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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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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6년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거의 200여년 만에 다시 두 개로 쪼개진다. 하나는 서부와 동부 해안지대를 차지한 연방공화국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플라이오버 스테이트들을 장악한 공화국연맹이다.  

 연방공화국은 자유와 경제적 평등을 추구한다. 그들은 지금의 민주당 계열로 사회보장을 추구하고 모든 차별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부해안과 동부해안의 주들이 편입되었고 히스팩닉과 흑인등 유색인종의 70%이상이 연방공화국을 택했다. 하지만 연방공화국은 공화국연맹의 테러와 공격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모든 시민에게 심어놓은 생체칩을 통해 그들의 행동과 모든 대화를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자유를 위해 자유를 억제하는 셈이다. 연방공화국은 미국 민주주의의 실패가 사실상 경제적 불평등에서 왔음을 인지하고 모든 기업의 매출 5%를 세금으로 걷어 그것을 사회 복지에 사용한다. 때문에 사회는 매우 안정되었고 범죄가 거의 사라졌다.

 공화국 연맹은 기독교 근본주의와 포퓰리즘의 결합이다. 국가의 지배자는 사실상 12사도라 불리는 인물들이다. 모든 시민은 기독교를 믿어야 하고, 결혼과 분리된 섹스는 불법이다. 낙태도 금지되고 있으며 오직 남과 여 두 개의 성만이 허용된다. 유색인종은 사실상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연방과의 체제경쟁을 위해 자신들이 더 자유롭다고 선전하며 실제로 그렇다. 이들은 중심 계율에선 상당히 엄격하나 그 외의 것에서는 의외로 자유로우며 국민을 실시간으로 감시하지도 않는다.

 미국이 갈라진 근본 원인의 시작은 레이건 때 시도된 신자유주의의 시도다. 미국 사회를 지탱해오던 거의 모든 사회보장책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한 제조업의 해외 이전으로 백인 중산층이 일자리를 잃고 그들의 거주지역이 별 볼일 없는 플라이오버 스테이트가 되어 버렸다. 트럼프의 재선은 이렇게 벌어진 사회에 더 큰 균열을 내고 실질적인 분열의 시작이 되었다. 바이든 이후 계속 공화당이 집권하고 그들이 상하원을 장악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관은 모두 보수 인사로 가득해져 공화당에 유리한 선거구를 짰기에 민주당은 계속 패배한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등 국제적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는 과정에서 클리블랜드에서 대규모 테러가 일어난다. 극단주의자들이 기관소총으로 무장하며 수천명을 학살한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미국은 분열한다. 유명한 기업의 CEO 채드윅은 군대를 포섭하여 공화당 정부를 무력화시키고 미국의 분열을 주도한다. 각 주는 투표를 통해 연방공화국이 될지, 공화국연맹이 될지 결정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사는 주가 원치 않는 결정을 내리게 되면서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사람이 이주해야 했다. 이주 과정은 과거 인도 파키스탄 분리때처럼 대혼란이었고 수십만의 사람들이 이동과정에서의 폭력으로 사망한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배경인데 사실 이 내용자체가 소설보다 더 재밌었다. 소설은 연방공화국은 정보국 요원 샘스텐글에게서 시작한다. 그는 막심이라는 요원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이 막심은 트랜스젠더로 신성모독을 하다 공화국연맹에 납치되어 화형당한다. 놀랍게도 공화국 연맹은 이를 생중계하며 이런 화형영상을 다른 나라에 팔아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린다.

 샘스텐글에게는 작전이 떨어지는데 놀랍게도 자신의 이복동생인 케이틀린 스텐글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지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샘스텐글은 자신에게 이복동생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었다. 작전의 수행을 위해 샘 스텐글을 성형까지 해가며 신분 세탁을 하고 중립지대인 미네소타의 한 도시로 향한다.

 이 부분도 재밌는 상황인데 주 전체가 한 진영을 택한 다른 주들과 달리 미네소타 주는 반으로 쪼개져 갈라졌고 그러다보니 마치 냉전시대 베를린처럼 양 진영이 모두 소유하여 갖는 중립지대 도시가 생겨난 것이다. 샘스텐글은 정확히 이 중립지대로 파견되어 작전을 실행하게 되며 그 결말까지가 소설의 내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신 자유주의가 경제적 피폐를 낳고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중산층들이 일자리를 잃어 그 생계가 위협받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국제사회 및 민주주의가 해결하지 못하면서 그들의 분노늘 파고든 극단주의 포퓰리즘 집단이 정치적 지형을 넓히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비단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 유럽에도 해당이 된다. 디지털 플랫폼은 민주적 융합과 토론의 장을 마련하기는 커녕 잘못된 정보와 주장도 마구잡이로 나르며 오히려 갈등의 골을 키우고 있다.

 때문에 이런 소설이 나온 것이다. 소설의 배경을 한국에 대응해도 지금 상황에선 전혀 이상하지 않고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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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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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남들이 하려는 걸 같이 하며 체제, 집단에 순응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정반대로 남들이 안하는걸 해서 차별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구를 갖기도 한다. 모순되는 측면이지만 각각이 진화상의 적응도를 높이기에 개인은 양극단의 스펙트럼 어느 한 곳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각 사안마다 또 달라지기도 할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차별성을 조금 더 중시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10년 정도 전에 부커상 수상으로 한강 작가가 떠들썩 했을 때 정작 그 책을 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작가의 다른 책은 몇 권 보았다. 이건 또 순응적인 면이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이라는 커다란 대세가 나타나자 더 순응성을 발휘해 작가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나보다 대세를 따르는 경향이 강한 아내가 이것을 당시 구매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이 오래되고 바랬다.

 책은 충격적이고 치밀하고 끔찍했다. 주제를 잘 드러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느낀 것 처럼 기분이 전혀 나쁘진 않았으며 인상적이었고 책이 전달하고자하는 바를 꾸준히 생각하게 하는 느낌이 있었다. 책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이다.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은 삼남매의 둘째인 영혜일진데 그녀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장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도 작가의 장치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운 영혜는 철저히 타자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책을 다 읽고나니 이 소설에 새겨진 장치는 세 가지 인 것 같다. 첫번째는 주인공 영혜가 점자 주체이자, 비파괴적인 존재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처음엔 채식주의자, 그 다음엔 식물로 변해가는 과정 마지막엔 모든 섭식을 거부하며 정신마저 정말 식물이 되어가는 과정이다.두 번째 장치는 영혜의 이런 변화를 모두 타자가 관찰 서술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주체로 완성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 타자는 영혜의 남편, 누나의 남편, 누나로 이어진다. 이들은 모두 영혜를 이해해자 못하고 받아내지 않지만 점차 그녀를 이해하는 관점이 깊어진다. 마지막은 잔혹성이다. 아주 끔찍하진 않지만 육식의 거부와 자해, 바람 등은 한국에서 문화적으로 허용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소설을 보고 기분이 나쁘거나 언짢은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파괴적인면과 비주체성을 초점화하기 위한 장치라 생각된다.

 책 내용은 이렇다. 채식주의자의 아내 영혜는 평범한 전업주부 아내다. 남편이 그녀를 선택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어디 내놓아도 튀지 않고 지적, 미모, 능력, 성격면에서 극히 평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난하고 자신감 없는 남자는 이런 이유로 그녀를 선택한다. 그리고 지금까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어느날 고기를 매우 잘 먹던 그녀가 잔혹한 꿈을 꾸고 채식주의자로 돌아서기 전까진. 영혜는 밤에 누군가를 죽이고, 혹은 자기가 죽는 듯한 꿈을 꾸고 이후로 고기를 먹지 않게 된다. 거기에 남편과의 잠자리도 거부한다. 그에게서 고기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남편은 처음엔 그려려니 했으나 심각해지자 이를 처가식구들에 알린다. 아내가 잠자리를 거부하는건 짜증이 났는데 강제적으로 성교를 시도했고 몇 차례 성공하면 오히려 강한 쾌감을 갖기도 한다. 

 가족간의 모임에서 장인은 영혜에게 강제로 고기를 먹인다. 극심한 충격에 영혜는 과도로 손목을 귿고 모임은 난장판이 된다. 영혜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남편은 그녀와 이혼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1장 채식주의자의 내용이다

 2장 몽고반점은 영혜 언니의 남편 시점이다. 그는 아내보다 처제인 영혜가 마음에 든다. 이상한 일이다. 도무지 예쁜 구석이란 걸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다 영혜가 가진 몽고반점에 눈이간다. 그의 작업은 예술가로 여러가지 사진, 비디오 작업을 한다. 그는 영혜를 찾아가고 자신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요구한다. 영혜는 놀랍게도 이를 받아들여 그 앞에서 전라가 된다. 그는 영혜의 몸에 무엇에 홀린듯 그림을 그리고 사진 작업을 한다. 다른 업계 동료들은 한물 간듯한 그가 보여준 놀라운 색감과 작업에 감탄한다. 하지만 그는 무언가 부족함을 느낀다. 그가 생각한 완성은 영혜와 남자와의 성교였다. 그것이 작품을 완성시킬 것만 같았다. 자신이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자신은 영혜와 도무지 그림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모델을 시켜 작업을 했지만 결국 그가 성교를 거부한다. 영혜의 방을 찾는 그는 결국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리고 비디오로 촬영하며 영혜와 성교한다. 그것은 성적인 욕망보단 뭔가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내가 목도한다. 아내는 실성한 동생 영혜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의 남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3장은 나무불꽃이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는 마침내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언니는 그런 영혜를 살리려고 노력하면서도 자신의 비주체적인 삶에 대해서 깨닫고 영혜의 삶을 이해하고 다소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것이 향하는 점은 죽음이라는 점에서 그 모순에 경악한다. 

 저자는 인간이 가진 비주체성과 폭력성에 천착한 것 같다. 책에 등장하는 영혜와 그 언니는 매우 비주체적인 존재다. 결혼생활, 그리고 직업, 어려서 가족관계 모두가 그렇다. 그럼에도 그냥 남들처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자신을 억지로 잊어가며 살아가는 그런 비주체적 존재로의 삶을 저자는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폭력이다. 인간 존재는 육식을 하고 성경쟁과 자원경쟁을 하기에 본질적으로 폭력적 존재다. 하지만 그런 필수적인 생존을 위한 폭력 이외에도 인간은 많은 폭력을 휘두른다. 저자는 인간 존재의 이 두 가지 면을 이런 여러 장치를 통해 부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채식주의자는 그런 면에서 작가 한강의 여러 책 중 가장 좋았으며 그렇기에 주목받을 만한 책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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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1-27 1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충격적이고 치밀하고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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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하우스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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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을 여름에 보았다. 독특하고 괜찮았었다. 노르웨이 어촌의 풍경, 아름답지만 황량하고, 춥고 거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이 그려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욘 포세만의 독특한 문체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의 또 다른 저작인 보트하우스를 보게 되었다. 

 다 본 느낌은 재미보단 난해하다이다. 물론 책은 어느 정도 재밌다. 읽다보면 책에 빠져들게 되는 어느 정도의 서사와 인물 간의 이야기를 제공한다. 끝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는 주인공은 오랜 만에 친구 크누텐을 만난다. 주인공은 서른이 훌쩍 넘어 마흔이 다 되어가는 것 같은데 아직까지 직업이 없고 해놓은 것이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주인공을 크게 나무라지 않는 아직은 젊은 어머니와 같이 산다. 그런데 주인공은 항상 불안하고 그렇게 불안해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 더 불안해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된는 것 같은 느낌이다.

 반면 크누텐은 주인공과 어릴 적 같이 하던 사이다. 모든 것을 함께 하며 놀았고 마을 인근의 빈 보트하우스를 아지트 삼아 놀곤 했다. 주인공과 다르게 크누텐은 음악교사가 되었고 결혼을 했으며 딸이 둘이 있다. 둘은 친했지만 어릴 적 여자아이들과의 관계로 인해 틀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헤어졌으며 안본지 10년이 넘게 되었다.

 그렇게 마주치려니 서로 부담이었다. 둘이 서로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든건 크누텐의 아내였다. 그녀는 낚시를 하러 배를 타고 나갔고 그러다 주인공과 마주친다. 한눈에 매력적인 그녀지만 주인공은 크누텐의 아내임을 알아채고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유혹은 강렬하다. 그리고 크누텐은 놀랍게도 그녀가 그럴 것이란걸 알 고 있다.

 크누텐의 아내 손에 이끌려 그의 집을 방문한 주인공은 어색한 이야기와 식사를 나눈다. 그리고 돌아가는데 놀랍게도 크누텐의 아내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렇게 책은 마무리 된다.

 책은 주인공의 독백에 가까운 크누텐과 자신의 불안, 아무것도 없는 처리라는 말이 거의 20번 가까이 반복된다. 이 점이 독특한 점이며, 대부분의 지면이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뤄지지만 같은 내용을 한 장에서는 크누텐의 시점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 크누텐도 주인공처럼 반복적 독백을 일삼는다.

 가난하고 뭔가 이루질 못한 피폐한 삶을 드려내려 한 것 같은데 독특하지만 재미를 느끼긴 쉽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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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9-25 1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중론이 난해하다 더라구요
번역된 책 전부 사놨는데,,, 한권밖에 못읽었어요 ㅠ
 
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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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1994년 일본이다. 일본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은 대개 시점이 과거다. 이 점은 좀 독특하다. 하여튼 일본에서도 기차가 지상으로 다니다 보면 사람과의 접점인 건널목이 있게 된다. 이런 곳에선 불의의 사고가 가끔 발생할 수 있고, 이런 점은 영화에서도 자주 소재로 사용된다. 그중 시모키타자와 3호 건널목에서 최근 1년 기관사가 사람을 발견하고 급정거 하는 사태가 자주 벌어진다. 하지만 이미 정지가 늦어 사람을 쳤다고 생각한 기관사와는 다르게 희생자가 발견된 사례는 없었다. 그리고 한 여성 월간지에 바로 이 건널목에서 유령을 보았다는 목격담과 더불어 심지어 사진촬영까지 된 증거물이 제보로 등장한다.

 마쓰다는 30년 사회부 일간 신문의 베테랑 기자다. 하지만 아내와 사별한 후 실의에 빠져 신문사도 그만두고 지인의 도움으로 현재 여성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여성지와 좀처럼 맞지 않았는데 객관적 어투의 신문과 여성을 끌어당겨야 하는 여성지의 문체는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편집장 이자와는 마쓰다를 여성지로 끌어온 인물로 그에게 이 시모키타자와 3호 건널목 유령사건을 맡긴다.

 마쓰다는 기가 찼다. 심령이란걸 누가 믿겠는가. 그리고 그는 한 때나마 사회부 기자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지라 취재에 임하게 된 그에게 강한 사건의 냄새가 풍긴다. 건널목은 유령이라는 원혼이 서릴 만큼의 사건이 최근에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일년 전 그 건널목에서 한 여성이 살해되었다. 여성인 신원불상이었지만 범인이 워낙 확실했다. 범인은 야쿠자였는데 거의 반쯤 미친 상태가 되어 수감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쓰다에겐 밤 1시 3분이면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말이 없었고 귀신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는 전화였다. 마쓰다는 신원불상의 희생자를 뒷 조사 한다. 그녀는 유흥업계의 여자였고 상당히 어두운 분위기였는지 동료들이 모두 싫어했다. 그리고 일한 업소마다 이름이 달랐다. 에리라는 유흥업계의 종사자가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녀를 구슬려 취재하는 과정에서 마쓰다는 이 살인 사건이 한 정치인과 관련이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그는 오랜 다선의원이었고 최근 건설업계로부터의 청탁을 받은 비리로 인해 매우 간단한 수군의 벌금만 받은 상태였다. 마쓰다는 그 건설업계가 사실은 폭력단의 소유이며, 이 폭력단은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의원인 노구치 스스무에게 뇌물을 바쳤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뇌물은 돈이 아닌 바로 여자였고, 그 여성이 바로 희생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탈이 나자 폭력단의 노구치는 여성을 살해한다. 그래서 여성을 살해한게 야쿠자말단 조직원이었고, 경찰이나 검찰이 뒤를 밟지 못하도록 안 그래도 정보가 없는 그녀의 일말의 정보마저도 모두 지워버린 것이었다. 

 소설의 결말은 다소 권선징악이지만 다소 의외의 방향으로 끌려간다. 소설 도입부에선 유령이 단순한 속임수이거나 희생자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한 누군가의 주목을 이끌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유령이란 장치를 진짜로 등장시켰고, 끝까지 결말에서 진짜로 작용한다. 이 점이 독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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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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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사형제도가 존재하지만 김대중 정권 이후로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UN은 한국을 사형제도가 사실상 폐지된 국가로 분류한다. 20년 이상을 실행하고 있지 있다면 형법 상 사형제도를 없애도 될 것 같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국민감정이 엄연히 사형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형수와 무기수는 엄연히 다르다. 무기수는 장기간 수형생활을 하고 나면 가석방의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사형수는 잘해봐야 무기수 정도의 지위로 내려오기에 평생 감옥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범죄자를 감옥 즉, 교도소에 보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가 한 행위에 대한 응보적 조치이고, 다른 하나는 그 대부분이 결국 사회로 돌아올 것이기에 다시는 일탈 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교화를 하는 것이다. 모든 국가의 교도소는 이 두 가지 기능을 실행하지만 무게 중심을 어디냐 두느냐는 국가마다 천차만별이다. 미국은 철처히 응보적 조치에 초점을 둔다. 그 증거는 재범률과 교도소에서 수형자의 생활로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재범률은 매우 높고, 교도소 안에서의 범죄도 많다. 거기에 그들은 상당한 노역을 한다.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웬만한 국가들이 보기엔 이해가 안될 정도로 교도소 내에서 수형자들의 자유도가 높으며 시설도 훌륭하다. 그리고 재범률도 낮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응보적 조치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재범률은 매년 변하지만 25%정도다. 즉, 범죄자 4명 중 1명은 다시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교도소 시설도 매우 좋지 않다. 매우 비좁은 공간에 거의 군내 내무반 수준으로 죄수를 수용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각자의 사생활은 거의 없다. 여기에 냉방도 해주지 않는다. 가끔 교도소에 에어컨을 설치해야한다는 사회적 의견이 나오나 강력한 비토여론에 묻히기 일쑤다. 오죽하면 고 신영복 교수가 독재정권에 의해 억울한 옥살이를 할 때, 겨울이 좋다고 하셨을까. 그는 비좁고 냉난방이 잘 안되는 교도소에서 겨울은 서로의 온기로 버틸 수 있어서 좋았고, 여름은 그 반대로 싫었다고 한다. 사형제도가 엄연히 남아 있는 것도 응보적 조치에 초점을 두는 한 증거다.

 사형은 가장 강력한 응보적 조치이나 문제점이 많다. 일단 사람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이기에 반인권적 조치가 된다. 사람 죽이는 놈을 죽이는게 뭐가 문제냐 싶지만 이미 문명 국가의 형법은 함무라비 식으로 같은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형은 그것을 행하는 교도관에게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 누군가는 실행하는 버튼이라는 것을 눌러야 하고, 그것을 한 사람은 여러 보호장치로 자기가 한 것이 분명치 않더라도 사람을 죽였다는 외상에 시달리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사형은 정치사회적 문제도 많다. 한국근현대사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사형은 독재자가 정적을 제거하기 매우 좋은 수단으로 쉽게 악용된다. 조봉암은 실제로 사형당했고, 김대중도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그리고 사형은 돌이킬 수 없다. 사람이 구축한 사법시스템은 당연히 허점과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사람을 사형시켜버리면 이후 반전의 기회란게 아예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기수로 살려 두었다면 억울한 이를 구제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이런 경우는 적지 않게 발생한다. 

 책 '13계단'은 이런 사형제도에 대해 고민할 만한 여러 가지를 던져준다. 책은 준이치란 사형수가 출소하며 일어난다. 그는 한 사내를 술집에서 시비끝에 죽인다. 시비는 상대방이 걸었고, 준이치는 다투다 밀쳐진 상대방이 넘어지며 후두부를 물체에 강타당해 죽게된다. 상당히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살인은 살인이었다. 상해치사로 그는 2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가석방으로 출소하게 된다.

 돌아오니 집은 엉망이었다. 가족은 범죄자를 배출한 가족으로 낙인찍혀 사회적 지탄을 받았고 그 결과 동생은 고교를 자퇴했다. 부모는 희생자 유족은 7억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급하느라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준이치는 망연자실했는데 그런 그에게 교도관 곤노가 다가온다. 곤노는 준이치에게 제안을 한다. 한 사형수가 있는데 그의 범죄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조사해볼 만한 사안이었다. 그리고 곤노는 거액의 수당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이 준이치에게 매우 크게 다가왔다. 총 1억 5천 정도의 보수금이었던 것이고 이는 부모님의 무거운 짐을 상당부분 덜어낼 수 있을만한 금액이었다

 곤노와 준이치는 사건을 파헤쳐 나간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고 해당사형수는 살해동기도 마땅한 증거도 없음을 알 게된다. 사건은 여러 반전이 있는데 추리 소설치곤 많이 재밌진 않았다. 이야기의 설계는매우 훌륭한데 좀 쫄깃한 맛이 조금 부족했다. 오히려 수형생활과, 교화, 사형제도에 대한 고민이 좀더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유명한 일본 작가 가즈아키의 데뷔작으로 읽어볼만 하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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