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수다
전김해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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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보는 전김해 작가의 책이다. 저번에 본 책은 '사자와 쥐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는데 이번에도 어김 없이 사자가 등장한다. 아마도 사자는 작가의 페르소나인 듯 하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사자라는 생물이 가진 두 가지 상반된 면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자는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이며 암사자 무리를 이끌지만, 사실상 혼자 다니는 외로운 존재이며, 언제든지 다른 젊고 강한 외부의 숫사자에 의해 쫓겨날수 있는 불안한 처지에 있다. 이런 사자의 특성 때문에 작가는 사자를 선호하는게 아닐까.

 전김해 작가의 책을 보면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림이 재밌다. 전작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좀처럼 같은 사자를 그리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사자는 갈기나 표정, 형태, 크기가 제각각인데 이런 면도 재밌다. 같은 것을 매번 다양하게 그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 만해도 그렇다. 매번 완전히 다른 장르의 다양한 책을 보려고 하지만 책을 보고 써놓은 나의 글을 보면 나라는 개체를 거쳤기에 하나 같이 똑같다. 무척 아쉬운 부분인데, 때문에 작가가 다른 내용의 글과 그에 맞는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려내는건 쉽지 않았을 것이고 대단해 보이는 부분이다.

 '사자와 수다'에서는 사자의 상반된 특성처럼 인생의 여러 모순되는 장면을 통해 삶에서의 나름의 의미를 찾은 작가의 생각을 드러낸다. 책은 시나 단편처럼 짧은 글로 이루어지는데 '아버지와 아들1'에서는 강하고 위대한 아버지 사자를 닮으려는 아들에게 '나처럼 되지 말고 진정한 너가 되어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반대로 아버지와 아들2에서는 아들을 좀처럼 못 놔주는 과잉보호 사자에게 신이 아들을 과감히 내려놓으라고 자신은 그렇게 해서 아들을 한번도 잃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서로 상반되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말하는 연작이어서 재밌었다. 

 '슬픔이의 슬픔'이란 이야기도 좋았다. 큰 기와집 처마 밑에서 작은 슬픔이들이 울며 슬퍼하고 있었는데 왜 그러냐고 사자가 묻자 이 집이 부적을 붙여놓으며 슬픔들을 받아들이지 않아서라고 하였다. 사자는 집안 사람들을 오만하다고 비웃으며 마침 큰 슬픔이 지나가자 집안의 오만한 것들을 한방에 날려버리라고 한다. 하지만 큰 슬픔은 이들이 작은 슬픔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집이 한방에 무너질수 있고 자신들의 일을 집을 무너뜨리는게 아니고 연약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 말한다. 인간에게 실패와 세상사로 인한 슬픔이 그를 무너뜨리기보다는 딛고 일어서고 웬만한 역경을 견디게끔 단련시켜주는 존재라는 이야기다. 

 책을 두껍지 않지만 이솝이야기처럼 큰 5개의 주제아래 여러 이야기가 얽혀있다. 상당히 신박한 것도 다소 평범한 것도 있으며 이야기에 맞춰 다양한 그림들도 있다. 그림은 모두 흑백이고 대부분 거친 펜이나 연필로 그린 듯하다. 무거우면서도 다소 가볍게 생각하고 그림을 같이 그려내며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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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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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철수가 이루어졌다. 침공 20년만의 철수로 미국은 결국 유럽세력권이 아닌 지역에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데 다시 실패했다. 아프간의 역사는 한국만큼 복잡하다. 아프간은 중국과 연결된 혹모양의 자연스럽지 못한 국경을 갖고 있는데 이는 영국과 러시아간의 그레이트게임의 흔적이다. 

 아프간은 20세기 초중반까지 왕정이었다. 이슬람이 주 종교였지만 사람들은 비교적 자유로웠고, 여성도 교육받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1972년 왕의 해외순방 중 쿠데타가 일어났고, 그 세력도 오래 못가 공화정이 들어선다. 공화정은 다시 사회주의 정권으로 교체되었고 이에 소련이 침공한다. 소련에 대항해 아프간내 여러 반군 세력이 일어났는데 그 중 하나가 탈레반이고 그들을 소련의 적인 미국이 지원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침내 소련이 아프간에서 물러나고 반군세력간의 내전 끝에 탈레반이 1995년 정권을 차지한다. 종교근본주의로 아프간 사람들의 자유는 사라지고 여성의 인권은 바닥을 쳤다.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났고, 알카에다의 중심으로 알려진 아프간은 미국의 침공을 받고 탈레반은 무너진다. 하지만 결국 미국은 아프간에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를 세운는데 실패하고 철수했으며 다시 탈레반이 돌아왔다. 지난 20년간의 절치부심으로 탈레반은 국제사회의 중요성을 깨닫고 인정받는 것의 필요성을 절감하는듯 하지만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 기준에 얼마나 스스로를 맞추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 기준은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설 '연을 쫓는 아이'는 어려서 미국으로 건너간 아프가니스탄의 사람이 영어로 쓴 최초의 소설이다. 출간된지는 10여년이 흘렀지만 아프간의 복잡한 역사와 그 안에 휩쓸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배경으로 한 사람이 용기와 용서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그려낸 소설이다. 읽으면서 아프간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 사회적 배경등에 대해 알게되었는데 그져 가난한 불모지에 폐허, 이슬람 근본주의로만 상기되는 아프간의 이미지를 좀 더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책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는 카불인데 그곳에도 우리나라의 강남같은 부유층 거주지가 있었고 근사한 정원과 이층집을 가진 바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바바는 명문가 출신으로 부유한 상인이면서 아프간의 왕정과도 인연 및 친분이 있었다. 바바의 집엔 4명이 살고 있는데 바바 본인과 그 아들인 아미르, 하인 알리와 알리의 아들 하산이었다. 아미르의 어머니는 아미르를 출산하면서 사망하였고, 하산의 어머니는 하산이 출생한 후 4개월이 지나지 않아 집을 나가버렸다. 

 아미르와 하산은 친구처럼 지내지만 아미르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하산과 놀지 않는다. 바바와 아미르는 아프가니스탄의 주요계층은 파슈툰 족이지만 알리와 아산은 하자라족이기 때문이다. 하자르족은 몽골계출신으로 외향이 확연히 달랐고 시아파였다. 반면 파슈툰은 백인계였고, 다수이자 수니파였다. 하지만 아버지 바바는 알리와 하산을 무척 아꼈과, 아미르 역시 하산과 친하게 지낸다. 

 바바는 거친 남자이면서 주변 사람들을 많이 돕는 사람이었지만 유독 아미르에게 엄격했다. 반면 아미르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약했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런 아미르를 이해해주는 것은 바바의 친구 라힘칸이었다. 아프간에서는 매년 겨울 연날리기 대회가 자주 열렸는데 여기서 우승하는 것은 소년들의 로망이자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아미르가 바바에게 인정받을 만한 것은 이부분이 유일했는데 아미르는 연날리기엔 제법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미르는 하산과 더불어 마침내 가장 권위가 있는대회에서 우승한다. 연날리기 대회에서는 우승못지 않게 떨어진 연을 줍는 것도 중요한 성과였는데 이 부분에 일가견이 있던 하산은 지친 아미르를 대신해 마지막까지 아미르와 경쟁한 파란 연을 쫒는다. 

 아미르는 기력을 회복하고 하산을 찾는다. 하산은 푸른 연을 찾는데는 성공했지만 평소 아미르와 하산을 괴롭히던 아세프 무리에게 하산이 둘러쌓인걸 목격한다. 아세프는 하산에게 푸른연을 요구하지만 하산이 거부하자 아세프는 하산을 성폭행한다. 아미르는 이 모든 것을 목도하고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모든 희생을 치루고 연을 가져온 하산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하산을 보는 것만으로도 용기없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용서가 되지 않았던 것. 영문을 모르는 하산은 아미르가 자신을 피하자 괴로워하기 시작했고 둘은 서로를 피하기 시작한다.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아미르는 결국 자신이 받은 생일 선물들을 하산의 침대에 숨겨놓고, 결국 하산이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아버지 바바는 하산에게 물건을 훔쳤나고 묻고 놀랍게도 하산은 자신의 행위가 아님에도 이를 인정한다. 더 놀랍게도 바바는 바로 용서를 하지만 하인 알리는 아미르의 소행임을 눈치채고 더이상 이집에 머무르게 어려움을 감지한다. 하인 알리는 아들 하산과 집을 떠나고 하자라족들이 모여사는 하자라자트로 가버린다. 바바는 친구 같던 알리의 떠남에 눈물로 만류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아프간의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소련군이 침공한다. 바바의 부는 무의미해졌고, 사람들은 서로간의 모함으로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위기를 느낀 바바는 모든걸 버리고 아들 아미르와 파키스탄을 거쳐 미국으로 도망간다. 바바와 아미르는 미국에서 처음부터 모든걸 다시 시작했고 부유하고 명망있던 바바를 한낮 주유소 직원으로 전락한다. 바바와 아미르는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떼고 팔아 부수입을 올리기 시작했고 형편이 조금 나아진다. 

 아미르는 전문대학에 진학해 문학을 전공하고 책도 쓰는 작가가 된다. 그리고 역시 미국으로 도망온 전직 장군의 딸 소라야와 결혼하게 된다. 아미르가 결혼하고 얼마되지 않아 굳건하던 바바는 암으로 사망한다. 아미르와 소라야는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둘 사이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모든 인공수정시도도 실패로 돌아갔고 무엇보다도 둘 사이엔 의학적으로 불임의 원인도 없었다. 아이는 없었지만 아미르는 작가로서 책을 네권이나 내며 안정되어갔고 소라야도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아미르에게 아프간을 떠난지 20여년 만에 라힘칸에게서 연락이 온다. 라힘칸은 하산의 소식을 전하며 아미르가 아프간으로 와주기를 원한다. 바바는 아프간을 떠나며 친구 라힘칸에게 자신의 집을 맡겼다. 라힘칸은 큰 저택을 혼자 관리하는데 힘이 붙였고 이에 하자라자트로 가서 알리와 하산을 찾았다. 알리는 사망한상태였고 하산은 결혼하여 소랍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놀랍게도 어려서 하산을 버리고 도망간 하산의 어머니도 돌아온 상태였다. 젋어서 뭇 남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던 하산의 어머니는 세월의 고초를 심하게 겪어 모습이 많이 변한 상태였다. 

 하산을 설득한 라힘칸은 같이 카불로 돌아와 바바의 저택에 살게된다. 수년간 행복했고, 하산의 어머니는 소랍을 애지중지 키우다 소랍이 네살이 되던 해에 죽는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탈레반이 집권하자 모든게 급변한다. 하자라족이 대저택에 살던게 마음에 들지 않던 탈레반은 이를 빌미삼아 하산과 그 아내를 처형한다. 그리고 아들 소랍은 고아원으로 넘겨버린다. 이로 인해 라힘칸은 미국의 아미르를 찾는다. 하산의 아들 소랍을 아프간으로 와서 찾아가야한다는 것이다. 

 아미르는 망설인다. 용서를 구하지도 못한 하산이 죽어버린 것은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아들까지 찾으라니. 하지만 아미르에게는 소랍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고 이는 아미르에게 무척 숙명적인 일이었다. 이후의 부분은 아미르가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 소랍을 찾는 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아미르는 스스로를 용서하게 되고 그럴만한 일도 용감하게 해낸다. 

 저자가 책을 쓴 시점은 2000년대 초반으로 탈레반 치하에서 아프간이 미국으로부터 해방되고 침공당한 시점이다. 그래서 탈레반 이후의 희망이 다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불과 십수년이 지나 다시 탈레반의 차지가 된 아프간을 보며 저자가 어떤 심경일지 고민된다. 아마도 무척 절망스러울 것이다. 미국의 현지 사회문화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미국이 세운 아프간 정부의 무능을 감안하더라도 그토록 탈레반의 치세가 가혹했다면 어떻게 이렇게 빨리 탈레반이 정권을 되찾을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미국과 부패한 아프간 정부를 탈레반 보다 더 싫어한게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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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빛 하늘 아래
마크 설리번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의철학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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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승자의 기록만 남긴다. 승자가 쓸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2차대전의 최대 승자는 미국이고, 그들은 세계를 지배하고 영화라는 막강한 미디어까지 장악했기에 이전의 승자보다 역사를 쓸 권한을 더 크게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린 2차대전에서 큰 피해를 입고, 전쟁의 향방을 좌우하고 크게 승리한 것을 미국이라 생각하지만 2차대전에서 미국의 참전시기는 짧고, 전사자는 생각보다 적다. 최대 전사자는 소련이 기록했고 그 수는 미국의 무려 50배에 달한다. 

 같은 승자도 이럴진데 패자는 어떨까. 물론 그들은 침략을 당한 패자도 아닌, 침략을 감행한 패자였기에 더욱 역사를 쓸 권리를 박탈당했다. 패자는 독일, 일본, 이탈리아다. 그래도 독일과 일본은 강력했던 패자들이기에 승자에 의해 많이 가해자로 다뤄지기도 하며 자신들도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렇다할 존재감을 보이지 않았던 이탈리아는 언급되지도,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2차대전 하면 무솔리니와 너무 무기력해서 히틀러를 짜증나게 했던 나약한 이탈리아군대만이 생각날 뿐이다. 

 그런 2차대전에서의 이탈리아의 모습을 소설 '진홍빛 하늘 아래'에서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패전국 이탈리아 사람들은 2차대전에서 나치에 적극 협력하는 파시스트들, 어쩔 수 없이 전쟁에 휘말려가며 협조해야했던 대다수의 대중들, 그리고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게릴라들로 나뉘어졌다. 전쟁은 독일이 일으킨 만큼 이탈리아의 대중들은 전쟁에 상당히 소극적이고 반감을 갖는 모습도 많이 그려졌는데 이것이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의 다수의 모습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전황이 불리하게 바뀌어가고 고통이 가중됨에 따라 긍정적 태도에서 비관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바뀌어나가지 않았을까?

 소설의 주인공은 피노렐라다. 때는 1943년으로 사실상 전쟁막바지의 시점으로 전황이 뒤집히는 시점이었다. 공세였던 독일은 동서 양방향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프라카전선에서도 독일과 이탈리아는 물러났는데 이탈리아는 독일의 남부지역 방어선으로서 그리고 인력과 병참기지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 유명한 피아트가 이때도 있어서 독일에게 전투기와 탱크등을 제조해 공급하고 있었다. 

 피노렐라가 사는 지역은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로 아름다운 코모호수가 있는 곳이다. 피아트 공장도 있고, 패션도 유명했다. 피노의 부모님은 밀라노에서 가죽 공예품을 가는 가게를 운영한다. 1943년 피노렐라는 키도 185에 달할 정도로 컸지만 불과 18세로 아직 철없는 어린아이였다. 피노는 친구들 그리고 동생 미모와 밀라노 시내에 나갔다가 안나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다.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접근해 저녁 영화를 같이 보기로 한다. 신이 난 피노는 저녁에 동생 미모와 함께 안나를 보러 나가지만 결국 바람맞았고 하필 그날 최초로 밀라노에 연합군의 폭격이 시작된다. 극장도 폭격을 당했고 집에 돌아와 보니 부모님의 가게도 폭격을 당했다. 

 가게가 무너져 모든 걸 잃은 피노의 부모는 절망하나 곧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을 스위스 국경 인근 알프스의 카사 알피나로 보낸다. 카사 알피나에서 피노는 레 신부를 만났고, 카사 알피나로 가는 길에 장래 레이서가 꿈인 알베르토 아스카리도 만난다. 카사 알피나에서 레 신부는 이상하게도 피노에게 매일 산행을 시킨다. 산을 타는 요령도 이상하다. 최대한 남의 눈에 띄지 않게이며, 체력과 자신감이 찰 때만 특별하고 위험한 코스를 등산시켰다. 수개월후 피노가 알프스의 카사 알피나에서 알프스로 넘어가는 여러 코스를 숙달한 후 레 신부는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는다. 레 신부는 그간 밀라노의 슈스터추기경과 결탁하여 유대인들을 피신시키고 있었고 카사알피노로 온 유대인들을 스위스로 대피시키고 있었다. 

 피노는 이 위험한 일을 수락한다. 그리고 수 개월간 피노는 수십에서 수백의 유대인들과 함께 산을 넘는다. 다들 피노처럼 산행에 익숙치 않았고 노인에 임산부, 아이들까지 있어 매우 위험했지만 단 한번의 실패도 없었다. 이 일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곧 유대인들이 몰리게 되었고 이에 레신부는 다른 아이들까지 훈련을 시켜 피노의 일에 동참시켰다. 한편 피노는 산행과 더불어 쉬는 날이거나 휴일 혹은 돌아오는 길에 알베르토 아스카리에에게 운전을 배웠다. 그는 운전 실력이 매우 뛰어났고, 자동차에 대해서 잘 알았다.

 수개월이 흘러 피노의 부모가 피노는 밀라노로 불러낸다. 피노는 자신의 일을 더이상 하지 못하는게 아쉬웠지만 부모의 편지 내용이 너무나도 단호해 돌아갈수 밖에 없었다. 밀라노에서 부모를 만난 피노는 더이상 철부지 소년이 아니었다. 수개월간 피노는 체력이 매우 강해졌고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으며, 여러 사람의 생명을 살린 사람이었다. 부모가 피노를 부른 이유는 피노가 나이가차 곧 징집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고심끝에 피노의 부모와 외삼촌은 그를 독일군에 입대시키기로 한다. 단 손을 써서 밀라노에 주둔하는 비전투부대에 배치시키기로 한다. 전방으로의 입대는 당시 전황으로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피노는 자신이 하던 일과 정반대의, 적의 일을 하게 되어 탐탁치 않았지만 부모의 단호한 설득에 어쩔수가 없었다. 특히나 게릴라 활동을 하는 외삼촌마저 그리 주장하니 딱히 답이 없었다. 피노는 밀라노의 기차역에 주둔하다 폭격을 당한다. 운이 좋게 살아남았지만 손가락 두개가 거의 절단당할 뻔한 위기였다. 그러다 곧 독일군 장군 레이어스의 눈에 들게된다. 피노의 뛰어난 운전실력과 자동차정비능력,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인근 지역의 지리를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어스 장군은 이탈리아 지역의 군수담당이었는데 이탈리아의 고딕 방어선을 구축하고, 지원하며 독일전방으로 군수지원을 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때문에 피노는 그와 같이 돌아다니며 독일군의 대비태세와 주요 병참계획, 방어지역, 이동계획등을 자연히 사전에 알게된다. 그리고 이는 피노의 외삼촌을 통해 게릴라와 연합군으로 넘어가게 된다. 피노는 겉으론 나치였지만 어느새 연합군 첩자노릇을 하게 된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피노는 꿈에 그리던 안나를 만나게 된다. 아직도 어리지만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피노를 안나는 처음에 알아보지 못한다. 안나는 레이어서장군의 정부의 가정부였다. 둘은 서로 친해지고 안나는 피노가 첩자 노릇까지 하는 것을 알게되며 그를 좋아하게 된다. 

 한편 피노는 레이어스를 따라다니며 온갖 악행을 보게 된다. 놀랍게도 무솔리니를 만나기도 했고, 게릴라 이탈리아인과 유대인들을 온갖 토목공사에서 노예처럼 부리는 광경도 보게 된다. 나치는 그들에게 이렇다할 물과 음식도 제공하지 않으며 일을 시켰다. 나치가 구축한 방어선과 온갖 기지는 모두 이들이 만든 것이었다. 거기에 잡힌 유대인들을 집단처형시키고, 유개화차에 아이들과 부모들을 싫어 아우슈비츠로 보내는 장면도 목도한다. 레이어스는 보통 기계처럼 잔혹하고 자신의 임무에만 철저했지만 간혹 끔찍한 장면을 보기 힘들어하기도 하고, 한번은 이상하게도 아우슈비츠로 보내는 아이들중 몇몇을 구해 손수 스위스 국경에 풀어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구해준 것이 자신임을 몇번이고 강조하며 아이들의 뇌리에 새기는걸 잊지 않기도 했다. 아마도 패전을 직감한 레이어스가 보험을 들어둔 것이리라.

 마침내 1945년이 다가왔고, 로마에 이어 이탈리아 북부의 밀라노도 연합군에 점령된다. 피노는 게릴라들의 요청으로 레이어스를 손수 체포하여 넘겼는데 이로 인해 제시간에 스위스 인스부르크로 대피하지 못한 레이어스의 정부와 안나가 성난 대중들에 붙잡히기 만다. 나치의 치하에서 벗어난 밀라노는 격노에 휩싸였는데 파시스트와 그 부역자들의 숙청되었다. 나치와 놀아났던 여자들은 모두 속옷차림에 머리를 밀어버리고 우스꽝스럽게 립스틱을 바르고 이마에 창녀라는 글자를 새겨넣은후 조롱하다 처형시켰다. 그 와중에 안나도 휩쓸려 희생된다. 피노는 그 과정을 목도하고 아무런 저항도 못한 자신을 원망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피노 자신의 목숨도 위험했다. 연합군 주요인사나 게릴라 주요인사들은 피노가 첩자란걸 알지만 일반 대중은 그렇지 않았다. 약간의 의심만으로도 사람들은 특정인을 파시스트나 부역자로 몰았고 쉽게 희생되었다. 

 도망다니던 피노는 미군으로부터 특별임무를 부여받는다. 놀랍게도 레이어스장군을 스위스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독일의 항복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와의 인접지역엔 아직 잔존세력의 저항에 계속되고 있어 매우 위험한 임무였다. 히틀러이전에도, 히틀러시대에도, 히틀러 이후에도 자신은 잘 살아남을거라던 레이어스는 아마도 패전을 직감하고 연합군에 일종의 보험을 넣어둔 것이 분명했다. 연합군에 레이어스 장군은 영웅취급을 받고 있었고 그의 신병은 중요했다. 심지어 레이어스는 피노의 암호명인 관찰자라는 칭호마저 알고 있었다. 복잡한 심경으로 피노는 레이어스 호송 임무에 착수한다.

 이 소설은 무려 650페이지에 달한다. 많이 두껍지만 가독성이 높았다. 향후 영화로도 제작된다니 재미는 보장된 책이다. 저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책을 썼는데 그래서 마지막 십여페이지에 걸쳐 소설의 주요인물들이 전쟁 종료 후 어떻게 인생을 살아갔는지가 서술된다. 마치 밴드오브 브라더스나 실제 전쟁영화 마지막 무렵 주인공들의 이후 삶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책을 보면서 2차 대전이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고,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패자, 특히, 전쟁을 일으킨 패자의 입장에서 전쟁을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혹은 저항을 하지 못해서 일어난 전쟁에 휩쓸려 피해를 보게된 패전국 다수 일반사람들의 고통을 그들의 시선을 통해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된다. 그래야 전쟁의 참상을 계혹 기억하고 전쟁에 반대할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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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2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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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친코는 일본의 도박기계다. 사실 일본에서는 도박기계라는 용어가 무색하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애용한다. 한국으로 따진다면 그냥 PC방에 있는 컴퓨터 수준이다. 소설 파친코는 제목이 파친코이면서도 1권까지는 파친코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2권을 보면 파친코가 인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그래서 제목이 이럴수 밖에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2권은 1권에 이어 1950년부터 1989년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1989년은 일본이 전후 강력한 경제성장을 끝마치고 잃어버린 20년으로 들어가는 시작점의 시기다. 그래서 이 시기까지 자른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마 여기서 다 나아갔다면 재일교포세대가 더욱 길어지면서 일제강점기와 한국과의 정서적 거리가 더는 다루기 힘들정도로 멀어졌을 것이다. 

 책은 의외로 한국전은 그냥 넘어가버린다. 1953년이 등장하고 노아와 모자수가 제법 컸다. 요셉은 나가사키에서 일하다 원폭당시 벙커에 숨어있어 무사했지만 너무 빨리 나오는 바람에 몸에 큰 화상을 입어 자리에 눕게된다. 이 때부터 요셉은 집안의 짐이 되어버리고 만다. 다른 식구들은 고통을 겪는 요셉의 비싼 약값에 학업이 뛰어난 노아의 학비를 대기위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1권에서의 김치만들기는 더는 하기가 힘들어져서 양진과, 경희, 선자는 설탕과자 가게를 운영한다. 어려운 형편에 노아는 학비와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경리일도 담당한다. 일본어가 뛰어나고 셈도 우수해 쓸만한 경리가 된다. 모자수는 아버지 이삭과는 다르게 거칠었다. 자신을 조선인이라고 무시하는 일본녀석들은 무조건 두들겨줬다. 이로 인해 선자와 경희가 곤란한 경우가 많았지만 싸움이 절대 모자수의 잘못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없었기에 모자수를 나무랄수만은 없었다. 모자수는 왕따를 당하던 하루키를 돕고 둘은 친구가 된다. 하루키는 엄마가 도토야마라는 사람으로 옷을 만드는 솜씨가 뛰어났고, 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었다. 

 노아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재수를 하긴 했지만 와세다에 입학한다. 그리고 선자의 만류에도 한수는 노아에게 접근해 조선인을 돕는다는 핑계로 노아의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한다. 선자는 어려운 형편에 이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다. 노아는 대학생활을 하며 요리코란 여자를 만나게 된다. 요리코는 매우 자유분방했고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 차별도 싫어했다. 일본이란 나라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노아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요리코로 인해 한수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되고 자신을 사랑한다기보다는 일본인이 아닌 자유롭고 개방적인 이상적 외국인 상을 자신에게 찾는 것 같은 요리코와 헤어진다. 노아는 한수가 아버지임을 알게되고 충격에 빠져 가족 모두에게 강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야쿠자인 한수의 더러운 피가 자신의 몸에 흐름과 동시에 아버지라 생각했던 이삭처럼 살고자 했던 노아는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와세다를 그만두고 나가노로 떠나버린다. 노아는 나가노에서 자신이 조선인임을 숨기고 파친코 업체에 취직한다. 모든 능력이 뛰어난 노아가 중역이 되는건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노아는 일본인처와 결혼하여 자녀를 4이나 두게 된다.

 모자수는 형이 와세다로 떠나자 답답한 학교를 그만둔다. 생활고로 인해 모자수도 돈을 벌게 된 것. 조선인인 고로사장의 눈에 들어 모자수는 파친코업체에서 일하게 된다. 고로사장은 일을 잘하는 모자수에게 7번째 업체의 경영을 맡기고 이에 걸맞는 옷을 해주로 하루키의 엄마 옷사게를 찾는다. 거기서 만난 조선인 유미에게 반해 모자수는 결혼을 하게 된다. 여러 차례의 유산 끝에 유미가 임신기간 내내 누워있으며 어렵게 얻은 아이가 솔로몬이다. 하지만  솔로몬이 경우 3살때 유미는 교통사고로 솔로몬을 보호하다 죽는다. 그리고 모자수는 승승장구해 거부가 된다. 요셉도 죽고, 양진과 경희, 선자는 더 이상 설탕가게 과자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양진이 죽는다. 장례식엔 모처럼 한수가 선자를 찾는다. 그리고 마침내 노아를 찾았음을 밝힌다. 노아가 와세다를 그만두고 잠적한지 무려 11년만이었다. 둘은 노아를 찾고 노아는 의외로 그들을 반갑게 맞는다. 그리고 다시 찾아뵙겠다는 노아의 말에 선자는 안신하지만 실수였다. 노아는 바로 자살하며 생을 마감한다. 사실 책에게 가장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자신도 아버지가 되었는데 이것이 자살할만한 일이었을까. 모자수는 야스코라는 일본인 여자를 만나는데 그녀에겐 하나라는 딸이 있었다. 하나는 야스코의 거듭된 바람으로 파탄난 가정에서 자라나 엄마를 닮아 무척 매력적이었지만 정신적으로 불안했다. 솔로몬은 하나에게 반해 사랑에 빠지지만 하나는 솔로몬를 떠나버리고 솔로몬도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솔로몬은 성인이 되어 돌아오고 한수, 경희, 선자는 이미 70대 이상에 접어들었다. 1989년이었다. 솔로몬은 한국계 미국인인 피비를 데려온다. 솔로몬은 피비와 처음에 결혼할 생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피비는 완전히 미국인이 되어버린 자신의 가정과는 다르게 조선인의 느낌이 많이 남아있는 솔로몬의 집을 좋아한다. 피비는 일본에 살지도 않고 어려서 미국에 갔음에도 일본을 싫어한다. 전쟁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이미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인이나 다름없는 솔로문이 외국인으로 3년마다 등록해야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편 솔로몬은 그렇지 않다. 그는 일본인중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고, 나쁜 사람도 많았지만 그건 조선인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부유했기에 일본에서 살아가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인처럼 살듯했던 솔로몬에게 사건이 발생한다. 회사에서 일하던 중 일본인 상사의 부탁을 받고 부동산 매도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고로아저씨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것이 야쿠자의 소행이라 생각하고 매도자가 사망한 일을 의심한 상사에 의해 부당해고 되고 만 것. 

 이 일로 솔로몬은 피비와도 헤어지고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놀랍게도 아니면 당연하게도 솔로몬이 선택한 것은 재취업도 미국으로 향하는 것도 아닌 파친코 사업을 아버지에게 물려받는 것이었다. 어쩌면 첫 세대인 한수에 이어 아들세대인 노아와 모자수에 이어 삼세대인 솔로몬도 일본에서 살아가는 길로 파친코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소설은 끝이 아닌 끝을 맺는다. 

 책은 조선에서 김훈과 양진의 첫 세대, 그리고 자녀이면서 일본으로 건나간 선자와 한수, 백이삭, 요셉, 경희의 이 세대, 일본에서 태어난 노아와 모자수의 삼 세대, 그리고 솔로몬 4세대를 다룬다. 일본에서 태어난 삼 세대부터 조선어를 쓰기보단 일본어를 많이 쓰고 정체성에 혼돈을 보이며 자신이 차별받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사회에서 부모가 조선인일뿐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문화에서 자라났지만 외국인으로 생활해야하고 차별은 물론 제대로 된 직장에도 거의 취업하지 못하기에 가난을 피하려면 그들에게 선택지는 어쩌면 파친코였을 뿐이란 생각이다. 일본에서 파친코는 수천만이 즐기면서도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 마치 중세 유럽인이 부정하다 생각한 은행업과 고리대업을 유대인에게만 허용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부유하게 자라났으며 외국인 학교에서 공부하고 유학까지 마친 4세대인 솔로몬 마져 파친코에 들어서게 되는 것은 어쩌면 해결되지 못한 일본사회에서의 재일교포문제와 조선인으로서의 그들의 부인할수 없는 정체성을 보여주는 모습같단 생각이다. 

 소설 파친코는 시대적 비판을 강하게 하진 않는다. 시대의 아픔을 적절히 드러내면서도 자신들의 운신과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의 격랑속에서도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을 더 크게 조명한다. 어떤 시대든 삶은 살아내는 것은 결국 개인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끝내는 것 같은 느낌이 안들어 더욱 여운이 깊게 남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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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06 16: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재일교포문제는 항상 책임을 느끼게 하는 분야입니다.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이승만이 일본과 단교를 해버리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해방된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적국에 남게된 마음이 어땠을까?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사실상 파친코 외에는 거의 없었다는걸 알면 더 마음이 아프네요. 닷슈님 글에서 그들의 상황을 좀 더 알게 됩니다.

닷슈 2021-08-06 21:55   좋아요 1 | URL
책에서도 교포 2-3세대들의 고민이 묻어납니다. 한국에도 가봤다고 하는데 거기서도 자신은 일본인일 뿐이라고 하더군요. 조선말을 잘 못하는 어설픈 조선인이나 한국인으로 관광다니는 것 보다 오히려 일본인 관광객으로써 일본어만 쓰면서 다니는게 더 편하답니다. 한국에서는 일본인이고 일본에선 조선인일 수밖 없었던게 현실이었겠죠.

붕붕툐툐 2021-08-06 22:42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말씀에 완전 공감합니다.

초란공 2021-08-06 17: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민진 작가 재일조선인과 인터뷰하면서 이들이 스스로 희생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글을 다시 썼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고 세심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한 작업이라고 느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닷슈 2021-08-06 21:56   좋아요 2 | URL
그런 언급이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 나오더군요. 그래서 더 좋은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런 강렬한 첫 문장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인듯 합니다
 
파친코 1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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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 문장은 이 소설의 첫머리에 나온다. 강렬하다. 책을 평론한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곤 했는데 막상보니 진짜 강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과 사건을 관통하는 것도 결국 이 문장일 것이고, 현재 우리 삶도 그러할 것이다. 역사책에는 온갖 사건과 문명의 흥망성쇄가 나오지만 그건 중심인물 위조로 쓴 몇 안되는 증거에 기반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역사는 그것에 의해 시대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역사가의 어쩔수 없는 서술이 된다. 당대에 사람들은 그런 시대적 영향이 자신의 인생을 망쳐놨겠지만 그래도 생존을 위해 자식을 위해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이다. 

 파친코 1권은 1910년에서 1949년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작가 이민진은 한국계 미국인인데 아버지는 함경도 출신, 어머니는 부산 출신이다.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갔다. 그리고 남편이 일본계 미국인으로 작가는 북한과 남한, 일본, 재일동포, 이민이라는 배경을 갖고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책으로 들어가보자.

 1910년 부산에 한 부부가 살았다. 자기 집 하나 없이 세를 얻어 살고 있지만 집은 14평이나 되었고 안에 방도 여러개가 있어 하숙집으로 운영했다. 남편은 고기를 잘 잡았고, 아내도 그러해 집엔 돼지가 서너마리 닭도 10마리 가량이 있는 알부자였다. 그런데 부부는 자식복이 없었다. 애가 좀처럼 생기지 않다가 간신히 훈이를 얻었다. 그런데 훈이는 언청이에 다리가 불편했다. 그런 훈이였지만 그는 힘이 셌고 성실했으며 착했다. 훈이가 27-8이 되자 중매쟁이가 찾아왔다. 마침 영도에 가난한 이가 살았는데 딸만 서넛이어서 생계가 곤란했다. 그 어부의 막내딸 양진이 그렇게 훈이의 배필이 됬다.

 장애를 가진 훈이는 아내를 갖게 된 것만으로도 매우 기뻤다. 훈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훈은 아내에게 매우 잘해주었고 살림도 나쁘지 않았지만 훈이 역시 부모처럼 자식 복이 없었다. 첫째는 훈이처럼 언청이였고 얼마안가 죽었고 둘째는 소에 치여 죽었으며 셋째는 설사와 열병을 앓다 죽었다. 그러다 얻은게 넷째 선자였다. 훈이는 선자를 금지옥엽으로 키웠다. 자신과 다르게 정상으로 태어난게 기뻤고 그래서 무척 아꼈다. 하지만 훈이의 부모님은 모두 죽고, 훈이도 선자가 10살쯤 될 무렵 결핵으로 죽었다.

 그렇게 훈의 아내 양진은 훈이 물려준 하숙집을 운영하며 선자를 키워낸다. 선자는 작고 예쁘지 않았지만 튼튼하고 성실하며 매력이 있었다. 그런 선자를 눈여여 본게 한수였다. 한수는 조선인이었지만 부자였고 일본어에 능통했으며 매력이 있었다. 나이는 삼십대 중반으로 선자 어미니 양진뻘이었다. 한수는 일본인 학생에게 곤욕을 치루던 선자를 구해주고 이를 계기로 가까워진다. 선자는 한수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그제서야 한수가 일본 오사카에 아내와 딸 셋을 가진 유부남이었음을 알게된다. 한수는 선자를 조선인 현지처로 거두고 보살피려 하지만 선자가 이를 거부한다. 

 그런 선자에게 손길을 내민건 양진의 하숙집에 기거하던 이삭이다. 이삭은 평양에서 내려온 목사로 약한 몸이었지만 형 요셉이 머무는 일본 오사카로 가려던 중 오래 여정으로 결핵에 걸려 양진의 하숙집에 머물고 있었다. 양진 모녀의 돌봄으로 병이 나은 그는 자신이 선자를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의 아이를 가진 선자와 결혼해 일본 오사카로 향한다.

 선자는 거기서 요셉과 그의 아내 경희를 만난다. 선자는 자신과 이삭을 거두기 위해 입국허가증을 사느라 거액의 빚을 진 요셉을 위해 한수에게 받은 시계를 전당포에 판다. 그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일본에 적응해간다. 그리고 한수의 아이 노아를 낳고 이삭의 아이 모자수를 낳는다. 노아는 영특하고 공부를 잘했고, 모자수는 무척 귀여운 아이였다. 이런 아이들을 요셉도 무척 좋아했다. 

 행복은 잠시였다. 노아가 8세가 되던 해 이삭 교회 신자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이삭이 이를 옹호하다 수감된다. 2년의 수감기간 동안 옥바라지를 하느라 가세가 기울자 선자는 시장통에서 김치를 판매하고 김창호란 식당주인의 눈에 들어 경희와 함께 식당에 취직하게 된다. 경제문제는 해결되었지만 2년후 돌아온 이삭은 초주검상태였다. 죽을때가 되어서야 감옥에서 죽으면 곤란하니 풀어준다던 사람들의 말이 사실이었다. 이삭은 2년간 자라난 자신의 아이들을 보며 죽는다. 

 1944년이 되어 2차대전 말미로 식당의 요리도구까지 모조리 징발되어 식당이 문을 닫는다. 그런데 한수가 갑자기 나타난다. 사실 한수는 선자가 전당포에 자신의 시계를 파는 시점부터 선자가 오사카에 와 있음을 알아차렸다. 전당포도 한수의 세력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김창호가 운영하던 식당역시 한수의 것이었다. 사실 한수는 선자 모르게 선자와 아이를 돕고 있었다. 그런 한수는 일제의 패망을 예상하며 오사카는 폭격의 대상이 되어 위험하니 선자와 경희를 설득해 그 일가를 농촌으로 대피시킨다. 그리고 양진도 농장으로 데려오고 한수의 말처럼 일제를 패망한다. 

 일제의 패망후 선자나, 양진, 경희, 요셉은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한수는 만류한다. 양 세력으로 분단된 나라는 패전국 일본보다 훨씬 위험했다. 충돌이 뻔했다. 그러면서도 한수는 노아에게 조선어를 배우게 한다. 결국 조선이 독립했으니 언젠간 조선으로 돌아갈수도 있음을 직감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1편의 간략한 내용이다. 몇대에 걸치는 긴 서사에 다양한 사건과 전환되는 배경, 인물들의 운명이 아프게 느껴지지만 그걸 담백하게 서술해내어 상당히 흡입력이 있었다. 첫문장처럼 끔찍한 시대적 배경에도 조선인들은 일본에서 악착같이 살아낸다. 독립운동이든 친일이든 그건 그들의 일이 아니었다. 힘든 와중에도 어떻게든 살아내고 자식을 키우고, 사랑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던 것이다. 2권은 1953-1989년이 배경이다. 한국전은 어떻게 담아낼 것이며 해방한 조국에 한수와 노아, 경진, 선자, 모자수, 요셉이 어떻게 들어가게 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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