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리커버 특별판)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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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역사시간에 일제시대 우리 나라 사람들이 하와이로 건너가 죽을 고생을 하며 일을 했단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남아있다. 1919년에 조상들이 삼일운동을 했을때도 세계 여러 각지에서 반응이 있었던 것은 조상들이 이동이 힘들었던 그 당시에도 나름 세계 어려곳에 퍼져있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멕시코로 건너간  아직 나라가 넘어가기 전인 대한제국 시절의 1033명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조상들이 하와이나 만주, 일본, 러시아 외에도 멕시코까지 간줄은 몰랐다. 

 소설이 다루는 당시엔 살기가 힘들었다. 농민들은 소작농 신세로 땅이 없었고, 고혈을 짜내는 관리들에게 착취당하고 있었고, 과거는 폐지되었다. 단발령이 내려졌고, 대한제국 군대는 일본의 압력으로 거의 해산되었다. 제국은 거의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으며 러일전쟁에서는 일본이 승리했다. 그래서 멕시코로 향하는 일포드호에는 사람들이 몰렸다. 제물포항에서 여권발급문제로 무려 한달 이상을 정박했음에도 말이다. 거기엔 몰락한 황족과, 양반, 도둑, 해산당한 군인, 천주교 사제, 무당, 농민 등 다양한 계층들이 함께했다.   

 그들은 태평양을 건너 무려 두 달 가까이 항해했다. 조선인들은 비좁은 선실에서 씻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태반이 배를 타본적도 없으니 설사나 구토에 시달렸다. 선실엔 고약한 냄새가 났고, 그 냄새가 신분마져 흐릇하게 해 반상의 구별없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망망대해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회사가 말하는 대로 일해 돈을 벌 수 있고, 그 돈을 가지고 다시 조선땅으로 돌아가 어려운 경제적 환경을 바꾸고 싶어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른 나라로 몸을 싣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사정은 비슷했던 법이다. 

 배에서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여러 일이 일어난다. 대한제국 최초로? 아이가 공해상에서 태어나기도 했고, 이질이 돌아 몇몇이 목숨을 잃었으며, 누군가는 그 와중에 도둑질을 누군가는 그 와중에 세태를 따라 외국 선원들과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새들이 배에 드나들기 시작했고, 결국 육지가 나타났다. 무척 설레고 땅을 밟으며 긴장하기도 했지만 조선인들의 목적지는 태평양 연안이 아닌 카리브해연안이었다. 곧 그들은 수십시간 기차를 타고 유카탄 반도의 농장으로 향한다. 유카탄 반도는 역사에 여러 번 언급되는 곳이다. 6500만년전 제법 커다란 소행성이 지구와 직격해 생태계에 큰 멸종을 불러온 곳이기도 하며, 고대 마야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멕시코 지주들은 마야인들을 부리고 있었는데 지구 어디서나 지배층의 고혈짜내기는 극심한지라, 마야인들도 조선인들이 도착하기 몇해전 반란을 일으켰었다. 그 과정에 인적손실이 커 조선인의 손까지 벌리게 된 것이다. 

 농장주들은 조선인들을 비싼 값을 치루고 데려갔고, 곧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이 시작된다. 조선인들은 에네켄이랑 식물의 잎을 수확해야 했는데 잎사귀마다 가시가 많아 농장일이 고역이었다. 에네켄 잎은 당시 배에서 사용하는 로프를 만드는데 쓰였다고 한다. 조선인들은 그 에네켄은 어저귀라고 부르기도했다. 비슷한 한자발음을 붙인 것 같다. 

 가옥은 파하라고 부르는 마야 전통가옥을 부여받았고, 초가집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 조선인들은 적응에 큰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먹는게 문제였다. 주는 식량이라곤 모두 옥수수뿐이었다. 또띠야에도 익숙해져야했다. 거기에 유카탄 반도는 온통 지평선이 보이는 평지라 막막했다. 강과 산이 많아 땅을 강산이라 부르는 조선과는 매우 달랐고, 건기와 우기가 있어, 우기가 오기전까진 물이 너무나도 귀했다. 

 소설은 계속해서 이 멕시코 땅에서 조선인들의 삶을 다양하게 그린다. 오기전 다양한 삶을 가진 그들인 만큼 와서도 삶이 다양했다. 몇몇은 농장주에게 붙어 동포를 짜냈고, 몇몇은 멕시코 혁명에 휩쓸리기도 하며, 몇몇은 미주 한인들과 끈이 닿기도 한다. 뒷 부분의 프롤로그엔 살아남은 조선인들의 이후가 작가의 상상으로 그려지기 하는데 실제로 멕시코에는 이 당시 건너간 조선인들의 후예가 아직도 남아있고 한다. 관련 영화도 있는 것 같은데 이 소설과 같이 감상하면 불운한 시간과 공간을 만나 이국땅에서 고생하며 그래도 후손을 남긴 흔적을 느낄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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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2018-01-30 0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잘 보고 갑니다. 그 당시 한인들이 멕시코까지 갔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흥미로운 책이네요:)

2018-01-30 0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8-01-30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십여년 전에 읽은 책인데 새록새록 합니다. 그래도 김영하는 단편이 제 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