복해서 주입하여 문화적으로 세뇌하는 것이다.

 문화산업의 또 다른 특성은 사이비 개성화다. 표준화와 플러깅이 지나치면 사람들은 금방 질리게 된다. 그래서 문화산업은 대중에게 항상 새로워보이는 것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것을 본질적으로 표준화의 도식을 그대로 따르며 특수하고 개성적인 것으로 가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히트하는 대중가요에 공식이나 상당한 유사성이 있음은 바로 이런 문화산물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산업은 이러한 특징을 갖다보니 동일성의 원리에 의한 내적지배를 공고히하는 역할을 하게된다. 이런 문화산업에 취한 대중은 수용적이고 적극적인 반성적 사유를 상실하며 기존지배체제에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이런 문화산업의 함정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미메시스를 제시한다. 미메시스는 대상과의 동화를 뜻하는 것으로 계몽적 변증법이 동일성원리에 의해 적용되기 전, 즉 합리적 주체가 발전되기 이전 단계에서 인간이 타자와 관계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대상과 같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동일성의 원리에서 주체가 대상을 강점하는 것과는 다르게 대상에 대한 동경을 갖고 유사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대상에 대한 비교우위를 인정하는 형태이다. 이로 인해 미메시스적 인식이 가능한 문화산업이 아닌 예술은 대상을 참되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가치 있는 것이 되게 된다.

 이러한 아도르노의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며 현대자본주의 사회에 의해 침식된 대중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때문에 대중문화의 가능성, 그리고 사회에 긍정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아도르노는 넘어야하는 벽이된다.

 다음은 벤야민이다. 벤야민 역시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예술의 시공간을 초월을 중대한 변곡점으로 파악한다. 벤야민은 예술은 본디 유일한 것으로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는데 기술적 복제의 가능함으로 이것을 사라지게 된다. 과거 아우라가 있는 예술은 주체와 대상이 통일되고 교감하는 것이었다. 아도르노는 이런 아우라적 성격을 대중문화산업에 대항하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보았으나 벤야민은 정반대외 의견을 제시한다.

 아우라의 상실이 어떤 경우에는 예술의 정치적 기능전환을 위한 긍정적인 지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여기서 소외개념을 제시하는데 주체와 대상이 아우라로 인해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연결되어 있던 관계에서 단절되고 소원하게 됨으로써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오히려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예술의 정치화로 연결된다. 새로운 기술적 수단을 이용하여 예술이 해방적으로 이용되고, 새로운 기술에 잠재된 혁명적 에너지가 분출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한예를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에 등장한 영화에서 몽타주 기법에서 찾는다. 이 기법을 통해 대중에게 충격과 각성을 불러일으킴으로 대중을 집단적 주체로 형성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와 자본주의의 실패, 그리고 이로 인한 파과적 사회를 경험하며 예술의 같은 지점에서 놀랍게도 정반대의 양면성을 보았으며 날카로웠기에 이들의 시각은 오늘날에도 힘을 갖고 있다. 여러면에서 많이 배운 책이었으며 지식인 마을 시리즈중에서도 저자의 능력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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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여정 - 빅뱅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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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책을 보고나서 표지가 참 마음에 들었다. 뭔가 인간으로 나아가는 듯한 해골에, 아슐리안 주먹도끼. 그리고 저자는 종교전문가다. 뭔가 색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은 여러모로 예상을 엇나갔다. 우선 제목과는 좀 다르게 아주 초기부터 오늘날 까지의 인간 발전사를 언급하는 부류의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인간을 있게 한 초기특성의 발전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그 중 무엇이 가장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말하려고 했다.

 책에서 말하는 인간다운 특성은 상당히 여러가지가 등장한다. 장거리 달리기 능력, 요리, 예술, 도구 제작능력, 불의 사용, 이타성, 늑대를 개로 만든 능력 등이 그것들이다. 이 중 인상적인 것을 몇개 정리해보았다.

 

우선 불의 사용이다.

저자는 불의 사용을 에너지의 원천이자 변화 무쌍한 불을 인간이 인위적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의미지었다. 이런 의미화도 좋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책에서는 불의 사용을 언어나 달리기, 직립보행등 다른 것들에 비해 주변적으로 다룬 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었다.

 저자는 불의 사용으로 인간이 비로소 동물의 사체를 두고 과감히 맹수를 물리치는 것이 가능해졌고, 맹수의 보금자리였던 동굴을 쟁취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본다. 또한 불로 인해 빙하기를 이겨내고 추운 지역으로의 이주가 가능했으며 요리의 시작도 불로 인해 가능했다고 본다. 고기를 굽는등의 행위로 이미 상당히 소화과 된거나 마찬가지인 음식의 섭취로 인해 어금니와 송곳니등 공격적인 신체부위가 감소하고 턱관절이 줄어 결과적으로 머리뼈가 가늘어지고 이로 인해 두뇌의 용량이 커지는 신체구조 변화가 일어났다고 본다. 불로 인한 음식물에서의 칼로리의 섭취 증가도 이를 도왔을 것이다. 또한 불로 인해 다른 야생동물들 처럼 사냥감을 제자리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위해 이동시킬 필요가 생겨났는데 이로 인해 화로에서 함께 식사하는 인간 특유의 문화가 생겨났다고 본다.

 그리고 과거 태양에 의해 생물학적 시간이 밤과 낮으로 고정되는데서 탈피하였고, 소수의 보초가 불의 힘으로 다수를 지키고 잠을 이겨낼수 있어 안전보장이 확대되고 이로 인해 생존력과 자식의 번성이 같이 갔다고 보고 있다.

 

다음은 오래 달리기다.

요리로 인해 얼굴구조가 변하면서 납작한 코가 돌출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외기의 습기와 온도조절이 용이해지면서 인간은 숨이 차는 것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털의 제거로 인해 효과적인 열의 발산이 가능해졌다.

 대부분의 맹수들은 체온조절에 어려움이 있어 타는듯한 한 낮에는 활동이나 사냥을 피하는 편이지만 인간은 이러한 체온조절 능력으로 낮에도 강한 활동이 가능했다. 이는 상당한 틈새이점이었을 것으로 사냥감들도 한낮에는 활동이 쉽지 않았을 것을 감안하면 더 큰 이점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달리기는 인간의 중요한 특성중 하나인데 오랜 달리기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뇌에서 분비하는 물질로 인해 생기는 러너스 하이 현상도 오래 달리기를 성공적으로 진화시키기 위한 강한 보상체제로 본다.

 

마지막은 개이다.

인간은 개의 강력한 위계조직과 새끼를 어려서부터 키우면 따르는 특성을 파악하고 개를 가축화했다. 개는 인간이 빙하기를 견딜 수 있게 돕고, 사냥을 도왔으며 인간의 가축을 맹수로부터 지켜내고 어둠속에서 인간을 보호했다.

 저자는 이런 개의 역할이 인간이 샤냥채집경제에서 농업정착경제로 이행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본다.

 

책은 이 외에도 다양한 호모사피엔스로 변화해나가는 다양한 인간의 특성을 살핀다. 종교학자이니 만큼 과학적 성과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가장 인간다운 특성으로 이타심을 꼽는다. 아무래도 종교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기 때문이 아닐런지. 저자는 이 이타심과 더불어 요리를 통한 공동식사문화와 예술의 발생과 사후세계의 발명 등이 종교를 탄생시킨 요소로 보고 있다. 물론 그런식으로 정리하진 않았지만. 하지만 이타심의 발생근거와 종교의 발생근거를 엄밀히 짚어내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여러 특성에서 우러나온것 처럼 논리를 전개시켜나가는 부분이 논리적으로 빈약하다는 느낌을 제법 주었다는게 이 책의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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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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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은 사실 낯선 나라다. 유럽국가지만 남유럽 특유의 낮은 소득, 그리고 스페인에 가려져있다. 난 매번 지도를 볼때 마다 이 나라가 마땅한 지형적 경계선도 없이 이웃의 거대한 스페인에 먹히지 않은게 오래도록 이상했다. 스페인으로 여행가는 사람은 많지만 포르투갈로 향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과연 유럽 여행을 하는 사람들 중 포르투갈은 하나의 방문지로 삼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정도가 많이 생각난다.

 어쨌든 이 책은 그런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한다. 난 소설을 좀처럼 읽지 않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고 느낌이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거나 문장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능력 역시 몹시 떨어진다. 그렇다 보니 이 책은 좀 읽기가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직설적인 소설이 아니어서인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싶은게 무엇이었을까를 잘 모르겠다.

 책은 3장으로 구성됬고, 그 3장의 주인공과 시간적 배경이 다르다는게 모두 특이하다. 하지만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처럼 이 3장을 묶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제목 포르투갈의 높은 산과, 주인공이 모두 남자라는 것이며 이들이 사실 몇가지로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연결점은 이베리아 반도에 살던 코뿔소, 그리고 침팬지, 기독교, 예수, 그리고 부인을 잃음 등이다.

 1장에서는 토마스란 남자가 등장한다. 시간은 대충 20세기 초입. 부유한 숙부를 두고 사업이 실패한 아버지를 둔 그는 숙부집에서 일하던 하녀와 눈이 맞아 사생아를 낳는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지 않아 전염병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아들을 한번에 잃는다. 거기에 아버지까지 이들을 뒤따른다. 충격에 토마스는 뒤로 걷기 시작한다. 세상의 부조리와 맞부딪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리고 미술관에서 일한던 그는 오래전 잊고 있던 대충 300년 전 한 포르투갈의 신부가 당시 식민지였던 상투메섬에서 남긴 이야기를 상기한다. 그는 노예제에 분개했고, 당시 노예의 중개지나 다름없던 상투메섬에서 이런 사람은 허용되지 않았다. 신부는 주교에 의해 파문되었고, 묘한 유적을 남겼다. 

 토마스는 이를 상기해내고 추적끝에 이 유물이 포르투갈의 한 높은 산의 성당에 있음을 알아내고 여정을 떠난다. 이유는 한 가지인에 그는 자신에게 이 모든 불행을 선사하는 신을 비웃고 싶었던것 같다. 그런 그에게 부유한 숙부는 당시 막 등장한 자동차를 준다. 영 내키지 않지만 자동차의 작동법을 날로 배운 토마스를 그럭저럭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매우 신기해했고,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 이나 벼록이 옮기도 하고, 자동차에 적대적인 마부들에 의해 차가 크게 훼손되기도 한다. 가장 큰 사건은 잠에서 깨어나 차를 몰다 자신이 한 소년을 차로 치어 죽였다는 것이다. 소년은 포르투갈스럽지 않게 금발이었다.

 어쩔수 없다고만 생각한 그는 마침내 유물을 발견한다. 그것은 십자가에 매달린 평범한 예수상이었는데 문제는 그 예수가 침팬지였다는 것이다.

 2장은 2차대전은 눈앞에 둔 시점이다. 의사인 에우제비우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사랑하고 거기서 종교의 의미를 찾는 아내를 잃었다. 처음 상당부분은 아내와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뒷 부분에 아내가 갑자기 사고로 죽는 부분이 안와 영이상하다. 하여튼 아내가 가고 막 문을 닫으려는 병원에 한 여인이 찾아와 남편의 부검을 의뢰한다.

 부검에서는 남편의 시신안에서 갖가지 물건이 나온다. 토사물에 동전에, 침팬지에 새끼곰까지. 의문스런 부검이 끝나자 그 여인은 자신을 남편의 몸을 집처럼 생각하고 들어가고 에우제비우는 그 채로 남편의 몸을 꿰멘다. 그리고 그 죽은 남편과 아내는 오래전어렵게 얻은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졌는데 공교롭게 그 아이가 1장에서 토마스가 죽인 아이다.

 3장은 비교적 현대다. 포르투갈을 떠나 캐나다라 신선했는데 주인공은 상원의원 피터다. 아내 클레라를 잃고 한 기관에서 우연히 침팬지를 발견한 후, 본능적으로 끌려 무려 1만 5천달러에 그 녀석을 구매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포르투갈로 향한다. 캐나다는 침팬지가 살기에 너무 추웠다. 포르투갈까지가서 그가 향한 곳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다. 1장에 토마스가 찾은 그곳. 그곳은 피터에게 의미가 있다. 오래전 포르투갈에서 캐나다로 간 부모님의 고향으로 피터 일가의 고향인 곳이다.

 거기서 피터는 한 빈 허름한 집을 얻는다. 그리고 침팬지 오도와 살아간다. 캐나다에서 하던 상원의원도 그만 두고, 누이 동생과 아들과는 연락만 한다. 가족은 그립지만 그는 오도와의 포르투갈에서의 삶이 좋은 듯 하다. 못견디었는지 2년만에 피터의 아들 벤이 찾는다. 벤이 오고나서 한 문서가 발견되고 피터는 이 집이 과거 조상들의 집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침팬지 오도와 함께 바깥을 나서서 무려 3미터가 되는 이미 1장의 토마스 시절에도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이베리아 반도의 코뿔소를 발견한다. 그리고 좋지 않던 심장이 서서히 멎으며 오도의 품에서 죽음을 맞는다.

 소설의 내용은 대충 이러한데, 하고자 하는 말을 알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종교에 대해서 말을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그것에 비판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신비스런 느낌을 좀 주는 것 같기는 하다. 침팬지나 코뿔소를 통해서 근원적 자연에 대한 감정을 불러오기도 하며, 연결된 공간 속에서 시간을 초월한 인연이나 운명같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하고자 하는 게 무언지는 잘 모르겠다. 네겐 낯설고 기묘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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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에 가려진 세상 - 생각실험으로 이해하는 양자역학
최강신 지음 / Mid(엠아이디)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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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파인만은 자신이 양자역학관련하여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 이 세상에 양자역할을 이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 이라고 했다. 그만큼 양자역학은 어렵고 난해하다는 것이다. 나도 양자역학에 대해서 다른 과학책에서 어렴풋이 관련 내용을 봤을 뿐 본격적으로 양자역할을 다룬 책은 본적이 없었다. 그러다 책' 우연에 가려진 세상'이 나와 한번 도전해봤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우연에 가려진 세상이라니. 웬지 양자역학의 속성을 잘 드러낸 제목같다. 

 근데 웬걸 책에서 양자의 정의부터 밝히질 않는다. 알거라 생각한건가? 그래서 친절한 네이버에 양자의 정의를 찾아봤더니

[ 어떤 물리량이 연속값을 취하지 않고 어떤 단위량의 정수배로 나타나는 비연속값을 취할 경우, 그 단위량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란다.(출처- 네이버 두산백과)

 그래서 광자와 전자가 양자가 되는 듯 하다. 전자는 원자핵 주변에서 에너지의 흡수 방출 여부에 따라 원자핵 중심과 주변으로 오르내리는데 희한하게도 이게 연속적인 아날로그 값이 아닌 디지털 정수배이다. 책에는 자연계에 은근히 디지털 처리가 많다고 한다. 디지털은 인위적인 것이 아닌것일까? 어쨌든.

 그래서 책은 그 유명한 전자 실틈 실험에서 시작한다. 전자 실틈 실험은 막에 전자가 통과할 수 있는 실틈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서 두개 만들어 놓은 후 실틈 뒤에는 전자가 부딪히면 흔적은 남기는 형과막을 설치한다. 그 후 전자를 발사해서 전자가 실틈을 통과하는지를 보는 실험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실틈의 뒤에 두개의 실틈 모양 기둥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매우 달랐다. 마치 물결무늬처럼 전자가 흔적을 남겼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통해 전자를 파동으로 해석했다. 왜냐하면 물결무늬는 파장을 가진 파동이 두 틈을 지나면서 서로 간섭이 일어나 생기는 것으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이 파동은 형광막에 닿는 순간 동그란 입자의 무늬를 남겼다. 

 이를 두고 유명한 코펜하겐 해석은 전자가 입자와 파동의 두 가지 성질을 모두 가지며 파동의 형태로 이동하다가 형광막에 닿는 즉, 측정의 순간 이것이 무너지며 입자로 남는 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 해석이 보다 일반적인 것인줄 알았는데 책에서는 97년 있었던 회의에서 상당히 많은 학자들이 코펜하겐 해석을 따르고 있지 않았다.

 하나는 여러 세계 이론으로 두 개의 실틈 실험에서 형광막에 남겨진 파동무늬는 밝기가 다른데 이는 전자가 각 부분의 형광막으로 향해 부딪힐힐 확률이 각각 다름을 의미한다. 전자가 많이 부딪혀 밝은 빛을 띠는 부분일 수록 전자가 그리로 향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기묘하게도 이런 각 사건은 독립성을 띠며 서로 다른 세계를 구성해나간다는 것이다. 우주의 에너지가 보전되는 것처럼 이런 확률들의 총합도 보존된다고 본다. 잘 이해는 안가지만 일전에 다중우주 이론의 한가지로 거론된 것을 본적이 있다. 

 다른 하나는 길잡이파 이론이다. 여기서는 사실상 전자를 입자로 본다. 그런데 자석의 전자기파나 행성주의의 중력파처럼 전자가 움직일때 어느 지점으로 경향성을 갖고 향하게 끔 하는 길잡이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을 중력이나 전자기력 같은 근본적인 힘으로보지는 않지만 그런 것이 작동하여 전자가 특정 부분으로 높은 확률로 향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더 이해가 잘가서인지 더욱 그럴듯했다. 

 책은 광자를 가지고 양자의 얽힘 현상도 다룬다. 얽힘은 두 광자가 얽힘이 일어나면 서로 멀리 떨어져있어도 상호작용을 주고 받는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 따라서 두 얽힘 상태의 양자가 상당히 먼 공간을 떨어져있다면 원래 서로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하나가 영향을 받는 즉시 ,다른 하나도 영향을 받는다. 소위 국소성의 원리를 위반하는 것이다.

 이런 얽힘 현상은 현대에 양자암호를 개발하는데도 사용되며 양자컴퓨터에도 사용될 수 있다고 한다. 책에도 나오지만 사람은 양자를 관찰한적도 없고, 정체도 모르면서 이미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책은 양자역학과 관련한 다양한 실험과 각 학파의 의견 그리고 여러 해석들을 파동과 편광등을 활용해 비교적 쉽게 설명한다. 하지만 결국 수식이란건 피할수 없는 부분이 있고, 모든 걸 다 세세히 설명할수는 없다보니 일반인이 교양서적으로 읽기엔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오일러의 공식, 자연로그, 벡터등이 나올땐 문과출신으로 절망했다. 이공계라면 쉬울수도 있겠다.) 솔직히 반정도도 이해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자역학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도전해볼만한 책이란 생각이다. 언제고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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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리커버 특별판)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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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역사시간에 일제시대 우리 나라 사람들이 하와이로 건너가 죽을 고생을 하며 일을 했단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남아있다. 1919년에 조상들이 삼일운동을 했을때도 세계 여러 각지에서 반응이 있었던 것은 조상들이 이동이 힘들었던 그 당시에도 나름 세계 어려곳에 퍼져있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멕시코로 건너간  아직 나라가 넘어가기 전인 대한제국 시절의 1033명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조상들이 하와이나 만주, 일본, 러시아 외에도 멕시코까지 간줄은 몰랐다. 

 소설이 다루는 당시엔 살기가 힘들었다. 농민들은 소작농 신세로 땅이 없었고, 고혈을 짜내는 관리들에게 착취당하고 있었고, 과거는 폐지되었다. 단발령이 내려졌고, 대한제국 군대는 일본의 압력으로 거의 해산되었다. 제국은 거의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으며 러일전쟁에서는 일본이 승리했다. 그래서 멕시코로 향하는 일포드호에는 사람들이 몰렸다. 제물포항에서 여권발급문제로 무려 한달 이상을 정박했음에도 말이다. 거기엔 몰락한 황족과, 양반, 도둑, 해산당한 군인, 천주교 사제, 무당, 농민 등 다양한 계층들이 함께했다.   

 그들은 태평양을 건너 무려 두 달 가까이 항해했다. 조선인들은 비좁은 선실에서 씻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태반이 배를 타본적도 없으니 설사나 구토에 시달렸다. 선실엔 고약한 냄새가 났고, 그 냄새가 신분마져 흐릇하게 해 반상의 구별없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망망대해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회사가 말하는 대로 일해 돈을 벌 수 있고, 그 돈을 가지고 다시 조선땅으로 돌아가 어려운 경제적 환경을 바꾸고 싶어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른 나라로 몸을 싣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사정은 비슷했던 법이다. 

 배에서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여러 일이 일어난다. 대한제국 최초로? 아이가 공해상에서 태어나기도 했고, 이질이 돌아 몇몇이 목숨을 잃었으며, 누군가는 그 와중에 도둑질을 누군가는 그 와중에 세태를 따라 외국 선원들과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새들이 배에 드나들기 시작했고, 결국 육지가 나타났다. 무척 설레고 땅을 밟으며 긴장하기도 했지만 조선인들의 목적지는 태평양 연안이 아닌 카리브해연안이었다. 곧 그들은 수십시간 기차를 타고 유카탄 반도의 농장으로 향한다. 유카탄 반도는 역사에 여러 번 언급되는 곳이다. 6500만년전 제법 커다란 소행성이 지구와 직격해 생태계에 큰 멸종을 불러온 곳이기도 하며, 고대 마야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멕시코 지주들은 마야인들을 부리고 있었는데 지구 어디서나 지배층의 고혈짜내기는 극심한지라, 마야인들도 조선인들이 도착하기 몇해전 반란을 일으켰었다. 그 과정에 인적손실이 커 조선인의 손까지 벌리게 된 것이다. 

 농장주들은 조선인들을 비싼 값을 치루고 데려갔고, 곧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이 시작된다. 조선인들은 에네켄이랑 식물의 잎을 수확해야 했는데 잎사귀마다 가시가 많아 농장일이 고역이었다. 에네켄 잎은 당시 배에서 사용하는 로프를 만드는데 쓰였다고 한다. 조선인들은 그 에네켄은 어저귀라고 부르기도했다. 비슷한 한자발음을 붙인 것 같다. 

 가옥은 파하라고 부르는 마야 전통가옥을 부여받았고, 초가집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 조선인들은 적응에 큰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먹는게 문제였다. 주는 식량이라곤 모두 옥수수뿐이었다. 또띠야에도 익숙해져야했다. 거기에 유카탄 반도는 온통 지평선이 보이는 평지라 막막했다. 강과 산이 많아 땅을 강산이라 부르는 조선과는 매우 달랐고, 건기와 우기가 있어, 우기가 오기전까진 물이 너무나도 귀했다. 

 소설은 계속해서 이 멕시코 땅에서 조선인들의 삶을 다양하게 그린다. 오기전 다양한 삶을 가진 그들인 만큼 와서도 삶이 다양했다. 몇몇은 농장주에게 붙어 동포를 짜냈고, 몇몇은 멕시코 혁명에 휩쓸리기도 하며, 몇몇은 미주 한인들과 끈이 닿기도 한다. 뒷 부분의 프롤로그엔 살아남은 조선인들의 이후가 작가의 상상으로 그려지기 하는데 실제로 멕시코에는 이 당시 건너간 조선인들의 후예가 아직도 남아있고 한다. 관련 영화도 있는 것 같은데 이 소설과 같이 감상하면 불운한 시간과 공간을 만나 이국땅에서 고생하며 그래도 후손을 남긴 흔적을 느낄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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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2018-01-30 0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잘 보고 갑니다. 그 당시 한인들이 멕시코까지 갔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흥미로운 책이네요:)

2018-01-30 0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8-01-30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십여년 전에 읽은 책인데 새록새록 합니다. 그래도 김영하는 단편이 제 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