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젠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 10년의 무게가 예전 같진 않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고 고작 80년 정도를 사는 한국인에게 10년은 무척 긴 시간이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10년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10년만에 다시 학교를 가게 되었을 때다. 내가 초중고를 다닐때와 별반 다를게 없는 것들을 그대로 배우고 있는 것에 상당히 놀란 적이 있었다. 많은 것이 짧은 시간안에 바뀌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도 있던 것이다. 그리고 엄기호를 유명하게 만든 이 책도 나온지 거의 10년이 되었다. 간혹 나오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이나 미니홈피 같은 용어만 제외한다면 책에서 세월을 거의 느낄수 없었다. 그만큼 책에서 저자가 문제 삼는 부분에 대한 개선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많은 문제는 대부분 자본에서 기인한다. 

 책은 대학, 정치, 사랑, 학교, 돈을 주제로 학생들과 함께 한 강의에서 그들의 글을 주제별로 실고 저자가 거기에 썰을 푸는 형식이다. 시작은 요즘 기성세대들의 현 세대에 대한 부정이다. 사실 현세대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 이미 10년전 책이니 말이다. 하여튼 지금도 그러한데 기성세대는 우파같은 경우는 현세대를 의지와 노력이 부족하다고 폄하하고, 좌파는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자각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각 세대가 그 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하에 형성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산업화세대라 할수 있는 보수우파는 배고프고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굳은 일을 해가며 가난해서 탈출하며 부를 쌓았고, 군사독재를 경험한 좌파는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에서도 독재를 타파하고 민주화를 이뤄낸 경험이 있다. 하지만 현세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국민소득 1만불 이상인상태에서 자라났으며 민주화도 태어나면서 부터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반면 신자유주의의 본격화로 부모세대부터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꾸준히 겪어왔고, 빠른 세태변화로 뭐하나 안정적이고 보장된 것이 없는 상태로 성장했다. 때문에 그들에겐 불안함으로 개인이 우선시되고, 생존이 우선시되며 정치적 과제보단 자신의 경험과 재미가 우선한다. 기성세대는 이러한 그들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현세대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기성세대의 비판은 자신들만의 성장방식을 잣대로 들이댄 것으로 옳지 못한 일이 된다. 때문에 진정한 이해를 위해서는 단순한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 대한 조건에 대한 지식과 그들의 감수성과 나의 감수성 사이의 거리에 대한 성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교육에 대한 비판도 무척 뼈아프고 지금도 유효하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성장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교육은 가장 성장에 관심이 없다. 이는 한국의 학교가 성장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 아니라 대학을 가기 위한 도구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보니 한국의 학교는 우정은 사라지고 폭력만 난무하는 정글과 같은 공간이 되었는데 한국사회는 이점도 애써 눈을 감는다. 많은 기성세대들이 학교공간에서의 폭력과 경쟁을 잊고 애써 추억만을 기억하려 하는데 사실 동갑이고 같은 반에 일년여를 함께 있었다고 하여 모두를 친구라고 칭하는 것도 우습다. 입시를 위해 경쟁하고 서로간의 폭력이 난무하는 곳에서 같이 있었다고 모두 친구였을까? 그냥 같은 반에 있었던 사람을 사회적으로 친구라고 부른다고 보는게 맞는듯하다. 거기에 학교는 인간이 매우 권력을 추구하는 동물이기에 자연스레 매우 권력적 공간이다. 그리고 그 권력은 공부를 잘 하는 사람과 주먹이 강한 사람이 차지한다. 그리고 서로 무척이나 대비되는 양 집단은 권력의 속성을 서로 잘 안다는 특성때문인지 서로를 인정하고 침범하지 않는다. 어디 일진이 일등 건드리는것을 보았는가? 심지어 보호도 한다. 그리고 공부만 잘하는 일등도 일진의 폭력과 비윤리성에 무관심한건 마찬가지다. 이처럼 조선시대 동반과 서반의 연합은 지금도 통한다.

 가족에 대한 분석도 재밌다. 저자는 한국의 가족이 위기에 빠진 이유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노동을 하지 않고 그저 쉬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가족에 노동이라니 뭔가 이상해보이지만 저자는 가족이야말로 누군가의 화를 참아내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생각해주는 감정노동이 가장 필요한 곳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감정노동은 노동중 가장 많은 정신에너지를 요하는 것이다. 한국가정의 문제는 다른 모든 구성원이 가족의 유지를 위해 그 감정노동을 엄마에게만 기대하고 요구하고 그를 착취했다는 것이다. 흔히 가족의 문제를 소통의 부재에서 찾는다. 하지만 저자는 소통도 만사형통이 아니라고 말한다. 가정에서의 소통이란 것 자체가 마치 학교에서 권력지향적이고 그리 선하지 않은 개인들을 친구라는 용어로 미화및 이상화한 것처럼 화목하고 착하며 이상적인 가족구성원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가정의 구성원은 경제적, 문화적 자본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고 따라서 그들의 어설픈 소통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거나 해결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일련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뭘까. 저자는 질문의 공유와 공감능력의 향상을 해결방법으로 꼽는다. 질문의 공유와 관련해서는 들릴 권리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흔히 말할 권리를 중요시하지만 말할 권리는 결국 누군가 듣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즉, 말할 권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들어줄 의무를 가진 누군가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한국사회의 문제로는 서로 다른 답변만 주장한다는 것인데 그것보다는 같은 질문을 공유하는 것을 권한다. 질문을 공유하면 서로간의 차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더 많은 다양한 답을 생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감은 인간을 어쩌면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공감하지 않는 인간은 서로를 분류하고 서열화한다. 인류역사상 수많은 전쟁과 살상이 가능했던 것은 서로를 공감하지 않을 만한 대상으로 분류하고 서열화 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인의 공감능력은 자본에 의해 수동적이고 철저하게 위계화되어 있다. 어디서든 누구를 만나던 한국인은 그가 가진 사회적 자본이나 진짜 자본으로 그를 분류하고 위계화한후 대한다. 책에는 10년전 고대생이면서 학교를 포기한 이의 글이 나오는데 저자가 함께 공부한 '원세대'(연세대 원주캠퍼스)학생들은 그것을 보면서 사회의 충격적이고 경탄하는 시선과는 다르게 조소와 조롱, 자괴감 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 고대생의 학벌포기선언이 이슈화되었던 것 자체가 학벌이란 강력한 사회적 자본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며 그것을 갖지 못한 자신들의 같은 선언 따윈 전혀 주목받지 못할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공감능력의 회복은 중요하며 우리에겐 판단과 심판의 언어보다는 공감하는 생활의 언어가 필요하다는게 저자의 생각이었다.

 미니홈피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로, 대통령은 이명박에서 문재인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10년은 많은 것을 바꾸었지만 그럼에도 책을 보며 시대가 많이 지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문제의 근간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그런게 바뀌어야 좀더 사람사는 사회와 개혁이란 것이 이루어진게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홀한 글감옥 (리커버 특별판)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 작가 조정래가 지난 수 십년간 우리에게 남긴 대하소설이다. 간혹 사람들은 이 소설들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부채성격을 가진 작품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럴만한 것은 이 소설들이 우리 민족사의 중요한 부분들을 관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8년, 한국전쟁, 광주민주화운동, 근대화 과정 등이다. 

 소설을 잘 보지 않고 독서편력도 짧은 난 이 세 작품을 보지 않았다. 사실 조정래 작가의 소설을 하나도 보지 않았기에 대표적을 못 본것은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겠다. 태백산맥을 오래전 영화로 접하긴 했지만 책에 따르면 영화 태백산맥은 감독이 무려 임권택임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반이라는 한계 때문에 일그러진 영화였다. 

 그러면서 정작 조정래의 본 글이 아닌 그의 인생과 사상이 담긴 이 책을 보게 되니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그의 작품을 봐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분단국가이기에 작가라면 그것을 반드시 다뤄야 하는 상황, 그리고 작가라면 반드시 진실을 다뤄야한다점, 소설 쓰기의 어려움과 정신적 피폐함과 환희 그리고 조정래 개인의 삶에 대해 느낄수 있었다. 

 책은 대학생들과의 대담을 엮은 것인데 그들의 질문에 대해 작가가 답을 한 것을 각 장으로 구성했다. 먼저 소설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조정래는 소설은 인간에 대한 총체적 탐구라고 한다. 그래서 소설엔 인간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형상화되는데 당연히 모국어를 쓰는 만큼 세상의 모든 작품들은 그 모국어의 자식이 된다. 그리고 언어는 그 민족의 색채가 가장 강한 것이기에 음악 미술보다도 더욱 강한 민족적 색채를 갖게 된다. 그래서 소설은 그 민족의 전통, 정서, 풍습, 습관등이 다채롭게 펼쳐지며 감동까지 주기에 다른 책보다 더 그 민족의 고육한 특성이나 문화전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문학은 민족적 색채가 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전세계적인 공감을 얻는다. 그것은 문학이 전 인류의 이상과 행복,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옹호하고 구현하는 보편적 미덕이라는 최소공배수와 최대공약수를 갖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글을 잘 쓰는 방법으로 조정래는 익히 알려진 다독, 다상량, 다작을 제시했다. 별다른 왕도가 없고 타고난 재능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다독과 다상량, 다작을 4:4:2로 하라고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읽은 시간만큼 그 작품과 사상에 대해 꾸준히 생각하고 그리고 나서 써야한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쓴다면 자신이 비어있기에 역시 좋은 작품은 나올수 없다는 것이다. 모방역시 좋은 글을 쓰는 좋은 방법인데 다만 한 작가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한다. 한 작가에게만 몰두하면 그 사람의 아류가 될 뿐 자신만의 문체가 나오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쓰려면 적어도 500권의 책을 읽기 전에는 펜도 들지 말라고 한다. 500권은 세계문학전집 100권, 한국문학전집100권, 중단편소설 200권, 그외 기타 역사, 사회과학 등의 지식 도서 100권이다. 

 이 책들을 보면서 왜 그런 소재를 선택했고, 주제와 소재는 효과적으로 조화되는지, 주제의 형상화는 적절한지, 사건의 전개는 우연이나 조작적이지 않고 실감있고 필연적인지, 구성의 허술함은 없는지, 문체의 특성은 무엇인지, 인물들의 개성과 생동감은 있는지, 감각과 묘사는 특색있는지, 결말처리는 효과적인지, 소설로서의 성취도는 얼마인지를 모두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작가의 능력은 그 작가가 얼마나 많은 작품을 썼는지 보다는 얼마나 개성적인 인물을 창조했는지의 여부라고 말한다. 각 인물은 그 나름의 개성과 전형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전형성은 그 역할, 그 사건, 그 상황, 그시대에 없어서는 안될 꼭 어울리는 인물로 전형성이 있어야 작품은 시대상을 반영하고 실제성을 부여하며 개성도 비로서 살아나게 된다. 또한 작품을 쓰면서 1인칭이 아닌 3인칭을 강조하는데 3인칭이 쓰기는 어렵지만 모든 인물들이 자율성과 개성, 전형성이 살아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조정래가 한국사를 관통하는 주제들을 소설로 다룬데는 우리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이 컸다. 그자신이 어려서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목격했고, 그 아픔을 체화했다. 조정래는 무척 가난했고, 아버지가 신식 공부를 하기 위해 승려가 되었지만 일제가 우리 승려들을 일제식으로 결혼시켜 태어나게 되었다. 어려서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목격해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친일청산의 실패와 독재, 빈부격차 등을 경험하며 그 사건들을 다루게 되었다. 그는 한국사의 민중을 괴롭히며 이득을 보는 무리들의 사건들에 대해 경악하고 분노했지만 소설 뿌리의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담담한 어조를 보면서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로 사건을 다루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들은 명백히 잘못된 사건에도 분노하지 않고 담담히 다루며 작가 자신이 진보적임에도 우익사건이나 우익인사에 대해서도 장점을 드러내고, 좌익에 대해서도 장점 뿐만 아니라 단점도 드러낸다. 영화 태백산맥에서도 지주의 친일파를 공격하는 장면도 많지만 좌익에 경도된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주는게 좋아보이지만 자네가 열심히 일한 것을 모두 거둬들여 똑같이 나누는게 좌익이 하자는 이야기라고 농민에게 이야기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나오는 것도 그러한 일환이다. 

 그는 사회 운동으로 시민단체에 적극 참여할 것도 주문한다. 프랑스와 독일은 시민단체가 무려 5만개인데 한국은 2천 5백개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저도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려 정부로부터 활동보조비를 받는 형국인데 돈을 받는 시민단체가 어떻게 올바르게 권력 감시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때문에 마땅히 시민으로서 공부하고 시대에 대해 알게 되었으면 시민단체를 하나 정해 같이 활동도 하고 활동비도 기부해야 진정한 민주주의로 갈수 있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정치권력이든 자본권력이든 권력의 속성상 감시하지 않으면 부패하고 전횡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민주주의는 꾸준히 관리하며 감시해서 완성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책은 300페이지 정도로 보이는 두께였지만 막상 열어보니 450쪽이었고, 내용도 알찼다. 대담이기에 쉽게 읽을 수 있고 작가 조정래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이 있다. 그는 매일 30매의 소설을 썼다고 한다. 자신과의 약속이고 이를 지키기 위해 주색잡기를 멀리하고 꾸준히 건강관리를 했다고 한다. 대단할 따름이다. 그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22598 2020-11-13 0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정래 선생님 작품을 좋아하는 저로선, 닷슈님의 리뷰 감사하네요 ^^ 저는 조정래의 대표 대하소설 3개중의 태맥산맥만과 비교적 최근에 나온 작품들 ( 정글만리, 풀꽃도 꽃이다, 천년의 질문)들을 읽었는데, 역사적인 사건들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로 만들어내신 능력에 감탄하면서 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등단 50주년 행사 발언때문에 조정래 선생님에게 실망은 했지만, 그래도 그분이 이루신 업적들에 대해서는 인정해드리고 싶습니다.

닷슈 2020-11-13 16:02   좋아요 1 | URL
조정래 작가의 책을 많이 읽으신걸 보니 대단합니다. 등단50주년 행사 발언은 물의를 일으키긴 했지만 저는 큰 문제 없는 소신발언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의 큰 문제에 대해서 누군가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죠. 항상 언론이 균형적 시각이랍시고 명백히 잘못된 쪽과 옳은 쪽이 다툼을 벌일때 억지로 가운데에 있으려는 것도 웃기고, 많은 언론들이 억지로 침소봉대하여 문제를 만들려는 것도 웃기다 생각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11-13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태백산맥> 읽고 훌륭한 작가라고 느꼈는데, 본인 며느리에게 시아버지 책을 읽고 전부 필서를 하라고 한 건 왜 그랬을까 하고 한 번 이유를 더 생각하게 만듭니다.

han22598 2020-11-17 05:04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얘기 듣고 생각했어요. 왜 그러셨을까? 혹시 며느리만 필사 시키신건 아니겠죠 ㅠ

패스파인더 2020-12-09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까지는 재밌게 읽었는데, 정글만리부터는 도저히 못읽겠더라고요.
작가가 변한건지 제 취향이 바뀐것인지, 20대시절 저에게 박완서 박경리 씨와 함께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우리나라 작가입니다. 필사는 아들에게도 시킨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닷슈 2020-12-09 17:43   좋아요 0 | URL
앞시리즈를. 모두 보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스토리 전쟁 - 이야기 종결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조나 삭스 지음, 김효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지상파 방송국들은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본사들도 그렇고 지방방송국들은 더해 존폐의 위기에 놓이고 있는데 이는 방송환경의 거대한 변화 때문이다. 저자는 1450년 구텐베르크의 활자성경 인쇄시대 후 라디어 tv에 이르는 시대를 방송전통시대라 부른다. 이 시대는 인쇄기나, tv 송신기, 방송카메라에 이르는 방송장비들이 매우 고가이다. 때문에 소수의 관리인이 어떤 정보를 내보내고 어떤 정보를 제거할지 결정하는 일방적 시대였다. 그래서 지도자, 인쇄업자, 방송국 피디, 경영자 등 관리인의 허락을 받는 것이 방송이 넘어야할 큰 장벽이었고, 이를 넘어서면 일방적인 다수의 청중 확보가 가능했다.

 하지만 모바일 시대인 지금 이는 완전히 무너졌다. 유튜브와 인터넷 방송, SNS 등으로 누구나 거의 비용없이 그리고 누구의 간섭도 없이 청중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저자는 이를 디지토럴시대라 부른다. 최신기술로 인해 메시지들의 경쟁은 매우 심해졌고 적자생존법칙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가장 강하게 어필하는 메시지만 살아남는 과거의 구전전통과 닮았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이 구전전통시대와 비슷한 경쟁환경을 가져오다니 재밌으면서도 아이러니한 측면이다.

 하여튼 디지토럴 시대는 과거의 구전전통시대와 비슷하니 과거의 스토리 경쟁력을 갖고 이야기해야한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스토리를 매우 강조하는데 스토리는 이야기꾼이 자신의 세계관을 대중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만들어낸 인간 의사소통의 한 유형이다. 실존 또는 허구의 인물을 무대에 올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인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방법이다. 

 기업이든 환경운동가든, 정치가든 그들은 각각의 고유의 브랜드를 갖는다. 오바마의 브랜드는 아마도  Yes We can 이었을 것이다. 트럼프는 America first 이고. 하여튼 각각의 브랜드는 해설과 의미, 스토리를 갖는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이 브랜드들이 갖는 해설과 의미, 스토리는  당연히 충돌하고 갈등을 발생시킨다. 한국의 양정당이 갖는 브랜드도 그러하다. 때문에 승리하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스토리를 매우 잘 짜야한다.

 스토리를 만듬에 있어 피해야할 5가지는 허영, 권위, 위선, 허풍, 속임수다. 자신만이 최고라고 여기고 대중을 훈계하려는 태도는 허영, 권위, 위선과 관계한다. 과도한 지식을 내세우며 설명하려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스토리가 아무리 그럴듯하더라도 진실성과 그에 상응하는 실천이 없다면 이는 위선에 해당한다. 그러한 브랜드는 결국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파산한다. 

 그렇다면 성공하는 스토리의 조건은 무엇일까? 구체성, 관련성, 몰입성, 인상적, 정서성을 갖춘 스토리다. 구체성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를 스토리에 부여해 현실성을 제공하는 것이며 관련성은 스토리가 이걸 보는 청중인 나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관심을 가질테니 말이다. 몰입성은 등장인물의 경험이 청중인 나의 삶에 명확한 가치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인상적인 헥심메시지 자체가 인상적이어야 함이고, 정서적인 메시지가 인지적으로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느끼게 해야한다는 점이다. 요약하면 훌륭한 스토리는 현실적이고 청중의 삶과 직접관련이 있으며 변화의 필요성이나 문제의식을 느끼게 할만큼 인상적이어야 하고 마음을 울려야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이런 스토리를 구성하는 사례와 구체적인 방법이 나온다. 물론 실패하는 스토리도 나오며 그로인한 교훈도 제공한다. 디지털 시대에 각종 메시지가 범람하는 상황에서 메시지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나 보는 사람에게 의미있는 책이다. 다만 책이 좀 체계적이지 못하고, 중언부언하는 전형적 미국책의 느낌을 많이 들게한다. 여러 개념을 저자가 쓸데 없이 만들어내는 것도 미국책의 특징이다. 미국 저자들은 왜 이런걸 좋아할까나. 하여튼 유튜버가 되고 싶다면 한번 보는 것도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픔의 위안 - 어느 날 찾아온 슬픔을 가만히 응시하게 되기까지, 개정판
론 마라스코 외 지음, 김설인 옮김 / 현암사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사랑하는 이를 어떻게든 떠나보낸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이 나랑 같이 오래도록 같이 살면서 누구나 납득할만한 나이에 고통없이 가는 것이며 비겁하고 생물학적 본성에도 반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내가 납득할만한 나이에 고통없이 그 사람 보다 먼저 가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바람과 계획대로 되던가? 사고로 죽기도 하고, 병으로 가기도 하고, 살해당하기도 하고, 말도 안되게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기 마련이다. 슬픔의 위안은 그런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에 대한 책이다. 

 책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되는데 1장은 슬픔의 무게로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의 흔적들에 대해서 2장은 이를 대면하는 방법, 3장은 슬픔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것들 마지막 4장은 그럼에도 남는 슬픔의 흔적들에 대해서다. 나의 성향자체가 공감보다는 합리형이고 아직 운이 좋고 나이가 덜해 큰 슬픔을 겪은 적이 크게 없는지라 책의 내용이 많이 다가오진 않았다. 하지만 진정 이런 일을 겪은 사람에겐 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리라. 인상 깊은 부분만 좀 발췌해본다.

 

P35

삶은 사소한 것들이다. 그런데 슬픔은 그 사소한 것들을 비틀어서 떼어내 버린다. 죽음은 사소한 것들을 떼어내 버리고 난 뒤 그자리에 공허감 대신 인식 가능한 고통의 무게를 채운다.


P45

힘내고 응원하는 방법으로는 이메일과 문자메시지가 더 좋다. 언제 읽을지 답장을 할지 안할 지 결정할 수 있다.


P56

사람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그가 매일 사용한 대수롭지 않으느 물건이 어떻게 강렬한 강한 반응을 일으키는지 보여준다.


무슨 까닭인지 사람들이 특별히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신발이다. 신발이 아무래도 잘 빨지 않아 체취가 강하게 남고 후각이 기억과 연결되기 때문일듯하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지만 그 사람이 어디로 가거나 올때 항상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선다. 떠남과 더 강하게 연결되는듯 하다. 


P219

일상은 저 깊은 곳에서 당신에게 슬픔이 아닌 다른 것이 있다고 속삭여준다.


그렇다. 슬픔을 잊으려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더 힘들 것이다. 


P255

무정한 침묵과 조심스러운 결단처럼 보이는 남자들의 때로는 무엇인가를 해야하고 고쳐야 하고 도와야 하고 보호해야 하고 안전하게 지켜야할 경우를 대비하여 버티는 것이다.


P271

여성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경우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면이 간직한 대대로의 본능을 세차게 드러낸다. 이는 사랑하는 이에게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면 내가 곁에 있겠다. 기꺼이 곁에 있겠다는 의지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한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자신의 부재에 대해 죄책감을 더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싱 - 인간과 바다 그리고 물고기
브라이언 M. 페이건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고기는 사람이 육식을 시작한 이후 가장 오랫동안 먹은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바다는 아니어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호수, 습지, 웅덩이, 강이 있고, 그곳엔 비교적 잡기 쉬운 물고기와 조개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매우 많았었고 어떤 경우엔 거의 줍다시피 잡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러 가축과 곡물류에 비해 인류 역사에서 물고기는 식량으로써 상대적으로 매우 소홀히 다뤄져왔다. 물고기가 주식인 집단이 적고, 물고기가 문명의 기반인 적도 없으며 이렇다할 고고학적 증거도 별로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싱'의 저자 브라이언 페이건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는 물고기가 인류 초기 문명의 발흥에 상당한 역할을 했고,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일을 담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물고기가 남획의 결과 위기에 이르렀고, 인류의 식량자원으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점이 다가옴으로써 환경은 물론이고 인간자체도 위기에 빠졌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1.기회주의적 어업과 초기문명

 책은 제법 두꺼운데 절반 이상을 세계의 과거 문명들이 물고기 잡이를 했고, 물고기가 주요 식량이자 급여로서 문명을 지탱했다는 주장을 하는데 할애한다. 인류의 초기 식량획득 방법은 수렵, 채집, 어로인데 이중 어로만이 아직까지 유의미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어로방법은 현대 문명의 이기에 따라 많이 현대화했지만 놀랍게도 초기의 여러 방법이 원시적 형태로 그대로 남아있다.(낚시나, 그물이 그렇다)

 인류는 초기 고기잡이는 기회주의적이다. 이는 큰 목표를 갖고 대량으로 잡아들이기보다는 강의 범람 후 말라가는 웅덩이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녀석들을 잡거나 산란기에 강에 들끓을때 손쉽게 잡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초기 인류 문명은 고기잡이에 많이 의지했는데 물고기는 비교적 쉽게 잡을 수 있고, 샤냥이나 채집에 비해 어획량이 어느정도 예측가능해 안정성을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조개 같은 연체류는 더욱 그런 성질이 강했는데 그래서 고대 인류 정착지엔 그토록 많은 조개무지가 남아있다. 물고기가 식량의 하나로서가 아니라 주요 식량원으로 자리잡은 사회도 제법 있었는데 농경이 부족합한 북유럽사회나 앤초비에 의지한 페루지역 등 여러 곳이다. 물고기 잡이는 방하기가 끝나가며 더욱 중요해졌는데 기온이 상승하고, 빙하가 감소하고 따라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대형동물이 감소 및 멸종했고, 어장은 오히려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초기 문명에 물고기 잡이는 단지 식량의 하나로써만 기여한 것이 아니다.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문명에서는 정착사회가 커지면서 중심지에 군사나, 인부등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먹여살릴 식량이 당연히 필요한데 물고기가 지급식량으로 이용된 것이다. 식량으로 지급되기 위해서는 쉽게 상하지 않고, 정량화되어 있으며, 운반가능해야만 하는데 물고기는 이를 모두 충족시킨다. 물고기를 잡아, 머리를 쳐내고, 반으로 갈라 내장과 등뼈를 제거하고 나비모양으로 말리면 되는데 이  말린 물고기가 가볍고, 상하지 않고 오래가며 운반이 쉽고 규격화되어 있어 지급식량으로써의 조건이 매우 훌륭했던 것이다.  

 또한 물고기는 문명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정착사회가 초기 국가로 발전하려면 체계적인 사회구조가 필요하다. 보통 농경이나 가축을 통해 식량이 충분히 생산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렇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진 않다. 오히려 수렵, 채집을 통해 사회가 체계화 된 상태에서 정착사회가 더 체계적으로 촉진되기도 한다. 어로사회도 마찬가지. 물고기가 사회 주식일 경우 사회는 상당한 분업체계를 갖게 된다. 대량으로 잡은 물고기는 빨리 부패하여 먹을 수 없게 되기에 빠른 해체 및 처리와 건조 및 염장처리 유통이 필요하다. 즉, 물고기를 잡는 집단과, 잡은 물고기를 즉시 몽둥이로 머리를 쳐서 죽인 후 내장 및 머리와 뼈를 처리하는 집단, 처리한 물고기를 염장하거나 말리는 집단, 염장이나 말린 물고기를 다른 사회와 유통 및 교역하는 집단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이 모든 복잡한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리더도 마땅히 필요했을 것이나 물고기를 대량으로 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상당히 체계적이었을 것이고 이런 사회가 곡물이나 가축을 하게 되면서 초기문명 정착사회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게 저자의 설득력 있는 생각이다.  

 

2. 중세유럽과 물고기잡이

고대로마인들 역시 물고기를 많이 먹었다. 로마의 유명한 소스인 가룸은 생선소스로 물고기를 잡고 남은 피와 내장을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소스의 품질은 생선부위에 따라 달랐는데 참치를 쓴 경우가 최상, 잡어인 경우 하품이었다. 당시 기술이 열악해 해안가 사람이나 어부가 아니면 매우 고위층만 생물 생선을 즐길수 있었다. 로마의 귀족들은 자기 과시를 위해 저택내에 대규모 양어지를 만들어 손님에게 진귀한 생물생선을 대접하기도 했다. 이런 생선사람은 로마의 멸망후에도 이어진다.

 중세엔 물고기 수요가 폭증하는데 여기엔 종교가 한몫을 한다. 교회는 예수의 고통을 함께하고자 육식을 금하는 시기를 늘렸는데 이 기간엔 곡물과 과일 물고기를 먹는 것만이 허용되었다. 이 금식 기간이 제법 길었기에(일년의 40%에 달하기도 했따) 물고기 수요가 당연히 많아졌다. 또한 중세엔 온난기가 찾아오면서 식량생산이 늘어 인구가 폭증한다. 먹는 입이 늘어나니 물고기에 대한 수요도 많아졌고 도시가 성장하면서 식량수요가 더 늘어난 점도 한몫하게 된다. 이래저래 물고기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니 물고기를 잡는 사람도 많아질수 밖에 없었다. 민물고기 중 뱀장어를 많이 먹었는데 구하기가 무척 쉽고 높은 열로 훈제하면 딱딱한 막대기처럼 단단하게 변해 보관기관이 무척 길었기 때문이다. 보관과 이동이 어찌나 용이한지 지역화폐처럼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높은 수요로 연어나 철갑상어등 민물고기가 금방 동이났기에 사람들은 두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하나는 오랜 역사를 가진 양식과 바다물고기 잡이다. 우선 양식이 시작되었다. 물레방아 기술이 발달하면서 내륙사람들은 특권층을 노려 양식을 시작했다. 14세기 중반엔 잉어가 대량으로 양식되었는데, 좁은 데서도 잘 살고, 더러운 물에 강하며 번식력이 뛰어난 잉어의 특성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잉어는 매우 비쌌는데 1kg당 소고기9kg 빵 12덩이의 가치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잉어양식장은 기술의 발달로 바다물고기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자 사양세로 접어든다. 거기에 종교적 금식기가 느슨해지기 시작하고 잉어의 질퍽한 맛이 바다물고기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어 15세기 이후엔 프랑스에선 잉어양어장이 모두 사라지고 만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주목받은 바다물고기는 청어였다. 청어는 수가 많고 북해에 무척 많았다. 하지만 기름이 많은 생선이었기에 잡은 후 빨리 부패하는 치명적 문제가 있었다. 특히, 북해는 바람이 춥고 습시가 많이 청어의 건조가 불가능해 염장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북해는 소금이 부족하고 질도 낮아 당연히 염장청어의 질도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보관기간도 2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13-14세기 들어 어부들이 청어의 대가리 뒷부분의 아가미를 제거한 후, 바로 그 부분에 소금을 뿌리는 염장방법을 터득하면서 상황이 개선된다. 소금이 피를 타고 내장부위까지 염장하게 되면서 보관기관이 크게 늘었던 것. 이후 통속절임법은 청어잡이를 산업의 길로 이끈다. 통속절임법은 내장을 제거한 청어를 목재의 큰통에 빈틈없이 채우고, 사이사이에 소금을 채우는 형태였다. 소금이 청어의 수분을 흡수하면 청어를 새소금물에 담아 염장했는데 보관기간이 무려 2년에 달했다. 소금한통으로 무려 117kg의 청어통 3개의 처리가 가능해 장거리 교역이 가능해졌고, 품질또한 상당히 균일했다. 통속절임 전반 해도 고기잡이가 주식인 지역을 제외하면 본업이라기보다는 농민들이 농한기에 부업으로 하는 수준이었는데 통속절임법 이후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면서 이는 어업산업으로 본격 발전한다.

 하지만 청어가 산업화 되고 남획되면서 청어는 사양길로 접어든다. 또한 1520년경 소빙기가 찾아오자 찬물에 민감한 청어가 사라지게 된다. 이에 유럽인이 뒤늦게 주목한 생선은 대구였다. 대구는 자라면 큰 것은 무려 2m의 길이에 무게는 90kg대까지 나가는 거대한 생선이었다. 또한 살이 희고 단단하며 기름기가 적어 추운 북부에서도 쉽게 건조할수 있었고, 건조한 대구 역시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점은 매우 쉽게 잡을 수 있고 개체수 역시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대구는 책 '대구'에도 나오듯 삼각무역을 가능케했다. 유럽인들은 북미의 뉴잉글랜드 어장에서 대구를 잡아들인 후, 상품의 대구는 유럽에 수출하고, 하품의 대구는 카리브해의 노예의 식량으로 팔아치웠다. 그리고 카리브해에서 번 돈으로 그 지역의 럼주와 설탕을 구매해 그것을 유럽에 팔고 그돈으로 남아프리카의 노예를 사서 북미에 판매하는 형태였다. 이처럼 대구는 세계사적 악명높은 삼각무역을 가능케했다. 북해의 대구 역시 금방 남획되고 유럽인들은 어장을 옮겨간다. 1412년엔 아이슬란드 수역이었고, 1497년엔 뉴펀들랜드 어장이었다. 대구 남획은 계속되어 18세기부터 그 영향이 가시화 된다.

 

3. 어업의 현대화와 어장 황폐화

대충 2차세계대전 이후 어업은 본격적으로 현대화의 길로 향한다. 여기엔 당연히 과학기술의 힘이 컸다. 먼저 증기어업선이 개발되었다. 증기어업선 이전까지 어업의 한계는 명확했는데 바람이 시속48km이상으로 부는 해역에선 위험으로 조업이 거의 없었고, 조업시간과 공간도 상당히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증기어업선은 거친 환경의 극복을 가능케했다. 수심400m이상의 바다에서도 조업이 가능했고 시간도 길어졌으며 어장도 넓어졌다. 물고기에게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디젤엔진의 개발은 이를 더욱 가속화한다. 석유가 석탄보다 부피가 적기에 내연기관인 디젤엔진의 어업선은 진출범위가 더욱 넓어져 대서양 전역이 어장이 되고 만다. 거기에 배가 커져 잡은 물고기를 바로 처리하고 냉동하거나 어분으로 만드는 배마져 등장한다. 물고기를 에워싼 다음 그물 아래쪽 테두리의 줄을 당겨 자루 모양으로 어획하는 건착망도 이때 등장한다. 오랜 역사의 저인망 어업도 디젤엔진의 강력한 힘으로 더욱 본격화한다.

 이처럼 기술의 발달로 어업에 본격화 하자 어장은 더욱 황폐화된다. 사람들은 바다는 넓고 물고기는 무한하다는 착각에 빠져있었으며 기존 어장이 황폐화 되면 새로운 어장을 찾아 황폐화 시키는 일을 계속해나갔다. 인간이 조업을 한 일이 거의 없는 남극어장의 경우 발견 후 겨우 15년만에 어획량이 80%감소했다. 또한 유럽인들이 처음 발견하고 대구 밭이라고 까지 생각했던 뉴펀들랜드의 어장의 어획량은 1992년 전성기의 1%까지 추락해 폐쇠되고 만다. 2차대전후 전세계적으로물고기를 대량으로 잡아들인 나라는 일본이며, 한국을 포함한 다수의 인구를 지닌 아시아의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다른 해역의 어획에 나서게 된다. 이에 1970년대 세계 각국은 자신들의 해안선에서 200해리를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선포해 자국의 어업자원 보호에 나서게 된다.

 현재의 바다는 매우 참혹한 상황으로 해양 여기저기에 무차별적으로 그물이 처져 있으며 저인망 어업은 계속되고 있다. 길이 100km에 3만개의 낚시바늘이 달린 지옥의 주낙도 있다고 한다. 어획이 줄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저인망어업과 남획을 계속하는 악순환은 어획의 극적 감소를 낳아 1996년 8600만 톤으로 정점을 찍었던 어획량은 2010년 7100만톤으로 줄어들고 회복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재미로 하는 낚시도 문제다 산업적 어업은 어획량의 급적 감소후 점차 사양세로 접어들고 있으나 취미 낚시는 그렇지 않다. 생업을 위한 개발도상국들의 가내 어업이나 취미 낚시는 어획량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산업적 어업만큼은 아니지만 신경써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취미 낚시는 규모가 생각보다 엄청난데 인구만 세계적으로 무려 6000만에 달하고 연간 4000억 달러의 수익과 100만개의 일자리가 이와 관련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어획의 감소에 인간이 찾은 해결책 중 하나는 양식이다. 2014년엔 처음으로 양식의 비중이 자연산 어획의 비중을 넘어설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인간은 먹기만 했지 물고기의 생태에 무지한 편이라 양식은 아직 상당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편이다. 다른 해결책은 어장관리를 통한 회복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세계 각국이 주요 어장을 중심으로 해양보호구역을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참혹한 남획으로 어장을 잃은 유럽 각국은 20세기 후반부터 어장 관리에 들어가 어느정도 어획량의 회복을 보이고 있다. 실제 아시아의 어려나라들은 인구가 많은 것을 감안할 필요는 있지만 물고기 소비량의 상당부분을 양식에 의존하는 반면 유럽은 양식비중이 18%에 불과하다.

 또한 기후변화라는 위가도 있다. 지구온난화로 각 수역의 온도와 산도가 급변하고 있는데 물고기는 물속에 사는 만큼 산도와 온도에 무척 민감하다. 어장에 닥치고 있고 닥칠 또 다른 위기 인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