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리커버 특별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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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알랭 드 보통을 만든 그의 사랑시리즈 3부작중 하나다. 작년에 최근작인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고 올해 리커버판으로 나온 이것을 샀다. 낭만적 연애와 그후의 일상이 이미 50대가 되어 결혼의 온갖 맛을 알아버린 보통이 쓴 것이라면 이 책은 아직 20대 정도의 나이에 쓴 것이다. 책 내용에서도 세월이 느껴진다. 워크맨이 등장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자동차 공장 몇개를 정리해서 한국이나 말레이시아의 자동차산업을 육성하는가 그 나라전체를 먹여살린거란 말도 나온다.(2018년인 지금은 한국과 프랑스, 영국간의 경제규모는 큰 차이가 없다.)

 보통의 책 답게 연애와 관련한 날카로운 심리묘사나 재밌는 그림이나 도식으로 표현하는 사랑과 연애관계는 이 책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그리고 볼때마다 그의 연애 소설은 내가 심리책을 보는 것인지 소설책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약간 가벼운 철학책을 보는 것인지 헛갈리게 하는 맛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느낀 것이지만 보통은 남자임에도 상당히 여성중심의 서술을 한다. 작가를 모르고 본다면 여성작가의 책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사랑일까에도 결핍되고 사랑에 굶주린 두 남녀가 나온다. 서로 결핍되고 굶주렸으며 성까지 다르니 그들은 당연히 끌릴 수 밖에 없다. 여자 주인공은 앨리스다. 가정환경은 불우했다. 물질적으론 나쁘지 않았고, 사업가인 아버지를 둔 덕에 국제경험이 매우 풍부하다. 이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워낙 국제적으로 크다보니 민족성이나 국적이 주는 느낌 같은 것이 부족하다. 거기에 이기적이고 자녀에 관심이 없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나 안정적이고 지탱해주는 것을 갈망하게 되었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나왔고,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제 겨우 24세에 불과하다.

 남자는 에릭이다. 잘생기고 몸도 좋은 편이며 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은행에서 일하는 이유도 자못 놀라운데 공부를 잘해 의사가 되었지만 의사란 직업이 주는 돈벌이가 본인의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하긴 영국은 의료가 공공서비스이니 그럴지도.) 나이는 31세이며 많은 형제와 함께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상당히 말이 재치있고, 유머가 있으나 은행가라서 그런지 경쟁적 사회를 선호하는 편이며 사회적 약자의 경우 무능한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둘은 한 파티에서 만난다. 앨리스는 특유의 의존적 성격으로 자신의 연애공백기가 계속되는 것에 적지 않은 불안을 느끼고 있었고, 그 자리로 에릭이 훅 치고 들어온다. 굳이 그런게 아니어도 에릭은 충분히 매력적이어서 조금 튕겼던 앨리스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그와 잠자리를 갖는다. 그리고 깨어나서 둘은 연애란걸 조심스레 시작한다. [서양의 일단 자고 연애를 시작하는 이런 문화는 좀처럼 적응이 안된다. 한국도 성관계가 보다 빨리졌지만 여전히 성관계는 연애 이후에 일어나는 편이다.]

 둘은 상당한 성격차이를 보이는데 앨리스는 정치적으로 좌파적이고 문학을 비롯한 책읽기를 좋아하고 다소 내성적이고 의존적인 반면, 에릭은 우파에 가깝고 책을 굳이 읽는다면 '코만도'나 군사관련 책을 읽으며 매우 외향적이고 내적인 대화들을 쓰잘데 없다고 여기는 편이다. 이런 서로의 차이는 초기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피로도가 점차 쌓여간다.

 불만은 앨리스에게서 시작되고 커져나간다. 모든 일상이 앨리스보다는 에릭 중심으로 진행되며 에릭은 앨리스의 독특한 부분은 낮게 치부한다. 책을 좋아하는 것을 폄하하고, 내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것은 쓸데없는 분쟁으로 여기며, 골동품을 좋아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앨리스는 에릭에게 의존하며 그의 이런 면들을 그져 억지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생각하고 덮어나가지만 슬슬 한계상황이 다가온다.

 그리고 뭐가 문제인지 알게하는 남자가 나타나니 바로 필립이다. 골동품을 사러가는 것을 거부한 에릭덕에 친구 수지덕에 앨리스는 필립과 골동품가게를 가게 된다. 둘은 취향이 잘 맞았고, 필립과 이야기하면 앨리스는 자신감이 살아나고 진정 자기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 앨리스는 에릭에게 점차 불만을 드러내고 에릭은 위기감을 느끼고 이를 맞춰나가지만 앨리스의 이별통보를 피하지 못한다. 에릭은 거의 처음으로 사랑을 앨리스에게 말하나 모든 것은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이렇게 앨리스는 자신을 알아주는 필립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낭만적 연애와 그후의 일상이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해준다면 이 책은 보다 어렸을 적 20대의 연애를 다시 느끼게 해주는 기분이 들어 재밌다. 둘을 굳이 비교하자면 낭만적 연애쪽이 보다 완성도가 높고 짜임새가 있지만 같은 작가가 훨씬더 나이가 들어서 쓴 책이니 이렇게 비교하는 건 공정치 못하단 느낌이다.

 사랑에 관련한 보통의 다른 두 초기작도 보고 싶어졌다. 사랑과 연애과정, 결혼을 다루는 보통의 솜씨는 상당하다. 지금까지 본 두 책만 본다면 일종의 공식도 느껴지는데 서로 성장배경과, 유전인자부터 제법 많이 다른 두 남녀가 등장해, 서로의 다름과 비슷함으로 사랑에 빠지지만 그 다름과 비슷함으로 위기에 빠지며 그런 그들에게 다른 매력적인 남여가 등장해 다른 전개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 과정을 재밌는 비유와 표현과 철학자들, 일종의 비유적 공식으로 재밌게 버무리는게 보통의 작품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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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교육이 시작되다 - 행복을 위한 혁신
김진희 외 지음 / 테크빌교육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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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장점은 미래교육에 관해 여러 전문가들이 견해를 제시한 책이라는 점이고 모순되게도 이 점이 단점이기도 했다. 각 분야의 여러 교육 전문가들이 해당분야의 고견을 제시하니 깨닫고 공감하며 얻는바가 많았던 반면, 큰 틀에서는 공감하는 기저들이 비슷하다보니 중언부언되는 느낌도 책 후반부로 갈수록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이 배운 책이었고, 일독의 가치가 있었다. 특히, 교사의 경우, 초등은 초등만, 중등은 중등의 문제점만 당연히 파악하게 알게되는데 이 책을 통해서 한국 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게 되었던 것이 소득이었다.

 미래 교육에 관한 책인 만큼 미래과학기술의 변화와 교육을 접목한 부분이 우선 눈에 띄었다.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를 다루는데 사물인터넷은 센서와 인터넷의 만남이며 스스로 센서가 정보를 수집하므로 데이터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이걸 해석하는 것이 빅데이터다. 이 신기술이 교육과 접목되는 부분은 이미 100년전부터 듀이가 주창한 일상생활에서의 문제해결이라는 참교육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다.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학생들은 실생활의 문제해결을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는게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교사가 과학부분이나 사회부분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과제로 제시한다면 현재나 과거엔 이를 학생이 해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것은 데이터의 해석능력도 있지만 데이터 자체를 수집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령 사회시간에 교사가 우리 고장의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해 조사하고 주제를 찾아 발표하게 한다면 학생은 우선 데이터 수집자체에서 큰 벽에 부딪힌다. 하지만 사물인터넷 시대가 되어 이런 정보가 실시간 수집되고 공유된다면 문제는 간단해지는 것이다.

 빅데이터는 학교생활기록부에도 영향을 미친다. 학생의 모든 자료가 빅데이터로 모이게 되고 이 정보를 분석해 학생개개인에 맞는 학습자료나 방법을 제시하고 진로교육에도 활용이 가능해진다. 개인적으로는 빅데이터 도입초기부터 왜 이것을 우리나라 학생의 각 교과별 학습데이터를 수집해 평균적 수준을 파악하고 교육과정을 만드는데 기초자료로 사용하지 않는지가 의문이다.

 다음으로 관심이 간 주제는 미래 온라인 교육이다. 온라인 교육은 이미 한번 바람이 불고 그 한계를 절감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책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미래 온라인 교육은 중등에서 자유학기제와 연동가능하다. 현재 자유학기에서는 교사에 의한 수업도 상당부분 진행되고 이를 바탕으로 수업이 창의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자체가 학생들의 창의적 수업 경험에 시수로 낭비되는 경우가 많은데 거꾸로 수업처럼 온라인 교육으로 교육과정내 지식을 미리 전달하고 충분한 시수로 제대로 자유학기를 더욱 내실있게 운영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교사 개개인이 ucc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가장 지식체계가 훌륭한다고 여겨지는 교과서 집필진이 ucc를 만들며, 학생에게 ucc를 시청하게 하고 수업부담도 덜어줄겸 이 시청시간은 과감히 시수로 인정한다. 그리고 교사는 프로젝트 학습의 설계자로 학생의 스스로 학습을지원하는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심이 간 부분은 돌봄교실이다. 돌봄교실은 초등에서만 운영하는 것으로 이미 사업이 10년이 넘었음에도 초등 방과후 사업과 더불어 법적근거조차 없이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사업이다. 초등에서도 이 사업에 대해 불만이 상당한데, 교육이 본질인 학교에 방과후와 돌봄사업이 학생수 감소로 학교유휴교실이 늘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초등의 인력과 교사 및 역량을 동원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력을 감소시키는 문제로 다소의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공감하고 있다.

 이런점 이외에도 돌봄은 그 자체로 문제다. 우선 정부가 유권자인 학부모를 의식하고 벌인 사업이다보니 학부모의 요구만 반영되고 가장 큰 수혜자인 학습자들이 없다는 점이다. 돌봄교실에 수용되는 저학년 아이들은 한창 놀면서 자랄 시기이나 돌봄교실은 최대인원을 확보함으로써 좁은 실내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안전이 사회적으로 강조되면서 지나치게 사업이 아이들의 안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책은 돌봄사업의 경우 예산을 이유로 초등교실을 사용하되 지자체가 시설을 사용만하고 안전과 학생의 관리 및 전반의 책무를 가져가는 것이 맞다고 보고 있다. 또한 학부모와 안전에 치중하기 보다는 보다 수용학생들이 즐거운 삶을 가질수 있도록 프로그램 전반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외에도 책은 평생교육과, 중등 자유학년제, 미래 플랫폼으로서의 학교역할, 초등교사와 중등교사의 양성과정의 개편 필요성, 암기형 평가의 문제점 등 교육계 현안의 다양한 문제를 제시하고 미래지향적 해결방안을 보여준다. 교육학책중 모처럼 본 가치있는 책이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 책이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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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식량 - 인류는 자연환경의 위기에 맞서 어떻게 번성하는가
루스 디프리스 지음, 정서진 옮김 / 눌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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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오늘날에 이르기를 설명한 책은 제법 많다. 관심이 가는 주제로 여러 책을 읽긴 했지만 그래도 계속 손이 가는게 이 주제다. 정말 여러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고 다들 흥미롭기 때문이며 인간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를 보여주기 때문. 이 책은 식량확보라는 측면에서 인간의 발전사를 설명한다. 결국 사람의 개체수가 늘어나고, 농업이나 채집수렵업에 종사하지 않고 사회발전을 이끄는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서는 여분의 식량이란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어판 책 제목은 '문명과 식량'이 되겠다.

 이런 식량 확보라는 측면에서 책은 매우 간단한 공식을 제공한다. 우선 사람이 식량을 확보하는 방안을 찾아내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이어서 곧 여러가지 문제로 성장한계인 도끼가 들이친다. 하지만 인류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다른 톱니바퀴로 새로운 성장축을 발견하며 발전해 왔다는 식이다. 즉, 톱니바퀴-도끼-새로운 성장축 의 무한 반복인 셈이다. 이런 무한 반복은 얼핏 낙관론에 빠져 인류가 영원히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글쓴이는 이런 비판을 우려해서인지 초반부터 이 책이 낙관론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류가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과거 사회로의 회귀를 많이 바라는 비관론과도 무관함을 밝힌다.

 

1. 생명의 전제조건들

 책은 시작하면서 기대와는 다르게 우주속에서 지구라는 행성이 갖고 있는 특별한 조건을 언급하며 나아간다. 인간이 생겨나고 식량확보가 가능했던 전제조건을 다루는 것이다. 지구는 몇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데 우선 생명체가 생존이 가능한 황금지대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단점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이 위치한 금성과 화성은 생명체가 살기 불가능하다. 태양과의 위치가 적절하지 못한 관계로 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금성엔 물이 있지만 행성자체가 너무 뜨거워 수증기의 형태로만 존재하며 강력한 온실가스로 표면온도가 엄청나며 대기압과 산성의 지옥행성이다. 화성은 다소 멀리 떨어진 위치와 지구에 비해 매우 작은 중력으로 인해 대기를 지킬수 없었으며 물도 남아있지 못했다. 물론 지구외의 다른 행성에서는 물 이외에 다른 물질이 생명의 매개가 될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으론 일단 물이 중요하다.

 거기에 지구는 몇가지 중요한 특징이 더 있다. 바로 달이다. 달은 초기 지구가 화성정도 크기의 거대 소혹성과 충돌하면서 생길걸로 추정된다. 당시엔 참사도 이런 참사가 없었겠지만 달은 지구에 큰 선물을 남겼다. 우선 달자체가 지구의 중력 영향을 많이 받지만 본인도 지구 중력에 영향을 미쳐 지구의 자전축이 흔들리지 않는 역할을 해준다. 지구의 자전축은 기울어져 있는데 이로 인해 남반구와 북반구의 계절이 다르고 같은 지역에서도 계절의 차이가 생겨 그 지역이 무한히 차가워지거나 데워지는걸 방지한다. 이는 적정 온도를 유지하게해 어느 지역에서든 생명체가 발붙일 조건을 제공한다.

 우리에게 지진과 화산을 선물하는 판구조도 중요한 조건이다. 지진과 화산은 그 지역에 위치한 생명체에겐 재앙이지만 장기적 관점과 다른 지역에서 볼때는 중요한 행사다. 지구는 내부의 맨틀대류로 판이 움직이는데 이들이 솟구치거나 함몰하면서 지구 내부와 외부의 다양한 물질들이 순환하는 구조를 갖게 된다. 이는 지구가 같고 있는 하나의 닫히 세계로서 완벽한 재순환 구조를 제공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하지만 이들의 재순환속도는 지질학적 시간에 가까우며 보다 단기적으로 식량이 필요한 생명체들에게는 하나의 축복이자 재순환에 커다란 제약으로 작용한다.

 이외에도 지구는 외핵의 금속이 강하게 회전하며 만들어내는 자기장 효과로 태양풍으로부터 보호 받으며 여타의 조건으로 호기성 생물체가 만들어낸 오존에 의해서도 보호받는다. 생명체에게 잔혹한 우주에서 이런 모든 조건은 정말 완벽하다 말할 정도이며 심지어 상당히 인위적인 느낌마저 들게한다. 이런 조건이니 인류원리가 등장한것도 매우 당연하다 할 수 있다.

 

2. 식량 확보를 위한 소통전략들

생명체가 생존하고 보다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선 다양한 소통전략들이 필요했다. 가장 처음 개발한 방법은 DNA다. 이는 저장된 유전 정보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시스템으로 특정환경에 자동적으로 적응하는 훌륭한 방안이었다. 하지만 이는 특정 환경이 안정적으로 유지 될때만 성공적이었으며 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경우 문제가 발생했다. 생명은 곧 다른 방식으로 이에 대응하니 그것이 학습전략이다.

 학습전략은 크게 세가지로 시행착오를 통한 개별학습, 사회적 학습, 누적 학습이다. 개별학습은 대개의 생명체가 보이는 전략으로 개체하나하나에겐 의미가 있으니 집단으로 공헌하는 바가 없으며 개체 역시 집단으로부터 누리는 혜택이 없다. 사회적 학습은 한 개체게 습득한 학습이 사회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으로 일본의 한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기 시작하져 삽시간에 번져나간게 예이다. 이는 새로운 생각이  빨리 퍼져나간다는 장점이 있으나 만약 그 전략이 잘못된 것이라면 큰 손실이 온다는 문제가 있다. 마지막은 누적학습이다. 이는 인간만이 보이는 특징적 학습전략으로 학습이 대물림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언어나 사회성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며 세대를 거쳐 전략이 누적되므로 기술이 개선 변형하고 개선된다.

 누적학습으로 형성된 것은 바로 문화라고 할 수 있으며 도킨스가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한 장을 할애해 밈을 주창한 것처럼 유전자 수준이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강력하다. 문화는 유전자를 변형시키고, 유전자 역시 문화를 변형시킨다.

 

3. 첫번째 톱니바퀴 '농업'

농업이전까지 인류는 분명 다른 생명체보다는 훨씬 탁월한 식량확보 전략을 갖고 있긴 했으나 더 나을 뿐 같은 차원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농업이라는 톱니바퀴를 굴림으로써 인간은 다른 차원의 식량확보 능력을 갖추게 된다. 농업이 시작된 계기는 여러가지를 꼽지만 당시 기후가 비교적 안정적인 충적세의 시작과 일치한다는게 대개의 견해다. 기후가 급변했다면 인류는 농업을 위한 다양한 실험과 개선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농사의 시작으로 인간은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하며 한곳에 정착하고 예측 불가능한 날씨에도 대처했다. 하지만 하라리가 지적한 것처럼 농경은 인간에게 엄청난 불행도 가져왔다. 사회가 계층화되어 수탈이 시작되었고, 뭉쳐있다보니 집단감염병이 발병하고, 식단이 단순하고 총량은 늘었지만 개개인의 식사량은 줄어 영양실조가 보편화되었다.

 이런 농업에 도끼가 날아드니 바로 토양의 영양부족이다. 정착사회는 수렵채집과 다르게 한곳에 머무르므로 자연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 농작물을 수확하면서 토양엔 지력이 거의 남지 않게 되는 게 그것이다.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질소와 인이 필수적인데 이들의 자연계에 풍부함에도 토양으로 재순환해 돌아오는 시간이 매우 늦다. 이런 주기의 불일치성(자연의 재순환과 식량의 재순환)은 농업이라는 톱니바퀴에 도끼로 다가오고 인간은 새로운 성장축을 찾게 된다.

 

4. 두번째 톱니바퀴 화전과 새로운 농법들

 질소와 인의 재순환을 놓이기 위해 고안된 첫번째 방법은 화전이다. 남은 농작물이나 주변의 나무는 인간에게는 식량이 되지 못하는 것이지만 내부에 많은 질소와 인을 품고 있다. 이를 태워서 비료로 사용하면 질소와 인의 재순환속도를 높여 어느정도 지속적 농법이 가능했다. 도시화 이전에도 유럽지역과 아시아의 울창한 삼림이 이미 도륙난것은 이 때문이다.

 퇴비 역시 중요했다. 인간이 음식물을 섭취하고 남은 배설물에는 영양분이 60%이상 남아있으므로 그 자체로 훌륭한 비료가 된다. 고대 중국은 이 부분에서 하나의 완벽한 예였다. 그들은 뛰어난 관개시설을 구축하고 작물마다 다른 종료의 퇴비를 주었으며 이런 완벽성은 수천년간 수천만의 사람을 부양하는것을 가능케했다. 거기에 농경에 필요하며 단백질 공급을 제한할 목적으로 육식을 금기하는 문화도 발전시켰다.

 농업방법도 느린 자연적 재순환의 단점을 보완했다. 돌려짓기가 그것이다. 유럽인 이포식, 삼포식, 사포식으로 돌려짓기가 발전해갔다. 이포식은 반은 농경, 반은 휴경이 번갈아 지속되는 것이며 삼포식은 보다 발전에 하나는 농경, 하나는 콩과식물, 하나는 가축의 먹이가 되는 풀을 재배하는 것이었다. 콩과식물로 지력을 회복하고, 풀로 가축을 사육해 가축의 노동력을 농경에 활용하고 인간의 먹지 못하는 풀의 질소와 인을 섭취가능한 육류로 전환하는 방법이었다.

 사포식은 영국의 노퍽에서 시작 된것으로 이른바 농업혁명이라 불린다. 글자그대로 농경지를 4부분으로 나누어 밀, 순무, 보리, 토끼풀의 순서로 돌려짓는 것이다. 밀과 보리는 인간의 식량이 되며 순무를 가축의 먹이가, 토끼풀의 가축의 먹이이자 지력회복을 도왔다. 이는 보다 많은 잉여농산물을 가능케 해 산업혁명과 맞물려 도시노동자를 위한 많은 식량을 제공했다.

 이런 농법에도 불구하고 19세기까지 여전히 인간은 기아의 위협에 직면해있었고 다른 최상위 포포식 개체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이긴 하지만 여전히 전세계인구가 5억정도에 불과했다. 거기에 또 다른 성장한계 도끼가 날아드니 바로 상하수시설의 구축이다.

 유럽지역에서는 도시 인구가 늘어나며 도시엔 인분이 넘쳐나고 농촌은 모자라는 불균형이 처음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도시에서의 인분이 농촌으로 흘러들어가 재순환되는 구조가 끊기게 된다. 반면 도시 지역인 인분을 무분별하게 강으로 방류하며 전염병과 위생상태가 매우 열악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하수 시설을 구축한다. 오늘날의 수세식 화장실의 시작인 셈이다. 도시는 개끗해지고 전염병도 막았지만 질소와 인의 재순환이 깨어지며 강과 바다에는 부영양화라는 오염이 시작되었다.

 

5. 세번째 성장축 '비료'

산업혁명으로 도시 인구가 늘어나고 전체 인구도 불어나자 인류는 다시 한번 도끼를 맞는다. 하지만 남미지역에서 발견한 구아노와 초석이 이를 단기적으로 해결한다. 수백만년간 새의 똥으로 거대한 층이 쌓인 이 지역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새똥이 매우 잘 보존되었다. 이런 구아노와 초석을 이용해 비료가 생산되었으며  이 지역의 경제성으로 스페인 남미연합 전쟁, 그리고 볼리비아 페루 대 칠레전쟁이 일어난다. 구아노와 초석은 몇십년간 전세계를 먹여살리나 곧 고갈된다.

 그래서 인류는 화학비료를 개발하게 된다. 우선 질소인데 질소는 대기의 80%가까이 차지할만큼 흔하지만 그 흔함은 강력한 결합때문에 가능하다. 이 강한 결합으로 단백질의 근원인 질소를 고정시키는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으나 인류는 이것을 해결한다. 한편 인은 질소만큼 자연계에 흔하지 않다. 동식물의 인은 해저로 흘러들어가 지층에서 암석화되고 이게 화산폭발이나 판운동으로 다시 육상으로 올라와 재순환되는데 인류는 이것을 이용하며 지하에서 인덩어리인 인회석을 캐기 시작했다. 양은 상당히 많았지만 질소만큼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으며 인의 확보 방안은 안타깝게도 아직 이 수준에 머무른다.

 이런 방식은 커다란 두가지 변화를 불러온다. 하나는 화석연료의 사용이다. 질소와 인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다양한 기계의 동력이 요구되었고, 이는 농업에 있어 화석연료 사용의 시작을 의미했다. 사실상 인간이 동식물 에너지가 아닌 화석연료의 에너지로 연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패러다임의 근본 전환이기도 했다. 과거 동식물 에너지에 의존할때는 인간이 식량 확보를 위해 들인 에너지보다 식량을 통해 얻은 에너지 반드시 많아야 했다. 그래야 생존과 번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식량화복에 이용하기 시작한 후, 식량의 양자체는 수십배로 늘어났지만 에너지 소모는 그 이상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식량확보에 들이는 에너지가 더 많으면서도 번영하는 기묘한 적자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지금의 저가음식이 실제로 비싼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곧 도끼는 다시 찾아온다. 바로 병해충이다.

 

6. 네번째 성장축 DDT와 품종개량

화석연료에 의한 대규모 경작은 엄청난 생산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품종이 밭에서 단일하고 유전자마저 동일한 경우가 많아 병해충에 매우 취약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의 바나나품종을 읽었으며 다른 많은 과일과 경작물도 위기상태다. 이런 병해충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게 살충제이고 그 대표작이 DDT다. DDT의 사용으로 많은 해충을 제거하였고 말라리아등 많은 질병도 크게 감소했다. 하지만 진화의 원리상 내성을 갖춘 개체가 빠른 속도로 불어났고 살충제는 곧 위력이 크게 반감한다. 거기에 부작용도 있었다.

 레이첼 카슨이 밝힌 것처럼 DDT는 다른 생명체를 죽이기 시작했다. 이는 생물농축때문인데 DDT는 해충을 방제하기 위해 농작물에 오래도록 머무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비수용성으로 개발되고 지방에 녹는 지용성으로 개발되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생물이 지방을 갖고 있다보니 DDT를 흡수하면 체내지방에 그대로 농축된다는 점이었다. 이로 인해 DDT를 살포한 지역의 다른 생물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으며 강이나 바다. 대기등으로 퍼져 농산물과 전혀 무관한 극지방에서도 발견되었으며 역시 더욱 무관한 에스키모의 혈중에서 고농도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DDT에 대한 찬반논란끝에 대부분의 선진지역에서는 살포가 금지되었지만 아직도 잔류물은 남아 있는 형국이며 열대지역의 개발도상국의 경우 말라리아에 대한 대비로 아직도 살포가 허용되고 있는 상태다.

 품종개량도 또 하나의 성장축이 되어주었다. 농업혁명에 이어 유전자 조작과 전통적 품종개량을 통한 새로운 작물이 등장했다. 이들은 단위면적당 생산성을 엄청나게 높여주었으며 주요작물인 밀과, 쌀, 옥수수, 콩등의 작물에서 개발되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통일벼같은 것이다. 하지만 녹색혁명은 역시 많은 문제를 낳았는데 다수의 물이 필요하다보니 건조지역에서는 지나친 관개로 호수가 말라버리거나 지하수층고갈의 문제를 낳았으며, 품종을 대규모 농산기업에 의존하다보니 경제적으로 농민이 그들에게 예속되고, 현지작물에 적합한 다양한 토착 품종이 절멸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7. 다시 등장하는 도끼들

살충제와 새로운 품종, 화석연료와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지금의 농업은 새로운 도끼들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화석연료의 사용과 가축의 사육으로 대규모의 온실가스가 발생하고 있으며 화학비료의 과다사용으로 거기서 나온 아산화질소가 역시 강력한 온실가스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농업에 과다한 물을 사용함으로써 일부지역에서는 이미 공급을 능가하는 사용으로 물의 재순환이 깨어져나간 상태다.

 그리고 기후변화와 부영영화등의 환경오염으로 다양한 생물종들이 전멸하고 있어 환경적으로도 위기 상태이다.

 반면 사실상 생산을 위한 에너지의 과다사용으로 사실상 비싸지만 역사상 표면적으로는 가장 가격이 싸고 질이 낮은 음식으로 정작 인간의 건강도 위협받고 있다.

 책은 이러한 문제들에도 결국 우리가 새로운 성장축을 찾고 번영할수 있을 거라고 보는 편이다.(이런면에서 이 책은 낙관적이고, 사실 나도 비관론에 관심이 많은 낙관론자다.) 다만 이런 번영을 위해서 새롭게 등장하는 도끼들이 충분히 신경을 쓰고 대처해야나간다는 다소 뻔한 주장을 한다. 전체적으로 책은 매우 읽기 쉽고 재밌으며 인류전체와 현대의 문제를 살피는 재미가 있다. 이런 책을 많이 봐서 큰 감흥은 없었지만 이런류의 책이 생소한 사람에겐 제법 많은 독서의 기쁨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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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 꼭 알아야 할 디지털 변혁 이슈 16가지를
조원경 지음 / 로크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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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부터 미래와 관련한 책들을 제법 읽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미래 동향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해 그 후로 몇년간 집중했지만 나오는 책들도 대개 비슷하고 큰 변화가 없어 관심을 다소 끊은 상태였다. 그러다 모처럼의 강요로 미래 관련 서적을 다시 잡게 되었다. 일전부터 알고 있던 것들도 있었지만 전혀 모르거나 잘 모르는 것들도 적지 않아 제법 좋은 독서가 되었다. 책은 'soulmate'라는 영어철자로 각 소주제를 16개 다루는데 한 철자당 두개 씩이다. 미래에 관련한 자신의 책이 미래를 맞딱뜨려야 할 독자들에게 소울메이트가 되어주길 바란 것 같기도 하다.  

 관심이 갔던 소주제중 하나는 '스마트 시티'였다.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로 툭하면 스마트가 붙어 좀 지루한 표현이기도 했지만 개념이 참신했다. 책에 의하면 지금까지의 도시는 매우 2차원적이다. 공간은 분명 3차원인데 2차원 지도로 그림을 그리고 그 부분은 거의 한가지 기능만 하기 때문이다. 스마트 시티는 3차원 이상의 도시가 된다. 도시의 각 영역이 중첩적으로 협업하고 효율적인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도시는 도시이용자가 모든 서비스를 찾아야 하는 형국이었다. 차가 없는 아이 엄마가 고궁을 방문하고 싶다면 알아서 고궁 방문시간과 서비스가 혹시 있는지를 알아보고, 차량 및 교통과 요금등의 제반 서비스를 직접 찾아야했다. 하지만 스마트 도시는 마치 지능형 비서처럼 작용하며 이런 수요자의 요구에 알아서 대처한다. 스마트폰이나 앱으로 이런 요구를 하면 도시의 모든 기능이 하나로 연결되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과거 도시에서 주차난 해결을 위해서 주차장을 지어야 했다면 스마트 도시는 각 지역의 주차시간과 양, 퇴근후 인근 건물의 빈주차창등의 정보를통합적으로 제공해 해결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음으로 관심이 간 주제는 블록체인이다. 비트코인으로 유명해진 블록체인이라 돈과 관련한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블록체인은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하다. 그간 데이터의 처리는 상호간의 신뢰를 위해 믿을 만한 제3의 기관의 공증하에 이루어졌다. 개인의 돈거래에 은행이 있거나 인터넷 상거래에 각종 사이트가 중개하는 식이다. 이런 형태나 자연스레 고비용 비효율을 처래하며 무엇보다도 믿을만한 제3기관이 해킹당하는 위협에도 노출된다. 블록체인은 이를 해결하는 기술이다. p2p분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여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검증과 동의로 거래정보를 블록으로 형성하고 분산하고 저장하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제3의 기관이 필요없고 모든 사용자에 정보가 공개되고 분산 저장되니 믿을 수 있다. 또한 정보가 공개되니 여러 곳에 흩어진 정보를 모으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다. 가령 의료기관 이용시 병원을 옮길때마다 기본검사를 따로 하는데 블록체인 형태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블록체인은 가난한 국가들에도 긍정적이다. 전세계인구의 약 20%인 15억명이 자신을 입증할 만한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즉, 이들은 제3기관을 거친 거래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을 활용한다면 이들에게도 간단한 디지털 신원확인 프로그램 제공이 가능하다. 또한 분산적 형태의 운영으로 기존에 정보와 거래 권한을 독점한 구조를 깨뜨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의료 및 급여, 유지보수등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는 블록체인의 미래는 꽤 기대된다.

 책 전체적으로 중국의 발전을 많이 예로 든다. 중국은 따라가기가 매우 힘든 2-3차산업혁명을 건너뛰고 4차로 직행하는 느낌을 주는데 여기에는 중국 정보의 강력은 정책도 있었지만 중국 자체가 낙후되어 너무 넓어 모바일 및 원격거래 환경이 작용하기 유리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낙후가 간혹 혁신을 부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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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술책 - 곰브리치에서 에코까지 세상을 바꾼 미술 명저 62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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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이진숙의 '시대를 훔친 미술'을 봤다. 시대와 미술이 서로를 다소 앞서거나 따라가며 변하가는 모습을 정말 인상깊게 잘 보여준 책이었다. 그게 현대 미술을 제외한다면 미술의 거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는데 같은 저자의 책에서 생각이 바뀔지는 몰랐다. 어떤 의미에선 이 책이 보다 미술을 잘 종합한 책 같다.

 위대한 미술책에는 저자 이진숙이 미술을 소개하거나 설명하는 명저 62가지를 드러낸다. 이런 소개책은 깊이가 얕을 경우도 있지만 작가의 내공이 워낙 대단한지라 마치 자신이 전반적인 서술을 하고 소개책이 뒷받침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책은 총 5부로. 다소 특별한 미술가를 다룬 작가이야기, 서양미술사, 한국미술사, 미술이론, 미술시장과 컬랙터로 이루어진다. 각 부마다 인상적인 부분을 추려보았다.

 

1. 작가이야기

 작가이야기에서는 여러 사람을 다루지만 저자가 가장 중시한 사람은 단연 뒤샹이다. 뒤샹은 혁명적인 작업을 했음에도 의외로 이렇다할 작품을 많이 남기지 않았기에 생각보다 중요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저자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피카소보다는 뒤샹이 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고 본다. 뒤샹은 작품' 샘' 으로 처음으로 미술사에 오브제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로 인해 그동안 중시하던 미술가의 손보다는 개념이 중요시 되었다. 뒤샹은 20세기 미술을 망막적이로고 보았는데 기존의 회화를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망막회화로 보았다.

 그는 산업생산물에 대해서는 나름의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인간은 삶에 대한 에로스적 욕망을 갖고 있는데 이 것이 상품숭배라는 사회적 현상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혁명이후 물건은 사용가치보다는 인간의 권력과 욕망과 보다 관련하게 된다. 그가 만든 오브제는 이런 개념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어서 더욱 파격적인 것이었다.

 

2. 서양미술사

 서양미술사에서 이진숙 역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가장 먼저꼽았다. 작가는 3권의 서양미술사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러시아어판, 다른 하나는 한국어판, 마지막이 초판 영문판이다. 영문판은 그녀 역시 받은 것이라는데 미술을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언젠가 줄것이란다.아마 값어치가 대단할 것이다.

 곰브리치는 미술사를 아는 것과 보는 것의 변증법으로 파악했다. 미술은 처음에는 독자적인 존재가 아닌 집단의 주술이나 종교에 존속했다. 이때는 집단 구성원이 구성하는 이미지가 중요하여 원시미술과 이집트 미술은 아는 것을 표현한다. 반면 그리스는 미술에서 미적인 목적 자체를 중시하는 것으로 바뀌어 자연을 관찰하여 표현하는 미술을 추구한다. 때문에 패러다임은 보는 것으로 바뀐다. 하지만 종교의 시대가 열리면서 다시 아는 것의 시대가 도래했고, 르네상스가 도입된 후에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세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보는 것의 시대가 다시 돌아온다. 보는 것을 그린다는 것의 극대화는 인상주의인데 인상주의 화가 세잔은 인상주의 화가의 무질서함을 극복하고 아는 것과 보는 것의 통합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세잔은 후에 피카소의 입체주의로 발전한다.

 다음 서양미술사는 미와 추의 역사다. 작가는 움베르토 에코. 에코는 특이하게도 미술의 역사가 미의 영역이 추를 끌어오면서 확장된 것으로 파악한다. 동시에 추는 미를 밀어내고 전면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는 서구세계가 지향해온 보편성과 영원성이라는 개념의 해체과정이며 미적 체계의 붕괴과정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래서 에코의 미의 역사는 갈수록 초라해지는 반면, 추의 역사는 갈수록 화려해진다.

 서구세계에서 진선미의 공고한 결속은 고대 그리스에서 형성된 것인데 이는 과학의 발전과 그로 인한 세계의 지속적인 확장으로 깨어져나간다. 서구세계는 점점 낯선 것을 잡하게 되었고, 추하게 여기던 그것들을 점차 예술적으로 구제하려는 시도를 한다. 17세기 바로크시대에 이르러선 선과 악을 넘어선 미가 표현되기 시작하고, 추를 통해 미를 거짓을 통해 진실을, 죽음을 통해 삶을 말하게 되며 이는 선과 미의 공고한 관계에 큰 균열을 낸다. 이제 아름다움은 세계질서법칙이 아닌 수용의 문제가 되었으며 현대 미술의 정독법은 이미 추라고 쓰고 미라고 읽는 것을 권장한다.

 

3. 한국미술사

저자는 자신 역시 서양미술을 전공한 사람으로 한국미술사를 다루는 것을 무척 책에서 조심한다. 하지만 한국미술에 대한 이해 없이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고 한국미술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저자의 노력덕에 서양미술도 모르지만 한국미술은 더더욱 모르는 상태가 조금은 개선되는 것 같다.

 우선 영기무늬 개념을 창안한 강우방을 다룬다. 강우방은 우리 미술품에서 무늬를 살펴나가면서 고사리 같은 문양을 발견하는데 여기 저기 얽힌 이것을 영기무늬라고 주장하고, 세계의 모든 고대 미술품에 영기무늬가 등장함을 주장한다. 이것은 과거 인류가 영적인 존재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후대로 갈수록 미술품에서 영기무늬가 사라지는 것은 미술의 발달이지만 영성을 상실해가는 과정으로 볼수 있다고 말한다.

 다음은 집합이론을 주장한 김봉렬이다. 그는 한국건축은 곧 집합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한국건축물을 볼때는 건축물의 구조나 형태에서 의미를 찾으면 안된다. 방, 건물, 건물군, 영역군이라는 분석 단위를 설정하고 각 단위간의 조합되는 유기적 관계를 통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합이론은 또한 한국의 건축이 자연환경에 순응한 것이라는 기존의 소극적 견해를 깨고, 자연을 해석하고 적극적으로 경관을 건축화한 능동적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이진숙은 김봉렬이 말하는 각 요소의 비대칭성, 비정형성, 비표준성, 전체성이 단지 건축물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예술전체를 관통하는 것이라 말한다.

 

4.미술이론

우선 베레나 크리커의 예술가는 무엇이냐를 다룬다. 이 책에서는 예술가의 개념 변화를 설명하는데 과거 예술가는 초기 손으로 노동하는 기술자 취급을 받았다.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에 의해 예술가의 신격화가 이루어졌고, 낭만주의에서는 예술가를 범인이 아닌 천재로 보는 관념이 등장한다. 이시기의 예술가는 계몽주의로 세속화했고, 내면세계로 탐닉하며, 반시민적 태도를 갖고, 부족한 사회적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현대에서는 예술가는 날품팔이 노동자로 전락하거나 비즈니스맨이 되었다.

 다음은 추상화다. 윤난지는 추상미술은 그 자체의 본성으로서 아름다운 세계인 유토피아의 시각적 표상이라고 말한다. 유토피아는 근본적으로 추상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 파리에서 활동한 추상미술의 거두들은 폴란드나 러시아등 주변지역 인물들이었는데 이는 그들의 국가와 사회가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즉,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를 전제로 하기에 유복한 프랑스사람에게선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시기 추상화는 기하학적 형태였는데 이런 기하학적 보편주의와 평등주의는 전체주의로 연결된다.

 2차대전 이후 추상화는 비기하학적 형태로 이동한다. 유토피아에 대한 관념변화와 관련하는데 보편주의에서 개인주의, 평등주의에서 자연주의로 이동했으면 이에 가장 걸맞는 국가는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은 이런 추상화를 적극 옹호하고 지원한다.

 추상미술은 예술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는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예술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것은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도 의미가 있는 저항적 행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의미를 포함한 추상화가 비싼 상품이 된다는 것은 또하나의 아이러니다.

 다음으로 인상적인 것을 사진이다. 수잔손택은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 존재하게 되어 버렸다고 말하낟. 사진은 풍요롭고 낭비를 일삼으며 만족할줄 모르는 사회의 본질적인 예술이다. 또한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이룬 중간계급에게 가장 적합한 도구이기도 한다. 사진은 초기에 기계장치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 작가의 주관을 배제한 객관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런 보편성은 중간계급의 특징과돠 일치한다. 하지만 오늘날 잘 드러나듯 사진은 회화나 데생처럼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다. 산업화한 사회는 시민들을 이미지에 중독시키고 판단을 마비시킨다. 사람들은 이런 사진이미지를 통해 경험한다는 것의 의미를 자꾸 바라보는 것으로 축소시켜간다. 사진이 갖는 심각한 문제점이다.

 다음은 풍경화다. 서양의 풍경화와 동양의 풍경화를 비교하는데 서양은 시각적인 전유에 중점을 두는 반면 동양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속에 들어가 즐기는 것이 목표다. 초기부터 풍경화가 적극적으로 등장한 동양에 비해 서양에서는 풍경화가 무려 17세기에나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이는 서구 사회가 산을 인간이 죄를 지어 발생한 홍수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보는 종교적 관념때문이었다. 산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풍경화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는데 특히, 외부세계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시원한 조망과 더불어 정자나 누각등 은신의 공간이 있는 경우가 더욱 그러하다. 이는 원시 인간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시각행동을 현대인도 여전히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5. 미술관과 컬랙터

현대에 이르러 미술품은 자본을 확대하거나 화폐가치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여겨지며 천문학적인 가치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최근의 일이고, 100여년전만 해도 미술품은 잘 거래되지 않았고, 가치도 높지 않았다. 때문에 과거 예술가들은 왕이나 유력 집안의 후원아래 성장하였는데 대표적인 곳이 르네상스 시기의 메디치 가와 교황청이다. 이들은 단지 예술을 사랑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은 예술가를 후원함으로써 자신들의 가문에 유리한 이미지를 퍼뜨렸으며 화려하고 장대한 미술품으로 자신들을 미화한다, 즉, 미술품을 자신들을 포장하는데 사용한 셈이다.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관점으로 미술품을 컬랙트한 사람은 훌륭한 컬랙터로 남지만, 자본을 목표로 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사들이고, 후에 가치를 높인 후 되파는 식이 비판받는다. 이들은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신들이 작품을 사들인 젊은 작가의 작품을 일부러 유력 미술관에 기증하거나 전시회를 열기도 하며, 반대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작가들의 작품은 팔아버린다. 이들의 이런 행위는 하나의 척도가 되버려서 이런 경제적 행위가 미술가들의 가치를 결정하는 행위가 되버린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책은 이처럼 전작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미술을 다룬다. 추천한 62권의 명저중 읽은 것은 고작 5권에 지나지 않았다. 큰 숙제를 얻은 기분이며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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