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삶 - 개정판 문학동네 플레이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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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 정도 전에 영화 '친구'가 제법 인기가 있었다. 결이 전혀 다른 공부 잘하는 검사친구와 조폭친구, 그리고 같은 조폭 똘마니 친구가 서로 우정을 나눴고, 남자의 자존심으로 서로를 죽이면서도 친구로 남는 그런 내용이다. 남자라고 다 그런 내용을 다 공감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남자라면 대충 그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있다. 하지만 여자라면 어떨까란 생각은 든다. 그리고 남자가 이 책 '최선의 삶'을 보면 아마 비슷한 이유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내가 그랬으니까. 

 이 책은 놀랍게도 일탈을 해버린 가출 여중생의 내용을 다룬다. 시기는 처음엔 90년대가 아닌가 싶었는데 아마 2000년대 후반 정도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 내용을 보면서 시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는데 책의 공간적 배경은 대전이다. 내용에 대전 지하철이 완공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대전 지하철의 완공이 2000년대 후반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강, 아람, 소영이다. 셋은 대전의 신도시에 생긴 전민중학교에 다닌다. 원래 여긴 농촌 같은 곳이었는데 다들 알다시피 대덕연구단지 같은게 생기면서 도시가 되어 비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생겨난 중학교다. 그래서 셋은 친구지만 출신 성분이란게 다르다. 그래서 묘한 관계다. 강은 외부인이다. 원래 바깥 사람인데 부모가 자식 잘 되라고 위장 전입을 시켜 전민중으로 보냈다. 아람은 원래 이 지역 사람이지만 외부인 같은 내부인이다. 부모가 원래 농촌 사람인데 같지가 동네가 도시가 되어버린 격이다. 소영이 외부인인데 진정한 내부인 격이다. 부모가 연구원이다. 

 하여튼 이들인 친구다. 그리고 셋은 학교를 다니며 흡연을 하고 술집을 전전하고 일탈을 버린다. 안주시킬 돈이 없어 안주를 만들어 먹는 것을 나무라는 술집 주인을 오히려 미성년을 받았다며 경찰에 신고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다 돈을 모아 서울로 가출해버린다. 대전에서는 잘 나가는 이들이었지만 서울에선 지하철조차 처음타보는 촌것들이었다. 서울에선 처음엔 이 아파트 저 아파트 계단을 전전하며 밤을 지새웠고, 화장실에서 씻었다. 낮이면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아저씨들을 꼬드겨 같이 술을 먹고 돈을 뜯어 모텔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몸도 버리기 시작한다. 특히 아람이 몸을 마구 굴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소영이 바지를 사려 신용카드를 쓰게 되자 위치를 부모에게 발각될게 두려워 셋을 청주로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보증금 얻는 방을 얻게 되며 모텔 생활을 하지 않게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강을 횟집에서 소영을 베이커리에서, 아람을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람이 술집에서 벌어오는 돈이 훨씬 많았다. 아람이 밤늦게 까지 일하게 되며 소영과 강은 같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다소 야릇한 관계가 된다. 셋의 가출은 소영이 마침내 핸드폰을 켜서 위치가 노출되고 귀가하게 되며 끝난다.

 셋은 학교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러면서 우정이 깨어진다. 아람과 소영 간이 묘한 역학 관계가 생겨난다. 아람은 두루 인기가 있었다. 소영은 키가 컸고 많이 예뻤다. 아람은 뭔가 소영이 불편했고, 소영을 따돌리기 시작했다. 강은 여기서 아무래도 좋았지만 아람을 따라간다. 다른 아이들도 아람의 편에 붙는다. 그러면서 모두가 소영을 피해다닌다. 그러다 소영의 위치를 알려주는 소위 GPS 역할을 하던 아이가 소영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한다. 

 소영은 갈수록 날카롭게 변해갔고, 다른 아이들과도 싸운다. 소영은 무자비했고 그 아이에게는 이겨서도 져서도 안됐다. 이기면 무자비한 보복이 따랐고, 지면 종처럼 당하고 살아야 했다. 놀랍게도 다음 차례는 강이였다. 강은 이 상황이 너무 불편했고 아람에게 예전처럼 돌아가면 안되겠나고 말했다. 아람은 그 말은 소영에게 했고, 소영은 강을 찾아와 괴롭히기 시작했다. 결국 둘은 싸우게 되었다. 강은 지지 않고 싸웠고 심지어 이기기도 했지만 강은 이겨서도 져서도 안된다는걸 알고 있었다. 소영은 강에게 무릎끓는걸 제안한다. 그만하고 싶었던 강은 그만 그렇게 하고 만다. 소영은 잔인하게도 그 순간 용서하지 않고 돌로 강의 머리는 쳐내린다. 그리고 아람이 대신 맞는다. 

 그 사건 이후 두려웠던 강이 이 사실을 부모에게 말해 소영은 학교에서 강을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게 된다. 강은 너무 비겁한 자신이 너무 괴로워져 칼을 하나 산다. 그리고 그 후 이것을 가방에 넣고 다니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꺼내진 못한다. 그리고 아람과 다시 가출을 한다. 둘은 비키니를 입고 일하는 가게에서 수년 간 일하며 많은 돈을 번다. 그리고 같이 스페인의 그라나다로 여행을 가기로 약속하고 같이 바니 문신을 새긴다. 하지만 어느 날 아람은 아무말 없이 강을 떠난다. 

 강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소영이 사는 아파트를 찾아간다. 그리고 아무 의미 없이 계속 가지고 다니던 칼을 갖고 간다. 소영은 놀랍게도 예전 그 아파트에 여전히 살고 있었다. 여전히 예뻤고 키는 더 큰 것 같았다. 소영은 연예인이 되어 있었고 여전히 강을 무시하고 있었다. 칼을 든 강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고 강이 팔을 찔렀음에도 더 찔러 보라고 도발했다. 결국 강의 칼이 소영의 목을 향한다.

 이 소설은 저자가 10년 가까이 학창시절에 생각해내고 가슴에 묻어둔 것이라고 한다. 처음 읽었을 땐 이건 경험담이라 생각했는데 묻어든 것이라면 학창시절의 여러 응어리를 상상으로 풀어낸게 아닐까 생각한다. 친구와의 갈등, 나보다 아름다운 친구에 대한 열등감, 무서운 친구에 대한 공포, 학업에 대한 중압감, 억업적이고 학업만 강조하는 교사에 대한 불신이나 불만, 친구와의 우정,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모에 대한 불만, 다양한 친구들과의 만남, 여자 친구들 특유의 집단 형성 등 이런 저자의 10대 시절 특유의 경험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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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0 : 구상섬전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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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주었던 문학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천명관의 '고래', 류츠신의 '삼체'다. 그리고 이 중 딱 하나를 고른다면 그것은 역시 '삼체'다. 삼체는 여러 모로 놀라웠다. 우선 경직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이렇게 창의적인 작가의 작품이 나왔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장르 소설일지라도 책이 상당한 두께를 자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두께도 추리소설 처럼 살짝 색깔만 바꾸어 중언부언하지 않고 매번 다른 이야기 같다는 것.(1-2-3권은 매번 중심인물이 완전히 바뀌며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 간격도 수백년에 달한다) 그리고 다들 공감하겠지만 이야기의 소재와 차원이 너무나도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런 삼체의 프리퀄 격인 구상섬전은 아마도 삼체인의 본격적인 존재를 알아차리기 이전의 시기를 다루는 듯 하다. 구상섬전은 사실상 삼체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만 분위기나 중요한 단서와 인물로 삼체와의 연관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구상섬전은 세상에 갑작스레 나타나는 둥근 형태의 불빛 덩어리다. 색은 적색, 보라색, 노란색등으로 다양하고 안에는 전자기장이 있는 듯하기도 하고, 플라스마로 가득차 있는 듯 하기도 하다. 이것은 맑은 날에도 나타나지만 비오는 날에 더 잘나타나며 기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물체를 마음대로 투과한다. 영어로는 라이트닝 볼이고, 한자로는 구상섬전인데 이것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국인 천이의 집에 갑자기 나타난다. 

 그날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호우가 심한 날이었다. 천이 가족은 식탁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구상섬전이 집벽을 뚫고 갑자기 나타나 부모를 재로 만들어 버리고는 굉음을 내며 사라져 버린다. 현상은 상당히 신기했는데 부모는 재가 되었지만 천이는 무사했고 반면 천이의 안쪽 조끼는 타버렸다. 그런데도 그는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반면, 냉장고는 멀쩡했는데 그 안에 냉동되있던 닭고기와 해산물은 모두 익어벼렸다. 

 하여튼 이 일은 천이의 인생을 바꾸어 버린다. 그는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평생을 부모를 앗아간 구상섬전을 연구하는데 바치기로 한다. 구상섬전을 연구하던 천이는 소령 린윈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과학자이자 군인이었는데 평생을 신무기 개발에 천착하는 사람이었다. 린윈은 번개를 신무기로 개발하려는 조직에 몸담고 있었고 이는 천이와의 중요한 접점이었다.

 의기투합한 그들은 자신들이 소속된 군 조직과 연구소의 힘을 총동원하지만 구상섬전을 모델화하고 현실세계에 구현하는데는 힘이 턱없이 부쳤다. 여기에는 막대한 컴퓨티 파워와 이를 뒷받침할 자금이 필요했다. 린윈은 머리를 써서 세티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외계인을 찾는 이 프로그램을 해킹해 수많은 전 세계사람들이 무료로 기부하는 컴퓨팅 파워에 자신들의 구상섬전 프로그램을 돌리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곳 적발이 되고, 그들은 한 러시아 과학자로부터 초대 메일을 받는다.

 러시아를 방문한 그들은 놀랍게도 냉전시대부터 러시아가 대규모 시설에서 구상섬전을 연구했고 이미 여러 차례 그것을 구현했음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연에 가까웠고 결국 그들은 자연상태보다는 분명히 구상섬전을 높은 빈도로 출현시키긴 했지만 그것을 위한 분명한 수학적 모델링이나 변수조건을 갖고 있지 못했고 그런 방법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현상은 천이를 좌절시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린윈은 그렇지 않았고 그녀는 과학자 딩이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터닝포인트였다. 딩이는 관점을 전환시켰다. 구상섬전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활성화하는 것 뿐이라고. 관점의 전환으로 그들은 주어진 조건하에서 두 대의 헬기를 동원해 아크전기막을 펼쳐 구상섬전을 발견해낸다. 더 나아가 딩이는 구상섬전을 포획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비활성화된 상태의 구상섬전의 포획이 시작된다. 

 린윈은 구상섬전의 무기화에 착수한다. 구상섬전은 각각이 독특한 파장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그것이 활성화했을 때 어느 것을 공격하느냐를 결정했다. 어떤 구상섬전은 생물을 어떤 것은 컴퓨터 칩을 어떤 것은 식물을 공격했다. 처음엔 하나하나를 알 수 없어 동물을 죽이는 잔인한 실험을 했지만 곧 마이크로파와 대응함을 알게되어 구상섬전을 평화롭게 분류할 수 있었고 무기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구상섬전의 또 다른 특성이 밝혀진다. 구상섬전은 목표 공격물을 반드시 파괴했는데 놀랍게도 관측장비나 관측자가 없는 경우 명중률이 현저히 떨어졌다. 이는 관측자가 없는 경우 파동함수로 변해 확률구름처럼 존재하는 양자의 특성이다. 즉, 구상섬전은 거대한 양자로 전자였던 것이다. 딩이는 이런 개념을 제시했고 구상섬전 자체가 매우 거대했기에 이를 굉전자로 개념했다. 

 굉전자 개념은 놀라웠다. 굉전자의 존재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굉원자와 굉중성자의 존재를 상정했다. 그렇다면 믿을 수 없는 정도로 커다란 원자가 이 세계에 같이 상존한다는 것이었고 그런 우주는 어떤 평행우주인지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구상섬전은 강력했지만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전자인만큼 상대방이 전자기막을 펼칠경우 쉽게 교란에 방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점 때문에 구상섬전의 타케팅 공격 가능성에도 중국군 상부는 구상섬전을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구상섬전은 첫 사용은 그래서 전쟁이 아닌 테러 진압이었다. 중국의 원전은 한 테러 집단이 장악한다. 그들은 반과학 단체로 글자 그대로 인간이 중세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는 집단이었다. 그러면서도 테러를 위해서는 과학적 무기의 사용에 망설임이 없었다. 원전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견학을 와있었고 원전이 폭발할 경우 치명적 피해가 예상되었다. 린윈은 망설임 없이 인간을 죽이는 구상섬전을 사용한다. 테러범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희생된다. 그리고 천이는 이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린윈을 떠나게 된다.

 천이는 대학에서 기상학을 연구했다. 그나마 구상섬전과 접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상섬전의 발견은 토네이도의 발견과 관련이 있었는데 그는 이 연구를 미국에서 하면서 미국의 토네이도 제거에 큰 이바지를 하게 된다. 토네이도는 발생과정에서 대기의 냉각이 큰 역할을 하는데 천이의 토네이도 예측 장치를 기반으로 해당 지역에 열발생 미사일을 발사해 토네이도를 원천 제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부메랑으로 날아온다. 중국에 전쟁이 일어난다. 책엔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침공국은 미국의 그 동맹으로 추정된다. 토네이도 제거장치는 역으로 토네이도 발생도 가능하다. 토네이도 발생이 생길만한 지점을 포착해 냉각을 추진하는 미사일을 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공격으로 중국의 항공모항과 연안함대는 궤멸적 타격을 입고 이 과정에서 린윈의 연인 주싱천이 사망한다. 그는 항모의 함장이었다.

 전쟁은 중국에 불리하게 돌아간다. 린윈은 구상섬전의 사용을 주장하지만 그녀의 주장은 관철되지 않는다. 그러다 한번의 기회가 돌아온다. 린윈가 그 부대는 어선으로 위장해 적의 항모 선단 한가운데에서 구상섬전을 발사한다. 모두 적의 회로를 태우는 구상섬전이었다. 하지만 적은 구상섬전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전자기 막으로 이를 모두 막아낸다.

 이후 딩이와 린윈은 굉원자핵을 발견한다. 이는 매우 가느다랗고 긴 막이었다. 이는 전자인 구상섬전 만큼은 당연히 적었지만 그들은 연구 끝에 굉원자핵도 여러 개를 포획할 수 있었다. 딩이는 굉원자핵들을 최소 5미터 이상 떨어드렸다. 원자핵들은 가까운 거리에서 핵융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굉원자핵은 실제 세계의 원자핵과 다르게 매우 간단한 조건은 초속 400m정도의 움직인 만으로도 융합을 일으킬 수 있었다. 현실세계의 핵융합이 발생시키는 에너지를 고려하면 굉원자핵의 핵융합은 가공할만한 무기가 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이는 린윈을 과도하게 흥분시켰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위험했다. 굉원자핵도 굉전자인 구상섬전처럼 파장에 따라 특정한 것만을 공격했다. 구상섬전의 경우 에너지가 비교적 작아 피해범위가 적었지만 굉원자핵융합은 그것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결국 이런 우려로 중국군 당국은 전쟁의 교착에도 이 실험을 허용하지 않지만 린윈이 자신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실험을 강행하다. 딩이는 실험 반경 수백미터는 완전히 파괴되고 이후에는 타게팅 물질이 파괴될 것으로 보았다. 린윈이 사용한 굉원자핵은 전자회로를 목표로 삼는 것이었다. 중국군사령관이면서 린윈이 아버지는 이를 막기 위해 미사일 발사를 지시하지만 이미 상황은 늦었다. 실험은 강행되었고, 미사일은 회로가 타버려 공중폭파되었다. 핵융합의 위력은 커서 중국의 1/3까지 공격의 여파가 퍼져 해당지역이 농경사회로 돌아가버렸다. 그리고 이일로 린윈은 사망한다.

 우습게도 이 사건은 전쟁의 종결을 불러왔다. 미국과 우방은 이 실험을 파악하고 최악의 겨우 지구 전체가 정보화사회에서 후퇴할 것을 크게 우려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내에서 자기들도 죽을 것을 각오하고 대규모의 전자장비를 노린 굉핵융합을 한다면 이 파장은 지구 전체로 퍼지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죽은 린윈이 그의 아버지에게 나타난다. 구상섬전이나 굉원자핵의 에너지에 죽은 사람들은 사실 죽었다기보다는 그들의 파장에 공명한 상태다. 그래서 현실 세계에서 사라지고 재가되는 것인데 그렇기에 양자구름처럼 확률적인 상태로 존재한다. 

 물론 린윈은 그렇다면 관측자가 분명한 자신의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딩이는 천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놀라운 말을 한다. 일반 물질은 그렇지만 관측의지가 분명한 상태의 물질은 그것을 넘어서는 힘이 있기에 오래도록 붕괴상태를 버틸 수 있다고. 

 천이는 이런 일련의 사건 이후, 결혼을 하고 평온히 살아간다. 그리고 소식을 듣는다. 지하 깊은 곳에서 굉입자를 통한 실험이 이뤄졌는데 관측자나 관측장비가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양자 붕괴현상이 일어났다고. 이는 분명한 관측자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었는데 몇번의 실험이 더 일어나자 그 관측자는 돌연 이를 눈치챘는지 사라졌다고. 그리고 이 관측자는 외계인으로 추정된다고.

 책에는 분명히 나오지 않지만 이 관측자는 아마도 삼체세계에서 지구로 이미 보내놓은 관측자이거나 아니면 지구 문명의 발전을 막기 위해 모든 실험을 방해하는 지자가 아닌가 싶다. 이처럼 류츠신은 구상섬전과 삼체 세계의 연결을 위해 이런 부분과 딩이를 연결해 놓았다. 

 책은 너무나도 재밌었고, 깊은 여운과 놀라운 상상력,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준다. 양자중첩은 마치 죽은 사람의 영혼이 현실세계에 언제든지 나타나거나 주변에 있을 수 있게끔 하는 생각을 주며 과학과 영성을 연결시키는 느낌마저도 준다. 무척 재밌는 책이며, 삼체에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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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일반판)
올리버 색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알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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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버 색스가 타계한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우리 집엔 그의 책이 몇 권 있기는 한데 이상하게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그렇게 유명한 작가임에도 말이다. 그러다 도서관 사서의 추천으로 이 책을 보게되었다. 색스의 책이라고는 생각치 못했고 얇은 바쁜 시기에 보기 좋은 책으로 여겼기에 잡았다.

 책은 올리버 색스의 책이었다. 그는 여러 차례 자서전을 남겼지만 이 책은 가장 마지막 시기, 그리고 최후의 진단을 받은 후의 6개월 여간의 책이라 가장 얇으면서도 어쩌면 깊을지도 모르겠다. 

 몇 가지 인상 깊은 구절이다. 80이 되면 쇠퇴의 징후가 뚜렸해진다. 또래의 1/3은 이미 죽었다. 반응이 살짝 느려지고, 주변 사람의 이름이 가물가물해지며 에너지를 아껴써야 한다. 80이 된 사람은 긴 인생을 경험했다.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이다. 이 정도 살게 되면 한 세기가 어떤 시간인지 상상하고 체감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노년은 여유와 자유의 시간이다. 억지스럽고 다급한 마음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것을 탐구하고 평생 겪는 시간과 감정을 하나로 묶는 시간이다.

 나는 지난 10년간 또래의 죽음을 자주 경험했다. 내 세대가 퇴장하고 있다고 느꼈다. 죽음 하나하나가 내게는 갑작스러운 분리처럼, 내 일부가 뜯겨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라진 사람들의 빈자리는 결코 대체되지 않는다. 그들은 유전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있고 생각하는 존재이자 동물로 살았다.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색스는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나이를 원소 주기율표에 맞춰서 생각했다. 80살이면 원소기호 수은처럼 말이다. 그는 심지어 친우에게 80선물로 밀폐된 수은을 보냈다. 받은 친구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나중에 그 선물에 감사하며 건강을 생각해 조금씩 섭취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보냈다. 색스의 삶이 그러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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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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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 초입에 진입했다. 향후 전면적 인공지능 시대에 살게 될 것은 분명하다. 현재 인공지능은 아직 분야별로 기능하고 있어 모든 분야에서 인간이상으로 기능하는 범인공지능의 시대까지 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현재 사람들은 각자의 직업과 상황에 따라 인공지능이 자신의 직장을 위협하는 정도가 각각 다른 상황이다. 코딩을 하는 사람이나 드라마나 시나리오 작가, 예술가, 음악가들은 이미 심대한 위협에 직면했지만 건설노동자나 간호사 등은 아직 이렇다할 인공지능의 그림자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인공지능이 침탈한 분야가 있으니 바로 '바둑'이다. 우리 모두는 10년 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기억한다. 이 사건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선 최초의 상징적 사건으로 사람들을 모두 강제로 인공지능의 시대로 이끌었다. 대국이 시작되기 전 바둑은 그 특유의 심오함으로 예술에 가까운 분야로 여겨졌고 변수가 너무 많아 비교적 단순한 체스와 달리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세돌의 참패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시 중계를 바라보며 인공지능이 두는 수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렴풋이 직접 대결하며 감을 잡은 이세돌이 마지막 대국에서 승을 거두었다. 이것은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바둑을 이긴 사실상 마지막 경기였다. 이후 여럿이 도전했지만 전혀 이길 수 없었고 인공지능의 실력은 당시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강해졌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선 이 사건은 바둑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먼저 그나마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둑계의 민주화(?)란게 이뤄졌다. 이전 바둑은 한중일 중심의 게임이었고, 조기 영재의 게임이었고 남자의 게임이었다. 서구는 바둑에 관심이 있어도 실력을 거의 늘릴 수 없었는데, 서구에 고수가 거의 없어 실력자와 대국을 두며 자신의 실력을 양성할 기회가 지리적으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 바둑의 입문 시기는 5-6세다. 부모가 바둑에 취미나 교양이 있는 경우 이것을 어린 나이에 배우다고 소질이 발견되면 입문하는 형태였는데, 이런 요소 때문에 부모가 바둑을 모른다면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입문 시기 자체가 늦어 따라가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였다. 또한 바둑은 전반적으로 남기사의 실력이 월등했는데 이는 남기사들이 초반 대국의 실력이 앞섰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등장하며 이런 모든 면이 해소되었다. 서구의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바둑이 최고로 평가받으며 인터넷을 이용해 이런 것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반인들 역시 부모가 바둑에 관심이 없어도 조기에 바둑에 입문하는게 가능해졌고, 인공지능을 통한 교육으로 인해 조기 영재들을 따라잡는 경우도 많아졌다. 여성기사들은 대국 초반에 약점이 있었는데 인공지능을 통한 수 배우기는 초반 대국에 매우 유리했다. 많은 기사들이 인공지능이 알려주는 초반 대국을 암기하여 게임 중반으로 넘어가게 되었으므로 이는 여성기사들의 실력 양성에 도움이 되었다.

 이제부터 나올 것은 모두 문제점이다. 인공지능은 우선 바둑 기사들의 생계를 위협하게 되었다. 과거 바둑에서 실력을 양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 보다 고수를 만나 직접 대국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하수는 고수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일종의 대국료를 지불하였고, 고수들에게 기원 등에서 수강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통해 수를 배우게 되면서 이 모든 것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대회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등장하였어도 대회 자체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상금 자체가 적어젔다. 특히, 하위 영역에 입상하는 기사들에게 지불하던 상금의 액수가 사라지거나 크게 줄었다.

 다음은 바둑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다. 과거 바둑은 일종의 예술로 여겨졌다.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너무나도 많다보니 인간의 머리로는 이에 완전히 통달할 수 없었고 이런 요소 때문에 규칙과 승패가 분명한 게임이자 스포츠적 요소가 강함에도 예술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강했다. 특히, 각 기사들은 자신만의 대국 방법이 있었으며 사람과 직접 대결하다보니 대국을 하면서 풍기는 기세도 이러한 예술적 부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며 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 과거 고수의 수 하나하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하나하나의 수를 모두 이길 확률로 평가한다. 과거 멋지게 두던 기사의 수들도 인공지능이 평가해보면 형편없는 수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모든 요소는 바둑에서 예술성을 앗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학습 방법도 변화했다. 인공 지능 이전 바둑 실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고수와 대국하거나 , 과거 훌륭한 기사들의 기보를 분석하거나, 고수에게 입문하여 꾸준히 사사하거나, 기원에서 동료들과 모여 여러 수들에 대해 토론하거 새로운 수에 대한 효과들에 대한 갑론을박을 주고 받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이 거의 사라졌다. 최고의 기사들도 인공지능의 수를 공부한다. 그리고 그를 이해하려고 하고 인공지능이 두는 수에 기반하여 바둑 게임이 이뤄진다. 특히 초반부가 그러하다. 게임이 상당히 진행된 중반 이후부터는 인간이 두는 영역이 많이 남아있지만 향후 이조차도 어찌될지는 알 수 없다. 

 마지막은 바둑 기사들이 느끼는 심리적 공허함이다. 인간에게 자신이 종사하는 영역은 하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다. 사람은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인정받고 또한 인정하며 성장해나간다. 이는 인간이 평생을 살아가며 자신의 긍정적 정체성과 자아존중감을 쌓는 방식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일순 등장해 이 모든 것을 부정해버렸다. 우러러 보던 고수의 대국이 알고보니 형편없는 경우가 많았고, 그들의 아우라도 거의 사라져버렸다. 무엇보다 사람이 기계에 의존하여 모든 것을 진행해야 하거 그것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 큰 듯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바둑을 전혀 모른다. 작가 장강명은 바둑에 관심이 많고, 이를 통해 수 많은 바둑계의 사람들과 직접 인터뷰하며 책을 구성했다. 인공지능이 최초로 침탈한 분야로 다른 분야에서도 도 인공지능이 적용될 수 어떠한 일이 일어날 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작가는 논의를 진행하며 자신의 분야인 문학에서도 인공지능이 인간 이상의 소설을 양성할 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꾸준히 상상하며 우려했다. 

 우린 이런 걸 고려하지 않고 인공지능의 개발에만 몰두한다. 그 흐름은 되돌리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국제공조보다는 대결의 시대로 들어섰고 기업들 역시 빅테크를 중심으로 패권을 잡기 위해 고삐를 늦추기 보다는 무한 경쟁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인간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인공지능도 그러할 것이다. 더욱 강하게. 이에 대한 우려와 고민이 담긴 책이었다. 책 말미를 통해 작가님의 아내분이 아픈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디 쾌차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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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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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이어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를 봤다. 두 책은 구조가 비슷하다. 주인공의 삶은 평범하고 이혼했고 뭔가 대단치 않다. 그런데 그보다 확실히 낫고 추앙할 만한 존재가 있다. 그리고 그가 죽는다. 그와 관련된 기억이 주인공의 나이든 훗날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형태다. 양 소설은 이런 동일한 구조를 갖는다. 줄리언 번스에겐 기억 관련 소설이 5개 있다는데 나머지 것들도 이런 구조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럴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는 추앙하면서도 증오하며 질투했던 존재가 친구 에이드리언이었다면 이번작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에서는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다. 주인공은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듯 하다. 성인 대상 평생교육 개념인지 수강생들은 20-40대다. 핀치교수는 그들에게 많은 생각은 일으키는 강연을 하고 토론을 시킨다. 그래서 모두들 핀치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위기다. 특히 주인공은 더욱 그러하다. 

 주인공은 핀치의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핀치를 계속 만나게 된다. 1년에 2번 정도 항상 이탈리이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계산은 핀치가 했다. 그러다 핀치가 처음으로 약속을 어기게 되었고 이유는 그녀가 암에 걸려 죽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핀치에게 오빠가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와 정기적으로 만나며 핀치에 대해 더욱 알고 싶어한다. 그녀의 오빠는 핀치와 전혀 다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핀치의 가족중 핀치와 비슷한 것은 오직 핀치뿐인 것 같았다.

 주인공은 핀치의 강의를 들을 때 로마가 기독교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황제였던 율리아누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왜인지 주인공은 율리아누스에 대한 에세이? 소설?같은 것을 길게 써낸다. 그는 핀치의 노트도 손에 넣었는데 그것을 책으로 발간할 것 같지도 않지만 꾸준히 읽으며 핀치와의 대화를 이어간다. 

 책은 총 3개 장이다. 1장이 주인공이 핀치의 강의를 듣고, 친구들과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훗날 결혼하고 이혼하며, 핀치와의 만남을 이어가다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는 과정, 2부는 거의 놀랍게도 율리아누스에 대한 주인공의 글, 3장은 그냥 그 이후의 이야기다. 소설은 뭔가 이렇다할 결말도, 하고자 하는 말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그런 것이 비교적 분명했는데 그런 면에서 더 모호하고 호불호가 갈릴만한 소설이다. 

 저자는 명확히 말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더 생각거리를 주거나 의미를 찾게 만드려는 장치를 만든 것 같기도 하다. 두 소설을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재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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