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의 힘 - 무엇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고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가
폴 몰랜드 지음, 서정아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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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토와 더불어 인구는 오랫동안 한 국가의 힘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였다. 유럽에서 시작한 산업화와 더불어 과학기술 문명이 발달하며 인구의 중요성은 잠시 잊혀지는듯 했지만 그건 착각이다. 산업화로 인해 유럽 지역은 오랜 인구정체를 탈출해 맬더스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실제로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그 작은 유럽의 인구는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 쓴 책이다. 물론 나라의 힘이 단순히 인구만 많다고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 인구가 매우 많지만 미국만큼 전혀 강하지 못하며, 인도는 말할 것도 없다. 반면 캐나다나 호주는 인구가 적지만 그에 비해 충분히 강하다. 

 인구와 관련한 용어로 출생률과 사망률이 있다. 이는 모두 인구 1000명이 기준으로 출생률이 36명이면 해마다 인구 1000명당 36명이 출생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망률이 54명이면 해마다 인구 1000명당 54명이 사망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출산률은 여성 1명당 실제로 기대되는 출산수를 의미한다. 출산률이 0.7대인 한국은 여성 한 명이 평생 1명도 채 낳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통 대체출산률을 2로 잡는데 부부 둘이서 두 명을 낳아야 인구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이를 볼 때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의 인구는 급감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중위연령이란 개념이 있다. 중위연령은 그 나라 인구의 평균 연령으로 선진국일수록 중위연령이 높으며 인구가 성장하는 개도국일수록 중위연령이 낮다. 2021년 한국의 중위연령은 대충 40세정도이며 베트남은 20대 후반이다. 

 18세기까지 전 세계의 인구는 정체였다. 인구성장율은 매우 낮았고, 과거보다 인구가 적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멜더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적으로 늘어 인구가 늘어날수 없음을 말했는데 그 맬더스의 덫에 딱 갇혀있는 형국이었다. 그런 인구동향에 처음 변화가 일어난게 19세기 영국이다. 19세기 들어 영국의 인구성장률은 무려 1.3%이상이었다. 별것 아니지만 복리로 인구도 늘어나므로 이 수치면 불과 반세기 만에 인구가 두배로 늘어나는 수치다. 이는 영국에 일어난 여러 변화때문이었다. 새로운 파종법과 윤작법이 도입되었고 농업이 기계화 되어 수확량이 50%이상 늘어났다. 거기에 북미지역의 넓은 토지가 경작됙고 유럽의 농경기법이 도입되며 그 농산물의 수입도 가능해졌다. 

 나아진건 식량 사정만이 아니다. 하수도가 건설되고, 철도가 생겼으며 목화도 수입되어 위생과 의류, 보건등 수명과 관련한 사안들이 크게 개선되었다. 때문에 영국의 영아 사망률이 낮아지기 시작했고, 덩달아 생존율이 증가해 인구가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영국의 인구 변화를 책은 인구전환이라 명명한다. 

 이 시기 영국의 인구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프랑스와의 비교로 쉽게 파악된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프랑스는 영국보다 몇배 넓은 국토를 자랑한다. 실제 1800년까지 프랑스의 인구는 영국의 4배였다. 하지만 영국의 인구전환이 시작되고 1900년에 이르면 프랑스의 인구는 영국보다 고작 25%많은 수준에 그치게 된다. 이는 양국의 운명에 큰 차이를 불러왔는데 영국은 많은 인구로 거대한 내수시장을 갖게 되었고 식민지를 자국의 인구로 채울수 있게 되었지만 프랑스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업화 초기인 19세기는 지금처럼 세계 무역이 활성화 되지 않아 물건을 팔 시장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었다. 때문에 자국내의 인구 증가로 인한 내수시장의 활성화와 식민지의 확보는 경제성장을 위한 매우 중요한 요건이었다. 그리고 영국은 인구의 급성장과 산업화로 1914년에는 경제규모가 프랑스의 3배에 달하게 된다. 

 인구변화는 프랑스와 영국의 운명만을 가른 것이 아니라 영국과 스페인의 운명도 갈랐다. 유럽에서 영국이전에 미대륙과 아시아 등지에 넓은 식민지를 개척한 것은 스페인이었다. 하지만 스페인은 인구전환이 일어나지 않은 16-17세기에 식민지를 경영했고, 자국내 인구조차 충분하지 않았기에 식민지를 지배만 할 뿐 인구를 충분히 파견할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영국은 17-18세기에 북미와 호주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19세기 인구가 자국내 인구를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로 늘어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식민지로 이민시킬 수 있었다. 때문에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국가는 현재 스페인어를 쓰고 그들의 후예가 일부 남아있음에도 현대 스페인과 무관한 국가로 독립하게 되었지만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는 그들의 후예가 다스리는 국가로 현재까지 영국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는 국가가 되었다. 이런 영국의 후예가 건국한 나라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이중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영국과 같은 나라라는 동질성이 있었고(그들의 국기만 봐도 알 수 있다) 평화로울 때는 풍부한 식량을 제공하고, 전쟁때는 모국의 부릅에 인적자원을 동원해주기까지 하였다. 

 영국 다음 인구전환을 겪은 나라는 미국과 독일, 러시아이다. 미국은 19세기부터 신규이민과 높은 출생률로 인구가 폭발하였다. 1820년에 이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섰으며 당시 미국여성은 평균 7명의 자녀를 출산했다. 1850년엔 인구가 2300만, 그리고 1900년엔 7600만에 이르렀다. 이런 인구증가로 인해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를 멕시코는 캘리포니아를 속절없이 미국에 내줄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은 이런 광대한 인구증가로 서부 개척에 나설수 있었고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달하는 국토를 메울수 있었다. 이민자의 수도 엄청났는데 1920년까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800만 이상, 독일에서 5-600만,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 각 400만, 러시아에서 300만, 스칸디나비아에서 200만이 유입되었다. 결국 영국이외의 지역에서 온 인구가 더 많은 셈이지만 영국인의 후예가 초기 자리를 잡고 나라의 정체성과 사회규범 성장을 주도하였기에 나머지 문화권의 인구들은 결국 영국문화에 융합되어야 했다. 

 독일은 19세기 초만해도 분열된 유럽의 소국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영국보다 인구가 항상 많았는데 1800년엔 영국의 두배였지만 1900년엔 프랑스처럼 영국이 독일인구의 2/3까지 따라잡았다. 하지만 독일은 통일 후 농업국에서 강력한 산업국으로 탈바꿈한다.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높은 출생률이 나타났다. 독일인구는 1800년 2500만에서 1870년 4000만 1913년엔 6700만이었다. 제조업 규모두 1880년 영국의 1/3에 불과하던게 1913년엔 영국을 추월하게 된다. 인구전환은 선발주자보다 후발주자가 더 급격하게 나타난다. 이는 세계적 추세인데 영국의 입장에선 독일이 그러했다. 독일도 영국처럼 북미지역의 개간으로 값싼 식량수입의 혜택을 보았고, 농업의 기계화와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식량이 증가했다. 하지만 독일은 영국과 달리 식민지가 적어 자국의 농업 보호를 위해 식량 수입을 제한해 자급적 식량 기술의 혜택과 도시생활의 개선이 자국 인구 증가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는 19세기 동안 광대한 영토에서 인구가 무려 4배나 증가했다. 1차대전쯤엔 연 1.5%의 인구성장률을 보였고, 1914년엔 인구가 무려 1억3천200만으로 전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다. 경제도 1885년부터 1913년까지 연 3.4%성장했고, 못지 않은 인구증가로 러시아도 미국처럼 오지인 시베리아에 개척이 가능해졌다. 이 기간 러시아는 매년 75만의 인구를 시베리아로 보낼 수 있었다. 

 이런 인구 팽창은 각국에 공포를 불어넣었다. 초반 주자인 영국은 독일의 경제와 인구성장이 매우 불안했고, 독일은 러시아의 인구성장이 매우 두려웠다. 인구가 정체인 프랑스의 공포는 말할것도 없었다. 또한 전례없는 인구전환으로 당시 이들 나라의 인구는 수가 많아지기도 했지만 매우 젋었다. 때문에 사회적 분위기가 호전적이었다. 젊은 인구는 혁신과 역동성, 창의력을 사회에 불어넣지만 높은 범죄률과 호전적 분위기를 낳기도 한다. 어찌보면 1차대전은 이런 각국의 인구증가로 젊은이의 증가가 불러온건지도 모른다. 

 1차대전은 결국 양쪽의 과학기술의 수준이 비슷한 덕에 인구차이로 결판이 난 싸움이라 볼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은 무려 4600만의 병력을 동원했지만, 독일쪽의 동맹군은 겨우 2700만의 동원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 전쟁기간 그 나라의 인구비율과 동원한 병력 비율은 연합과 동맹쪽이 1.75:1과 1.73:1로 거의 인구규모에 대비한 병력동원이 이루어졌음을 알수 있다. 총력전이었기 때문이다.

 1차대전후 유럽 각국의 인구는 전환을 마치고 정체되기 시작한다. 높은 출산률과 높은 사망율, 적은 인구에서 사망률 하락으로 인구가 급성장하는 시기를 지나 출산률이 낮아져 사망률과 균형을 맞추어 인구가 더이상 늘지 않는 시기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의 인구성장은 없는 것 같았지만 2차대전후 다시 인구 성장이 시작된다. 베이비붐이 일어난 것이다. 

 베이비 붐은 막상 전쟁으로 인한 인구 손실과 전후, 젊은 남성들이 돌아오며 미뤘던 출산이 한꺼번이 이뤄지며 인구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논리라면 1차대전 후에도 베이비붐이 이뤄졌어야한다. 2차대전 후의 베이비붐은 1차대전 후와 다른 요소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바로 경제성장이다. 전쟁 후 서유럽과 미국의 경제는 급성장했다. 인구증가와 경제성장은 서로 자기 강화적 성격을 띄며 선순환했다. 결혼이 늘고 자녀수가 늘었으며 인구가 늘자 주택수요와 제품수요도 늘며 경제도 더욱 성장했다. 낙관적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었고 자수성가도 쉬워져, 이전 같으면 늦은 나이에 결혼하던 사람들도 이른 나이에 결혼하기 시작했으며 아이도 그만큼 많이 낳게 되었다. 

 때문에 1930년대 인구전환을 마쳐 출산률이 2명미만이던 영국도 1960년대엔 3명대의 출산률을 보이게 되었다. 1960년대는 베이비붐이 절정에 이른 시기로 1차대전 무렵처럼 각국의 인구는 많아졌고 다시 젋어졌다. 때문에 이 시기의 문화는 반항적이고 소비 지향적이었다. 68혁명이 이 시기란 것도 젊은 인구구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계속되던 인구성장은 1968년 먹는 피임약 필이 처음 등장한 시기와 거의 일치하며 하락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은 인구를 계속 성장시킬 수 없었으며 여성의 교육수준과 고용률이 높아지며 더 이상 여성이 많은 출산을 하던 시대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폭풍이 지금 인구전환을 마친 여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령화다. 이미 서유럽과 동아시아 북미의 국가들은 고령화를 겪고 있다. 고령화는 인류가 처음 겪는 일이어서 그렇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고령화가 일어나면 노인 관련 산업이 생겨나고 그 분야의 고용 창출과 경제성장이 일어난다. 또한 많은 연구에서 입증했던 고령화는 그 나라를 평화롭게 하고 준법적일 가능성을 높인다. 그리고 소수가 되어버린 젊은 이의 가치가 높아져 어린 학생에 대한 높은 수준의 집중 투자가 일어난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사회의 혁신성과 역동성이 떨어지고, 경제규모가 작아지며 의료와 연금등 공공부분의 지출 부담이 막대해진다. 

 세계 많은 지역이 인구전환을 끝냈지만 아직 남아있는 지역이 있으니 중동지역과 사하라 이남 지역이다. 중동지역은 인구전환의 물결이 잦아들며 마무리로 가는 지역이고 사하라이남은 인구전환이 막 시작되고 있는 지역이다. 중동지역은 사망률의 감소로 인구가 증가했으며 출산률 역시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 사회 특유의 다산을 유도하는 문화로 인해 아직은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률을 보이고 있다. 중동지역의 인구가 증가하는데는 이민도 큰 역할을 했다. 카타르의 경우 2차대전 직후 겨우 인구 2만5천의 소국이 현재 인구 250만으로 불어났다. 이중 토착민은 20%정도이며 나머지는 이민자들이다. 

 중동은 젊은 층의 인구비율이 매우 높은데 석유와 가스라는 우연적 산물에 의한 부로 인구가 늘어난 터라 인구대비 취업율이 46%에 불과하다. 석유와 가스를 팔아서 이룬 경제체제로는 충분한 고용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 과학기술 수준도 낮아 건조지역임을 감안해도 1인당 물소비량이 세계평균의 20%수준에 불과하고 곡물의존도도 무려 50%나 된다. 거기에 석유로 인한 기업가 정신의 부재로 지대만을 추구해 위로부터의 부패가 사회에 만연해있다. 그래서인지 아랍의 6-15세 어린이중 무려 1000만명이 학교를 다니고 있지 않다. 교육이 부재하고, 일자리도 찾기 어려운 청년층의 폭발적 증가는 폭력으로 이어지기 쉽상이다. 저자는 이 지역의 이슬람 근본주의 역시 이런 젊은 층의 불만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아랍의 젊은 층의 좌절은 서유럽으로의 이민 물결로 나타나고 있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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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의 협상가 - 정세현 회고록, 북한과 마주한 40년
정세현 지음, 박인규 대담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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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전쟁 이후 70년간 남과 북은 조금은 가까워졌다, 조금은 멀어지며 전체적으로 약간은 서로에게 다가가는 평행선을 달렸다. 그 과정엔 껴 있는 세월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멀어지는 변수로는 아웅산 폭탄테러, 김신조 사건, 강릉무장공비침투, 연평도 포격, 서해 1.2차해전 등이 있었고, 가까워지는 변수는 72년7.4 남북공동선언, 91기본회담, 6.15공동선언, 9.19선언, 그리고 수차례의 문화적, 인도적 교류와 스포츠행사등 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의 저변에 깔린 역사적 흐름과 여러 세력들의 이해관계에 대해서 우린 잘 알기 어렵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북한과 통일문제가 저의와는 상관없이 매우 언급하기 어렵고 쉽게 호도되며, 오염되기 때문이다. 한 때 통일할 생각도 없으면서 무력통일이나 흡수통일만을 제1논지로 상정해 대북문제라는 평범한 단어도 쓰기 힘들었고, 지금도 NLL이나 평화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무는 세력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런 상황에서 대북문제와 북남관계에 대해 어느정도 알수 있게 해주는게 이 책인 듯하다. 

 책의 저자인 정세현은 그야말로 남북관계로 평생을 보낸 사람이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줄곧 북한 관련 연구를 했고, 이를 토대로 박정희정권부터 통일관련 기관에서 근무했다. 김영삼정권때는 통일비서관이 되었고, 김대중대통령때 통일부 차관과, 장관을 그리고 노무현때에 다시금 장관을 역임했다. 그야말로 현대 남북사를 관통한 경력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그런 그가 자신의 의견과 경험을 수차례의 긴 인터뷰로 담아낸 것이다. 가독성이 높다. 들어가보자. 

 박정희 정권 초창기인 60년대만 해도 북한은 우리보다 국력이 높았다. 일본에 이은 제2의 아시아 공업국이라 불렸을 정도였으며 스포츠분야에서도 남한보다 월등해 남이 북을 대하기 무척 힘들었던 시기다. 때문에 남은 북에 대해 무척 수세적이었고, 오히려 지금과는 정반대로 북한쪽이 통일론을 먼저 들이댔던 시기다. 4.19로 남한이 어수선한 시기에 나온 것이 김일성의 남북연방제다. 이런 논리에 대응하고자 1969년에 통일원이 생겨난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평화통일에 대한 논리보다는 북한에 대한 남한 내부의 논리를 일관적으로 다듬는 곳이었다. 이시기 남북간의 교류는 생각보다 많았는데 남북간이 관계진전보다는 서로가 전쟁의지가 있는지 탐색하고 서로의 도시를 살피며 형편을 보는 형국이었다. 때문에 서로가 방문할 때면 서울이나 평양시내에 밤에 불을 못끄게 한다던지, 판자촌이나 낙후지역을 피해다니는 촌극을 벌이기도했다.

 남한에서 처음 통일론이 등장한 것은 북보다 한참 뒤진 1982년으로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이었다. 70년대 중반부터 남한이 북한의 경제력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80년대에 이르면 북한은 제로성장에 머무르고 남한은 고도성장에 이르며 체제간의 경쟁력이 확실히 뒤집힌 시기다. 83년은 북한의 아웅산테러사건이 있었다. 주요 고위인사들이 죽고, 대통령까지 노린 큰 사건으로 한국에서는 원산 폭격까지 의견이 나왔지만 당시 미소간의 갈등이 무척이나 첨예해 대결구도를 바라지 않던 미국의 의향이 크게 작용하여 유야무야되었다. 그리고 86아시안 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문제를 만들기 어려웠던 남한의 사정도 작용했다. 북한은 84년 남한에 대규모 수해가 발생하자 어려운 국내사정에도 아웅산 사건의 면죄부에 대한 부담과 특유의 체면으로 지원을 제안한다. 남은 위장평화공세로 여겨 처음엔 이를 거절했지만 오히려 혼내주자는 입장으로 이걸 받는다. 실제 북은 어려운 사정에도 이를 보낼 물자를 마련하느라 중국에도 손을 빌린다. 하여튼 이 분위기로 이산가정 상봉과 예술단 교환방문도 이루어진다. 노태우정권에 들어서는 동구권의 붕괴로 적극적인 북방정책이 이루어진다. 때문에 북한과도 공존하자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가 나올수 있었고, 이는 북의 체제를 사실상 보장하고, 분야별 교류협력과, 불가침을 전제로 하는 1991기본합의서로 이어진다. 

 김영삼 정권에 들어서 북은 동구권의 붕괴로 고립된다. 지원이 끊어지고 오랜 제로성장과 수해, 가뭄으로 소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거기에 비해 남한은 고도 경제성장이 계속되어 일인당 소득이 만달러에 이르렀으며 중국, 러시아와도 수교한 상태였다. 집권 초기 김영삼은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라는 말로 북을 기대에 차게 했다. 하지만 북한은 곧 NPT에서 탈퇴했고 김영삼은 바로 적대적 대북관계로 돌아선다. 사실 김영삼은 기본적으로 적대적 대북관을 가진 사람으로 그의 고향인 거제가 당시 반공포로들이 많았다는 것과 관련한다는 설이 있다. 이 시기부터 북한붕괴론이 시작되는데 당시 고난의 행군으로 탈북민이 많이 늘어나고, 황장엽의 망명이 있었으며 동구권의 여러나라가 무너진 것이 그 기반이 되었다. 북한의 NPT탈퇴는 제네바 합의로 봉합된다. 영변에 원자로를 지어주는 사업이었는데 미국과 북한이 협상했음에도 우습게도 한국이 비용의 무려 70%를 대는 구조였다. 나머지 10%는 유럽연합, 20%는 일본이었다. 당사자인 미국이 하나도 안내는 셈이었는데 반발하는 한국정부를 향해 어차피 북이 가까운 시일 내에 붕괴하면 그쪽 원자로 하나 더 늘어난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고 하니. 장사속이 대단하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며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북정책이란게 시작된다.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게 그것이다. 김대중 정권 이전의 대북정책은 사실 대결과 견제, 체면싸움의 일환에 그치지 않았다. 강력한 국방력으로 군사부분의 견제는 기본적으로 해나가면서 기업이 북에 진출하고, 관광 등으로 교류를 활성화시켜 군사부분의 긴장을 점차 완화시켜나가고, 남북간의 교류로 오랜 차이를 조금씩 덜어내며 동질화를 장기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이 정책의 골자다. 현대의 정주영회장은 이 대북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스스로도 큰 이득이 될 사업으로 보았던 것 같다. 현대가 사업을 선점하기 위해 북에 돈을 쥐어주었는데 그러자니 이 금액이 외환반출 상한을 가볍게 넘었다. 당시 국정원이 이를 편의상 봐주었는데 이것이 노무현 정권때 문제가 되어 현대가의 관계자와 박지원의원을 비롯한 여러 실세가 옥살이를 하게 된 것이 대북송금사건이다. 저자는 남북간의 관계를 보고 이를에 대한 특검을 거부하지 않은 노무현 정권의 판단에 다소 아쉬움을 표한다. 

 햇볕정책의 주요성과는 6.15공동선언이다. 이 선언으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남북간의 도로와 철도연결사업이 가능했다. 특히 개성공단은 가장 큰 성과였다. 개성은 한국전쟁 이전 남한의 영토로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개성공단 이전 북한은 6사단, 64사던, 62포병여단 등 무려 2만5천의 병력을 개성에 주둔시켰다. 개성을 공단화하며 군을 뒤로 빼게되자 장성들이 입이 나왔는데 김정일은 너희가 개성사람들 먹여살릴거냐며 일축했다 한다. 개성공단이 생기고 군이 후방배치되며 평화는 진전되었다. 김대중 정권의 이런 정책 성공은 미국과의 협력으로 가능했는데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DJ에게 당신이 운전석에 앉으면 내가 돕겠다는 말로 협력했다 한다. 

 노무현 정권들어서도 햇볕정책은 계승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자체가 대북관이 김대중 대통령만큼 투철하지 못했고, 자신의 정책이 아니다보니 우선순위가 되지 못한다. 대북송금사건등 어려가지가 엇박자가 났고, 미국의 정권역시 북에 적대적인 부시 정권으로 교체된다. 그러면서 2006년 북의 첫 핵실험이 시작된다. 당황한 미국의 부시정부는 방향을 틀어 정권 말기엔 북과 정상적인 회담을 이루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그 결실이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이다. 

 하지만 남한의 정권이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며 모처럼 전환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미국의 오바마 정권 역시 부시 말기처럼 북한의 핵위협으로 북한과 대화국면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런 시기에 맞추어 한국정부가 의지를 보였다면 북과 많은 대화 및 평화를 위한 교류를 이루는게 가능한 시기였는데 당시 이명박 정부가 그럴 의지가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역시 북한 붕괴론과 적대적 대북관을 가진 사람으로 지금의 트럼프처럼 비핵화를 우선으로 하는 비핵화-북한개방-일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론을 들고나왔다. 북한이 우선적으로 비핵화를 하면 개방을 해주고 소득을 올려 3000정도까지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효과가 없는 것이 당시라고 있었을리 만무했다. 남한 정부와 대담을 기대했던 북은 다시 돌아선다. 미국 역시 한국 정부가 반응이 없자 오바마 정권내내 전략적 인내라를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다. 박근혜정부 역시 북한이 붕괴하리란 생각이 있었고, 이명박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는 개성공단을 닫아버리는 큰 실책을 저질렀고, 양 대통령이 저지른 금강산 관광 중단과 개성공단의 중단을 지금도 큰 악영향으로 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발목잡고 있다. 이 시기 북한과의 관계는 무척 악화되었다. 천안함사건이 있었고, 연평도 포격사건이 있었으며 수차례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북의 김정은은 다시 평화의 대화를 시작했고, 북의 ICBM개발로 미국마저 북과의 대화를 거부하기 어려워졌다. 실제 평창올림픽과 두차례의 정상 간 만남으로 하노이 회담 이전까지는 무언가 이루어질거란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미국엔 아직 대북 강경론자들이 많고, 비핵화를 우선시하는 고압적 자세로 북한과의 회담이 결렬되었다. 북한정권은 문재인 정권이 김대중 정부때처럼 미국을 잘 달래고 협상에 임하게 해줄 중재능력이 있다고 기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의 중재를 미국이 전혀 듣질 않았으며 유엔제재가 아니어서 한국 스스로의 의지로도 할수 있는 금강산 관광재개나 개성공단재개또한 하지 않았다. 몇몇 인사들이 국내 정치임에도 미국의 의사를 물어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었고, 한미워킹그룹이란 법적인 근거도 없는게 생겨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발목만 잡고 있는 형국이다. 

 저자는 통일은 통일을 원하는 민족 내부의 구심력이 통일을 바라지 않는 주변 열강의 원심력을 이겨낼때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이 통일을 위한 또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적기라고 바라본다. 과거 남과 북의 냉전은 주변 열강에 이득이었다. 중국은 순망치한 관계로 미국과 바로 부딪히는 완충지대로 남과 적대적인 북을 원했고, 미국은 북한과 수교하여 평화지대를 만드느니 언제든 해결가능하지만 적당한 공포를 만들어 남과 일본을 무기시장으로 활용하는게 더 이득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강해지며 미국으로서도 북을 포용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동북아시아를 자신들이 영향력안에 두고 서태평양의 패자로 남으려면 북한과 수교에서 그쪽까지 영향력을 확대할 필요성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국제정세를 잘 이용한다면 통일과 대북관계 개선에 유리할 것이란게 저자의 판단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가능하게 하는 시작은 국민의 지지라고 말한다. 통일과 평화를 바라는 지지세력이 많아지면 국내의 구심력이 높아질 것이고 이를 통해 수많은 반대론자와 그들의 기득권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일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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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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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수는 5100만 수준이다. 그런데 좀 오래전인 2013년 한국에서 키우는 닭의 숫자는 무려 8억마리에 달했다. 그것도 산란닭은 뺀 육계만 그렇다. 그러면 일인당 연간 16마리 정도의 육계를 먹은 격이니 1인1닭이라는 표현도 그리 과하지 않은 셈이 된다. 물론 이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고기가 없던 한국인에게 알을 낳는 닭은 그리 함부로 먹을 수 없는 존재였고, 중장년층의 한국인의 기억속에도 통닭은 아버지가 월급+보너스가 두둑하거나 승진이라도 하셔야 노란 크래프트지에 담아 오시던  특별한 음식으로 뇌리에 잡혀있다. 

 닭을 조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물에 끓이는 백숙이나 삼계탕이 있고, 구운 로스트치킨, 그리고 기름에 푹 담가 튀긴 치킨이 있다. 이중 한국인에게 닭은 단연 치킨이다. 한국만큼 인구대비 치킨집이 많고 일인 일닭 하는 나라가 있을까 싶다. 하여튼 이런 조리방식 때문에 치킨은 사실 귀한 음식이다. 기름에 폭담가 튀기니 기름이 많아야하고, 당연히 본재료인 닭도 많아야하고, 튀김옷인 밀가루도 풍부해야한다. 이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진게 1970-80년대다. 양계산업이 본격화 및 기업화했고, 밀가루도 많아지고 미국산 대두를 활용한 기업의 콩기름 생산도 가능해졌다. 


1. 치킨의 역사

 사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치킨이라 할 만한 것은 1960-1970년대 인기 있던 전기통닭구이였다. 한국인에게 최초로 기름진 닭맛을 느끼게 해준 것인데 당시 인기를 잠시 누리다가 본격 기름맛을 앞세운 후라이드 치킨에 곧 자리를 내준다. 전기통닭구이는 굽는데도 2-3시간이 걸리고 살이 퍽퍽해 여러모로 후라이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최초의 후라이드 1세대는 엠보치킨이다. 닭이 아주 작고, 한방 염지나 야채염재를 한 후 물반죽이 아닌 건조한 파우더를 표면에 묻혀 튀긴다. 튀김기는 압력튀김기를 썼으며 조리시간이 짧고 수분이 보존되어 겉바 속촉이 가능했다. 보드람치킨, 치킨뱅이, 둘둘치킨, 그리고 한국 최초의 치킨 프랜차이즈인 엠보치킨이 바로 엠보치킨집들이다. 보통 치킨은 브로일러 종을 쓰지만 엠보치킨은 주로 다리가 긴 백세미를 쓴다. 잘기지 않고 부드러운 맛을 자랑하며 비린내 제거 이상의 풍미로 초기 인기를 끌었다.

 2세대 치킨은 민무늬 치킨이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치킨이라 할 수 있는데 시장통닭을 생각하면 된다. 물반죽한 반죽을 치킨에 묻힌 후 바로 튀겨내며 조각을 많이 내고 물반죽을 많이 하여 먹는 양자체를 늘린게 특징이다. 민무늬 치킨이 대중화했을때 양념치킨도 등장했는데 둘은 죽이 잘 맞았다. 지금의 대세인 크리스피 치킨은 컬 사이사이 양념을 바르는게 힘들어 양념이 많이 드는데 비해 민무늬 치킨은 표면이 매끄러워 양념을 묻히기에 가장 좋다. 그리고 엠보치킨은 특유의 염지향이 양념과 충돌했다. 

 3세대 치킨은 크리스피 치킨이다. KFC의 크리스피가 우리나라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퍼지며 대중화했다. 튀김옷의 컬이 중요하고, 큰 튀김옷은 만족스러운 식감에 닭을 커보이게 까지해서 인기가 좋다. 크리스피는 염지닭에 튀김가루를 묻히고 거기에 코팅 효과를 주기 위해 물반죽 코팅에 담갔다가 다시 튀김가루에 묻혀 튀기는 방식으로 만든다. 복잡한 공정때문에 1,2세대 치킨에 비해 큰 주방시설이 필요하다. 작은 통에서 튀김옷을 묻히면 서로 눌려서 컬이 사라지기에 큰 반죽 통이 필요하고, 튀길때도 컬이 잘 떨어져 기름이 잘 타기에 튀김기도 커야했다. 크리시피는 큰 튀김옷으로 치킨을 크게 하기에 닭 자체를 작게했다. 이는 윈윈이었는데 사육업계에선 사육시간과 회전수가 늘어 자본회전율이 증가했기 때문이고 기름도 많이 필요해 기름업계도 좋기 때문이다. 


2. 치킨을 만드는 방법과 그 가격

 우리가 먹는 치킨은 모두 염지를 한다. 염지는 소금과 후추를 넘어선 향이 증진된 가루를 묻히는 가정으로 닭의 근육 조직을 끊어내 닭살을 촉촉하게 하는 과정도 포함한다. 치킨대학이나 치킨 학원등에서 사람들은 치킨을 튀기고, 소스에 버무리고 ,담는 일은 얼마든지 배울 수 있지만 치킨 맛을 좌우하는 이 염지와 양념소스를 만드는 비법은 절대 배울 수없다. 이를 얻는 방법은 가맹점이 되어 프랜차이즈 본사의 노예가되어 염지가 된 닭과 소스를 받거나 성공적인 개인 창업점으로부터 수백에서 수천의 로열티를 내고 받는방법 뿐이다. 치킨에서 염지와 튀김 옷의 재료인 파우더, 소스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치킨이 닭맛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실제 치킨을 먹으면서 튀김옷의 바삭함과 소스맛을 평가하지 닭고기 자체의 맛엔 신경쓰지 않는다. 냉동닭이거나 브라질, 미국산인지 정도를 확인하는 수준이다. 

 흔한 마트에서 우리는 생닭을 3-4천원에 구매한다. 그래서 우린 치킨 값이 무척 비싸다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장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저 재료의 원가만 생각한다. 하지만 치킨집에서 자신의 염지를 하는 기술이 없는 한 염지된 닭을 받게 되는데 염지닭은 2014년 기준으로 4-5천원이다. 천원이상 더 붙는 것이다. 거기에 닭을 튀기는데 필요한 식용유가 한마리당 천원정도이고 튀김옷인 파우더 비용인 마리당 오백에서 팔백원, 그리고 배달용 박스가 4백원, 치킨무도 4백원, 소스가 100원, 박스 바닥에 까는 유산지가 10원이 든다. 그리고 서비스 음료수와 매장월세와 운영비, 인건비등은 별도다. 이 모든걸 감안한담녀 치킨 가격은 당연이 만오천이상에서 이만냥에 육박하게 된다. 

 또한 매장영업만 하는 치킨집은 업식에 여기에 배달비가 추가된다. 과거 배달서비스가 발달하기전엔 매장마다 배달알바를 사용했고, 이들의 성실함과 성향여부가 치킨집의 경영에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당시 흔히 비눈이 오면 치킨 주문이 늘어 사장들은 좋아했을 것 같지만 한편으론 배달알바가 사고라도 날까 노심초사했다한다. 최근엔 배달대행서비스가 많아졌다. 그래서 매장마다 위험부담을 않고 거액을 내며 전용알바를 쓰기보다는 일정 가입비를 내고 건당 배달수수료를 내는 형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도 문제가 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배달알바가 가게에 직접 고용되는 형태가 아니다보니 가게에 충성심이 없으며 장사를 하는 가게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게 된것이다. 때문에 배달알바가 배달과정에서 불친절한 경우가 많고, 라이더들 역시 여러건을 뭉쳐서 한방에 배달하는게 편하기에 치킨이 눅눅해지거나 식어 배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리조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배달업에는 13-16%수수료를 받는다. 2014기준이니 독과점이 더욱 심해진 지금은 더할 것이다. 


3.치킨 영업과 광고

 양념치킨이 처음 등장하고 치킨 프랜차이즈가 대중화한 90년대에는 개그맨을 동원한 치킨 광고가 인기가 많았다. 중년층은 아직도 최양락이 부른 페리카나 로고송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광고 모델이 개그맨에서 유명스타로 전환되었다. 굽네치킨은 기름기 많은 후라이드와 대비해 건강하고 기름기 적은 로스트치킨의 이미지를 소녀시대를 이용하여 구축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최근엔 모든 방송매체에 PPL이 많다. 2010년 5월부터 허용된 PPL은 규정상 방송시간의 5%이내, 브랜드는 30초이내, 한번에 화면 크기의 1/4를 넘을 수 없다. 처음엔 제품자체를 등장시키는 방향이었지만 이제는 드라마나 영화를 후원해 주인공이 그 기업의 알바나 경영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치킨 업계는 맛보다는 브랜드 인지도가 중요하기에 드라마에 대한 치킨 업체의 후원은 뜨겁다. 

 치킨은 맥주와 함께하는 술안주이지 가족끼리 함께 먹는 행사음식 성격이 많다. 때문에 스포츠와 연관이 깊다. 2002월드컵의 대성공은 치킨 업계의 호황을 불러왔다. 하지만 가끔 있는 국제행사에 의존하는 축구보다는 항시 국내리그가 인기 좋은 야구가 치킨 업계와 관련이 깊다. 야구는 사실 치맥에 매우 적합한 스포츠다. 국내리그의 운영시간이 퇴근한 직장인은 야구장에 직관해서 경기를 관람하며 끼니와 음주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으로 치맥을 택하기 딱 좋다. 거기에 치킨은 혼자 먹기엔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야구의 경기시간은 3-4시간에 달해 딱 좋다. 그래서 치킨 업계는 다른 스포츠보다 국내프로야구에 공을 들인다. 많은 간판 광고는 물론 스폰서도 한다. 3월은 설 이후이고 신학기의 시작이라 가계소비가 많아 외식이 줄어드는데 3월말 개막하는 프로야구가 치킨 업계를 되살려준다. 이러니 좋아할 수 밖에. 


4. 양념통닭과 치맥

 사실 치킨의 본고장은 당연히 미국이다. 다른 나라는 당연히 KFC나 파파이스등이 치킨 시장을 주름잡는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KFC나 파파이스는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인데 이는 양념통닭의 등장과도 관련한다. 한국인은 유독 느끼함을 잘 못참는다. 조금만 느끼하면 김치를 찾곤하는데 그래서 라면엔 김치가, 치킨엔 치킨무가, 파스타와 피자엔 피클이, 고기엔 쌈장과 파채가 빠지지 않는다. 양념통닭은 바로 이 느끼함을 잡은 치킨이다. 원조는 찾기가 어려운데 일단 공통적으로 고추장과 물엿이 기본이다. 고추장이 양념통닭 소스의 주성분란 생각이 들지만 사실 소스의 40%이상이 물엿이다. 물엿은 전분으로 만드는 것으로 음식에 점성과, 촉측함, 단맛을 제공하는 마법의 성분이다. 

 KFC나 파파이스는 제법 잘나가다 IMF를 기점으로 밀리기 시작했는데 당시 대량실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개인 치킨집을 차려 시장을 빼앗겼고, 양념통닭에서 시작한 다양한 소스이 한국 치킨메뉴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킨과 이미 일심동체인 맥주를 매장내에서 팔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맥주와 치킨은 이미 치맥이란 합성어로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치킨과 맥주는 원래 궁합이 안맞는 음식이다. 기름지고 뜨거운 치킨과 차가운 맥주는 소화불량이나 설사의 원인, 심지어 통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맥주의 차가움과 탄산은 치킨의 기름맛을 해소하고 갈증을 해결해준다. 둘이 하나가 되는 이유다. 


5. 육계의 기업화와 문제점들

 미국의 원조로 주한미군의 국내달걀 구입 결정으로 자본과 구입처가 결정되자 국내 육계업계가 본격 기업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60년 사육 닭의 수는 1200만 마리에 달했고, 70년엔 2400만 마리 98년엔 4억마리 2013년엔 8억마리에 달했다. 닭은 외식업에 매우 적합했는데 닭의 사육주기가 매우 짧아 회전율이 좋기 때문이다. 

 미국산 콩과 옥수수, 그리고 밀가루는 국내 치킨 업계와 육계업계의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언급한 것처럼 치킨엔 값싸고 풍부한 기름과 싼 가격의 닭이 필요한데 콩과 옥수수가 그걸 해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콩기름은 대개 미국산 대두를 사용한다. 콩은 우리가 두부를 만들어먹는 것처럼 사실 단백질이 많다. 기름은 고작 20%에 불과해 기름용으론 여의치 않은데도 그럼에도 콩기름은 넘쳐난다. 이는 기름을 짜낸 콩이 사료로 매우 적합하기 때문인데 기름기가 없는 단백질 위주의 콩은 소화효율이 높아져 동물사료로 훌륭하다. 이렇기에 적은 기름에도 콩기름을 짜내는 것이다. 최근엔 이 역할을 옥수수가 대신한다. 사료도 옥수수로 만들어지고 기름도 옥수수다. 콩으로 만든 치킨에서 옥수수로 만든 치킨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육계시장은 1등기업인 하림을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되어 있다. 수직계열화는 본수가 종계장을 통해 농가에 병아리를 공급하고 사료 공장은 운영해 사료도 판매하며 약품, 기자재, 사육지도의 모든 것을 맡는 것이다. 그렇기에 튀기는 기술 이외엔 광고, 소스, 염지닭은 모두 의존하기에 본사의 노예가 된는 가맹점 사장처럼 양계장 사장도 육계기업의 노예가 된다. 이 기업은 위의 요소말고도 가공공장과 대규모 도계장이 있고 심지어 프랜차이즈도 소유한다. 특히 하림은 병아리당 고작 400원의 사육수당을 주는데 이는 닭을 키우는 기간이 35일에 불과함에도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하지만 하림은 자본을 집중하여 출하사이클을 조절해 다른 기업에 비해 병아리의 사육과 출하를 1번 더 할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를 통해 양계장을 유혹하고 자신들의 이윤을 더욱 창출한다. 거기에 항상 자금에 쪼달리는 양계장에 15일마다 결제를 통해 현금유혹을 한다. 이렇기에 다수의 양계장은 하림과 거래하게 된다. 더욱 노예의 길로 빠져듬에도 말이다. 


 이 책은 보며 그동안 수백마리는 먹었을 치킨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얇고 가벼워보이는데도 알찬 지식으로 가득찼다. 좀 알고 먹어야 할 것이 아닌가. 책은 2014년 책으로 시류에 떨어진 부분도 있지만 아직도 유효하다. 그래서 10쇄를 찍거 계속 나오는거 아니겠는가? 저자가 책을 지금 다시쓴다면 아마 수직계열화와 프랜차이즈의 횡포로 인한 을들의 수난, 그리고 배달대행업체와 배달앱 운영업체의 갑질에 대해서 더 쓰지 않았을까 싶다. 하여튼 재미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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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0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20-09-10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4년책이 아직도 있어 찾아보니 10쇄더군요 대단합니다

2020-09-10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막시무스 2020-09-10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녁에 치맥하면서 치킨의 역사를 되새겨봐야 할것 같아요!
즐건 저녁되십시요!ㅎ

닷슈 2020-09-10 19:30   좋아요 0 | URL
네 즐거운 치맥하시길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 저출산,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는 미래 세대를 위한 처방전
우치다 타츠루 외 지음, 김영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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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주요 선진국중 앞으로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앞으로 7천만이나 늘어날 예정인데 공교롭게 앞으로 사라질 일본과 한국의 인구수를 합친 것과 거의 엇비슷하다.감소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주요 선진국들은 인구감소는 수치상 기정사실이다. 인구의 감소는 국민경제규모의 감소를 의미하고 시장의 축소와 생산력의 감소를 의미하기에 각국은 위기감을 갖는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것일까? 인구가 감소한다면 개인은 훨씬 비경쟁적 사회에 놓인다. 앞세대가 죽어서 버리고 간 자원과 통화가 그의 것이고, 취직도 쉬우며, 부동산 가격도 쌀 것이다. 사회적 대접도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며 환경오염도 덜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선진국의 이야기일 뿐이다. 전세계적으로는 아직 선진사회에 도달하지 못한 지역의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것이기에 세계인구는 100억을 돌파할 것이다. 책은 무려 2100년에 이르러야 세계인구가 정점을 찍고 감소할 것이라고 보는데 선진국의 인구라도 줄어서 그정도 일것이다. 그 전에 지구가 인간을 견뎌낼지 모를일이다. 

 어쨌든 이 책은 인구감소를 옹호하는 책 같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구감소를 막는 방법과 인구감소가 불러오는 사회변화에 주목한 책이다. 더구나 한명이 쓴 책이 아닌 여러분야의 사람이 인구감소를 주제로 자신의 전문분야와 관련에 썰을 풀어낸 책이라 일관성도 없다. 여러모로 기대와 다른 책인셈. 재밌는 저자의 글만 좀 뽑아봤다.

 공동 저자중 한명은(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미래 자본주의 사회가 두뇌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할거라 한다. 지금까지는 노동자의 수가 아무래도 전체 생산규모를 크게 하고 시장도 크게하기에 중요했는데 이젠 머릿수가 아닌 질적인 두뇌수준이 그 나라의 경제규모를 결정할 것이란 이야기다. 특히, 앞으로 모든걸 다할 수 있는 범용인공지능이 개발될 경우 이 범용목적기술을 활용해 먼저 생산활동의 급격한 변혁에 성공한 국가가 패권국가가 될거라 보았는데 매우 그럴듯하다. 앞으론 인구규모보단 4차산업혁명 기술을 성공적으로 도입해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기술 혁신이나 생산력 증가를 불러오는 나라가 세계패권국가가 될 것이다. 아직은 그 과도기라 세계기술패권국가인 미국과 저렴한 노동력을 가진 개발도상국만 경제가 성장하는 듯하다. 

 여기엔 나름 논리가 있는데 농업혁명시기엔 토지와 노동이 투입되어 생산활동이 이루어지고 그 산물이 농작물이었다. 토지가 정해져 있고 노동을 아무리 늘려도 그 결과 먹을 입도 늘기에 경제성장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못했다. 산업혁명 시기가 되자 생산요소로 토지에, 기계, 그리고 노동이 추가된다. 기계는 노동이 늘어도 소모되지 않고 기계가 기계자체를 생산하기에 자본이 무한 증식이 가능했다. 처음엔 고성장이 가능하고 경쟁이 심화되고 기술적으로 무르익으면 지금처럼 2%수준으로 경제성장이 수렴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기술을 가진 나라와 아닌 나라간에 대분기가 일어났다. 그리고 앞으로 올 시기엔 생산요소로 노동이 빠지고 인공지능과 로봇기계가 들어선다. 이들은 만든 생산품 자체가 투자요소가 되므로 산업혁명초기처럼 무한 성장이 가능하다. 제2차대분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사람은 제품개발이나 인공지능, 로봇관리, 경영관리의 역할만 하게 된다. 이렇기에 빨리 통일을 해야할 듯 하다. 북한과의 결합이 불러오는 주요 장점중 하나인 저렴한 노동력은 이런 사회가 올 경우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인상 깊은 글은 저출산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와 그에 걸맞는 윤리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이 사람은 한국일본 같은 유교전통사회와 프랑스, 스웨덴 같은 유럽 사회를 비교하는데 한국, 일본은 저출산 문제가 심화된 반면 프랑스, 스웨덴 같은 유럽의 저출산 국가들은 1.5이상의 출산률로 나름 선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양자의 차이는 혼인 관계에 대한 집착의 유무다. 동아시아 국가는 결혼제도를 중시하고 저출산 대책도 혼인한 부부에게 초점을 둔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경우 이미 혼외자녀가 50%이상에 가까울 정도로 높고 그만큼 혼인을 강요하거나 윤리적으로 여기지도 않으며 지원도 같은 수준으로 이루어진다. 즉, 한국과 일본 같은 나라가 출산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혼외자녀 같은 다양한 가족 구조를 인정하고 윤리적으로 옹호하며 지원도 같은 수준으로 이뤄져야한다는 것이다. 매우 그럴듯한 생각이다. 

 또 다른 인상 깊은 생각은 지방과 사람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자본주의는 무연고 사회로 돈만 있으면 사실 사회적 관계가 그렇게 필요치 않다. 이게 사람간의 단절을 불러왔는데 지방의 여러 1차산업종사자와 도시민들의 연결을 해보자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들은 건강에 좋지만 당연히 시장성은 없을 제대론 된 가격의 1차상품을 만들고 도시민들은 직접 가서 일을 돕기도 하고, 그것을 사먹으며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방을 살리자는 것이다. 이는 저출산 대책의 하나가 지방으로의 인구회귀라는 점에서 나온 생각이다. 지방엔 적절한 수준의 사회 인프라도 필요한데 주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어머니의 관심은 결국 육아지원과 교육수준, 의료, 문화시설인데 이를 지방에 갖추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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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9-01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에 백퍼 동의합니다.
닷슈님의 낮은 평점에 약간 불안하지만 제목만큼은 엄청 끌리는 책 입니다. ^^

닷슈 2020-09-02 00:20   좋아요 0 | URL
저도 제목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제목은 좋지만 내용은 좀 부족합니다. 다이제스터님 성에 차지 않을 것입니다. 비추입니다. 일본 학자들 책은 일본식 한자때문인지 아니면 스타일에 안맞는 건지 맘에 드는 경우가 이상하게 적네요.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 메이지 이후의 일본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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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작가는 47년 생으로 재일 교포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가 한국인이다. 대학의 교수로서 일본사회의 주류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출신이 철저히 변경인 재일 교포인 것이다. 재일한국인이나 조선인은 아직도 일본에서 외국인 등록증명서를 받는다. 거기엔 다양한 정보와 동시에 상륙허가와 재류기간이 써있는데 당연히 자이니치들은 국적만 한국이나 북한일뿐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들이니 굳이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마치 일본에 잠시 들르는 외국인처럼 상륙기간과 재류기간을 표기한 외국인 등록증명서를 준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인 셈이다. 본인들도 억지인걸 아는지 물론 재류기간과 상륙기간에 별표시가 되어있기는 하다.

 자신들의 식민지 만행으로 생겨난 자이니치에게도 이런 대접을 하는 일본에 저자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과연 약자인 국민과 변경인들에게 어떤 대우를 했을지 살펴볼 필요가 들었던 것 같다. 2차대전의 패전, 미나마타병, 미카와탄광폭발사건, 후쿠시마원자력발전소 폭발등 이런 끔찍한 사건은 대체 왜 일본에서만 반복되는지도 저자의 주요의문이었다.

  역사가 보여주듯 메이지이후 150년간 일본의 역사는 떠오르는 역사였다. 아시아 최초로 산업화에 들어섰고, 그 힘으로 아시아의 많은 지역을 지배했다. 패전 후 몰락할 것만 같았지만 한국 특수로 다시 기사회생하여 60년대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서 거의 50년간 그 자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쇠퇴의 기미가 역력하지만 여전히 3위의 경제대국이다. 그렇게 국운이 욱일승천하는 동안 그 나라를 위해 일하고 전쟁에 참여한 국민들, 그리고 특히 약자들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국운을 올리는 것만이 제일 목적인 나라에서 뒤틀린 부분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선 일본은 교육부터 뒤틀려 있다. 패전 이후 68혁명을 통해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자 현대사의 아픈 부분을 집중 교육하는 독일에 비해 일본은 전쟁이전의 메이지유신까지의 역사만 집중적으로 다룬다. 일본의 교육은 상당히 국가주의적이고 다양성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데 외세의 강한 힘과 영향으로 인해 교육의 주체성이 가장 담보되지 못했던 메이지 유신 초기와 패전 직후의 시대가 일본 교육이 가장 다양하고 교육적 자유가 보장되던 시기였다는게 아이러니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나라의 운영권을 되찾은 52년부터 일본의 권력층은 바로 교육 검토에 들어갔고, 1970년대부터는 일본의 교육이 권리만 강조하고 의무는 방기한다.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등 과거로 급격히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점차 검정교과서의 기준과 절차가 엄격해지고 교사의 지도방침에 대한 점검도 강화되어등 일본의 교육은 우경화와 더불어 급속히 뒤틀린다.

 일본은 지진이나 해일, 화산등 자연재해가 그 어느나라보다도 많으면서도 이를 무시한 개발을 진행해왔다. 저자는 자연에 반한 이런 인간의 세공, 잔꾀 등이 지진의 운동에너지가 될 위치에너지를 키워다고 말한다. 즉, 지진으로 더 큰 피해가 될만한 인재로서의 잠재적 에너지를 더 키워단 셈이다. 지진해일이 많은 나라가 원전을 하는게 그런게 아니겠는가. 하여튼 저자는 재난이 날때 그 지역, 사회, 국가의 본성이 드러난다고 본다. 25년전 고베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이 일어나는 순간은 무척 짧지만 그 여파는 수십년을 간다. 일본정부는 붕괴한 해당지역에 집단 이전이나 토지정리, 부흥재개발 등으로 복구를 추진했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지역민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런 복구방식에서 지역 커뮤니티의 재생이 방해되었고, 서로 연결되어 버티며 재기해야할 사람들이 유리화되었다. 때문에 해당지역의 가설주택과 공영주택에서는 한해 이재민 고독사가 천명 넘게 발생한다고 한다. 이런걸 복구라 말할 수 있을까.

 문제가 하도 많은 아베총리의 외할아버지도 기시 노부스케도 총리였고, 한국을 무시하는 일본 외무상 고노의 아버지는 아들과 다르게 일본의 가해행위를 인정한 고노담화를 한 그 고노였다. 이처럼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정치가 세습된다. 일본은 정치를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94년 정치개혁 4법을 통과시켰는데 명분과는 다르게 그 법은 자금의 운용과 인사발탁의 기능이 정당 지도부로 집중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때문에 각 지역 의원은 일본 국민이 아닌 정당의 지도자에 충성하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법의 통과후 정치세습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는데 96년 이후 일본 총리10명중 8인이 무려 정치가 집안 출신이다. 중의원의 세습률은 25%를 넘어서가 집권당인 자민당은 경우가 더 심해 30%를 넘어선다. 2017년 11월엔 총리를 포함해 내각의원의 절반 이상이 세습의원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니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 할수 있겠다. 정당지도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의 통과후 세습의원이 많아 진것은 정당이 가족 정치인들에게 선거에 유리한 지명도와 자금, 지원조직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본 정당은 정권을 얻어 국민의 민의를 반영하기 보단 관직임명권을 얻고 권력이 당 지도부에 집중되고, 각 의원들이 지역이나 국민의 생각보다는 정당지도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형태가 된다. 제대로 튀틀린 셈이다. 

 변경민과 약자에게도 국가주의앞에 그저 도구일 뿐이다. 일본은 52년에 본토를 미국으로부터 찾았지만 오키나와를 찾는데는 그로부터 20년이 더걸렸다. 2차대전때 본토보다 먼저 공격당해 점령당한 오키나와는 당시 전인구의 1/4정도가 죽었다. 미군이 죽인 것보다 옥쇄당한 이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전후 주일미군의 대부분이 오키나와에 주둔한 것도 오키나와가 일본이면서도 일본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이니도 그렇다. 그들은 비록 이등국민이긴 했지만 일본제국의 신민이었다. 그러다 패전하니 자동으로 외국인이 되어버렸다. 어째서 일본은 동화의사가 없으면서도 한국이나 북한으로의 귀순을 희망하지 못하거나 안한 이들에게 이중국적을 부여하지 않았을까? 농민도 약자이다. 일본은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쌀값안정은 도모하면서도 수입품과의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해 농민들에게 쌀생산 제한을 강요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농민간의 이합집산이 일어났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만들었다. 후쿠시마에서 원전으로 재산과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어째서 도쿄의 불을 밝히기 위해 자신들이 그런 꼴을 당해야 했는지를 묻는다. 이는 하시마탄광의 일본, 조선, 중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사양화되던 탄광산업으로 인해 예산이 줄어 위험속에서 작업하다 희생된 미카와 탄광의 노동자들, 그리고 미나마타만의 어부들도 했던 말일 것이다. 

 이 책을 메이지 유신이후 상당히 많은 일본의 뒤틀린 역사와 현재, 희생된 사람들을 현장을 찾으며 기리고 성찰한다. 저자가 보기에 일본은 메이지 유신당시 화혼양재를 택했다. 과거 중국을 배우자는 화혼한재에서 한을 양으로 바꾼 것이다. 한국의 동도서기나 중국읜 양무운동과 괘가 같다. 이는 기존의 정신문명을 보존하면서 서구의 과학기술만을 따르자는 것인데 일본의 경우 두 나라와는 달리 성공하면서 오히려 동아시아의 전체주의적 사고에 서구문명기술만 발달한 기형아를 낳은 셈이 되고 말았다. 때문에 메이지유신의 성공부터 일본의 뒤틀림은 배태되었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정신문명의 변화까지 이어지지 않았기에 민주주의도, 문화주의도, 성찰과 반성도 없다. 더구나 최근 버블경제의 붕괴와 저출산 고령화, 지방의 쇠퇴, 감각적 충동의 해방, 국권과 민권의 분열, 국가와 자본의 유착, 도쿄로의 부와 인구의 쏠림, 미국만의 추동과 다른 나라의 무시, 계급 격차의 확대라는 문제가 전방위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는 오히려 과거로 회귀에 더욱 국가주의로 경도되고 그 수단인 국민의 순수성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치닫는다는게 저자의 해석이다. 

 재밌고, 한국에게도 공통되는 부분이 있어 상당히 반면교사가 되는 책이지만 많은 주제를 다루면서 상세하고 깊이 있는 서술이 좀 부족해 이해가 어려운 면이 있었다. 지금 책의 두배 볼륨으로 두껍게 서술했다면 더욱 나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거기에 일본학자이니 당연히 일본식 한자를 많이 썼는데 이 부분이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여러모로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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