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지식인마을 30
신혜경 지음 / 김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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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도르노와 벤야민. 정말 여러 책에서 제법 들어본 이름들이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관련하여 대단하신 분들 같은데 솔직히 잘 모른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대학초년시절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영어를 무식하게도 모더니즘 중심주의라고 생각했었다. 포스트가 기둥이니(보통 축구에서 슛이 골대 때리면 골포스트 맞고 나왔다고 하지 않는가)모더니즘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이 아닐까라고......알고보니 포스트는 -이후라는 다른 뜻도 있었으니 포스트 모더니즘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모더니즘을 넘어선 그 이후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여튼.

 그래서 무식함을 타개하고자 지식인 마을 시리즈의 힘을 다시 빌렸다. 직장에서 구매해준 지식인 마을 시리즈, 결국 2017년 한해동안 겨우 20%정도 밖에 읽지 못했다. 아쉽다. 지점을 옮겼다고 말하긴 이상한 직장이지만 지점을 옮겼기에 올해부터 일하는 직장엔 이 시리즈가 없다. 아쉽다. 가지고 오고 싶었다.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대중문화에 대해서 정반대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단순화하면 아도르노는 대중을 기만하는 부정적, 벤야민은 그런 측면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해방의 긍정을 보았다. 둘의 공통점은 유대인이라는 점이며 유명세에 걸맞지 않게 말년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68세대의 강한 비판속에 화가나 무리한 산행의 후유증으로 죽었고, 벤야민은 2차대전속에 빠르게 운신하지 못하고 나치점령하의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건너가다 일이틀어지자 짐작이라도 한 듯 미리 준비한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런 비참한 말년을 보낸 이들의 사상이 오래도록 회자되니 인생이란 참 모를 일이다.

 아도르노의 사상의 출발점은 계몽의 변증법에서 시작한다. 당시 파시즘과 이로 인한 대량학살을 목도한 그는 이런 역사적 파국들이 예외적이고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류사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건으로 파악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파국성은 인간의 합리성에서 기인하는데 아도르노는 계몽의 출발을 인간의 자기 보존을 위한 합리적 노력에서 찾느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자기 보존을 위해 자연 지배를 시도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과 하나였던 인간의 자연성이 점차 사리지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개별적으로 약하기에 집단적 힘과 사회적 관계의 힘에 의존하는 사회적 지배의 단계이 이르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지배와 피지배를 통한 억압이 실현되며 문명이 상당 수준에 이르러 자연 위에 인간의 이성이 군림하게 된다. 자연은 원시처럼 취급되며 이로 인해 인간은 자신 안에 남겨진 감정이나 본능등의 자연을 거부하게 되는데 이것이 인간의 내적 자연의 지배다.

 즉 계몽의 변증법은 인간의 자기보존-인간의 자연지배-인간에 의한 사회적 지배-인간에 의한 인간의 내적 자연지배 순으로 이루어져나간다. 아도르노에게 계몽적 주체의 자기 유지는 어이없게도 자기 부정, 즉 자신의 내적 욕망과 충동을 부정하고 억압함으는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이런 아도르노의 생각의 기저엔 동일성 원리란 또 다른 생각이 바탕을 깔고 있다. 동일성의 원리는 주체가 대상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서로 다른 대상들의 고유성과 차이를 무시하고 대상을 계산 가능하고 대체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의 주관적 형식을 대상에 부과함으로써 대상으로 하여금 주체의 형식에 따르게끔 강제하는 것을 말한다.

 따지고 보면 계몽의 변증법 과정에도 이 동일성의 원리가 적용된다. 인간은 자연지배 단계에서는 외적 자연의 동일시에서 벗어나 이들을 개념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으로 동일성 원리를 적용했다. 사회적 지배 단계에서는 상품생산 사회의 교환 원리로 그리고 인간 자신의 내적 지배 단계에서는 문화산업으로서의 대중화로 적용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과거 예술은 시공간의 제약을 크게 받는 유일무이한 것에서 copyright가 난무하는 존재로 언제어디서나 존재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예술은 이제 더 이상 예술이 아닌 문화산업으로 탈바꿈한다. 아도르노가 보기에 문화산업은 두 가지 특성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표준화다. 이는 문화산업의 산물들이 사실상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상품과 같다는 것으로 표준적인 도식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됨을 말한다. 표준화를 위해선 플러깅이 필요하며 플러깅은 글자그대로 사람들의 머리에 플러그를 끼우고 반복해서 주입하여 문화적으로 세뇌하는 것이다.

 문화산업의 또 다른 특성은 사이비 개성화다. 표준화와 플러깅이 지나치면 사람들은 금방 질리게 된다. 그래서 문화산업은 대중에게 항상 새로워보이는 것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것을 본질적으로 표준화의 도식을 그대로 따르며 특수하고 개성적인 것으로 가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히트하는 대중가요에 공식이나 상당한 유사성이 있음은 바로 이런 문화산물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산업은 이러한 특징을 갖다보니 동일성의 원리에 의한 내적지배를 공고히하는 역할을 하게된다. 이런 문화산업에 취한 대중은 수용적이고 적극적인 반성적 사유를 상실하며 기존지배체제에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이런 문화산업의 함정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미메시스를 제시한다. 미메시스는 대상과의 동화를 뜻하는 것으로 계몽적 변증법이 동일성원리에 의해 적용되기 전, 즉 합리적 주체가 발전되기 이전 단계에서 인간이 타자와 관계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대상과 같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동일성의 원리에서 주체가 대상을 강점하는 것과는 다르게 대상에 대한 동경을 갖고 유사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대상에 대한 비교우위를 인정하는 형태이다. 이로 인해 미메시스적 인식이 가능한 문화산업이 아닌 예술은 대상을 참되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가치 있는 것이 되게 된다.

 이러한 아도르노의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며 현대자본주의 사회에 의해 침식된 대중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때문에 대중문화의 가능성, 그리고 사회에 긍정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아도르노는 넘어야하는 벽이된다.

 다음은 벤야민이다. 벤야민 역시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예술의 시공간을 초월을 중대한 변곡점으로 파악한다. 벤야민은 예술은 본디 유일한 것으로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는데 기술적 복제의 가능함으로 이것을 사라지게 된다. 과거 아우라가 있는 예술은 주체와 대상이 통일되고 교감하는 것이었다. 아도르노는 이런 아우라적 성격을 대중문화산업에 대항하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보았으나 벤야민은 정반대외 의견을 제시한다.

 아우라의 상실이 어떤 경우에는 예술의 정치적 기능전환을 위한 긍정적인 지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여기서 소외개념을 제시하는데 주체와 대상이 아우라로 인해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연결되어 있던 관계에서 단절되고 소원하게 됨으로써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오히려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예술의 정치화로 연결된다. 새로운 기술적 수단을 이용하여 예술이 해방적으로 이용되고, 새로운 기술에 잠재된 혁명적 에너지가 분출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한예를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에 등장한 영화에서 몽타주 기법에서 찾는다. 이 기법을 통해 대중에게 충격과 각성을 불러일으킴으로 대중을 집단적 주체로 형성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와 자본주의의 실패, 그리고 이로 인한 파과적 사회를 경험하며 예술의 같은 지점에서 놀랍게도 정반대의 양면성을 보았으며 날카로웠기에 이들의 시각은 오늘날에도 힘을 갖고 있다. 여러면에서 많이 배운 책이었으며 지식인 마을 시리즈중에서도 저자의 능력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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