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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철학하다 - 21세기 불교를 위한 하나의 초상
이진경 지음 / 휴(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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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21세기를 위한 제언에서 유발하라리가 말한 것처럼 종교는 인간 공동체가 만들어낸 강력한 하나의 허구로써 인간의 적응도를 높이는데 큰 공헌을 해왔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수 있게 해주었고, 현세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그리고 삶의 목표를 제시하며 도덕적 인간공동체를 만들어주었고, 신에 대한 공동의 믿음으로 강한 결속력을 부여했다. 종교는 필요로써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와 우주를 설명해주기도 하였는데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재에 이르러선 이런 종교의 설명은 불합리한 측면이 많아졌고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부분도 사실이다. 때문에 몇몇 종교는 애써 현대과학의 성과에 대응하는 변명거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나 그런 논란에서 비켜나있는 종교도 있다.

 세계 3대 종교인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중 현대과학의 설명과 많은 부분에서 합치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불교다. 책은 그런 불교의 현대성과 미래성을 과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부처와 과학기계장치가 결합된 파격적 모습을 표지로 선정했다. 그리고 책의 저자역시 불교의 여러 철학을 설명하며 현대 과학과 이를 결부시키기도 한다.

 불교에서 시작은 공이다. 우주와 세계는 공이다. 텅비었다는 뜻인데 사실 그렇지가 않다. 양자역학에 의해 입자는 언제든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어 완벽한 진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공에서 말하는 무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 무언가가 이루어질 수 있는 수많은 규정가능성을 갖는 무규정성이 된다. 때문에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모든 가변성의 바탕이고 근거가 된다.

 이런 공에서 연기가 시작된다. 무언가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관련하여 생겨난다. 따라서 연기는 연하여 일어난단 뜻으로 어떤 조건에 의하여 일어나고 어떤 조건에 기대에 존재함을 말한다. 즉, 인간이든 사물이든 절대불변의 본성 같은 것은 없으며 특정한 관계에 따라 다른 본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입자는 관찰자의 영향을 받으며 이로 인해 입자의 위치와 속도 두가지를 완벽하게 측정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또한 사람이나 사물간에는 상성이 있고, 서로 영향을 받는다. 즉, 연기적 존재인 것이다.

 다음은 무상과 무아다. 고정 불변의 진리와 존재는 없기에 모든 것은 항상 빠르게 변화한다. 같은 사람만 하더라도 세포단위에서 무수한 교류와 변화가 있으며 1년여의 시간이지나면 사람에게서 이전의 세포는 남아 있지 않다. 또한 늙어가며 다른 것과 연기해 꾸준히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한다. 때문에 무상이나 무아는 본래의 자아나 불변의 자아는 없음을 의미한다. 지금의 나나 사물은 특정한 연기 조건에서 만들어진 잠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무상이나 무아는 이런 내가 죽고 다른 내가 계속해서 생성되는 것이며 이것을 우주와 함께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상과 무아속에서도 열역한 제2법칙을 무시하고 생겨난 생명은 본래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다. 세계에 던져진 생명은 이런 의지로 인해 살고자 하나 세계는 무명이다. 무명이란 무상과 무아의 세계로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포착할수 없는 세계다. 하지만 생명은 살아남아야하기에 억지로 무명의 세계의 속도를 늦추고 멈추고 관찰한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식이라고 한다.식은 환경과 개체의 만남이고, 반복되는 만남에 대한 지각과 포착이며 그럼으로써 발생하고 발전한 지각능력과 포착능력들이다. 인간과 다른 생명이 환경에 대해 유전자에 새긴 것들이나 지능, 그리고 사람과 생명이 만들어낸 모든 지식과 밈등은 모두 이 식으로 인한 것들이다. 이 식은 생명체의 생존과 번식에 유용한 것이기에 무지이나 반드시 필요한 무지다.

 우주의 모든 것은 연기적 존재로 서로 연결되었으며 불성을 갖는 평등한 것들이지만 식으로 인해 생명체는 경계를 만들어낸다. 이 경계는 생존을 위해 피아를 구분하는 것으로 그 경계는 사실 매우 모호하다. 숨을 내쉬며 외부가 금방 나의 내부가 되고 내부의 공기가 외부의 것이 된다. 먹이의 섭취는 다른 것을 내몸으로 만드는 것이고 배설은 나의 것을 외부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경계는 필요하고 생명체가 만들어낸 대표적 경계는 면역계다.

 하여튼 식은 호오나 미추처럼 선호를 나타내는 이차적 관념인 분별로 이어진다. 이는 이차적 관점으로 생득적인 것도 아니고 재인식이며 선별이다. 하지만 이 이차적 관념은 곧 일단 생명체에 정착되면 오히려 생각이전에 일어나고 감각보다 앞서 감지되며 이성보다 강하게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감정적인 것이어서 너무 단순하여 정확한 지각을 막고, 분별은 너무 빨라서 생각하기 전에 판단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분별은 다른 것들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든다. 이런 분별은 개인적 차원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집합적으로도 이루어진다. 분별의 척도라는 것이 사회문화적으로 학습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분별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해진다. 연기적 존재가 본성을 거부하고 타자성을 인정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분별을 넘어서기 위해선 낯선 것과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분별하기 어려운 것과의 만남으로 분별이 정지되고 비로서 제대로된 생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만남을 위해 다양한 책을 읽고, 여러 사람과 세계, 견해를 접하는게 중요하다. 이처럼 분별심을 내려놓는 다는 것은 타자성의 영역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분별을 떠났을 때 비로서 어떤 조건에서 어떤게 더 나은지 제대로 분별할수 있다.

 불교는 상당히 평등한 종교인데 이런 점은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성을 가진 존재로 파악하는 점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중생은 모든 인간에서 사물, 생명체와 작은 것들도 의미한다. 불성은 연기적 조건이 달라짐에 따라 다른 존재자와 현행활 도리 수 있는 잠재력인데 이게 가능한 것이 부처다. 즉, 부처는 연기법의 작용을 통찰하여 그에 응하되 내부화된 성향에 머물지 않고 그 때마다 적적한 대응의 양상을 찾아내는 능력에 보여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부처를 대하는 것이 자비이며 자비를 부처가 아닌 자에게도 행하는 이유는 모두가 잠재적 부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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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철학 - 이진우 교수의 공대생을 위한 철학 강의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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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철학사를 정리하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 책은 의심에 초점을 두어 정리한 책이다. 남들은 크게 의식하지 않거나 당연하게 여기는 부분에 대해 문제점을 갖고 자신만의 사상을 만들어간 철학자들이 등장하는데 총 10명이다.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드, 하이데거, 샤르트르, 비트겐슈타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벤야민, 포퍼, 아렌트다. 책 자체도 두껍지 않고 한 철학자당 짧게 두 항목정도의 핵심사안만 다루어 이해가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재밌는 책이었다. 인상적인 부분만 정리해보았다.

 

1. 마르크스

"자유로운 개인을 탄생시키면서 동시에 사회를 변화시킬 개인의 자유와 역량을 퇴화시키는 것이 현대의 패러독스다."

- 실제로 그렇다. 지금 사회가 딱 그렇지 않은가. 자본주의는 돈과 여가, 상품들을 주지만 딱 그걸로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종속시킨다.

 

"생산력 발전이라는 역사 과정은 마치 생산력을 가장 많이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계급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역사발전 과정에서는 지배적인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성장에 기여하기 보다는 오히려 장애가 되는 시점이 있다. 이 시기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모순으로 치닫고 사회적 혁명의 기준이 싹트게 된다."

- 분배가 안정되고 사회정의가 나름 실현되면서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고, 다시 이 왕조의 지배층에 의해 분배가 뒤틀리고 불의가 커지면서 생산력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착취가 더욱 커져 다시금 망해고 새 왕조가 들어서는 중국과 한국의 왕조 교체공식은 이 통찰에 거의 합치한다. 왔다 갔다 하는 면도 있지만 생산력 발전이라는 측면으로 인류가 향해간다는 점도 부인하긴 어렵다.

 

2. 니체

"기독교는 사람들의 신앙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 항상 구체적 현실속의 궁핍과 위기의 비상사태를 만들어낸다."

"현실의 삶을 지옥으로 그려야 사람들은 천국을 기원한다."

"사람들은 허무주의가 기독교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고 하지만 니체는 기독교가 허무주의의 근원이라고 단언한다"

"인간은 특정 의도, 의지, 목적의 결과가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어떤 목적에 전가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목적의 개념은 사실 우리가 고안한 것이며 사실은 없는 것이다"

- 신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철학자 답게 종교에 대한 독설이 강하다. 종교가 척박한 현실을 정당화하고 이로 인해 기득권의 유지를 돕는다는 속성에서 위 말은 정말 옳다. 현세가 아름답다고 하는 종교는 아마도 없는 것 같다. 종교의 없음이 사람들에게서 윤리와 존재의 이유를 허문다는 점에서 목표를 상실한 허무주의를 상실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보인다. 오히려 내적으로 그런 것을 찾을 필요도 없는데 찾으려하고, 그런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종교를 찾는 다는 면에서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이 종교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역발상이 맘에 든다.

 인간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것도 아니고 목적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발상도 좋다. 하라리가 인류3부작에서 지적해 많은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한 허구와 비슷하다고 본다. 삶의 목적, 가치, 등 여러가지는 행복해지고 오래 살기위한 본능을 충족하기 위해 결국 우리가 만든거고 사실 없는 게 맞다.

 

3 . 프로이드

"행복이 영원히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문명이 발전"

"개인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쾌락원칙을 따르나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공동체에 순응해야 한다"

"우리는 진화과정을 통해 너무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게 만들어졌다"

"프로이트에 세명제"

1. 인생의 목적을 결정하는 것은 쾌락 원칙의 프로그램이다

2. 쾌락 원칙은 행복해지기 위한 프로그램을 우리에게 부과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완수될 수 없다

3. 성본능을 목적달성이 금지된 충동으로 바꿈으로써 행복을 찾을 수 있다.

- 인간을 포함한의 목적이 결국 유전자 전달과 그를 위한 성공적 번식과 생존이며 행복은 그 과정에서의 부산물이다. 우리에겐 결코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지만.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우린 너무 행복해져서도 너무 불행해져서도 안된다. 경주마가 양극단에선 멈출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는 이를 너무 잘 파악한듯하다. 거기에 인간의 행복이란게 집단 생활을 시작한 시점에선 그리고 협력이 공리를 더욱 크게 한다는 점이 유전자에 반영된 이후로는 인간은 집단을 떠나선 정의되기 어려워졌다.

 프로이드의 세명제는 정말 완벽해 보인다. 세번째 것을 성본능이 아니라 그냥 그것을 포함한 일반적 본능으로 했다면 말이다.

 

4. 아렌트

"경제는 필연성을 해결하고 정치는 자유를 추구한다"

"정치는 난민이나 잉여처럼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단순히 행정적 기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동세계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정치다"

"잉여존재가 즉면한 진정한 위태로움은 경제적 궁핍뿐만 아니라 공동세계를 상실한 무세계성이다"

"제3제국의 악은 대부분 사람들이 그 악을 인식하게 되는 특징을 상실한 것이다"

- 지금은 경제와 정치가 분리되는걸 상상하기 어렵지만 저때만 해도 그리고 좀 전에도 학자들은 둘은 분리해야 마땅하다고 본듯하다. 자본주의가 본격화하며 경제가 정치를 잠식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현재 거의 모든 국가가 그러하고 경제적 실패는 곧 정권의 상실로 연결된다는 면에서 이런 우려는 타당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어느 나라건 정치가 잘 안되는건지도 모르겠다.

 사회 소외계층의 경제적으로 가난해질 뿐더러 자신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낼 공간, 그리고 정치를 통해 이들이 함께 나아갈 공동공간을 만드는게 중요하다는 주장도 인상적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록 이게 안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경제가 잘 나가다 어려워지면 우경화하여 이게 더욱 안되는 듯 하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발견했다. 정말 극악한 반인권적 행위에 대해 사람들은 국가나 법의 명령, 혹은 그걸 포장한 거짓말로 인해 악함에 대한 민감성을 상실하고 그 행위를 자행한다. 나치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까운 일본이 그러하다. 그들은 대동아 공영권이란 허황된 주장에 말려 대부분의 국민들이 한국과 중국을 서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논리에 묻혀 식민지배와 전쟁에 동조했다. 백여년이 지났고, 민주국가로 탈변했지만 무늬만 그런지라 여전히 자국 보수 우익의 논리에만 몰려 현재 갈등상황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 평범한 악이 되지 않으려면 꾸준히 공부하고 진실을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하긴 일본 탓만 하기도 그렇다. 우리도 여러번 잘못된 논리에 묻혀 잘못된 정치인을 뽑지 않았는가. 그가 우리 소외계층에게 한짓을 본다면 우리 역시 평범한 악이 된적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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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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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론자로도 유명하지만 반종교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으로 더 유명할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종교와 신에 대해 작심하고 비판하며 쓴 책이 '만들어진 신' 이다. 사실 책이 나온지는 오래되었다. 2006년 막 나왔을때 도전했지만 당시 워낙 무지한지라 일독에 실패하고 다음을 기약했는데 그것이 무려 13년후였다. 그것 역시 당시엔 몰랐었다.

 세계엔 여러 종류의 종교가 있지만 도킨스는 다 일맥상통한다고 보고 아브라함과 모세에서 비롯된 세 종교인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를 주로 비판한다. 사실 뿌리가 같아 모시는 신이 같은 세 종교가 서로 이를 가는 현재의 모습은 다소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

 

1. 도킨스의 종교비판

 도킨스는 먼저 종교를 비판한다. 세 가지 부분인데 종교가 누리는 비정상적인 사회적 특권, 근거가 전혀 없는 신 입증, 경전의 비판, 그리고 폐쇄성이다.

 우선 종교는 사회적으로 많은 특권을 누린다. 우리사회에서 회자되는 면세는 물론이요, 폭력이나 쇠뇌나 다름 없는 일방적 포교나 어릴적 부터의 주입도 종교의 자유란 이름이로 허용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종교의 자유는 딱 자기종교에만 해당된다. 대부분의 종교는 다른 종교의 자유는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민주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편견과 아집도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가령 내가 성소수자를 혐오하며 그 이유로 내가 그걸 보고 구역질을 느낀다고 말한다면 성소수자들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에게도 요즘 우리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막말론자로 판단 될것이다. 하지만 내가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이유가 종교라면 그는 함부러 비판받지도 않고 행위가 정당화된다. 우리 사회를 비롯한 많은 사회는 민주사회의 시민성의 잣대로 볼때 정당화 되기 어려운 많은 행위에 대해 종교가 그 이유라면 허락하고 비판하지 않는다.

 다음은 신입증이다. 아퀴나스의 신입증은 어려서부터 들어봤는데 도킨스가 책에 싫어 놓은 것을 보니 그야말로 어거지나 다름이 없었다. 대부분의 신논증은 말장난이나 다름없으며 무한회귀의 오류에 빠져있는데 그중 신이라는 하나를 당연한 공리로 전제해 성립한다. 이는 곧 신을 입증하는 것이란 불가능한 것이며 말장난아니 다름 없는 것이라고 도킨스는 여긴다. 또한 결정적으로 신을 입증하더라도 신의 입증 이후엔 그 신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에 대한 더 커다란 의문이 문제로 다가온다. 첩첩산중이다. 이런 자체 신입증의 어려움과 과학적 논리 및 합리성의 부족으로 종교계는 과학계와 대립하면서 과학이 아직 입증하지 못한 틈을 찾으려고 무수히 노력하고 그 틈을 모두 신으로 메꾸려고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틈이 어찌하여 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해선 전혀 대답하려고 하지 않는다. 당연시하는 것이다.

 경전 역시 문제다. 기독교의 경전은 당연히 예수가 살아생전엔 전혀 나왔지 않았으며 사실상 기독교를 창시했고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여겨지는 바울 시절에도 거의 없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기반인 복음서라는 것들은 기독교 창시후 상당히 오랜 시절이 지나서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교회에서 인정하는 복음서도 존재하는 복음서중 극히 일부다. 취사선택했다는 이야기다. 선택되지 않은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어려서 친구와 놀며 마법을 부려 친구를 염소로 변신시키는 좀처럼 지금입장에선 받아들여지기 힘든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복음서의 번역과정에서 헤브루어로 젊은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를 그리스어로 처녀로 잘못 번역한 것을 지적한다. 이로 인해 예수의 생물학적 어머니는 처녀가 되었고, 이는 불가사의한 동정녀 임신 신화와 신앙으로 연결된다.

 많은 나라가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종교들은 서로간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종교자체가 가진 폐쇄성에 기인한다. 기독교에는 '내 이웃을 사랑하라' '너희는 살인하지 말지어다'등의 금과옥조 같은 말들이 나오지만 이들은 후에 확대적용 된것에 불과하며 본래는 성경에서 유대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확대된 후에도 그 대상은 같은 종교를 믿는 기독교인들에게만 해당된다. 이처럼 도킨스는 종교가 폐쇄성을 갖게 된 이유로 그 근원이 고대 내집단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으로 본다. 고대 내집단이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외부집단을 적대시하고 정복하는 고대 청사진이 그대로 종교에 경전과 생각으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구약성서의 야훼는 상당히 변덕스럽고 고집스러우며 자신의 신도들에게 아들이나 아내, 딸을 바치는 무한희생으로 신앙을 시험하기도 한다. 자기를 믿지 않는 이들이나 배교집단에 매우 적대적이며 잔인하다. 이런 성격을 고대내집단 도덕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는 것이 그럴듯하다.

 

2. 부산물로서의 종교

그렇다면 이렇게 무용한 종교가 어찌하여 생겨났고 이렇게 성공적으로 인간사회에 남아있는가가 의문으로 다가온다. 모든 인간에게 언어처럼 종교에 해당하는 진화적 부분이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도킨스는 종교를 부산물로 본다. 즉, 진화과정에서 다른 것을 목적으로 생겨난 심리적 성향이 종교에 번성하는데 걸맞았다는 것이다.

 우선 아이들의 성향이다. 인간은 문화를 통해 선대의 경험을 축적하고 전수하여 번성하였고 이로 인해 후대인간들은 아이일때터 선대의 가르침을 잘 전수받는 것이 생존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이런 인간의 특성은 유년기에 어른의 말에 잘 순응하고 믿고 따르는 경향을 가진 뇌에 선택적 이점으로 작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종교적 세뇌가 어릴때 무척이나 잘 먹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종교는 무척이나 유아시절부터 빠르게 아아들에게 접근한다.

 다음은 인간의 천성적 이원론, 목적론적 성향이다. 대니엇 대닛은 인간이 다른 사물을 대함에 있어 세가지 입장이 있다고 보았다. 물리적 입장, 설계적 입장, 지향적 입장이다. 물리적 입장은 사물의 움직임은 물리 법칙에 의거해서 보는 것으로 가장 최근에 등장했고, 정확하나 인간의 뇌로 완벽하게 분석 대응하기에 정확성의 부족과 시간이 오래걸리는 단점이 있다. 설계적 입장은 사물을 설계적 입장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지향적 입장은 사물이 어떤 목적을 갖고 만들어졌고, 사물자체가 행위에 의도를 갖고나 의도를 갖게끔 하는 다른 행위자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는 인간이 보이는 가장 보편적 성향으로 자연상태에서 위기시 빠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화론적으로 유리하다. 야생에서 호랑이를 만났을때 물리적 입장으로 그의 행동을 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과 왜 저렇게 만들어졌는지 설계적으로 고민하는 것, 그리고 이 녀석이 나를 먹으려고 하거나 악이라고 생각하고 피하는 것중 어느것이 유리한지는 자명하다.

 하지만 이 설계적 입장은 오류도 발생시키는데 날씨, 파도, 해류, 떨어지는 바위등 지향적 입장이 없는 거들에도 의도나 행위목적을 파악하려는 잘못된 행동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도킨스는 종교는 사랑에 빠지는 인간의 경향성이 종교와 관련이 있다고도 본다. 인간은 사랑에 빠지면 무비판적이고 판단이 흐려지며 자기희생까지 감수한다. 이는 신에 대한 독실한 신앙과 매우 유사해보이며 실제로 종교인들은 신을 사랑한다고 하거나 신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3. 종교와 도덕은 무관하다.

 많은 종교인들이 종교를 옹호하는 과정에서 주로 드는 것이 도덕이다. 즉 도덕의 기원은 종교이며 기반은 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증거가 그렇지 못하다. 종교적 사회일수록 치안이 나쁘고 범죄률이 높은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은 단일국가임에도 종교적 성향이 높은 주일수록 오히려 강력 범죄 발생률이 높았다. 종교과 도덕의 관계가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이 같은 현실증거외에도 도킨스는 진화론적으로 접근한다. 도덕은 종교에서 나온게 아니라 마치 종교처럼 인간 진화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에만 몰두함에도 희안하게도 자연계엔 서로 협력하는 장면이 얼마든지 나온다. 진화론자들은 처음엔 이 같은 현실에 당혹해했지만 곧 답을 찾아냈다. 우선은 친족호혜성이다. 자신의 비슷한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에 대한 이타성은 자기 유전자에 이득으로 작용한다.

 다음은 상호호혜성이다. 자연계에는 같은 종끼리 돕는 경우도 있지만 공생처럼 오히려 다른 종끼리 돕는 경우가 더 많다. 이는 종이 다를 수록 서로 입장과 기능이 달라 비대칭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악어는 자신의 이에 낀 찌거기를 제거할 수 없지만 악어새는 가능하며 이로 인해 악어새는 먹이를 얻는다. 이것이 상호호혜성을 불러오는 비대칭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도움을 준 개체를 서로 알아보고 배신자를 감시하고 확인하는 진화적 기능이 요구된다.

 마지막은 과시적 관대함이다. 상호호혜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격이지만 인간사회를 비롯한 여러 생물의 무리사회에서는 일방적 퍼주기가 흔히 관찰된다. 내가 저녀석으로부터 딱히 얻을 게 없음에도 퍼주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시를 통해 얻은 평판과 자신의 힘에 대한 권위는 과시를 행한 개체의 우두머리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해주고 짝짓기등에서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한다. 즉, 적잖인 이득이 있는 셈인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도덕은  이 같은 생존률을 높이는 이타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과정에서 알 수 있듯 종교완 전혀 무관하다.

 

 작심하고 쓴 종교비판서에서 종교에 대한 과학자로서의 많은 책임과 고민을 도킨스가 갖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도킨스는 특정 종교를 가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어릴적부터 그 아이가 이슬람 아이, 기독교아이, 유대교 아이로 불리는 것을 매우 불쾌해한다. 사실 우린 이런걸 너무 당연시한다. 아이에겐 자신의 미래와 기반이 되는 생각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그럴 능력이 없는 어린 시기에 세뇌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도킨스가 예로 든것처럼 막약 부모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새누리당 아이, 민주당 아이, 사회주의 아이, 공산주의 아이, 무정부주의 아이로 부모가 아이를 어려서 사상적으로 세뇌시키려는 시도를 한다면 사회는 이를 절대 허용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는 그게 된다는게 아이러니인 것이다. 이를 막고 인류가 좀더 합리적이고 평화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도킨스는 이 책을 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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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현암사 동양고전
오강남 옮기고 해설 / 현암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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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리시간이나 세계사 시간에만 들어본 장자를 봤다. 장자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없고, 직접 읽어본 사람도 딱히 없다는데 내가 딱 그랬다. 노자와 장자의 도가사상은 의외로 오랬동안 동양사회에서 살아남아 왔는데 유교적 가르침이 실용과 윤리를 강조한다면 도가사상은 그의 반작용으로 내면적 초월과 자유 및 이 살기 힘든 현세에서 벗어나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일반백성들이나 권력자들에게는 도교신앙의 변질된 육체의 장생불사에 대한 욕망이 한몫 했을 것이다.

 책에는 노자와 장자의 차이가 먼저 등장하는데 노자 도덕경이 주로 간략한 어록이나 시, 산문으로 구성한다면 장자는 주로 이야기 형식이다. 그리고 노자 도덕경이 정치지도자를 위한 지침서 성격이라면 장자는 도가적 삶에 관심을 둔다. 마지막으로 노자가 도를 주로 만물의 생성변화의 근원이나 귀착점으로 본다면 장자는 도를 무궁한 생성변화 그자체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뭔가 장자가 보다 자유로운 부분으로 진일보 한것 같은 느낌이다.

 저자는 장자는 체계적인 인식 내용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일깨움이 목적이라는데 그래서 책에서는 체계성이라곤 찾아보기 어렵고, 그래서 뭔가를 아는 것도 어려웠다.

 장자에게 있어서 참다운 인간상은 신인인데, 이 신인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망기와 망공, 망명인데 망기는 몸의 안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고, 망공은 공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요, 망명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 욕망을 발현하는 모든 통로를 막아내는 셈이다.

 장자는 내편과 외편으로 구성되는데 이 책은 주로 내편을 소개한다. 외편은 제자들이 썼다는 이야기도 있고, 마치 성경의 신약과 구약처럼 성격을 달리하는 부분이 많아서다. 주로 내편이 장자의 직접적 생각이 많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데 무수한 일화가 등장한다. 하나같이 뜬구름 잡은 신선놀음식 이야기인데 저자가 해석을 달아놓은 것을 보면 아 그렇구나 싶다.

 재밌게도 일화에는 장자와 의견을 자주 다투는 혜자가 많이 등장한다. 이경우는 장자와 혜자가 이야기하는 식이다. 그리고 의의로 공자와 그 제자도 같이 나온다. 공자를 많이 다루는 것에 있어서는 공자사상을 비판하고 넘어서려 했기 때문이란 말도 있지만 공자의 유가사상을 토대로 더욱 사상을 발전시켰기에 공자가 자주 등장한다는 설도 있다.

 하여튼 일화들의 주제는 모두 같다고 볼수 있는데 작은 미물이나 사물이 뭔가 거대한 것으로 변모한다던가, 내가 사실은 A라고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은 A가 아니라던지, 아니면 A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A라던지 하는 식이다. 예를 들면 쓸모없는 것이 사실은 더 큰 쓰임새가 있고, 쓰임새가 있는 것이 사실은 쓸모가 없다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이나 사물의 주측면보다는 인간인 오히려 바라보기 힘든 다른 면을 보고 그것을 깨달아가면서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 현세를 초월하자는게 주제인듯 하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도 우리는 현세를 살아가야하는 몸인데 그것을 마냥 모른체 하고 무관심하게 구는게 무책임한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다 싶을때 쯤, 장자의 인간세 부분이 등장한다. 이 부분은 처세법과 정치사회윤리에 관한 부분으로 결국 장자도 어느 정도 현세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민도 다룬 셈이다. 장자는 사람이 처세를 함에 있어 우선 심제를 강조하는데 심제는 마음을 굶기는 것으로 자신의 세속적 마음을 비워 도와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한다. 앞서 말한 망기와 망명, 망공을 실현한 상태랄까? 실제로 이런 상태에서 정치를 한다면 공명정대하지 않을까 싶다.

 장자는 윤리자체를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윤리 자체를 버리는 것도 아니다. 윤리가 지닌 한계성을 비판하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핑계로 비윤리적인 것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것을 더욱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불립문자라고 해서 도가 사상이나 불교에서는 진정한 깨달음은 문자로는 한계가 있고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장자는 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선 인의, 예악 같은 이치주의나 윤리지상주의 같은 구조를 버려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이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이런것들에서 벗어나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결국 우선 이런것들을 알고 통달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모르고 그 이상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사실 이런것에 관심이 없는 동물과 같다는 점에서 이런 지적을 그럴듯하다.

 전체적으로 책은 뭔가 알것 같은 면을 주면서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럴수도 없었겠지만 뭔게 체계성도 부족하고 한 가지 주제로 꾸준히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 동어반복을 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장자니까, 그리고 우리는 속세에 메여 살면서도 벗어나길 희망하는 존재이니 읽을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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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없는 삶 - 불안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졌다
필 주커먼 지음, 박윤정 옮김 / 판미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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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들어 한국사회도 무종교를 표방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어섰다. 종교를 갖는 사람은 꾸준히 증가세였는데 이제는 어느덧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과학기술 문명을 구축한 나라임에도 역설적으로 선진국중 가장 종교인의 수가 많다. 심지어 대통령도 취임때 법전도 아니고 성경에 손을 얹고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미국도 어느새 3억을 넘는 인구중 수천만가량이 무종교로 돌아섰다. 어찌보면 선진사회에서 무종교는 트랜드인듯 하다.

 그럼에도 미국에서는 여전히 종교가 주는 스트레스가 상당한 모양이다. 책에 의하면 미국사회에서는 군대내에서 종교를 상당히 권장하고 있으며 실제 식사시간에 단체기도가 이루어진다. 거기에 기독교 세력이 강한 몇몇 주에서는 종교적 중립을 지켜야 마땅할 교사 및 심지어 교장까지도 종교문제로 갈등을 겪는 무신론 집안의 자식과 부모에게 종교를 믿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강권한다고 한다. 거기에 미국사회에서는 전반적으로 종교가 없는 사람은 비도덕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믿을 만한 사람이 못되다는 의식이 팽배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저자가 이런 책을 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책을 통해 비종교인들도 충분히 도덕적이고 책임감이 있으며 공동체적 삶을 잘 영위할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비종교적 성향을 가진 서유럽지역, 일본, 대한민국등은 모든 면에서 인간의 복지를 잘 구현하고 민주주의를 잘 실현하는 선진사회다. 이 나라들은 사망률이 낮고 교육 수준및 복지수준이 매우 높으며 사회가 안정적이고 치안이 잘 구현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경제력이 높다. 반면 종교적 성향이 강한 아프리카나 남미의 국가들은 이와는 정반대다. 종교를 믿으면서도 살인률과 범죄률이 높아 치안이 낮고 평균수명이 짧으며 교육수준 및 복지가 빈곤하고 정치적으로 개 독재국가다.

 이는 국가간 뿐만 아니라 한 국가내에서도 잘 나타난다. 미국의 경우 무종교적 성향이 강한 북부지역의 주들이 경제력이 높고 개방적인 반면 종교적 성향이 강한 남부의 주들은 그렇지가 못하다.(아마 이탈리아도 북부와 남부가 이럴 것 같다.) 무종교적 성향이 강한 나라들의 유일한 단점은 자살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종교적 성향이 강한 나라중 경제력과 복지, 민주주의가 잘 구현되지 못하는 나라도 있는데 중국과 베트남이 그 예이다. 하지만 이들의 무종교적 성향은 공산주의에서 기인한 것임을 감안한다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물론 무종교적 태도가 반드시 그 국가의 여러 선진적 지표를 만들어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필요조건은 되어 보인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종교가 감소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든다. 우선 종교와 보수적 우파 정치가 노골적으로 결합한 것이 시민사회에 실망감을 준 것, 그리고 카톨릭 사제들의 소아성애 스캔들에 대한 감추기, 마지막으로 임금노동력으로 돈을 버는 여성들이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무종교의 삶을 사는 세속주의자의 특징도 드러낸다. 그들의 특징은 물질적인 수단으로 현세의 삶을 향상시키고, 과학은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섭리이며, 선을 행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이다. 세속주의자의 선은 황금률로 소위 역지사지의 원리이다. 즉,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무종교주의자는 사회, 문화, 정치적으로도 개방적인데 이들은 인종차별이나, 강경한 국수주의 , 전쟁찬성에 모두 반대한다. 다원적 삶은 추구하는 민주주의와도 잘 어울리는 것이다.

 책에 의하면 무종교주의자들은 전체적으로 오히려 종교주의자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수하다. 이는 수감률로 비교할수 있는데 무종교주의자들의 수감률은 종교주의자들의 수감률보다 낮다. 책은 이를 도덕성에 대한 자기 주체성으로 설명한다. 종교주의자들의 도덕성은 종교의 신에 기반하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벌이나 상을 타산적으로 의식하는 도덕성이라는 것이다. 반면 무종교주의자들은 이를 황금률에 기반한 내면적 나침반에 의존하며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을 진다. 책에 나오는 한 사람은 종교에 기반한 도덕을 "도덕을 아웃소싱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기가막힌 표현이다.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무종교적 삶을 사는 4가지 형태를 제시한다.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인본주의자, 경외주의자다. 무신론자는 기본적으로 유신론을 부정하는 형태이므로 제한적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반면 불가지론자는 제한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를 벗어난다는 점에서 좀 낫다고 보지만 어찌보면 신과 종교에 대한 입장을 피하는 한계가 있다. 또한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면이 강하다고 한다. 인본주의자는 이성과 과학, 이성적 탐구를 믿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전반적으로 좋은 개념이지만 지나치게 이성적이다. 그래서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경외주의자다. 경외주의자는 우리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생겨난 과정과 그 까닭을 인간이 어쩌면 영원히 알수 없다고 생각하며 우주의 신비를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학자이면서도 우주의 신비를 논한 아인슈타인이나 그외 수많은 과학자들은 어찌보면 인본주이자라기 보다는 경외주의자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면 위의 네가지 입장중 자신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인본주의자에 상당히 가까운 경외주의자 인것 같다.

 책의 끄트머리에 나온 인상적인 구절로 마무리한다. "경외를 느끼고 경험하는데 신은 필요없다. 생명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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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27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네요 전 읽는중이라~ㅎㅎ

닷슈 2018-09-27 11:50   좋아요 1 | URL
벨루치님이라면 금방 보실수 있을 겁니다.

카알벨루치 2018-09-27 12:05   좋아요 1 | URL
머리에 쥐날려고 합니다 ㅋㅋ숙제느낌이...

2018-09-27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8-09-27 16:00   좋아요 1 | URL
책에도 나오지만 종교인들의 종교 강요 및 억압, 회유는 기본적으로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한국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건 처음 듣네요. 저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지휘관이나 부대성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자대는 아니어도 훈련소에서는 종교행사가 좀 강압적이란 생각은 받았습니다. 물론 초코파이나 먹을 걸 주니 알아서 가는 면도 있지만요. 종교나 군대나 기본적으로 비민주적인 집단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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