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세대 -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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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유류를 중심으로 어린 개체는 성인기로의 성공적 전환을 위해 놀이활동을 즐긴다. 놀이활동은 당연히 물리적이며, 여럿이 함께하고, 위험을 감수한다. 이 과정에서 적절한 좌절과 위험의 감수로 인한 자율성확립, 사회성 등 여러 기능이 함양된다. 인간 역시 포유류의 일원으로 아동기가 긴만큼 상당기간의 놀이기반 아동기를 수행했다. 하지만 이는 1980년대까지다. 이후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인간아동들은 놀이기반 아동기를 상실하게 된다. 

 물론 디지털 세계에서도 상호작용은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세계의 그것과 엄연히 다르다. 현실세계의 상호작용은 체화된 방식, 동기화된 방식, 1:1 또는 1:다수의 만남, 진입과 퇴출의 진입 장벽이 높다. 디지털 세계의 상호작용은 미체화된 방식, 미동기화된 방식, 1:다수의 만남, 진입과 퇴출 장벽이 낮은 공동체가 특징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 세계 각국의 청소년의 정신건강은 상당히 악화하고 있다. 10대의 주요 우울증 비율은 2010년 이후 여자아이는 145%, 남자아이는 161%증가했다. 2012년부터 급증하는데 이는 스마트폰의 대중화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미 성인이 된 대학생의 정신질환 증가도 놀랍다. 2010년이후 대학생들은 불안은 134%, 우을중은 106%, ADHD는 72%, 양극성 장애는 57%, 신경성 식욕부진은 100%, 약물 남용 및 중독은 33%, 조현병은 67%가 증가했다. 연령별 불안 비율은 2010년 이후 18-25세는 137%, 26-34세는 103%, 35-49세는 52%, 50세 이상은 8% 증가했다. 스마트폰에 어릴적 노출되었을수록 불안 비율의 증가가 높다.

 사람은 불안으로 인한 장애에 대해 두 가지 양태로 반응한다. 하나는 내면화 장애로 심한 고통을 받은 경우 증상을 내면적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외면화 장애로 심한 공통을 받는 경우 증상을 외부, 즉 타인에게 표출하는 것이다. 전자는 자해나 자살로 이어지고 후자는 폭행 및 살해로 이어진다. 전자는 여자에게 주로 나타나며, 후자는 남자에게 주로 나타난다. 불안은 두려움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생존을 위해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정상적 불안은 건강한 것이지만 일상적 사건에서 지속하는 만성적 불안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파괴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따돌림이나 모욕 같은 사회적 위협에 큰 불안을 느낀다. 그리고 항상 실시간으로 접속이 가능한 스마트폰 기반의 인터넷 환경은 이런 불안에 사람을 늘 노출시킨다. 

 학생들이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에 노출된 것은 기기의 빠른 보급때문이다. 2016년 10대의 79%가 스마트폰을 보유했고 8-12세는 28%를 보유했다. 지금은 훨씬 올라갔을 것이다. 2015년 SNS계정이 있는 10대는 하루의 2시간은 SNS를 하고 1시간을 여가로 보내고 무려 7시간을 유튜브나 게임, 넷플릭스, 포르노 등을 보는데 소비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비교의 시작은 2010년 아이폰 4가 사상최초로 전면카메라를 도입하고서 부터다. 이때부터 사실상 셀카 문화가 시작하며 SNS를 매개로 서로의 과장되고 조작된 일상을 경쟁적으로 올리며 무한 비교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청소년들의 사회적 패턴, 롤모델, 감정, 수면패턴등이 모두 급격히 변화한다. 

 인간 아이는 생후 2년간 급격히 성장하지만 이후 7-10년간 느리게 성장하다 사춘기에 다시 급격히 성장한다. 인간의 문명과 언어가 발달하여 학습을 잘하는 자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기에 학습시간이 길도록 사춘기에 빠르게 도달하지 않게 진화했다. 그리고 아동기에 학습을 잘하기 위해서 자유놀이, 조율, 사회학습에 대한 동기가 발달했다. 그래서 인간은 놀면서 뇌의 회로를 천천히 완성해간다. 놀이를 통해서 실제보다 위험이 낮은 환경에서 성공과 실패를 하고 이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반복을 통해 학습해간다. 처음 놀이를 통해 기본기술을 익히면 이후에는 잡기 놀이나 숨바꼭질 같은 포식자-피식자 게임으로 넘어간다. 나이가 더 들면 언어놀이(잡담, 놀리기, 농담)로 뉘앙스나 비언어적 단서, 내뱉은 말이 원하는 반응을 끌어내는데 실패하는 경우 즉각 관계를 회복하는 기술등의 상급과정을 거친다. 이후에는 자치와 공동의사결정, 경쟁에서 패배 시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 등 고급 사회성 기술이 발달한다. 놀이는 이처럼 지배적 충동을 억제하고 오래 지속하는 협력적 유대를 형성한다. 신체놀이는 가장 건강하고 유익하다. 신체놀이에는 약간의 위험이 수반하고 이로 인해 자신과 타인의 안위를 돌보는 법을 학습한다. 그리고 부모나 교사가 신체놀이에 과도하게 관여하거나 개입하면 즉시 덜 자유롭고, 덜 즐겁고, 덜 유익해지며 학습효과가 반감한다. 신체놀이는 정서발달에도 기여한다. 정서발달은 일반적으로 정보가 아니라 경험에 있기에 놀이가 중요하다. 놀이를 통해 아이는 상처를 참고, 감정을 조절하며, 다른 아이의 감정을 읽고, 차례를 지키고, 갈등을 해결하고,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루는 법을 학습한다. 

 이 모든 대면신체놀이의 기회를 스마트폰이 앗아간다. 거의 매일 만나는 비율은 1990-200년까지 완만히 감소하다 2010년대 이르러 빠르게 감소했다. 아동이 주변세계와 연결을 맺으려면 움직임과 감정을 타인과 조율하고 동기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동은 나이가 들수록 단순히 차례를 지키는 것을 넘어서 상대와 동시에 같은 일을 하는 동기하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특히, 여자아이는 함께 노래를 하거나 줄넘기를 하거나 운율을 맞추면서 손뼉치는 게임을 하면서 큰 즐거움을 느낀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통한 만남은 철저히 비동기화이며 미체화된 방식이기에 이 같은 기회를 갖기가 현저히 어렵다. 

 인간 학습의 기본은 모방이다. 그래서 인간은 모방을 통해 학습하고자 하는 선천적 욕구가 있고, 모방을 할만한 적절한 사람을 선택한다. 그래서 동조편향과 권위편향이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아동은 SNS에 강하게 빠져든다. 타인들이 모두 SNS를 하기에 여기에 동조하게 되고, SNS의 스타는 클릭수와 좋아요로 인해 권위를 갖게 된다. 때문에 아동은 진정한 권위자와의 실제 만남이 줄어들고 적절하지 못한 자를 모방하게 된다. 이 같은 경향은 사실 20세기부터 시작되었다. 대중매체의 부상으로 인해 실제 탁월성과 권위가 분리되었다. 이는 SNS로 인해 크게 강화되었다. 이로 인해 현실세계 공동체에서 성공하는데 도움을 주는 멘토링 관계가 다양한 롤모델링으로부터 시간과 주의 모방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주요 학습매커니즘의 하나인 좋은 롤모델링을 모방하는 학습을 붕괴시켰다.

 인간은 진화하며 환경의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행동 활성화 체계와 행동 억제 체계가 동시에 진화했다. 환경에 적극 대응하려면 행동 활성화가 필요하고, 위험을 피하려면 행동 억제가 필요하기에 양자는 모두 중요하다. 다만 학습에 있어서는 당연히 행동활성화 체계, 즉 발견모드가 중요하다. 하지만 현대사회 특히, 1990년대부터 미국과 서구에 있어서 아동의 안전이 과도하게 강화되었다. 역설적이게도 90년대 이후 해당세계에서는 범죄와 폭력, 음주운전등이 크게 감소했음에도 그러하다. 이렇게 아이를 헬리콥터 양육함으로써 아동은 바람없이 자라는 나무가 되고 만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불안장애, 낮은 자기효능감, 대학생활적응도를 보인다. 

 아이가 자라며 적절한 경험으로 공포를 느끼는 것은 중요하다. 아이는 처음엔 대상에 두려움을 느껴도 노출과 경험을 통해 대상에 익숙해지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능력이 발전할수록 두려움을 느끼던 대상에 점점 큰 흥미를 갖고 곧 스릴과 승리감을 갖게 된다. 

 아이들이 하는 위험한 놀이는 신체적 부상 위험을 포함하는 스릴 넘치고 흥미진지한 형태다. 그리고 아이들은 비교적 큰 위험이 없는 부상(타박상, 베인상처)이 발생할 수 있는 활동을 놀이로 선택한다. 이런 유형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위험한 도구의 사용, 거친 몸싸움, 위험한 요소, 사라지기 등이다. 1980년대만해도 아이들의 놀이터는 이런 위험을 경험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하지만 안전에 대한 요구가 과도해지며 현대의 놀이터는 위험요소가 거의 없어 아이가 위험한 경험 자체를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이들이 노는 장소의 설계는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필요한 만큼만 보장해야한다. 

 이처럼 안전을 과도하게 강조하게 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도시가 점점 자동차 중심으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주차로 인해 놀이 공감을 빼앗겼고, 항시 노는 곳에 자동차가 들어서는 위험을 겪게 되었다. 다음은 사회적 응집성의 감소다. 과거 농경중심의 문화가 남아 있어 이웃간의 친밀도가 높고, 꼭 부모가 아니어도 아이를 돌보는 눈이 많았으나 지금은 자기 아이 외에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마지막은 케이블 TV등의 발달로 인해 부모의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이야기나 사례들이 과도하게 증폭되어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점이다. 이런 요소가 불러온 안전지상주의로 인해 잠재적 위험이 얼마나 희박하고 사소하든 안전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해버렸다. 

 인간의 문명에는 공통적으로 사람의 지위 변화를 보여주는 통과의례란게 있었다. 의례는 대개 탄생, 성인, 결혼, 죽음과 관련이 깊다. 여자나 남자아이는 사춘기에 통과의례를 치른다. 그러면서 부모로부터 분리되고 시련을 겪으며 성인사회의 새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환영받는다. 현재 대다수의 현대 문명사회는 이런 통과의례를 상실했다. 이는 롤모델, 도전, 새로운 지위의 공개인정 경험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신고식 처럼 자기들만의 의례가 치뤄지기도 하는데 이는 어른의 감독이 없기에 잔인하거나 성과 관련한 심리적 고통을 수반하는 경우도 있다. 

 안전주의의 심화는 10대의 주요활동을 크게 감소시켰다. 과거 10대는 운전면허 습득, 음주, 섹스, 아르바이트 경험이 풍부했으나 지금은 과도한 안전과 보호로 인해 이 같은 경험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이는 감독과 감시를 넘어서서 성장을 저해하는 행위다.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는 4가지 해악이 있다. 사회적 박탈, 수면의 박탈, 주의 분산, 중독이다. 스마트폰은 초기 서드파티 앱의 문호를 개방했다. 그러자 앱의 수가 대폭 늘어났으며 무한 경쟁으로 인해 이런 앱들은 사용자를 오래 붙들어 놓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SNS와 플랫폼에는 4가지 특징이 있는데 사용자 프로필, 사용자 제작콘텐츠, 네트워킹, 상호작용성이다. 2009년부터 페이스북이 좋아요, 트위트가 리트윗을 도입하자 이런 요소가 광범위하게 다른 플랫폼으로도 퍼져나갔다. 이는 모든 게시물의 성공을 계량화하게 하였다. 제작자에겐 이것이 인센티브로 작동했으며 단순히 좋아요와 클릭수를 올리기 위해 거짓과 ,극단적 발언, 심한 분노, 혐오를 조장하는 게시물이 등장하게 되었다. 푸시 알림도 2009년에 출시하였다. 이는 사용자에게 하루 종일 알림을 보낸다. 

 아동은 대면 방식의 동기화, 체화된 신체놀이가 발달과 학습을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신체적 위험 감수와 스릴이 넘치는 모험을 동반하는 실외 놀이를 통해 이뤄진다. 이를 위해서는 친구와 직접 만나는 것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 이를 박탈해버린다. 이것이 사회적 박탈이다. 

 10대가 되면 자연 수면 패턴이 변화하여 잠자는 시간이 늘어난다. 원래를 등교를 해야하기에 청소년은 일찍 잠이드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인해 청소년은 늦잠을 자게 된다. 하지만 등교는 해야하기에 일찍 일어나게 되므로 수면시간의 절대량이 감소한다. 수면은 학습에 매우 중요하다. 또한 수면의 부족은 체중을 줄이고 면역력을 낮추며 짜증과 불안을 만들어내어 대인관계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 10대는 성인보다 더 자야하며 이는 8-9시간의 수면시간이다. 하지만 수면이 7시간 미만인 10대는 1991년 여자 32%, 남자 26%였던 것이 2019년 여자 49%, 남자 41%로 대폭증가했다. 

 스마트폰은 주의도 분산한다. 연구에 따르면 주요 SNS와 앱이 보내는 알림이 하루 평균 192개에 달한다. 이는 5분에 1개꼴로 이에 모두 일일히 반응한다면 하루 종일 무언가에 집중하는 시간이 5분 미만이란 셈이다. 이런 지속적 방해는 청소년의 사고능력을 갉아먹으면서 재배열이 빠르게 일어나는 10대의 뇌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힌다. 이는 집중력 성숙과정의 방해다. 청소년기는 집행기능이 발달한다. 이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으로 전두피질이 주로 주관하고 이 부분은 매우 느리게 발달한다. 

 스마트폰의 또 다른 가장 큰 해악은 중독이다. 앱설계자는 강한 습관의 고리를 형성하는데 알림-행동-가변적 보상-투자의 순환고리다. 사용자는 자신의 SNS에 올린 게시물에 대해 알림을 받게 된다. 이것은 좋아요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사용자는 이런 가변적 보상에 대해 긍정적 결과를 얻기 위해 게시물을 강화한다. 이 과정이 무한 반복되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이처럼 디지털 도파민을 사실상 24시간 공급하는 현대판 피하지방 주사기나 다름이 없다. 

 이런 스마트폰 기반의 악영향은 성별에 따라 양상의 차이를 보인다. 공통적으로 남여 모두 스마트폰의 사용시기가 크게 증가했지만 이용방법에 차이가 있다. 남성은 주로 유튜브, 레딧같은 사이트나 비디오 게임에 집중한다. 여성은 시각 이미지 중심의 SNS, 인스타, 스냅쳇, 핀터레스트 같은 것들을 많이 사용한다. 즉, 여자 아이들의 SNS사용이 남자보다 훨씬 많다. 사람은 자라면서 주체성과 융화성을 발달시킨다. 주체성은 개성을 추구하고 자신을 확장하고자 노력하며, 효율성, 역량강화, 자기주장성을 보인다. 융화성은 타인을 배려하고 그래서 자신을 더 큰 사회단위에 포함시키려 하는 행위다. 그래서 박애와 협력, 공감이 필요하다. 남여 모두 이를 추구하나 성향상 남자는 주체성에 여자는 융화성에 더 강한 동인을 보인다. 이런 면이 여자아이가 SNS에 더 민감한 이유다. 

 사회심리학자 수잔 피크스는 인간을 비교 기계로 설명한다. 인간은 내부에 계량기를 갖고 있는데 매순간 국지적 인기순위에서 자신의 위치를 측정한다. 특히 10대는 아동기를 벗어나서 몸과 사회생활이 급속히 변화하여 불안하다. 그래서 자기가 속한 성에서 위치를 파악하려 애쓴다. 주로 외모에 집착하는데 특히 여성 청소년일수록 아름다움과 성적매력에 관심이 큰데 여성의 경우 이 요소가 사회적 지위를 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SNS는 사실 사실이 아니다. 이는 삶을 편집한 하이라이트에 가까우며 필터와 편집앱으로 인해 가상의 미와 온라인 브랜드를 사용한다. 그래서 자신의 아름다음과 미를 항상 계산하는 여자아이들의 경우 이로 인해 사회적 계량기 바늘이 곤두박칠치게 된다. 자신에 대한 만족은 1991년 여자는 66%, 남자는 69%였다. 하지만 2019년 여자는 57%, 남자는 62%로 줄어들었다. 여자아이는 이처럼 사회적 비교에 남자보다 더 취약하다. 특정 종류의 완벽주의에 더 사로잡히는 경향이 크고, 불안이 클수록 더욱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그리고 SNS를 통해 가공된 완벽한 외모의 이미지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불안은 더욱 커진다. 

 SNS는 여자아이들 상호간의 공격에도 활용된다. 여자 아이의 융화성 동기로 인해 그들의 공격은 관계를 손상시키는데 집중된다. 2011-2019년 사이버괴롭힘 경험자는 고교생의 경우 남자는 10%, 여자는 20%나 된다. SNS가 제동하는 익명의 프로필 생성은 트롤링이나 평판손상에 주로 이용된다. SNS는 자신의 언행을 면밀히 관찰하는 여자아이들에게 막대한 압력을 가하면서 관계적 집단 괴롭힘의 범위와 영향을 증폭시켰다. 

 여자아이는 감정과 장애를 더 쉽게 공유한다. SNS는 우울증도 전파한다. 여자아이들 약탈과 괴롭힘에 더 취약하다. 남성은 성관계를 위해 강압과 폭언, 폭력을 쓰는 경향이 있는데 SNS의 여자아이들은 이들의 좋은 표적이다. 10대는 SNS에 매우 쉽게 노출되고,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의 나체사진을 쉽게 요구한다. 이에 응하면 여자아이에게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다. 같은 나체사진의 공유도 남자와 여자의 결과는 천양지차다. 남자는 가벼운 흥미거리나 오히려 자랑이 되기도 하지만 여자아이의 경우 이는 행실이 나쁜 사람으로 치부된다. 

 남성의 경우 1970년대 이후 재산, 성취, 안녕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이는 산업구조의 변화와 탄산업화 때문이다. 특히 학위 취득에서도 여성이 우위를 보인다. 안전지상주의는 남자아이들의 활동을 더욱 제약하며 큰 타격을 입혔고 스마트폰의 등장은 이를 가속화했다. 남자아이도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주체성과 우정을 가상세계에서 찾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개인 공간에서 주체성과 융화성 추구했는데 주로 비디오 게임과 포르노 사이트를 통해서다. 남자아이가 매일 포르노를 보는 비율은 2004년 11%에서 2014년 24%로 증가했다. 포르노는 남자아이들에게 불확실하고 위험한 현실 세계에서의 연애 대신 성적 만족을 위한 더 쉬운 선택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남성이 실제 세계의 파트너를 덜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생성형 인공지능과 섹스 인형, 로봇의 발전은 이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비디오 게임은 단기적으로는 고독감을 완화한다. 하지만 장기적 우정 형성이 어렵기에 게임에 더 의존하게 되고, 장기스트레스와 불안감, 우울증을 유발한다. 7%의 남자아이들이 과도한 비디오 게임으로 인해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2019년 남자청소년의 41%가 하루에 2시간 이사을 17%가 4시간 이상을 비디오 게임을 한다. 이는 잠과 운동, 가족 친구와의 대면 만남 기회를 떨어뜨린다. 남자아이의 경우 이 경우 어른이 되면 은둔 청년으로 이어지기 쉬다. 은둔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은데 이는 남성이 여성보다 사회적 성취에 대한 압박이 더 강해 이에 실패하여 입는 타격이 더 크고, 여성은 결혼이라는 탈출구와 관계에 대한 지향성이 더욱 크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런 스마트폰 아동기의 악영향을 막기 위해 정부와 테크회사들이 해야 할일은 다음과 같다.

우선 보호의무의 준수다. 개인 프라이버시의 보호와 기본값을 최대로 설정하고 아동의 게시물에 대한 타인 설정 금지 및 적극적 설정이다. 혐오물에 대한 접근 장애에 대한 설계도 중요하다. 다음은 인터넷 사용 나이의 16세 설정이다. 현재는 이것이 13세다. 16세는 사춘기가 막 끝나는 시점으로 더 성숙하기에 해악의 영향을 덜 받는다. 다음은 나이 확인 절차 쉽게 하기다. 생체인식 확인, 블록체인 토큰 활용, 서로 보증 네트워크의 활용등이다. 마지막은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 금지의 장려다. 

 그리고 현실세계를 아동이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해야 할 일도 있다. 우선 자녀에게 현실을 경험하게 하는 부모의 처벌금지다. 미국의 일부 주는 12세 미만 아동을 공공장소에 혼자 두는게 불법이다. 과도하다. 자녀의 독립적 신체활동과 인지적 자극 기회 자체가 불법인 셈이다. 다음은 학교에서 더 많이 놀이 활동의 장려다. 세번째는 공공장소를 설계하고 기획할 때 어린이를 고려하는 것이다. 자동차 중심의 설계를 지양하고, 상업, 여가, 거주 구역이 잘 혼재되면 어린이가 도보, 자전거로 이동하는 지역이 많아진다. 학교 앞 거리의 차량통행을 방과 후 1시간 차단하는 것도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직업교육과 수습과정, 청소년 개발 프로그램의 활성화도 중요하다. 

 다음은 부모가 자녀에게 해야할 일이다. 

 아이가 연락이 없는 상태로 시야를 벗어나게 하기, 아이가 모여 밤을 세우고 노는 것을 장려하고 소소한 것 챙기지 말기, 친구와 함께 학교 걸이가기 장려, 방과 후 자유놀이 즐기게 하기, 캠핑가기, 아무 기기도 없고, 안전 지상주의가 아닌 캠프 찾기, 아동친화적 동네와 놀이공간 조성이다. 그리고 디지털 기기 차단이다. 집에 있는 모든 디지털 기기의 자녀 보호기능 및 콘텐츠 필터 사용, 전체 화면 시간 관리보다는 대면 활동과 잠을 최대화, 하루와 일주일의 시간에 명확한 구조 부여, 중독이나 문제 있는 사용의 징후 살피기, 16세까지 SNS계정 개설 늦추기, 10대 초반의 자녀와 위험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자녀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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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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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전, 소련을 필두로 동구권이 무너지며 바야흐로 자본주의와 결합한 민주주의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도 체제가 민주주의긴 하지만 그쪽 진영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독재로 흘러버렸고 경제적으로도 실패했다. 반면 자본주의를 앞세운 진영에선 실제로 민주주의가 구축되어 안정적으로 운영되었기에 당시 자본주의와 결합한 민주주의가 가장 경쟁력 있고 선도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중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상당수 사회주의 진영이었던 권위주의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운영하지 않고도 산업 경쟁력을 회복했다. 반면 승자로 보였던 유럽과 미국의 자본주의와 결합한 민주진영에서는 경제가 흔들리고 더불어 민주주의도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책은 미국의 사례와 역사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민주주의는 서구에서 본격화한지 300여년 정도가 지난 제도다. 상당히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지금의 민주주의는 매우 쉽게 흔들린다. 사람들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지탱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히틀러나 트럼프, 한국 역사상 독재를 한 대통령 혹은 그에 준하는 자들은 대개 국민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이다. 이는 시민이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고, 이러한 잠재적 독재자들이 대중의 약점과 감성을 매우 잘 파고들어 자신에게 영합하게 만들기가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가 보기에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그것을 수호한 것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다. 그것을 구현한 것은 미국의 양 정당이며 이들이 지켜온 규범은 사호관용과 이해, 그리고 권한 행사에 있어서 자제의 원리다. 놀랍게도 이는 미국 헌법이나 여타 법률에 전혀 규정되어 있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정치인들이 이를 실천해 온 것이며 그것이 굳어져 규범화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치가 양극화하며 1980년대부터 이 규범에 균열에 생겨왔고 그것의 결과는 잠재적 독재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탄생과 규범의 파괴였다. 

 린츠의 연구에 의하면 잠재적 독재자는 4가지 특성을 공통적으로 드러낸다. 우선 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한다. 그리고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제거하려 든다. 또한 자신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폭력을 용인하고 조장한다. 마지막으로는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 결과를 부정했고, 오바마를 무슬림으로 취급했으며, 지지자들의 국회점거를 용인하고 그 범죄자들을 사면까지 했으며, 자신을 비방하는 언론 기자를 출입금지시키거나 대놓고 면박한다. 그리고 한국의 탄핵된 대통령 윤석렬도 이 4가지 특성을 상당히 드러냈었다. 그도 툭하면 부정선거 의혹을 드러냈고 실제 국정원을 동원해 이를 조사했으며, 선거해서 승리했음에도 야당대표의 수사를 지시하고 제거하려 했으며, 재임 중 각종 공식행사에서 반국가세력을 언급했고 계엄을 단행했으며, 자신을 비난한 언론사 기자를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 금지시켰다. 

 이런 잠재적 독재자는 대개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로 기성정치에 반대하며 자신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부패하고 음모를 꾸미는 엘리트 집단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존 정치인이 오히려 비민주적이고 비애국적이라 매도하며 기존의 질서를 뒤흔들어 집권한다. 

 트럼프와 양극화로 인해 이런 잠재적 독재자들이 최근에 등장한 것 같지만 미국 역사를 살펴보면 이들은 과거부터 꾸준히 존재해왔다. 성공한 것이 최근일 뿐이다. 이들이 과거 실패했던 것은 미국의 정당이 문지기 역할을 하며 이들을 제거해왔기 때문이다. 정당들은 잠재적 독재자를 선거기간에서 당내의 경선에서 배제하거나, 정당의 조직 기반에서 극단주의를 제거하고, 반민주적인 정당이나 후보자와의 모든 연대를 거부하고, 극단주의자를 체계적으로 고립시키며, 그들이 유력주자로 떠오를시 연합전선을 구축해 대항한다. 

 미국역사상 등장했던 잠재적 독재자들은 찰스 코글린이나 휴이 롱, 조지프 매카시 등이 있다. 이중 매카시는 냉전시대 공포를 이용하여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언론을 검열하고, 출판사를 폐쇄했다. 그는 상원의 불신임에도 40%의 지지율을 얻었다. 그리고 1968-72년 윌리스는 극단적 인종차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들은 대중의 지지를 얻었지만 정당의 문지기 역할로 인해 체계적으로 배제되었다. 

 미국의 건국자들은 민주주의를 확립했음에도 대중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대중이 무지몽매하여 언제든지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의원내각제는 총리가 의회의 일원으로 정치 내부자의 인정을 받아야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반면 대통령제는 국민 선거로 결정되는 만큼 이 같은 필터기능이 없다. 그래서 미 건국자들은 선거인단제도를 고안하였다. 하지만 선거인단은 국민 선거 이후에 구성되어 후보자 자체를 거르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정당과도 무관하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필터기능이 없다. 

 이로 인해 미국은 역사상 정당이 사실상 민주주의 관리인이 된다. 19세기 초 대통령 후보 선출은 의회간부회의라는 하원단체에서 매우 폐쇄적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다 1830년대 초부터 각 주의 대의원이 참석하는 전당대회에서 후보가 결정되었다. 대의원도 일반투표가 아니라 각 주 및 전당위원회에서 선발했다. 프라이머리 선가는 1890-1914년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당시엔 대의원의 프라이머리 승리후보에 대한 지지의무가 없었다. 이런 일련의 전당대회 시스템은 비민주적이거나 위험한 후보를 제거했다. 프라이머리는 대선 후보 지명에 대한 구속력이 없고 그 자체로 화려한 행사에 불과하다. 실질적 힘은 당내부자가 갖고 있었고 이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후보자가 되는 길이었다. 이는 오랜 기간의 동료평가 기능을 했다. 정치인들은 서로를 알고 오랜 기간 같이 일하면서 성격과 이념, 위기관리능력, 인성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당들은 1970년대 들어 기존의 후보 선정 시스템을 바꾸기 시작했다. 1968년이 시작인데 당시는 로버트 케네디 암살, 베트남 전 갈등, 반전 시위의 열기로 사람들은 기존 정당에 신뢰가 사라져서 전통적 후보 지명시스템에 대해 강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급기야 시카고 전당대회에 반전시위대가 난입하였고 그 과정을 경찰이 강경진압한다. 그 후폭풍으로 대선후보 험프리가 패배한다. 이에 민주당 지도부는 대통령 후부 지명과정을 개방해야 한다는 강한 압박에 직면했고 이후 지금의 구속력있는 프라이머리가 생겨난다. 1972년 민주, 공화 양당은 전당대회에 참여하는 대의원 대부분을 각 주의 프라이머리와 코커스를 통해 선출한다. 후보들은 대의원의 이탈을 막기위해 미리선출했다. 당지도부에 의존하지 않고 대선후보를 선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장벽이 남아있었다.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하려면 막대한 선거자금, 호의적 언론기사, 모든 주에서 자신을 위해 활발하게 뛰어줄 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후원과 언론인, 이익단체, 사회운동가, 주지사와 시장, 상하원 의원등과의 광범위한 연합도 요구되었다. 

 이 장벽은 2010년대에 무너지게 된다. 연방대법원은 2010년의 판결로 외부자금이 더 쉽게 유입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정치후원자를 찾는 것이 매우 쉬워져 기존의 정당에 의존을 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케이블 티비와 유튜브, SNS의 등장은 대체언론의 성장을 가져와 기존 시스템에 대해 의존을 더욱 덜어주었다. 

 이처럼 미국역사에서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은 과거 매우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체계에서 더욱 민주적이고 개방적으로 변화하였다. 하지만 정치 전문가에 의한 필터기능이 사라지면서 미국에서는 극단적이고 정치경험이 전무한 포퓰리스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가능해졌다. 상당한 역설인 셈이다. 

 과거 독재자들은 정적을 대놓고 투옥, 추방, 암살했다. 하지만 지금의 독재자들은 탄압을 합법적으로 포장한다. 이를 위해 심판 매수가 필요한데 바로 법원이다. 그리고 현대 독재자들은 종종 명예훼손이나 모욕적 혐의로 소송을 남발해 반정부성향이 강한 인물을 합법적으로 경기에서 배제한다. 그러면 언론사는 공격으로 인해 자체검열을 시작한다. 독재자는 야당을 지지하는 기업도 공격한다. 그리고 예술가, 지식인, 팝스타, 스포츠 선수 등 문화계 인사도 공격한다. 이들의 높인 인기와 도덕성은 독재자에게 위협이다. 그래서 독재자들은 이들을 회유, 협박한다. 주요 언론인과 기업가들이 매수되거나 경기장 밖으로 쫓겨날때 저항세력은 힘을 잃는다. 현대의 독재정권은 이렇게 해서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승리를 거머쥔다. 

 여기서 더 나아가 독재정권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게임의 법칙도 바꾼다. 헌법과 선거시스템, 다양한 제도를 바꾸어 저항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공공의 선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며 그래서 경쟁자에 불리하게 운동장을 기울인다. 

 잠재적 독재자라도 민주체제이기에 뭔가를 하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경제위기, 자연재해, 전쟁, 폭동, 테러와 같은 안보 위협은 좋은 구실이다. 그래서 잠재적 독재자일수록 그런 상황이 아님에도 위기를 강조한다. 실제 미국의 트럼프는 자신을 반대하는 민주당 우호지역을 범죄 우범지역, 테러지역으로 규정하고 군대 투입을 하고 있다. 시민들 역시 안보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러한 조치를 찬성한다. 

 법체계는 본질적으로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없기에 모호하고 개념에 공백이 있다. 그래서 헌법 조항에만 의존해서는 잠재적 독재자를 막을 수 없다. 민주주의가 오래 건강하게 작동하는 국가는 비공식적 규범에 의존한다. 바로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다. 상호관용은 정치 경쟁자가 늘 헌법을 존중하는 한 권력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며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권력에 대한 반항은 역적으로 여겨졌고 제거로 이어졌기에 이는 혁신적 사고다. 그리고 민주주의 붕괴 사례에서 독재자들은 반대파를 국가의 위협으로 낙인찍어 제거한다. 제도적 자제는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다. 법을 존중하면서 입법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자세다. 대통령은 행정명령의 권한을 갖고 있다. 한국의 윤석렬은 행정명령을 마구 집행해 입법부와 갈등을 일으켰고, 국회분의 헌법재판관이나 방송통신위원등을 임명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제도적 자제에 실패한 사례다. 

 미국 역시 강력한 민주주의 규범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건국초기 공화주의자와 연방주의자들은 서로를 제거 대상으로 여겼다. 그러다 수십년이 지나서 상호공존의 정신이 생겨났다. 이는 오래가진 않았는데 남북전쟁때문이다. 당시 인종차별에 대한 갈등은 최고조였다. 하지만 전후 흑인 노예에 대한 시민권의 확립과 군의 철수 부분에서 북부쪽이 상당한 양보를 하고 흑인들의 시민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갈등이 봉합된다. 갈등이 다시 재점화한 것은 1963-64년에 미뤄뒀던 흑인 시민권 문제가 다시 법적으로 쟁점화하고 해결되면서부터다. 이는 인종을 포섭하고 미국은 진정한 민주사회로 바꿨지만 미국의 양극화와 상호관용과 자제의 규범에 균열을 내는 시작이 되었다. 

 과거 미국의 양당은 모두 내부적으로 다양성을 보존했고 정당간의 차이가 미미했다. 하지만 1964-65년 남부지역의 민주화는 남부지역의 백인을 공화당으로 북동부를 민주당 지지지역으로 바꾸었다. 민주가 진보, 공화가 보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실제 1950년대 유색인종의 7%가 민주당 지지였다면 2012년엔 무려 44%가 되었다. 그리고 공화당 지지자 중 백인 비중은 90% 정도로 큰 변화가 없다. 또한 공화당은 개신교의 정당이 되었다. 1973년 연방대법원은 낙태 합법화 판결을 하였는데 이후 공화당이 개신교를 대변하게 되었다. 그 결과 2016년 백인 개신교 집단의 76%가 공화당을 지지한다. 

 규범파괴는 양당이 모두 자행하고 있지만 대개 시작은 공화당이었고, 그 파괴의 정도도 더욱 심각하다. 저자는 그 이유로 공화당 지지자가 민주당 지지자에 비해 막말을 일삼는 당파성향이 강한 매체에 더욱 의존하고, 보수이익 단체가 강경화했으며, 지난 수십년간 민주당은 지지계층의 다양성이 확보된데 비해, 공화당은 백인 개신교로 동질적이고 이들이 기득권을 잃어 편집증적 반발을 하는 것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한쪽이 강경반응을 보이면 조선시대 사화가 그랬던 것처럼 반대쪽도 강경반응으로 대응하기 쉽다. 저자는 이것이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강경대응으로 반대쪽이 나서면 오히려 전제주의가 강화되기 쉽다. 그리고 중도진영을 실망시켜 지지도가 떨어지고 친정부세력이 더욱 강해지는 경우가 있다. 또한 쌍방의 강경대응은 기존의 민주적 규범을 완전히 무너뜨려 더욱 낮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고착화한다. 사람들은 초기엔 민주주의 규범의 파괴에 놀라고 격앙하지만 그것이 자주 자행될수록 기준은 낮아지게 된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이렇다. 잠재적 독재주의자가 나타나면 민주적 규범과 절차 파괴행위에 대해 강경대응하면서도 반대 진영은 철저히 규범을 지키고 연합전선을 이뤄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현상에 대한 대응이다. 가장 궁극적인 해법으로는 사회불평등 해소와 보편적 복지를 통한 사회 양극화의 해소를 든다. 잠재적 독재주의자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기존 민주체제와 정치권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때문에 그것을 애초에 봉쇄하는 것이다. 다만 시민의 자질에 대한 지적이 없는 점은 좀 아쉽다. 시민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신봉자라면 잠재적 독재주의는 사실 불만이 있더라도 들어설 길이 없다. 즉, 상당한 수의 시민이 자신의 경제적, 정치적 유불리로 인해 민주주의의 파괴를 용인하는 셈인데 이는 시민성의 문제다.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도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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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냉전 시대
제이슨 솅커 지음, 김문주 옮김 / 더페이지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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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냉전이 기억 난다. 미소 양국은 적대적으로 상호확증파괴 무기를 개발했고, 핵으로 인한 공포로 인해 영미권에서는 핵전쟁 드라마나 영화도 많이 제작되었다. 그 냉전이 끝난지 30년, 이젠 미국과 중국이 중심이 되어 세계화 시대를 마무리하고 사실상의 제2차 냉전이 시작되었다. 책은 이 용어를 제시하고 이를 개념화한다.

 사람들은 제1차, 제2차 대전을 별개로 생각한다. 시간 차도 좀 있고, 인류 역사상 미친 영향과 사상자수도 상당히 차이가 난다. 하지만 독일이란 주인공을 중심으로 양차 대전은 사실상 독일 문제에 대한 전쟁이다. 독일 문제는 19세기 독일인이 거주하는 영토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통일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독일어를 쓰는 민족과 영토를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는 대독일주의와 이를 북독일로만 국한하는 소독일주의가 있다. 문제는 대독일주의의 실현이었다. 

 이처럼 1, 2차 냉전도 중국을 주인공으로 보면 일관된다. 1차 냉전은 지금의 러시아인 소련이 주인공이지만 중국도 주역이었으며 미국이 중국이 아시아에서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패권을 장악하려는 오래된 경향을 막아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이라면 제1차, 제2차 냉전은 일관성있게 연결된다.

 제2차 냉전의 전조는 적대적 연합의 형성, 경제와 기술을 탈동조화, 대리전과 하이브리드전, 사이버-정보전쟁으로 구분한다. 

 제1차 냉전은 미소의 대결이었지만 양측의 직접 충돌은 사실상 없었다. 대리전이 치뤄졌는데 한반도와 베트남, 아프간 등이 주 무대였다. 제2차 냉전의 대리전은 러우전쟁, 이란의 대 테러전과 이스라엘, 대만에서 일어난다. 두 개는 실현되었고 마지막 하나는 가장 파급력이 높고 파괴적이며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 

 2차 대전에서 연합국은 교훈을 얻었다. 그들은 히틀러의 체코 주데텐 지역 합병을 승인하였는데, 이를 통해 히틀러는 영국, 프랑스가 개전의지가 없음을 깨닫고, 체코 전지역을 병합하고 2차대전 마저 일으킨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체코 주데텐 합병을 승인하지 않았다면 독일은 불리한 산악지대에서 싸웠어야 했고, 사전의 독일의 전술과 무기체계에 대해 적응하고, 전면전을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러우전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개입하여 상당한 시간을 벌었다. 러시아의 무기전략체계를 알 수 있었고, 사실상 무방비였던 나토의 국방비와 방어력이 상당히 증가하였으며 동유럽에 나토 상비군마저 배치할 수 있었다. 우크라 합병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성과와 대비다. 

 하마스의 공격은 이란과 러시아 그리고 제2차 냉전의 동반자들이 추구하는 지정학적 목적을 뒷받침하는 광범위한 합동 대리전이다. 이는 주요 자원 수송로인 중동을 위협하여 미국과 유럽의 상당한 군사자원을 이쪽으로 돌리게 만들어 러우전을 러시아와 중국에 유리하게 만들었다. 러시아는 이란의 대리전에 핵심역할을 했다. 바그너 그룹이 이란의 후원단체와 협력을 강화하였고, 군사훈련, 안보협력, 무기기술을 제공했다. 이란은 후티반군에 탄도미사일, 트론, 장거리 타격 능력을 제공했다. 후티반군을 이를 이용해 홍해를 지나는 선박을 타격해 미국와 나토의 군사역량을 이리로 집중시켜 우크라이나 지원 역량을 줄였다. 

 중국은 연합리검작전 2024A와 2024B를 실행했다. 이는 대만봉쇄 및 침공상황에 대한 작전이다. 중국의 해군은 사상최대규모다. 2년마다 무려 프랑스 함대 전체 수준의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 2025년까지 항모도 두 척 추가 진수예정이다. 스텔스 구축함과 강습상륙함도 신속히 증가중이다. 중국은 이미 남중국해를 군사화했다. 오바마 정권 당시 이를 묵인한 것이 미국과 동맹의 패착이다. 10년간 피어리크로스, 수비, 너스치프 암초를 군사화하여 장거리 레이더 시스템, 전투기, 폭격기 수용활주로, 미사일 격납고와 대함/대항공기 포대, 연료보급 및 재공급을 위한 심해해군시설이 구축되었다. 미국과 동맹은 대만 침공시 이 시설로 인해 상당히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북한은 제2차 냉전의 불안한 대리전 당사자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북한은 이미 러우전쟁에 상당한 물자와 병력을 공급했다. 핵과 미사일 능력도 확대중이다. 태평양과 미본토 타격이 이미 가능하다. 중국은 밀무역과 에너지를 평양에 공급하고 있고 러시아는 군사기술, 식량원조, 외교적 지지를 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을 침공할 시 북한에 남한으로의 도발을 유도할 수 있다. 이는 후티반군이 한 것처럼 미국과 동맹의 자원을 양쪽으로 분산시켜 대만침공에 유리한 발판이 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아프리카로도 전선을 확대 중이다. 경제지원, 군사원조, 정치공작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풍부한 천연자원, 전략적 항구, 경제발전으로 지정학적으로 중요하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아프리카에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했다. 대규모 차관으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이미 중국에 종속되고 의존중이다. 부채상환의 어려움으로 인해 중요 전략자산을 중에 넘겨야 하는 부채함정외교에 빠진 상황이다. 중국은 지부티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의 뿔 주변을 지나는 핵심해상항로에 대한 권한과 통제권을 확보 중이다. 중국은 여러 나라를 도우면서도 특히, 자신들과 같은 권위주의적 정권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 바그너 그룹도 말리, 리비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분쟁 지속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친크렘린 정권을 지원한다. 그리고 대가로 금, 다이아, 에너지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 중이다. 

 남미 역시 중국의 주요 공략 대상이다. 브라질, 아르헨, 칠레, 페루 같은 나라의 핵심 농업과 에너지, 광업 분야에서 중국의 통제력이 확대중이고, 투자하여 의존하게 하고 있다. 중국은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니카라과와의 관계를 광하중이다. 이들 국가에 무기, 감시기술, 군사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권위주의 정권을 강화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고 있다. 남미는 중국과 러시아가 부추기는 대리전에 취약하다. 아르헨티나는 중국과 군사적 유대관계를 맺고, 중국이 남대서양과 남극대륙 근체에 전략적인 통제를 확립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SNS는 은밀한 방식으로 사회를 해체하고 가짜뉴스를 현실로 왜곡하는 호위 합의 편향을 이용해 분열을 부추긴다. 역사적으로 강력한 서사는 대중을 동원해 혁명의 불을 지폈다. 인지적 억압, 경제적 어려움, 국가적 굴욕이 주요 메시지다. 이를 분노와 두려움, 억울함, 자부심 같은 정서를 자극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자꾸 이것을 퍼뜨려 그것이 마치 널리 퍼진 합의라도 되는 양 만든다. 중국과 러시아는 AI생성콘텐츠와 봇을 이용하여 범세계적 담론을 조직하고 이를 서구의 화합파괴에 이용한다. 

 SNS는 감정이입과 창의력을 감소시킨다. SNS는 위기와 분노, 갈등을 끊임없이 조장하여 전반적으로 대중을 공감피로 상태로 몰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통에 둔감해지고 프로파간다에 도덕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게 한다. 알고리즘의 콘텐츠 피드는 복합적 사고를 막고 단기적 사고만 하게 한다. 반응적이고 초당파적 담론이 늘며 섬세한 논의가 어려워진다. 이는 사안에 대한 이성적이고 창의적인 대응을 막는다. 그래서 제2차 냉전은 국가 정체성과 진실, 디지털 회복력을 위한 싸움이 된다. 

 체제 위기에는 5가지 징후가 있다.

 첫 번째는 군사적 위험이다. 대리전, 봉쇄, 무력충돌이다. 언급한 것처럼 중동, 대만, 한반도, 아프리카가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경제적 위험이다. 무기화된 무역, 부채함정, 자원의존도가 위협이다. 서구 경제를 불안하게 하기 위해 중국은 산업우위, 러시아는 에너지 우위를 이용한다. 중국은 산업경쟁력에서 이미 미국의 영향력에서 상당히 자립했다. 그러면서도 희토류 제련을 독점해 언제든 미국을 위협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은 제조업이 붕괴하여 주요 기술과 군사부품에서 적대적 공급망에 의존중이다. 세번째는 기술적 위험이다. 인공지능 전쟁, 사이버 위협, 산업스파이다. 중국은 인공지능과 사어비전쟁, 디지털 감시에 선도적이다. 이것으로 전 세계적 담론을 조장하고 거짓 선도으로 민주주의를 뒤흔든다. 산업스파이는 미국과 유럽의 기술을 탈취한다. 대만은 전 세계 반도체의 무려 60%, 첨단 반도체의 경우 90%를 생산한다. 중국의 대만 봉쇄나 침공은 큰 위협이다. 네 번째는 정치적 전략적 위험이다. 언급한 것처럼 민주주의 진영 내 거짓 선동으로 내부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마지막은 디지털 위험과 심리적 위험이다. SNS의 무기화로 적대세력이 대중의 정서조장, 정치담론 형성, 사회결속력을 약화한다. 양극화로 정서적 고갈과 사회불안이 늘어난다. 

 제2차 냉전은 세계 질서를 재편한다. 금융과 에너지 시장, 기술, 무역, 공급망에 이르기까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기업은 투자전략을 바꾸고 위험노출을 재평가해야한다. 경제,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경쟁은 글로벌 공급망을 파괴하고, 금융의 흐름을 변화하고, 기술경쟁의 구조를 조정하고, 통상적인 관계를 재정립한다. 이는 국가안보와 기업전략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북극은 새로운 전장이다. 해동하면 막대한 양의 에너지 자원과 희토류, 북극항로가 대상이다. 러시아는 구냉전시대의 기지를 재가동중이다. 극초음속 미사일을 배치하고 북극함대를 강화한다. 중국 역시 멀리 떨어져있음에도 억지로 근북극권국가를 주장하며 경쟁에 뛰어든다. 극지실크로드 전략으로 에너지프로젝트, 운송인프라, 군사연계 연구소 등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중이다. 미국과 나토는 이에 대응해 북극해상경비를 강화하고 쇄빙선 함대를 확장중이다.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와의 동맹도 강화중이다. 

 우주도 전장이다. 중국은 우주군사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우주자산감시, 사이버공격, 미국와 동맹의 우주자원에 대한 전자적 수행이 가능하다. 중국은 우주실크로드로 저궤도 통신과 달자원채굴을 노린다. 미와 동맹도 이에 대응해 위성 이용과 프로그램, 인공지능기반 궤도 방어시스템, 우주기반 미사일 요격기동을 준비중이다. 

 미국과 동맹은 환적을 엄격히 감시하여, 중국기업의 제3국을 통한 구멍을 차단하고 있다. 양자컴퓨터 기반의 무역 감시와 블록체인 기반의 추적 체계 덕에 앞으로는 상품의 원산지와 감시, 공급망 부정행위 추적 기술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경제안보는 경제적 힘과 경제적 자급자족으로 구분한다. 국가의 GDP는 자본, 노동, 기술의 결합이다. 최근 기술이 점점 핵심요소로 부상 중이다. 경제적 자급자족은 전략적 자원의 비축, 강력한 국내 생산기반, 독립적인 기술확보, 다변화된 공급망, 무기 생산에 필수적인 산업용 금속 및 핵심소재의 안정적 공급이다. 미국은 경제적 힘은 우수하나 경제적 자급자족에서 취약하다. 반면 중국은 경제적 힘에서는 미국에 뒤쳐지나 경제적 자급자족은 상대적으로 낫다. 이로 인해 제2차 냉전시대의 미국과 동맹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희토류 채굴, 제련 능력을 늘리고 중국 의존도를 감소

2.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로 새 에너지 파트너 구축 및 다각화

3. 소듐이온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로 개발로 리튬과 코발트 의존 줄이기

4. 동맹 내의 신재생에너지 구성품 생산장려로 중국 의존도 줄이기

5. 미국, 캐나다, 멕시코와 우호적 페르시아만 국가로부터 에너지 수출을 늘리고 러시아와 이란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 줄이기

6. 신흥국에 대한 인센티브로 미국으로부터 에너지 수입 확대

7. 유럽연합과 아시아로  LNG수출 확대, 러시아 LNG 의존도 줄이기

8. 에너지 인프라 개발로 대외원조 활용


 중국의 지정학적 위협으로 인해 리쇼어링, 니어쇼오링, 프랜드쇼어링 전략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의약품, 바우이산업, 첨단 제조 부품 등 공급망 안보가 국가안보의 우선순위인 산업일수록 이런 경향을 두드러진다. 국제 무역의 미래는 다음과 같다.


1. 경제 및 국가안보를 위해 관세의 광범위한 사용

2. 세계 공급망의 재편

3. 경제적 자급자족 압력 강화

4. 중국 견제

5. 군사화하는 무역 항로의 위험성 증가


이런 경향으로 인해 세계화가 마무리된 이후 지난 10년간 세계의 무역 규제는 무려 100배나 증가했다. 

 향후 기술적 우위 전쟁도 극적이다. 세계는 사실 상 두개의 기술 지역으로 구분되고 경쟁중이다. 양자 우위는 더 이상 단지 컴퓨팅의 문제가 아니다. 사이버 보안과 정보지배, 암호의 우위 문제다. 중국은 양자부호화로 서구의 암호 프로토콜을 파훼하고 기업과 금융거래, 군사정보에 접근하려 한다. 중국은 양자 부분의 특허량이 미국을 압도한다. 

 반도체 전쟁은 인공지능과 양자, 첨단기술의 지배를 의미한다. 반도체 생산을 장악한 국가가 세계 경제와 군사력을 좌지우지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2차 냉전의 시나리오 4개를 제시한다.

1. 정체

 지정학적, 경제조건이 변화하지 않으며, 정체된다. 관세, 동맹, 제재, 갈등 위협이 현 수준을 유지하는 시나리오로 현실성이 낮다. 

2. 붕괴

 탈세계화가 멈추고 무역 규제가 철회되어 미중 갈등 이전의 자유무역에 기반한 세계화 시대로의 회귀다. 역시 가장 현실성이 낮다.

3. 지속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2차 냉전이 꾸준히 진행하고 탈세계화, 무역전쟁, 대리갈등, 미중격돌이 격화한다.

4. 포물선

 2차 냉전이 장기화하여 분쟁이 가속화하고, 직접 군사충돌도 일어난다. 역시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다. 


 저자는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적대국 간의 소통채널 확보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치열한 이성적 계산에 근거하기 보다는 소통 실패와 억제 전략의 오판, 보복의 악순환에서 시작했다. 실제 1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봄의 전쟁이 가을이면 끝날 것으로 오판했고 2차 대전의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체코 합병의 의도를 오판했다. 

 향후 각 나라와 기업들은 위와 같은 흐름을 잘 살펴 정책과 투자 및 경영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기업은 공급망을 재편하고, 사이버 보안을 강화하며, 금융 탈동조화와 경제적 파편화에 대비해아 한다. 에너지, 원자재의 확보다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식량자급률이 20% 초반에 불과하고, 미중 대리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대만 및 북한과 인접한다. 향후 기업과 정부에 상당한 위기 관리 능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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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존엄사 - 의사 딸이 동행한 엄마의 죽음
비류잉 지음, 채안나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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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국을 중심으로 인간 수명이 늘어나며 죽음이 문제가 되고 있다. 과거 의료기관이 발달하지 않았을 땐 사람들은 병이 있어도 진단 받거나 치료 받지 못했고, 그저 심각해졌을 때 앓아눕다 대개 수일 내에 집에서 죽었다. 와병 기간은 길어야 수 개월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개 이런 병이 진단되고, 치료받지는 못하고 관리만을 받은 채 연명한다. 그래서 와병 기간은 수 년 혹은 심지어 수십 년으로 늘어났으며 죽음을 맞는 곳도 대개 병원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문제다. 치료는 불가능하지만 자립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 와병하게 하는 소위 관리 기간만 늘어난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환자 자신과 그를 돌봐야하는 가족에게 거대한 심리적, 육체적, 금전적 고통을 불러오며 공적으로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게 하여 국가재정을 악화한다. 아마 그들로 인해 돈을 벌게 되는 의료 기관과 요양 기관만 좋을 것이다. 

 모두가 이런 부작용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를 고치지 못한다, 가족의 정과 의무감으로 부양가족은 환자를 쉽게 떠나 보내지 못하며, 국가사회는 이들에게 평안하고 존엄한 죽음을 허용할 법과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와병자를 돌보는 일부 가족은 삶이 질이 크게 저하하고, 경제적, 심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 동반자살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책의 저자는 대만의 의사로 그의 어머니 가족은 척수소뇌실조증을 앓았다. 이는 유전병으로 저자의 어머니가 늦은 나이에 발병하여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의 친인척들과 후손들은 이 병이 어릴 적 발병하여 어린 나이에 와병하다 고통스레 죽음을 맞았다. 

 치료 불가능한 병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죽음을 허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대만 역시 논의가 진행하다 멈춰있다. 환자가 고통스러워 정 죽고 싶다면 거액을 돈을 들려 이를 허용하는 일부 유럽 국가에 가야하고 거기서도 심사란 걸 받아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자는 단식 존엄사를 제안한다. 그리고 저자의 어머니는 단식 존엄사를 택했다. 건강한 일반인이 단식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죽음으로 이르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쇠약해진 와병환자들은 다르다. 이들은 이미 죽음에 가까워 있고 신체도 쇠약해진 상태로 10일이나 2주 정도면 비교적 편안하게 죽음에 이를 수 있다. 물론 단식 존엄사라고 해서 바로 곡기를 끊는 것은 아니다. 식사량을 조금 씩 줄여나가고 나중에는 물도 끊는다. 임종을 앞둔 상태에서의 단식은 허기나 갈증을 잘 일으키지 않고 뇌에서 모르핀이 나와 오히려 행복감이 느껴진다. 탈수가 오면 혈액 점도가 높아져서 의식 지수가 몽롱해지는데 이는 과도한 고통을 줄여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

 한국에도 치료의 희망이 사라진 채 단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연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나 가족을 떠나 보내기 힘들어 이런 기관에 환자를 수년 동안 모시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환자 본인과 그 가족의 삶의 질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크게 저하된다. 한국에서도 암암리에 이런 단식 존엄사가 행해지는 것으로 안다. 오래 요양기관에서 연명하던 분들은 집으로 모시면 쓸데 없는 관리가 사라져 수년 무의미한 삶을 고통으로 지속할 사람도 수 주나 수개월만에 돌아가시는 경우를 여러 봤다. 

 이를 국가사회적으로 공인화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언제까지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치르면서 유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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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군의 조건 - 한국군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강건작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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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보기에 한국 사회에서 교육과 군대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경험한 바 있고(직접 긴 기간을 그곳에서 지냈고, 자녀도 그러하다), 그 과정에서 즐거움이나 성장보다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처를 크게 입은 경우가 적지 않으며, 그로 인해 지대한 관심과 애증을 갖는 곳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인은 이 두 곳에 그렇게 크게 영향을 받았음에도 딱히 진정한 관심은 없다. 이 곳들이 부조리가 사라지고 제 기능을 하도록 정치적 압박을 넣거나,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담론을 딱히 만들어 내질 않으며, 그런 것에 관심도 없다.두 기관에 대한 사람들의 대부분의 언급은 사실 본인이 겪었던 것에 양념을 많이 섞은 뒷 담화에 가깝다.물론 세월이 지나 두 기관은 많이 민주화되었고 외형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내적인 부분에서도 그런지는 회의적이다.  

 이것은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큰 요인이다. 두 기관의 중요성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교육은 이번 글에서 차치하고 군만 생각해도 그렇다. 군은 국가, 사회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휴전 중인 북한을 제외하더라고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라는 상당히 강력한 나라들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군의 강력함이 웬만한 나라보다 중시되는 이유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군은 그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이라고 보기 힘든 이유가 많다. 책 '강군의 조건'에서는 그것을 군의 정치 개입 역사, 독자적인 전시 작전권이 없는 것, 일본 제국군의 그림자, 북한과의 대치상황으로 꼽는다. 그리고 이들은 진정한 강군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것들이다. 


1.군의 정치개입 역사

 한국의 역사에서 군사정권이 차지하는 기간은 무려 31년 9개월이다. 80년의 역사에서 40%정도에 달하는 비중이다. 군은 무엇보다도 군 전문성이 중요하다. 문제는 군사정권이 이 군 전문성을 크게 약화시킨 다는 점이다. 저자는 군사정권이 군 전문성을 약화시키는 이유를 9가지나 제시한다.

우선 군사정권은 군을 정치수단으로 활용하기에 군 내부에 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정치파벌과 사조직이 형성된다. 이로 인해 군전문성과 상호신뢰가 사라진다. 둘째는 군이 전문성향상보다는 군사정권에 대한 충성도 경쟁을 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진급도 실력자보다는 군사정권의 독재자에 충성하는 자가 한다. 셋째는 군사정권이 역설적이게도 군을 경계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누구보다 군의 위험성을 잘 알기에 군을 경계하게 되므로 발전이 어려워진다. 넷째는 군사예산과 자원을 국방력 강화가 아니라 취약한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국내치안유지와 정치탄업에 이용한다는 점이다. 다섯 번째는 군사전문성 향상을 위한 첨단무기개발, 장기적 군사인식, 훈련 프로그램이 뒷전이 된다는 점이다. 여섯 번째는 군사력을 전투준비태세보다는 정권 홍보나 군대의 정치적 충성 과시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일곱 번째는 군병력과 자원이 국내 치안 유지에 집중되어 국방훈련과 전투훈련 시간이 줄어 든다는 점이다. 여덟 번째는 군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어 전문성이 줄어들고, 사명감과 도덕 기준이 약화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군사정권으로 인해 군의 국제적 신뢰도가 떨어져 다른 나라와의 군사적 협력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군에서 정치개입을 통해 군의 전문성 약화를 심화시킨 조직으로 방첩부대를 지적한다. 한국의 방첩사령부는 1948년 5월 군사정보 유출 방지를 목적으로 탄생했다. 이들은 1950년 육본 직할 특무부대가 되었는데 여수, 순천 사건에서 공산주의자 색출과 숙군작업을 했다. 4.19이후에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다시 육군방첩부대로 개명하였으나 5.16쿠데타 이후 다시 군사정권에 복무하며 군내 감시와 사찰 역할을 하게 된다. 

 방첩부대는 1968년 무장공비 습격사건으로 육군 보안 사령부로 개칭된다. 1977년 국군 보안 사령부로 확대개편되었고, 추후 사령관이 된 전두환이 그 권한을 이용해 12.12쿠데타를 일으킨다. 전두환 역시 보안사를 활용해 군을 감시 통제한다. 1990년 10월 보안사 근무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자료 폭로를 계기로 노태우는 1991년 민간인 사찰을 금지한다. 보안사를 기무사령부로 개칭한 것도 이 때다. 

 하지만 민간정부에서도 기무사의 군내사찰, 감시, 견제, 지휘관의 대통령 독대의 특권이 지속된다. 민간 정부에서도 기무사를 군의 견제에 이용하였고 그 결과 기무사령부의 정치편향화가 진행되었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대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계엄문건 작성의 문제로 2018년 이를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개편한다. 사령관도 육군 대신 공군, 해군 출신으로 보직하고 대통령 직보 관행도 없앴다. 하지만 군내 동향보고와 인사자료 보고는 지속되었다. 윤석렬은 별 이유없이 안보지원 사령부를 다시 국군방첩사령부로 개편하고 정원을 크게 늘렸다. 사령관도 대통령과 밀접한 이를 임명했고, 역시나 12.3 내란에 방첩사령부는 깊게 연루되고 말았다. 

 이처럼 한국군의 역사에서 방첩부대는 권력의 옹위세력이며, 군을 잘 감시해 쿠데타를 막는데는 모두 실패했고 사실상 쿠데타를 일으키는 핵심세력에 가까웠다. 이 같은 형태의 방첩부대는 권위주의 국가에만 존재한다. 다른 민주국가 역시 방첩부대는 존재하나 모두 정치 권력과 거리가 있는 순수 군사조직이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의 경우 방첩사령부는 해체하고 군내 대공 수사는 군사경찰이 일반군사보안과 사이버보안은 국방부 정보과 관리관실과 각 군 본부의 정보작전 지원부, 사이버사령부에서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군의 장성은 임기가 매우 짧고 임용의 형태가 이상하다. 이 역시 군의 쿠데타의 정치 개입으로 인한 흔적이다. 군의 모든 장교의 진급과 임용권은 대통령에 있다. 하지만 대령 이하는 국방부 장관에 위임하고, 위관급 이하는 각 군의 총장에 위임한다. 즉, 장군만 대통령이 직접 재가하는 구조다.  

 한국의 장성 수는 2024년 기준 370명이다. 장성은 매우 높은 권한과 책무를 가지는 만큼 군내의 가장 실력자가 보임 되는 것이 온당 하다. 하지만 장성의 보임은 놀랍게도 안배 개념으로 배치한다. 안배란 인사검증으로 군내에서의 실력으로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출신 지역, 사관학교 출신, ROTC출신, 성별, 특정병과 출신인지를 고루 안배해서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군의 세력 배분 균형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안배 개념은 역시 군사정부에서 유래했다. 안배를 통해 특정 세력이 뭉치는 것을 방지해 제2의 쿠데타를 막기 위함이다. 

 또한 한국의 장성은 임기가 매우 짧다. 장성의 임기는 정권의 입맛대로인데 얼마 전에 임명되었어도 대통령이 바뀐다면 바로 모가지가 날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장성의 임기가 안정적으로 보장되어야 일선 부대에 일관된 정책이 수립 될텐데 한국은 이것을 기대하기 매우 어렵다. 반면 미국은 대부분의 장성이 임기가 보장되며, 대통령이 마음대로 임기를 좌지우지 못한다. 한국은 장성의 보직배정도 매우 갑작스럽다. 현 보직에서 물러나는 것도 수 일전에 알려주는 것이 태반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장성들은 현재의 일조차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 한체 갑작스레 새로운 곳으로 가게된다. 이런 상황에서 군 전문성이란 매우 요원한 일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보직과 짧은 임기 역시 제2의 쿠데타를 막기 위한 군사정권의 흔적이다.


2. 전시 작전권

 현재 한국군은 평시 작전권이 있으며 전지 작전권은 갖고 있지 않다. 한국군의 전작권이 넘어 간 것은 1950년으로 이승만이 UN에 이양했다. 그리고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되었고, 1994년 평시작전권을 찾아왔다. 

 이승만은 한국 전쟁 말기 UN과 미국,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1953년 6월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해버린다. 당시 북한은 이들의 전원 송환을 원했고, UN과 미국의 입장은 일단 북한이 포로를 설득하고 그래도 원하지 않으면 석방을 고려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일방적인 이승만의 행태에 미국은 강한 불신을 갖게 된다. 미국은 교착상태인 전쟁을 끝내기를 원했는데 국방력에 자신이 없었던 이승만은 안전보장을 위해 북진 통일이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원했다. 결국 정전 협정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약속 받았으나 이승만의 독단 행동으로 인한 안보 불안으로 작전권을 회수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1961년의 5.16군사쿠데타를 작전권이 UN사령관에 있음에도 한국군이 불법적으로 군을 움직인 사건이었다. 당시 반란군은 UN사령관의 복귀명령도 거부한다. 이를 큰 문제로 비화할 수 있었지만 눈치빠른 박정희가 반공정권을 천명함으로 미국을 안심시켜 일단락된다. 의도치 않게 군사반란은 한국군의 일부가 작전통제권에서 벗어나는 단초를 마련하게 된다. 이후 북의 잦은 내침으로 공비토벌이 잦아지자 1971년 유엔군사/주한미군사 정책지침에 의거해 내국치안작전에 한해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이 갖게 된다. 공비토벌에는 현장의 빠른 대응이 필요한데 그것에 응한 것이다. 

 1970년대 미 대통령 닉슨은 닉슨독트린을 발표하며 공산권과의 긴장을 완화한다. 주한 미군도 2만 가량이 감축되었는데 첨단 장비의 도입을 약속했으나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비해 북의 197년대 전력은 한국군의 2배 수준이었다. 한국의 박정희는 이런 여건을 타개하고자 핵개발에 착수한다. 미국은 이를 막고자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한다. 미군의 일부 철수와 한국군의 전력 증강, 새로운 연합 지휘구조의 결과물이었다. 연합사는 한국과 미국 인력을 1:1로 대응시키는 구조다. 다만 한국은 연합사 인력이 그곳에만 집중하는 반면 미국은 대부분이 주한미군사령부와 겸임상태다. 

 냉전이 종식되자 미국은 평시 작전권을 1994년 한국에 이양한다. 미국은 한국군이 오래도록 UN사령부와 주한미군사령부에 종속 상태였기에 이들의 작전 능력이 함양되면 바로 전작권도 이양할 계획이었다. 2007년 연합사는 해체 예정이었고, 2012년엔 전작권 양도가 합의되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 이후 이명박 정권이 이를 연기했고, 박근혜 정권 역시 소극적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전작권 이양에 적극적이었으나 만시지탄이었다. 이젠 중국이 미국의 견제 새력으로 떠으로고 어느 새 신냉전 구도가 완성된 것이다. 미국이 다시 전작권 이양에 소극적이 되면서 한국의 전작권 회복은 군사력 5위라는 덩치와 걸맞지 않게 기약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전작권의 상실은 한국군의 체계를 매우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무려 4성 장군이 지휘하는 최고 수준의 사령부가 9개나 된다. 주한미군사령부 유엔군사령부, 합동참모본부, 육군본부, 해군본부, 공군본부, 지상작전사령부, 제2작전 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다. 이는 유사시에 각자의 입장이 모두 다르고 지휘체계가 달라 신속한 대응을 매우 어렵게 한다. 2022년 북한은 소형 무인기를 침투시켰다. 무인기의 비행고도가 매우 높아 육군헬기로는 대응이 어려웠다. 이에 공군기가 출동했는데 공군기가 타격하기엔 크기가 너무 작았다. 결국 육군의 방공무기가 대응에 가장 적절했는데 무슨 일인지 공군사령부가 미적대며 작전 권한을 육군에 잘 넘기지 않았다. 결국 시간을 충분히 부여받은 북의 무인기는 2시간을 유유자적하며 북으로 복귀한다. 이것은 작은 예이지만 모보다 큰 문제가 생긴다면 상황이 매우 난감해진다. 

 전작권의 부재는 한국군의 군 전문성 약화의 원인이기도 하다. 적어도 평시작전권의 이양 이전 한국군도 그 초점이 항상 전쟁상황에 가 있었다. 하지만 평시작전권이 이양되지 역설적이게도 군 수뇌부들은 평시작전에 관심과 노력을 쏟기 시작한다. 그렇다보니 어느 덧 군 수뇌부는 평시경험인력으로만 가득해졌다. 때문에 지금의 한국군 수뇌부는 유사시 한반도 전쟁상황에 대한 기본 군사 작전과 수행에 관심이 매우 적다. 

 미군은 베트남 전의 패배 이후 공지전투 개념을 만든다. 이는 통합작전, 작전 종심 확대, 기동전, 동시전투다. 작전종심확대는 전쟁 개시 단계부터 적의 후방지역까지 작전 범위를 넓혀 적의 지휘, 통신체계를무력화하고 병참을 차단하는 것이다. 기동전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동시에 신속한 기동과 공격을 통해 적을 압도하는 것이고, 동시 전투는 전방과 후방을 가리지 않고 동시에 전투를 수행해 적의 대응을 막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은 2010년부터 다영역작전개념이 도입되었다. 육군, 해군, 공군, 우주, 사이버공간을 아우르는 통합 작전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에 비해 한국군은 군의 전력 증가에 무엇을 언제, 누가는 있지만 왜와 어떻게가 부재하다. 미국의 위와 같은 전략은 왜와 어떻게에 해당하며 이를 위한 무기 개발과 도입을 한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의 무기개발과 도입을 따라하지만 그것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한국군의 수뇌부는 어이 없게도 지상군 방어 개념이 일선형 방어다. 이는 전선을 일자로 유지하며 한치의 땅도 밀리지 않겠다는 개념이다. 그리고 한 곳이 무너지면 또 다시 여러 개의 종심 방어선에서 축차적으로 다시 일자형 방어를 복원하는 개념이다. 한국군은 한미연합훈련이나 모의 훈련에서 항상 이를 고집한다. 이는 한국전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으로 고지전의 영향이자 일본 제국군의 만세돌격 전술의 영향이다. 일제국군은 이런 무모한 전술로 수 많은 장병을 죽음으로 몰았다. 한국군 역시 이 전술이 모의전에서 수십만의 장병을 희생시킴에도 이를 고집하고 있다. 북한의 기본 전술은 강한 화력으로 포를 일제 사격하여 방어부대를 약화시킨후 기동전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굳이 북의 일회성 포사격을 맞아주지 말고 일제 후퇴하여 상대의 화력을 낭비시킨 후 방어력을 온존하여 반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리고 소중한 인력 희생도 막을 수 있다.  

 전작권이 부재하다보니 한국군은 경계 임무에 사활을 건다. 전 세계 군 중 경계 작전에 이렇게 큰 비중을 두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어쩌다 한 곳이라도 뚫리고 나면 언론과 정치권이 중대한 피해라도 당한 마냥 난리를 친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국경수비를 주로 경찰이나 국경수비대가 따로 편성되어 실행한다. 대개 정규군은 경계임무를 갖지 않는다. 그리고 군은 법적으로 민간인의 체포나 검문검색 권한이 없다. 침투하는 적은 대개 민간인으로 위장하는데 더욱 적합치 않다. 

 경계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경계 업무는 매우 지루한 것이기에 주기적 부대 교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의 숙식과 무기, 장비, 도로, 시설 유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군의 일선지휘관은 승진에 있어 실적보다는 흠이 없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전방에 배치라도 되면 경계에 사활을 걸게 된다. 경계는 중요하나 그것이 전쟁 수행능력과 일치하지 않는다. 때문에 과도한 경계로의 집중은 군의 역량 약화요인이 되고 만다. 


3. 일본제국군의 흔적

 한국군은 초기 일본군 출신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다. 독립군의 세력이 미약했고, 친일 청산이 되지 않았으며, 미국이 이를 용인했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 한국군은 초기부터 전술이나 군대문화에서 일본제국군의 흔적이 강하게 자리잡게 된다. 

 일본제국군은 1873년 징병령으로 창설된다. 당시 메이지 정부는 초기 정부로 행정력이 부족해 징집능력이 크게 부족하여 전 국민의 3%정도가 징집되었다. 사무라이와 귀족출신, 도시의 고학력자는 제외되었고 그렇다보니 저학력의 시골농민이 주 대상이었다. 이들의 불만은 상당했는데 이를 억누르기 위해 황군개념을 도입한다. 군의 복무하고 충성하는 대상이 천황이 되는 것이었고 상관의 뜻은 곧 천황의 뜻이 되기에 복종을 강요하기에 적합했다. 그리고 초기에 군에서 제외되었던 사무라이들은 대거 군사학교에 입학해 군장교로 유입된다. 그래서 일본군에는 사무라이 정신도 침투하였는데 사무라이에게는 하급 사무라이와 일반백성의 생살여탈권이 있었고 이런 정신이 군대에 작용하게 되었다. 

 이런 양 요소는 전시에 부하들에 대한 즉결 처벌권으로 작동한다. 초기 한국군의 수뇌부는 이를 일본군에서 경험하고 내면화하여 한국 전에 적용한다. 그 결과 한국 전에서는 광범위한 즉결처분이 이뤄진다. 즉결 처분은 글자 그래도 부하를 군형법의 적용이나 재판 없이 상관이 임의로 총살해버리는 것이다. 놀랍게도 한국 국방부는 여러 전선에서 밀려 군의 질서가 흔들리자 즉결 처분권을 분대장 이상에게 허용한다. 그러다 부작용의 우려로 1951년 7월 이를 폐지했다 2주 만에 부활하였는데 이 때는 중대장 이상 급에 이를 허용했다. 즉결 처분권은 매우 임의적으로 이뤄졌다. 사적 보복도 만행했으며 독립군 출신대 일본 군 출신의 갈등 상황에서도 작용했다. 

 부하에 대한 이런 무조건적인 상명하복 문화는 전후에도 이어진다. 바로 구타와 가혹 행위다. 한국전 이후 군 내 사망자의 수는 소규모 국지적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상당하다. 1954년 2998명 1955년 2660명, 1956년 2710명, 1957년 2009명이다. 매년 거의 연대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이런 행위는 군사정권 내내 이뤄지다 민주화가 이뤄진 1987년에 이르러서야 국방부에서 구타 및 가혹행위 근절 지침을 내리고 나서야 잦아든다. 군내 사망자는 1994년에도 무려 416명에 달했고 2015년에서야 93명으로 100명 이하로 내려간다. 


4.한국군의 위기와 해결방안

 한국군의 우선 절대적 병력 감소라는 위기를 맞고 있다. 70만에 달하던 한국 현역군은 현재 50만 수준이고 2040년대에는 20만 이하로 감축된다. 병력 수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해군과 공군에 비해 육군의 타격이 크다. 지상군은 결국 영토를 직접 수호하고 점령해야 하기에 그 역할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 만큼 인구감소가 크지 않고 군복무기간을 마음 껏 늘릴 수 있기에 2040년대에도 여전히 100만 병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군 감소에 대비책은 다음과 같다. 우선 모병제의 도입이다. 하지만 한국의 모병 공급은 연간 1만 정도로 추산되어 5년의 의무 복무를 도입해도 그 수가 5만에 불과하다. 다음은 군복무원의 확충이다. 현재 한국군은 전투병이 군 내의 많은 행정일을 하고 있다. 군복무원을 충분히 확충하여 전투병이 전투에 집중하게 한다면 그 자에로 병력증강효과가 있다. 세 번째는 민간 위탁의 확대이며 마지막은 인공지능, 드론, 로봇으로 병력자원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곧 다가올 미래이나 언제 현실화할지 미지수다. 

 그리고 한국군의 100% 기동화다. 언급한 것처럼 한국군의 병력 열세는 시간 문제다. 한국군은 전투지역전단이라는 일자형 방어전술을 고집하는데 이는 여러 모로 부적절하다. 현대 한국은 산림이 복원되어 밀림화하였다. 때문에 개전과 동시에 산이 불바다가 되기에 적은 산림으로 침투하고 은거하는게 불가능하다. 결국 평지로 돌입해야 하는데 한국은 도로망이 촘촘히 발달하여 일자형으로 이를 완전히 방어하는게 매우 어렵다. 그리고 적들 역시 한국의 도시가 매우 촘촘히 발달하여 대규모 시가지이기에 진군자체가 어렵다. 또한 비무장지대가 거의 70년간 버려져 있어 땅이 스펀지화하여 대규모 기계화 부대의 진군자체가 힘들다. 이런 상황이라면 전투지역전단을 고집하기보다는 뒤로 물러 방어력을 온전히 한 후 빠른 기동부대 편성으로 적을 타격하는 것이 방어에 적합하다. 

 군사기초훈련도 12주로 늘려야 한다. 한국의 기초군사훈련은 5주 정도인데 1주는 대개 신체검사 및 보급으로 퉁치고 나머지 4주의 상당 수도 불필요한 정신교육으로 이뤄진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수준이다. 독일은 16주이며, 미국은 10주 훈련 후, 개별 병과훈련, 이스라엘은 6월에서 8월간 훈련을 한다. 한국도 한국전 당시에는 16주의 기초군사훈련을 했다. 당시 병력의 조달이 시급했음에도 이렇게 길게 훈련을 한 것은 그 자체가 병력의 생존률을 높였기 때문이다. 

 예비역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한국의 예비군은 훈련이 매우 짧은데 저자는 이것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본다. 군에서 제대로 된 훈련만 받았다면 이는 평생간다는 것이다. 대신 열악한 예비군 무기와 시설을 현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예비군 훈련을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놀랍게도 소총은 베트남 전에서 쓰던 M16을 주거나 심지어 한국전때 주력 무기인 칼빈소총을 주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포병 같은 경우 자주포가 아닌 견인포를 사용한다. 이래서는 북한만도 못한 수준이다. 따라서 예비군의 전력화를 위해서는 무기와 시설의 개선이 필요하다.

 장성에 대한 정책과 교육도 필요하다. 한국의 장성들은 장군으로 진급해도 전혀 교육을 새로 받지 않는다. 즉, 사관학교나 임관 과정에서의 교육이 전부이고 나머진 현장 경험 뿐인 셈이다. 미국은 장성이 되면 그에 걸맞는 작전관과 시야를 심어주기 위해 적지 않은 교육을 실행한다. 한국도 이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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